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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상의료 투쟁은 의료산업화 저지투쟁과 결합되어야 한다

한국사회 의료와 건강의 위기

질병과 건강의 문제는 한국사회에서 심화된 양극화를 극단적으로 반증하고 있다. 수술비가 없어서 제 손으로 머리를 꿰맨 환자, 치료비가 없어서 백혈병 환자인 딸의 산소호흡기를 떼어내야 했던 아버지, 혹은 비싼 라식수술 환자를 위해 전국적 전염병이었던 다수의 아폴로눈병 환자를 거부하는 안과의원들의 행태 등은 대표적으로 국민들의 불평등과 불만을 보여주는 사례다. 한국사회 의료의 문제는 어디에 있는가?
한국의료의 고질적 문제는 의료 전반이 과잉 상태라는 점에 있다. 2003년 현재 급성병상(*)이 2만 병상 이상 과잉 상태이다. 필요한 병원 이외에 더 많은 의원, 병원들이 생겨나고 있다는 것이며 그만큼 의원간, 병원자본들간의 경쟁 또한 치열해지고 있다는 말이다. 인구 천명당 급성병상 수의 OECD 평균이 4.2병상인데,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5.7병상에 달한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 같은 급성병상의 과잉 상태가 한층 심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2005년 한 해 동안 수도권 지역에서만 4,500개의 급성병상이 신축되었으며, 전국적으로 수년 내에 수만 병상이 신축될 전망이다. 이 같은 급성병상의 과잉은 병원 경영악화와 이를 보전하기 위한 과잉진료, 부당청구 등 의료제공행태의 왜곡을 양산한다.
의료서비스 이용도 과잉 상태이다. 우리나라의 국민 일인당 의사방문 횟수와 재원일수는 OECD 평균의 1.5∼2배 수준이다. 국민의 건강상태가 OECD 국가에 비해 현격히 낮은 상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렇듯 의료서비스 이용의 과잉이 나타나는 이유는 의료서비스 제공의 대부분을 영리적 민간의료가 담당하고 있고, 행위별 수가제가 과잉진료를 제도적으로 조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가의료장비도 과잉 상태이다. 대당 가격이 100∼200억원에 이르는 PET(양전자단층촬영장치로 암조기 진단에 널리 사용됨)의 경우, 우리나라는 이미 45대가 도입되어 있는 반면, 우리나라보다 국민소득이 2∼3배 수준이 유럽 국가들은 국가당 2∼4대 수준에 불과하다. CT와 MRI와 같은 고가의료장비 보유도 일본에 이어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고 있다. 고가의료장비의 과잉은 불필요한 검사와 반복검사를 부추김으로써 국민부담을 가중시키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민간의료보험도 마찬가지다. 2005년 현재 국내 민간의료보험의 보험료 수입은 10조6,683억원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이는 국민건강보험 보험료 수입의 55%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2004년 현재 GDP 대비 민간의료보험 지출 비중이 우리나라의 경우 1.1% 수준인데 반해, 프랑스 0.4%, 영국 0.2%, 독일 1.0%로 주요 선진국보다 GDP 대비 민간의료보험 지출 비중이 더 높은 상황이다. 특히 민간의료보험의 보험료 수입이 연 평균 15% 증가하고 있어, 향후 이로 인한 국민부담 증가가 걱정된다.
이와 같은 의료 전반의 과잉은 우리나라 의료제도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하는 핵심 요인이다. 우리나라의 국민의료비 규모는 2001년 현재 32조3천억원으로 GDP 대비 5.9% 수준인데, 현재와 같은 증가 추세가 계속된다면, 2020년에는 171조 규모로 GDP 대비 11.4%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인구 고령화로 인해 사회 부양능력이 하락할 것으로 전망되는 미래사회에 이 같은 천문학적 의료비 부담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과잉 상태에 있는 한국의료를 변혁하기 위한 조치가 시급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의료의 양극화, 건강의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

이미 교육수준, 소득수준, 직업계층(취업상태), 거주지역, 의료보험 적용 여부 등에 따라 의료이용과 건강수준에 차이가 있다는 것은 알려진 사실이다. 이러한 격차를 완전히 없애지 못할지라도 그 격차를 최대한 완화하는 것이 정부의 보건의료정책이 갖는 주된 목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 한국사회에서는 사회경제적 수준에 따른 의료이용과 건강수준의 격차가 완화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심화되고 있다.
