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의힘 기관지 격주간노동자의힘

다시 민주노총 임원직선제를 제안한다

투쟁시기에서 다루기 민감한 문제

노동자의 힘 기관지로부터 이 글을 요청 받고 잠깐 고민이 되었다. 비정규투쟁이 목전에 있고, 민주노총은 비대위 하에서 어렵게 투쟁을 준비하고 있는데 선거제도를 언급한다는 것이 적절치 않아 보였기 때문이다. 그 즈음에 비정규직 철폐투쟁을 위해 활동가들이 전면에 서서 투쟁하자는 논의가 진행되고 있었다. 이는 11월 12일 전국노동자대회 전야제 후 '투쟁과 혁신을 위한 전국활동가대회'를 열어 투쟁을 결의하자는 논의로 구체화되었다. 이 논의과정에서 '혁신'을 내거는 활동가대회는 선거를 준비하는 것으로 오해될 수 있다는 문제가 제기되기도 했다. 지금처럼 복잡한 운동구조에서는 투쟁 자체도 선거와 결부되어 해석되는 상황이다. 그렇지만 당면투쟁을 위한 실천이 선거와 결부되어 해석되고, 그 해석이 투쟁을 위한 연대를 가로막는다면 선거에 대한 입장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민주노조운동의 위기와 조직혁신 문제

대사업장노조 간부의 취업비리사건에 이어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의 비리사건으로 민주노조운동이 총체적 위기에 직면했음은 아무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문제는 '총체적 위기'를 타개할 '근본적 혁신'을 어떻게 하느냐이다.
민주노총은 출범 이후 2, 3, 4기 집행부가 연이어 조직혁신사업을 추진한 바 있다. 모두 위로부터 추진된 세 번의 조직혁신은 실패했다. 4기 집행부의 조직혁신위원장이 비리사건으로 구속된 마당에 위로부터의 혁신 가능성은 더욱 희박해졌다. 그렇다면 아래로부터의 혁신사업이 추진되어야 하는데, 아직 그런 기운이 힘있게 형성되고 있지 못하다. 민주노조운동 혁신주체인 활동가들 중 다수는 냉소 또는 체념으로 관망하고 있다. 더러는 기업별 틀에 갖힌 채 노동조합의 수동적 조직질서에 안주하고 있다. 정파대립은 혁신을 위한 활동가연대에 장애가 되고 있다.
혁신을 위한 만병통치약은 없을 것이다. 특히 직선제, 소환제, 규율위원회, 임원재산공개 등 이런저런 제도들만으로 민주노조운동의 혁신이 이루어질 수는 없을 것이다. 반면에 노동운동의 기풍과 분위기를 아래로부터 바꾸는 전면적 대중운동을 전개하자는 주장도 구체적 실천내용이 없다.

어떤 방향으로, 어디에서부터 시작할 것인가

총체적 위기에 처한 민주노조운동의 혁신은 단기간에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장기간에 걸쳐 운동으로 전개되어야 할 것이다. 아마 하반기투쟁 이후 몇 개월간 논의될 것으로 예상되는 혁신은 그 시작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 시작이 매우 중요하다.
활동가들은 물론이고 조합원들이 민주노조운동(특히 민주노총)의 주체로 나서도록 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어야 할 것이다. 비리사건들이 조합원들의 관심과 민주적 통제에서 벗어난 노조 상층지도부에서 발생한 지금 더욱 더 그렇다. 조합원대중이 민주노총 주요사안 결정에 나설 수 있도록 한다면, 그것은 조직혁신을 위한 제도로서 매우 유의미하다. 민주노총 임원직선제, 임원소환제, 대의원선출제 등 그동안 제출된 제도들은 이런 점에서 적극적으로 검토되어야 한다.

임원직선제가 갖는 혁신의 의미

분명 직선제는 민주노조운동 혁신의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총체적 민주노조운동 혁신 방안 중 하나일 뿐이다. 그러나 지금의 위기성격으로 볼 때 직선제는 여러 가지 면에서 혁신적이다. 지도력이 조합원 대중으로부터 불신당하고 있는 지금 '노동조합 권력을 조합원 대중에게'라는 어떤 동지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많은 간부와 조합원들이 민주노총에 냉소적인 상태에서, 조합원대중이 스스로 지도부를 선택하는 과정을 통해 주체로 나설 수 있으므로 직선제는 민주노조운동 혁신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직선제는 단순히 지도부를 뽑는 과정에 그치지 않는다. 조합원들이 민주노총 사업을 평가하고, 민주노총 미래를 고민하는 대중운동의 장이 될 것이다. 전 조직역량이 현장을 향해 가동되고, 멈춰 있던 현장 구석구석을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계기를 마련할 것이다. 이를 통해 떨어져 나가고 깨진 톱니와 바퀴들을 발견하고, 고쳐서 민주노조운동의 각급 조직과 조합원들의 유기적 관계를 복원시켜 내는 데 기여할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사측의 영향력이 큰 사업장에서 사측의 개입으로 오히려 직선제가 문제를 야기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그런 사업장들이 분명히 있다. 그러나 이는 역으로 민주노총 임원직선제를 계기로 사측의 지배개입에 민주노조운동이 전면전을 벌여 사측 수중에서 현장을 탈환하는 계기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민주노조운동의 총체적 위기의 주요 요인의 하나가 자본의 현장통제이다. 자본은 일상적 통제와 함께 노동조합 선거에 사측이 조직적으로 개입하여 대의기관과 집행기관을 장악해 들어오고 있다. 노조 상층부는 이에 투항하여 실리주의, 노사협조주의로 경도되고, 급기야 운동성마저 상실한 채 사측과의 비리·부패구조로 편입되는 과정에서 바로 민주노조운동의 위기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임원직선제는 이 구조에 파열구를 낼 수 있는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단위노조 임원선거나 대의원선거 보다는 민주노총 임원직선제에서 사업장 밖의 선거관리역량을 투입하기가 훨씬 용이하기 때문이다.

