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세칼럼] 그녀가 다시 전화 걸은 날

장애인차별금지법제정추진연대 임소연


 첫 번째 전화 이후 다시는 연락을 하지 않을 것 같던 그녀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나 나가고 싶다. 도와주라. 결심했다."
 집에서만 지낸 세월이 40여년! 그리고 처음 밖으로 나와 간 곳이 시설! 그 시설에서 3년. 갇혀 지낸 42년 세월이 너무 억울해 그녀가 시설에서 나오고 싶다고 전화를 했습니다.

 작년 내내 시설을 돌아다니면서 건 낸 명함. 정말 한명이라도 전화해주길 바랬지만 진짜 누군가 전화를 하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시설에서 생활하는 대부분이 개인적으로 휴대전화를 소유할 수도 없었고, 오직 전화는 시설 종사자 사무실에만 있기에, 전화를 쓰려면 허락을 받아 직원이 옆에 있는 상태에서 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작년 10월, ‘시설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인권상황’을 알아보러 전남에 있는 모시설을 방문하러 갔을 때였습니다. 손가락 하나도 움직이지 어려워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녀는 성경책 테이프를 듣거나 하루 종일 누워서 천정과 벽만 바라보고 있다고 했습니다. 장시간 이야기를 하면서 그녀는 자기와 같이 중증의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밖으로 다니면서 활동하고 있는 것에 대해 가장 큰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녀처럼 손도 발도 움직일 수 없는 사람이 입으로 전동휠체어를 움직여서 다닌다고 하니 ‘나도 그렇게 할 수 있을까’ 희망 반 두려움 반으로 제일 많은 질문을 하였습니다.

 하루 동안의 만남을 뒤로 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데, 4개월 만에 전화가 왔습니다. 그녀는 ‘살 곳을 마련해주고 24시간 활동보조가 된다면 나가고 싶다’며 시설에서 나오겠다는 의견을 조심스럽게 꺼냈습니다. 하지만 딱히 활동보조인서비스가 제도화 되지 않았고 더욱이 주거지를 마련한다는 것은 너무 어려운 현실이었습니다. 결국 첫 번째 통화에서는 시설에서 나와 자립생활을 한다는 것이 지금 얼마나 어려운지 서로 확인하면서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얼마나 고심을 하고 나오겠다고 했던 결심이었을까, 외부에 연락을 할 곳은 나밖에 없었을 텐데, 어떤 방식으로라도 나와서 해결하면 되었던 건데 이런 저런 생각으로 불편한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런데 6개월 만에 다시 전화를 주었습니다. 정말로 나오겠다고.

 현실적으로 여러 어려움이 많을 것이라는 두려움을 이겨내고 다시 한 번 나올 결심을 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지. 더 이상 시설에서 주는 것에만 익숙해지고 있는 생활은 자신의 선택이 아니라는 생각으로 괴로웠답니다. 그녀는 하루하루 먹고 자고 천장을 보는 일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기 자신이 짐승처럼 느껴졌답니다. 다른 사람과의 대화 없이 방에만 갇혀있는 자신의 삶이 이대로 끝날지 모른다는 생각이 가장 두려웠다고 말했습니다. 나는 살고는 있는데 그 존재가치를 느끼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 자기 자신을 더 이상 참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나와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하지만 시설에서 죽어있는 삶보다 휠씬 나으리라는 희망으로 나올 선택을 하였다고 말합니다.

 현재 그녀는 서울의 모 장애인자립생활센터 체험홈에서 자립의 꿈을 키우고 있습니다. 여전히 힘든 삶의 연장선에 있습니다. 24시간 활동보조 서비스가 되지 않고 체험홈도 3개월이 지나면 다른 곳으로 이사를 해야 합니다. 하지만 수동적인 삶을 강요했던 시설 구조에서 나와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는 삶의 자유로움은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음을 알아버린 그녀는 자립의 어려움을 감당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입으로 전동휠체어를 이용할 수 있게 장치를 만들고 야학에 다니면서 잊어버린 한글을 다시 공부하고 외출도 하고 사람들도 만나면서 활기찬 삶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녀와 같은 사람이 얼마나 많을지. 시설에서 살고 있는 그녀, 나올 결심을 하면서 밤새워 고민하는 그녀, 나와서 힘들어 하고 있는 그녀. 그녀는 또 다른 자신의 모습을 하고 있는 그/녀들이 시설 이외의 삶을 선택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고 싶다고 정말 정말 열심히 살겠다고 매일 힘찬 발걸음을 내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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