건강보험 직장 가입자를 대상으로 한 의료이용량 분석결과를 보자. (그림1) 저소득층과 고소득층의 3차병원 이용률이 2배 이상 차이가 난다.

  그림 1. 건강보험 직장가입자의 소득계층별 병원급 이상 입원 이용률
(자료: 2003년 건강보험 가입자 1% 표본추출자료, 보건복지포럼 2005년 6월호)


또한, 1997년 이후 분기별로 소득계층별 보건의료서비스 지출을 분석한 결과, 고소득층의 경우에는 1997년에 비해 지출액이 2배 수준으로 증가한데 반해 저소득계층은 1997년에 비해 오히려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이에 따라 지출 격차는 1997년 1.87배에서 2005년 3.93배로 증가했다. 보건의료서비스 지출액을 의료이용량으로 환산한 결과, 고소득층의 의료서비스 이용량은 1997년 대비 21% 증가한 반면, 저소득층의 의료서비스 이용량은 1997년 대비 43%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즉, 소득계층간 '소득과 소비지출의 격차 확대'보다 '보건의료서비스 지출의 격차 확대'가 더욱 큰 폭으로 발생한 것이다. 2005년 4월 현재, 건강보험 지역가입자의 23%가 3개월 이상 보험료를 체납하여, 건강보험 혜택 중지 대상자로 전락했으며, 보험료 체납세대의 규모는 계속 증가 추세이다.

  그림 2. 3개월 이상 건강보험료 체납 지역가입자 현황
(자료 : 보건복지부, 빈곤층·차상위계층 실태조사 결과보고서, 2004
건강보험공단, 저소득 건강보험 체납세대 지원에 따른 홍보자료, 2005)


의료이용률은 당연히 건강수준에 영향을 미친다. 1998년 국민건강영양조사 대상자의 사망추적 조사 결과, 월 평균 가계소득이 50만원 미만인 계층은 250만원 이상인 계층에 비해 사망 위험이 2.37배 높은 것으로 분석되었으며, 월 가구 소득이 50만원 감소함에 따라 사망 위험은 20%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소득계층간의 건강수준 격차가 심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소득계층별로 주관적 건강상태를 파악한 결과, 고소득층의 경우 건강상태가 '좋다'고 응답한 비율이 늘고 있는데 반해, 저소득층은 '좋다'고 응답한 비율은 줄어들고, '나쁘다'고 응답한 비율이 늘고 있다. 즉, 저소득층과 고소득층간의 건강수준 격차가 심화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노무현 정권의 의료산업화 정책 : 의료사유화가 본격화되고 있다

'의료의 과잉'은 일부 의료분야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한국의료 전반의 문제이며, '의료의 양극화' 역시 더 이상 일부 취약계층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이 같은 문제의 발생원인도 한국의료의 영리적 특성과 사회복지 전반의 미비에서 기인한다. 따라서 특정 분야와 특정 집단에 국한된 일시적, 선별적 정책이 아닌, 한국의료 전반에 대한 포괄적 진단과 개선이 필요하다. 그러나 현 정부는 '의료의 과잉'과 '의료의 양극화' 해소를 부차적이거나 잔여적 복지의 시각에서 접근하고 있으며, '의료서비스 산업화'를 통해 이들 문제를 더욱 심화시키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국내에서 의료서비스 영역을 산업의 개념으로 접근하는 문제인식은 이전부터 존재했으나, 2003년 정부의 동북아 중심병원 유치계획과 2004년 경제자유구역의 영리 외국병원 설립을 둘러싼 논란을 거치면서 본격화되었다. 2003년 보건복지부는 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된 인천지역에 세계 최고 수준의 동북아 중심병원을 유치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 당시 주된 문제인식은 경제자유구역에 대한 외국자본의 투자와 기업 유치를 촉진하기 위해 경제자유구역에 거주할 외국인의 생활여건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정부계획안에 인접 국가의 환자들을 유치한다는 언급을 포함시킴으로써 향후 의료서비스 영역의 산업화에 대한 논의의 여지를 마련했다. 2004년 경제자유구역의 영리 외국병원 설립을 둘러싼 논란은 의료서비스 영역의 산업화에 대한 논의가 만개하는 직접적인 계기로 작용했다. 경제자유구역 내에 국한된 정책이라는 정부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실제 논의는 국내 의료서비스 전반의 경계를 넘어섰다.
