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어린이 권리에 관한 어른들의 저급한 자화상

장면1. 초등학교3학년 수인이(딸)의 일기입니다.

2005년 9월 12일 월요일 날씨 맑음 / 오늘 학교에서 돌아오니 엄마가 누워 계셨다 / 몸살이 나셨다고 했다 / 학교 갔다오면 간식을 만들어 주시는데 / 오늘은 간식도 없었다 /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 ...(생략) / PS. 요즘 아이들 용어라 저도 모르는 게 많지만, 훔쳐본 죄로 딸아이에게 물어보지도 못했습니다.

- SBS 라디오 김창완의 ‘아침창’ <못말리는 일기중 한 사연>

장면2. 이제 초등학교 1학년인 쌍둥이 형제가 ‘울고 보채고 떼를 쓴다’고 해병대에 보내 이른바 훈련을 받는 장면을 내보냈다. 이날 방송에는 PT체조를 비롯해 아이들이 총을 들고 각개 전투와 유격훈련을 하는 장면이 나온 데 이어 제대로 훈련을 받지 못하는 아이는 진흙탕 물에 잠수까지 시켰다.
또 3분 안에 식사를 완료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변화된 모습'이라고 추켜세우기까지 했다. 아이들이 예전의 ‘관행’으로 되돌아가려 하자 해병대 훈련단장을 집으로 초청(?)해 ‘엎드려뻗쳐’를 시켰다. 재 입소가 두려운 아이들이 “엄마 죄송해요”만을 되풀이하는 장면과 “이제 진짜로 엄마 말을 잘 듣겠다”며 대성통곡하는 모습이 나왔다.

- SBS TV 신동엽의 <실제상황 토요일 - 우리아이가 달라졌어요>

장면1. 은 '아동들의 일기에 나타나는 순수하고 엉뚱한 마음을 통해, 가족의 의미를 나타낸다'는 취지란다. 프로그램은 어린이의 '일기 훔쳐보기'를 통해 어른들의 감동 욕구를 채우고 있다. 게다가 어린이들의 일기장을 부모들이 마음대로 공개한다. 어린이의 의사에 반해, 개인적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면서 말이다.

인권위가 '학교 내에서의 초등학생의 일기장 검사가 아동의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양심의 자유 등 기본권을 침해할 우려가 크다'고 판단하여 개선 의견을 표명했었다. 이를 두고 일부에서는 교육적 목적을 도외시한 채, 지나친 인권의 잣대를 들이댄다고 비난했었다. 하지만 과연 인권 존중을 담지 않은 교육적 목적이란 것이 무슨 의미인지 되묻고 싶다.

장면2 는 아동 행동수정 프로젝트라는 미명아래 벌이고 있는 아동학대, 친권남용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군대훈련프로그램이 진정한 행동 변화를 가져 올 수 있는가? 더구나 어린이들에게 전쟁관을 심어주고 명령과 복종만을 강조하는 군대문화를 요구한다니...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너희들도 말 안 들으면 저곳에 보내 버릴 거야’라고 협박(?)하는 부모들이 어른거린다.

두 장면 모두 우리사회의 아동인권에 대한 저급하고 천박한 감수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씁쓸한 자화상이다. 어린이들의 인권은 어른들의 것보다 가볍지도 다르지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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