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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주 편집국장

"신자유주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없으면 사람도 아니게 된 각박한 세상에서 살기 정말 숨막히는데, 이젠 말문까지 막아버리려 하다니 마지막 숨통까지 조이는 기분입니다. 대체 이렇게 못 살게 구는 이유가 뭡니까? 뭘 잘못했나요? 진실이고 정의고... 죽어지내라는 겁니까?"(누림)

선거실명제 반대 서명게시판에 올라온 글 중 하나입니다. '누림'이라는 분이 남긴 글입니다. 민중언론 참세상은 '누림'이란 분이 누군지 물론 모릅니다. 민중언론 참세상 페이지는 덧글을 남기더라도 아이피(ip)를 알 수가 없고, 회원에 가입하더라도 주민번호를 남기지 않습니다. 따라서 '누림'이 여성인지 남성인지, 20대인지 50대인지, 서울에 사는지 강릉에 사는지, 하여간 어떤 정보도 알 수 없습니다.

다만 분명한 건 '누림'이란 분은 인터넷실명제가 될 경우 '각박한 세상'에서 '말문까지 막아버리려' 하니 '숨통까지 조이는 기분'을 느끼는 사람이고, '못 살게 구는 이유가 뭡니까'라고 따질 줄 아는 용기있는 사람이란 점입니다.

여기서 두 가지 생각이 떠오릅니다. 하나는 인터넷실명제가 분명히 불특정한 다수의 숨통을 조인다는 것입니다. 더욱이 선거법에 따라, 선관위가 이 법을 집행한다는 점에서 국가권력이 이 폭력을 저지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평택 주민의 숨통을 조이듯 네티즌의 숨통을 조이는! 국가가 나서서 폭력을 행사한다는 사실입니다. 표현의 자유, 정치활동의 자유를 구구절절이 읊을 필요가 있겠습니까.

또 하나는 민중언론 참세상이 막 일정이 코앞에 닥쳐서야 대응을 호소하고 나섰는데 이 점 죄송하다는 말씀입니다. 선거실명제반대공대위 구성을 제안하기도 하고, 기자회견을 열기도 하고, 국가인권위에 진정을 내기도 했지만, 인터넷언론의 독자들과 함께 호흡하며 적극적으로 대응해오지 못해온 게 사실입니다. 18일 선거실명제 시행을 며칠 앞두고 부산을 떨게 되었습니다. 이 점, 참세상을 이용하는 독자님께 진심으로 미안한 마음입니다.

바쁜 마음에 어떻게 지난 주부터 부랴부랴 대응팀을 만들고, '참새뉴스' 호외도 발간하는 등 싸움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또 진보적인 인터넷언론매체에게 '전면거부'(프로그램 설치 안한다. 게시판 안 닫는다. 선관위 행정조치 거부한다) 방침을 내걸고 함께 싸울 것을 제안드렸습니다. 공대위 차원에서 불복종 선언을 하고 함께 대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진보적 인터넷언론이 '전면거부'를 내걸고 정면돌파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입니다. 한마음으로 나서주리라 믿습니다.


▲ 문을 닫아도 받을 수 없다!

그런데 만만치가 않습니다. '누림'의 지적처럼 '돈이 없으면 사람도 아니게 된 각박한 세상' 아니겠습니까. 선거실명제를 안 지키면 어마어마한 벌금이 떨어질 겁니다. 우선 프로그램 설치를 안 할 테니 최고 1천만원에다, 덧글을 안 지울 테니 한 개당 최고 320만원으로 하면 최소한 1천3백만원의 벌금이 내려질 겁니다. 더군다나 선관위에서 민중언론 참세상이 어떻게 하나 유심히 지켜보고 있는 지라 행여 '전면거부'를 선동했다는 괘씸죄까지 덧씌우면 아마 벌금은 천문학적 액수로 늘어날 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되면 가뜩이나 빠듯한 살림에 정상적인 취재활동은 고사하고 모두 거리로 내몰리게 되겠지요. 참세상 폐간 이야기가 우스개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국회 앞에서 텐트치고 농성하듯 참세상 기자들도 음.. 텐트치고 머리 깎고 밥 굶고 그래야 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편집국이 이런 걸 예상하고도 '전면거부'를 결심하게 된 데는 내부 강경파 몇몇이 '가오'를 잡은 탓도 있지만, 순리를 거스르겠다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였기도 합니다.

뭐 이런 생각이 듭니다. 까짓 인터넷신문 못 만들게 되면 어떤가. '누림' 같은 분과 단 하루라도 자유롭게 합께 호흡하는 게 참세상이 할 일 아니겠는가. 마음을 비우니 참 홀가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