특히, 의료서비스를 통한 국부 창출의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의료서비스 산업화의 필요성이 부각되었고, 국내 의료서비스의 질적 취약성의 원인으로 의료서비스 영역의 활성화를 가로막는 각종 규제가 지목되면서 이의 완화 내지는 폐지를 주장하는 요구가 높아졌다. 2004년의 논의를 거치면서, 영리법인 허용, 민간의료보험 활성화, 요양기관 강제지정제 등과 같은 해묵은 사안들이 의료산업 내지는 의료서비스 산업 활성화라는 틀로 재해석되었다. 이전까지는 개별적으로 다루어졌던 이들 사안들은 이제 의료서비스 산업화를 위한 전제조건이라는 의미를 획득하면서 상호 통합적인 관계를 형성하게 되었다. 이와 함께 병원이라는 일개 분야에 국한되었던 논의의 범위가 제약, 의료기기, 생물공학 등과 같은 의료산업 전체로 확대되어 나갔다. 갈수록 첨단화되어 나가는 의료서비스 영역에서 국제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그 기반이 되는 제약, 의료기기, 생물공학 등과 같은 생산재 산업의 발전이 필수적이며, 역으로 의료서비스 영역의 활성화를 통해 고부가가치산업인 제약, 의료기기, 생물공학산업의 발전을 촉진해야 한다는 인식에 이르게 된 것이다. 과연 이것이 궁극적으로 의도하는 바는 무엇인가?
우리나라는 전체 의료의 90%를 영리적 민간의료가 차지하고 있고, 과잉진료를 조장하는 행위별 수가제를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정부의 개입이 불가능한 비급여 영역이 광범위하게 존재하고 있다. 바로 이 같은 상황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무제한적인 영리적 의료의 과잉을 유발하고 있다.
그런데, 영리법인 병원 설립을 포함한 민간투자 활성화는 '의료의 과잉'을 더욱 심화시킬 수밖에 없다. 수익 창출을 위한 고가장비 과잉투자 및 과잉진료의 가능성이 증대하고, 특정 분야와 병원을 중심으로 질적 향상이 이루어지면서, 의료기관간의 질적 불균등성이 심화될 것이다. 그리고 경쟁에서 뒤쳐진 병원의 의료제공행태 왜곡 역시 한층 심화될 수밖에 없다.
