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죽했으면 그랬을까?

[언론동향] 12,25일 노동자대회 앞두고 또다시 '시민불편'

지난달 31일 중앙일보에서 한판 토론이 벌어졌다. 오는 12일, 25일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에서 개최하는 ‘전국노동자대회’가 이날 토론의 모티브였다. 헌법상 집회, 결사의 자유라는 기본권과 시민의 불편 해소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한가를 두고 논쟁이 되었다. 토론에서는 이내 불법과 합법시위냐를 가르더니 집회와 관련된 법규의 모호성에 대한 지적이 제기되었으나, 정작 ‘노동자대회’의 취지와 내용에 대해서는 언급이 안된 채 결국 ‘시민불편 해소 방법’이 무엇일지를 논의하는 것으로 허망하게 마무리되었다.

어제오늘 제기된 문제는 아니지만 요즘 언론들의 보도는 이날의 토론을 보는 것 같다. 노동자대회에 대한 언론의 헐뜯기식 보도는 지난 7일 노동자대회를 앞두고 경찰이 교통체증과 시민불편을 이유로 도심집회를 불허하겠다고 발표한 이후부터 본격화되었다.

경찰이 오죽했으면 불허할까!???

최선봉은 중앙일보였다. 중앙일보는 노동자대회가 예고된 지난달부터 <경찰 수뇌 ‘몸 사리기’ 시민들만 골탕 먹는다>, <과격해지는 시위대, 눈치 보는 경찰> 등의 기사를 내보내면서 “시민들은 주말마다 서울 도심에서 열리는 각종 집회 때문에 제대로 나들이 한번 못한다”는 고루한 논쟁을 시작했다.

동아일보가 가세했다. 경찰에서 민노총 등의 노동자대회를 불허하겠고 통보해온 7일 동아일보는 사설 <경찰이 오죽하면 노동단체 도심시위 불허할까>를 포함해 <길 막는 도심집회 7년만에 첫 불허>, <시민 발목잡는 ‘그들만의 집회’안된다> 등을 실었다.

동아일보는 사설에서 “서울 도심이 각종 집회시위로 인한 무법(無法) 무질서에서 벗어날 수 있게 돼 다행스럽다”며 “집회 참가자들의 시위 권리도 중요하지만 다수 시민의 자유로운 통행권과 생업권도 침해돼선 안 된다”고 경찰조치에 대한 환영의 뜻을 밝혔다.

다른 언론들도 비슷한 사설을 냈다.

매일경제-길 막는 도심집회 이젠 안된다
국민일보-도심 대규모 집회시위 불허 당연
한국일보-제3자 피해 없는 집회시위 정착돼야
중앙일보-도심집회 불허, 늦었지만 잘했다
문화일보 김석기자-‘도로 점거’ 이젠 그만

중앙일보는 8일자 사설에서 “노무현 정부 들어 도로.거리 시위가 부쩍 늘면서 주말이면 서울 도심은 각종 대규모 시위로 난리법석이고, 교통지옥으로 변하기 일쑤였다”며 “경찰이 뒤늦게 정신 차린 것 같지만, 시작에 불과하다. 지방에서도 같은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죽했으면 시민이 그랬을까!????

7일 민주노총이 서울광장으로 장소를 옮겨 집회 신고를 낸 것을 경찰이 사실상 허용하면서 악의적 언론 보도에 기름을 부었다. 다음날인 8일 한 시민이 교통체증을 이유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저지, 생존권 쟁취 전국 빈민대회’에서 행진하고 있던 시위대를 향해 차량이 돌진한 사고는 일종의 부채질이었다. 몇몇 언론은 ‘오죽했으면’ 하는 식으로 옹호하고 나서는가 하면, 언제는 비이성적이고 우매한 집단으로 매도하던 ‘네티즌’들의 댓글까지 변론의 근거로 이용했다.

‘시위대 차량 돌진’ 사건이 있은 후 지난 9일 동아일보는 <“왜 도로 막고 집회하나” 차몰고 돌진>에서 아직 열리지도 않은 노동자대회를 언급하며 교증체증으로 화가 난 운전자의 발언을 비중 있게 다루면서 은근슬쩍 시위에 의한 극심한 교통혼잡이 사고의 원인이었다고 호도했다.

중앙일보는 취재일기라는 코너에서 <오죽했으면 시민들이 그랬을까>라는 제목으로 ‘시민 대 노동자’의 대결구도에 마침표를 찍었다. 중앙일보는 이 기사에서 “네티즌들이 거의 일방적으로 운전자의 편을 들고 있다는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심지어 운전자 김씨를 "용기있는 시민" "애국열사"로 지칭하는 댓글까지 나왔다”며 “시민들이 오죽 시위에 시달렸으면 이런 소리까지 나오는지 시위대는 한번 생각해 봐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 밖에 조선일보 <경찰, 도심집회 금지한다 해놓고..민노총집회 다시 허용>, 한국일보 <"시위, 이젠 법을 지켜라">, 매일신문 <시민 피해 주는 ‘도심시위’ 제한 마땅> 등의 기사가 이어졌다.


장소 옮겨 개최

결국 이번 노동자대회는 12일 광화문이 아니라 서울광장에서 행진구간과 참가인원을 줄여 개최된다. 언론이 정부의 노동정책에 대한 노동자들의 투쟁을 노동자 대 시민의 대결구도로 몰아간다는 주장과 함께 일각에서는 무차별 대중으로 한 집회가 아니라 정부를 향한 투쟁으로 다른 대안을 고민해보자는 이야기도 나온다.

그러한 고민과 관계 없이 집회는 이미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고 있다. 반복되는 논란 속에서 과격시위가 아니라는 것에 집회의 정당성을 부여받거나, 집시법의 합리적 적용이나 경찰의 적절한 대응을 요구하기도 한다. 집회의 자유에 대한 시민사회의 문제제기가 잇따르고 있음에도 억압된 자유라는 회의가 드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