외국의 사례를 볼 때, 의료서비스 산업화를 통해 의료서비스 질적 수준을 향상시킨다는 주장도 근거가 없다. 미국의 경우, 영리법인 병원이 비영리법인 병원에 비해 진료비도 더 비싸고, 의료의 질적 수준도 더 낮은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매년 발표하는 미국 베스트병원 중에 영리법인 병원은 한 군데로 포함되지 못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의료서비스 산업화는 이미 심각해진 소득계층간 의료이용 격차를 더욱 심화시킬 것이다. 고소득층을 위한 고급의료가 집중적으로 발전되면서, 의료이용의 상대적 격차가 확대되고, 양질의 민간의료보험을 구매할 수 있는 고소득층과 그렇지 못한 저소득층간의 계층화 역시 더욱 심화될 것이다. 특히, 영리적 의료의 과잉 심화에 따라 가계부담이 크게 증가할 것이며, 그런 만큼 상당수 소득계층의 의료접근성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 일례로 국내에서 지방공사의료원을 민간위탁한 이후 진료비는 2∼3배 이상 증가했었다. 공공병원을 민간위탁한 것만으로도 이 정도의 효과가 나타난 점을 감안할 때, 아예 이윤 추구를 기본 목적으로 하는 영리병원이 출현했을 때의 영향은 더욱 클 것으로 보인다.
민간의료보험의 활성화 또한 건강보험의 취약한 보장성을 보완하는 것이 아니라 보장성 확대를 가로막는 장벽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그 실례가 미국의 공적 노인(장애인)건강보험인 메디케어(Medicare)의 보충형 민간의료보험인 메디갭(Medigap)의 사례이다. 미국 정부는 1988년 메디케어의 보장범위를 크게 확대하는 법안인 MCCA(Medicare Catastrophic Coverage Act)를 입법했다. 그러나 그 계획은 18개월만에 좌초하고 말았다. 이미 보충형 민간의료보험인 메디갭에 가입되어 있어 본인부담금을 해결하고 있던 중산층과 부유층들이 메디케어의 보험료 인상을 가져올 MCCA 시행을 강하게 반대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이 같은 경향은 이미 현실화되고 있다. 민간의료보험 가입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 확대에 반대하는 비율이 일반 인구집단에 비해 매우 높은 것으로 분석되었으며, 민간의료보험 가입자 중에서도 고소득층의 반대 비율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즉, 의료의 영리화가 진전되면서 건강과 질병 문제를 사회적, 공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알아서 해결할 문제라는 인식이 확산되는 것이다.
결국 이 같은 의료산업화의 제반 경향들은 국민의료보장의 기본 틀인 건강보험의 조직 기반을 크게 위축시킨다. 수익 극대화를 위해서는 의료서비스 전체의 가격을 병원이 자율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영리법인 병원을 중심으로 '요양기관 당연지정제' 폐지 요구가 증대할 것이며, 민간의료보험을 구매한 고소득층 중심으로 건강보험 탈퇴 요구가 증대할 것이다. 이 같은 요구가 실제로 전국민 당연가입제를 폐지하는 데까지 이르지 않더라도, 국민건강보험의 정상적 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만은 확실하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의료보장의 사회적 연대성 원리는 해체되고, 두 개의 국민-두 개의 의료-두 개의 병원-두 개의 보험구조가 고착화될 수밖에 없다.

무상의료 쟁취투쟁은 의료산업화저지투쟁과 결합해야 한다

이러한 정세 속에서 지난 8월 30일 민주노동당은 무상의료관련 8대 법률 개정안을 제출했다. 이미 2000년 대선, 2002년 총선 공약으로 제시된 무상의료 정책은 올해 2005년 4단계 추진계획을 수립하고 1단계로 무상의료 실현을 위한 관련 8대 법률 개정안을 마련한 것이다. 이미 지난 6월 1일 전국농민회총연맹과 민주노총, 민주노동당의 3개단체가 공동집회를 열어 무상교육·무상의료 예산확보 요구를 한 이래, 8대 법률 개정안은 무상의료 실현계획의 1단계로서 법제정투쟁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노동자 민중에게 무상의료란 현실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필요에 따라 제약없이 의료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것", "또한 그에 필요한 재원은 사회적으로 조달되며 조달의 방식은 각자의 능력에 따라 부담하는 것"이다. 즉, 보건의료서비스 이용시점에 있어서의 사회적 지출의 최대화와 본인직접지출을 최소화시키고 의료서비스 자체를 궁극적으로 '탈상품화'시키는 것이 무상의료의 전략적 구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진행되고 있는 무상의료 투쟁의 방식은 몇 가지 우려점을 갖고 있다.
첫째, 노무현 정권이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의료산업화 저지투쟁과의 연관성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2000년 들어서면서 운동진영은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등을 주요요구로 부각시키며 '의료의 공공성 강화'를 슬로건으로 내걸었으며, 사실상 무상의료 투쟁의 경우 이 슬로건의 궁극적 지향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진행되는 투쟁의 경우, 당위적인 캠페인과 서명운동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지난 9월 22일 민주노동당 부산시당 차원에서는 지역차원에서 무상의료 운동본부를 구성하며 활동을 본격화한다고 했다. 지역차원의 이러한 흐름은 일면 고무적이지만, 거듭 강조하고 싶은 것은 지역 대중운동의 강화와 함께 가야 한다는 것이다. 무상의료 쟁취투쟁은 진공(眞空)의 원칙이자 슬로건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아래로부터 투쟁주체들을 형성하고 대중투쟁을 확산시키는 가운데, 현재 정부의 의료산업화 정책의 의미, 그리고 대안적 차원에서 무상의료 투쟁이 논의될 때 이 투쟁은 지지받고 강화될 수 있다. 그러한 과정 속에서만이 법제도적 제정과 사회적 의미 또한 확산시킬 수 있는 것이다. 98년 외환위기 이후 끊임없이 불어닥친 구조조정의 칼바람은 보건의료 부문에도 닥쳐왔으며, 지방공사의료원 구조조정을 비롯해 중소병원 활성화대책, 민간의료보험 활성화 대책 등 끊임없이 보건의료정책은 심화된 상업성을 더욱 가속화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노무현 정권은 아예 '의료'를 '산업'으로 규정하며 본격적으로 '사유화', '영리화' 한다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무상의료 쟁취투쟁은 적극적으로 의료산업화 저지투쟁과 결합되어 나아가야 한다. 그것은 정부가 추진하는 의료의 상업적 속성을 더욱 안정화시키고 고착시키려는 경향에 반대하는 것이며, 궁극적으로 무상의료 투쟁의 본래 의미를 찾아나가는 길이기도 하다. 또한 그것은 노동자대중들로 하여금, 의료가 '산업'이자 '상품'이 아니라 사회복지서비스로서의 전망을 갖게 할 수 있다. 그리하여 의료서비스를 소비하는 소비자로서의 권리를 안정화하는 방향이 아니라, 노동자민중이 의료서비스를 통제하고 관리하는 사회적 방안을 고민할 수 있는 것이다.
둘째, 그런 차원에서 의료산업화 저지투쟁 없는 단계적 보장성 강화론은 정권의 위기해결에 도움을 주는 오류에 빠질 수 있다. 민주노동당의 8대 법개정 주요내용은 '모든 의료서비스에 대하여 건강보험 적용', '가입자-기업의 보험료 분담비율을 40:60으로 개편' 등등을 주요내용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진행되는 의료산업화 저지투쟁과 맞물리지 않는다면, 무상의료의 단계적 로드맵은 그 방향을 잃어버리기 쉽다.
정부는 이미 5월 13일 '의료서비스 육성방안'에 대해 발표한 이후, '공공의료를 더욱 강화하겠다'고 공공연히 언급하고 있다. 의료서비스산업의 경쟁력과 효율성을 향상시킬 수 있는 제도 개선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면서도, "의료시장 개방과 유연화가 기본적 공공의료 소홀로 이어지지 않게끔 건강보험 보장성을 확대하고 공공의료 인프라 구축을 병행해갈 예정"이라는 것이다. 9월부터 암 등 뇌심혈관계 중증질환에 대한 보험급여가 확대시행 중에 있으며 2008년까지 단계적으로 확대하게 된다. 정부의 의료산업화 정책과 공공의료 강화정책은 양립하기 힘들뿐만 아니라, 의료서비스산업화가 진행되는 한, 공공의료는 최소한의 안전망 정도로 치부되며 '두 개의 국민'구조를 공고화시키는 현상만을 낳게 될 것이다. 점차 축소되기 시작하는 건강보험을 최소한 확보하겠다는 것은 정부의 입장에서는, 의료산업화 정책을 전제한 속에서 이 정책의 해악적 효과를 최소화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무상의료의 법개정안이나 투쟁방향, 즉 '건강보험 적용의 확대강화'는 반드시 의료산업화 정책을 철회해야 한다는 입장 속에서 제출되어야 한다. 건강보험을 어떤 식으로든 축소시키고 민간의료보험을 더욱 강화하려는 시도들은 반드시 저지되어야 한다.
셋째, 투쟁하고 있는 대중과 현장과의 결합 계획을 우선적으로 배치해야 한다. 류기혁·김동윤 열사의 자살 및 분신으로 상징되듯, 비정규직 철폐 투쟁의 필요성은 더욱 절박해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민주노총은 정부에서 제출한 비정규직관련 법률 개악을 저지하고 비정규직 권리보장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을 예고하고 있다. 비정규직들이 처해있는 건강권의 문제나 의료보장에서 소외되는 빈민들의 투쟁, 그리고 병원의 구조조정에 맞서 투쟁을 전개하는 중소병원 노동조합의 투쟁들과 함께 결합해야 한다. 사회보험노조의 경우, 민간의료보험에 반대하는 하반기 투쟁을 강력히 결의하고 있으며 보건의료노조 또한 3대 하반기 투쟁과제의 하나로 의료산업화 저지, 영리법인화 반대 투쟁을 상정했다. 보건의료노조는 영리법인화 저지를 위해 10월 27일 간부상경투쟁을 시작으로 대정부투쟁을 펼치고, 이를 담은 의료법 개악안이 국회 상임위에서 다뤄지는 11월말께 파업투쟁을 벌인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이러한 계획들이 무색하지 않기 위해서는 현장에서의 노동자들의 투쟁과 요구안을 만들고 담론을 형성해내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의 의료산업화 정책이 궁극적으로 노동자민중의 건강권을 해친다는 점, 현재 양극화된 삶의 빈곤화, 건강의 빈곤화를 더욱 심화시킬 것이라는 것에 대해 알리고 대중투쟁을 조직해내야 할 것이다. 또한 의료가 상품이 아니라, 산업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노동자민중이 그러했듯 투쟁을 통해 쟁취해냈던 권리였음을 알려내야 한다. 그것을 바탕으로 의료산업화 저지전선을 구축하고 병원노동자와 사회보험 노동자들을 필두로 하여, 노동자들의 사회적 통제력을 확장시키는 논의까지도 발전시킬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
노무현 정권의 의료산업화 정책은 그 자체로 한국사회에 미국식 의료체계를 이식하겠다는 발상에 다름 아니다. 최근 미국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미국의 개인 파산의 절반이 질병과 의료비 때문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연간 200만 명에 달하는 규모이다. 이것이 바로 영리의료의 첨단을 달리고 있는 미국의 의료실태이며, 현 정부가 지향하는 미래의 한국의료의 모습이다. 의료와 의료제도가 국민을 질병으로부터 보호하는 '사회적 안전망'이 아니라 국민을 파산과 절망으로 몰아넣는 '사회적 재앙'이 될 수도 있다. 무상의료 투쟁이 좀 더 정세적으로 구성되고, 아래로부터의 대중투쟁 속에서 만들어져야 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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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원기간이 90일 미만인 경우의 의료기관을 급성병상이라고 하며, 사실 대다수의 보통 병원들이 급성병상이므로 따로 언급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요즘 요양병원이나 장기요양병원이 생겨나고 있기 때문에, 이와 비교하여 ‘급성병상’이라고 언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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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영 | 평등사회를위한민중의료연합 사무처장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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