정파운동 폐해와 직선제

노동운동위기와 관련하여 극단적 정파대립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심지어는 정파는 없어져야 할 것으로 비판받고 있다. 그러나 노동운동에 대한 방향을 바라보는 차이가 있는 한 정파는 없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현실은 정파운동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한 정파조직이 만들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정파운동의 폐해가 과도하게 해석되기도 한다. 조·중·동은 민주노조운동 내의 모든 차이를 정파대립으로 해석하여 노동운동을 파벌싸움 집단으로 매도하려 한다. 노동운동 내에서도 주의주장의 내용보다는 제기하는 사람을 보고 정파적인 것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강화되고 있다. 하지만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투명하게 드러내고 실천하는 정치적 결사체가 올바르게 발전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정파운동의 폐해는 분명히 있다. 현재의 대의원선거제도에서는 여전히 각 정파간의 이합집산에 의한 선거가 불가피하다. 물론 직선제인 경우도 정파간의 이합집산 현상이 나타날 것이다. 그러나 직선제의 경우 정파간 이합집산의 규정력이 작아질 수밖에 없다. 정파내 또는 정파간 관계만으로 집행부를 장악하려는 시도는 그만큼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을 것이다. 결정권을 갖고 있는 절대다수의 조합원들은 특정 정파에 속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정파내 또는 정파간의 정치에 주력했던 사람들이 이제는 조합원 대중에게 발길을 돌리고, 귀를 기울이고, 주장을 펼칠 것이다. 조합원 대중은 그들의 주장을 실천으로 확인할 것이다.
나 역시 특정 정파에 속해 활동해 온 사람으로서 정파운동의 폐해에 대한 책임론에서 자유스러울 수 없다. 때문에 정파내 정치에서 조합원 대중에게 달려가야 한다는 것은 나에게도 해당되는 바일 것이다. 노동운동 내부전선이 대적전선보다 우위에 있어서는 안된다는 소신을 일상적으로 실천하기가 쉽지 않은 운동구조이다. 이는 운동가 개인들의 소신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노동대중을 중심에 두고, 대적전선에 복무하도록 하는 구조적 방안들이 마련되어야 한다.

임원직선제 찬반론에 대해

민주노총 임원직선제는 그동안 여러 번 검토된 바 있다. 2기 집행부시기에 조직혁신위원회가 임원직선제 규약개정안을 대의원대회에 상정했으나 2/3 찬성을 넘지 못해 부결된 바 있다. 지난 4기 집행부 선거 때 양 후보진영은 직선제를 공약으로 내 걸었으나 4기 집행부 조직혁신위원회에서는 혁신안으로 제출하지 못했다.
그동안 논의과정에서 직선제에 대한 근본적 반대론도 있었다. 민주노총은 조합원을 직접 구성원으로 하는 조직이 아니라 산별조직이 가맹단위인 연합체이기 때문에 직선제는 조직원리에 맞지 않는다는 근거였다. 그러나 산별조직의 가맹체라는 조직구성 방식은 조합원들이 민주노총 가입하는 하나의 방식에 지나지 않는다. 이를 근거로 조합원 개개인의 의결권을 제한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이런 논리에 따르면 단위노조로 구성되는 산별연맹이나 지역본부의 직선제도 문제가 될 것이다.
보다 실질적인 반대론은 아직 선거관리능력이 안 된다는 것이다. 선거관리능력 부재로 부정선거시비, 사용차쪽의 개입 등이 우려된다는 것이다. 전혀 근거 없는 문제제기는 아니다. 그동안 일부 연맹과 지역본부 직선제에서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면밀히 들여다보면 직선제를 위한 기본적인 선거관리제도마저 갖추지 않아서 발생한 문제들이 대부분이다. 금속노조, 보건의료노조, 대학노조, 전교조, 화학섬유노조 등 산별노조로 전환한 조직들이 직선제를 하고 있다. 산별노조로 전환하지 않은 대사업장 노조들은 이에 못지않은 선거관리능력을 갖추고 있다. 강원, 충남, 충북, 대전, 인천, 울산, 대구 등 지역본부가 직선제를 하고 있다. 사무금융연맹, 울산, 대전 등 직선제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들은 선거관리제도에서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가르쳐 주고 있다.
차선책으로 대신하려는 입장도 있다. 직선제가 여의치 않기 때문에 대규모 선거인단제를 활용하자는 것이다. 이전의 조직발전전략위원회 내에서도 그런 의견이 있었고, 이번 조직혁신위원회 내에서도 그런 방안이 검토되었다. 그러나 대규모 선거인단제도는 직선제에서 발생할 수 있는 선거관리상의 문제가 그대로 나타나면서, 조합원들의 직접 결정권을 제한하므로 차선책이 될 수 없다.
그 외 많은 문제들이 제기될 수 있다. 1차 투표에서 당선자가 없으면, 그 엄청난 직접선거를 2차, 3차 계속할 것인가 등 실무적인 문제들도 제기하고 있다. 이런 문제들은 그동안의 논의과정에서 이미 대안들이 제출되어 있다. 때문에 보다 구체적인 문제들은 이후 논의과정에서 해결책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직선제에 대한 대체로의 입장은 '직선제는 필요하다'인데, 그 시행시기에 대해서는 '지금 실시하자'는 입장과 '시기상조론'으로 나뉘어 왔다. 노동운동에서 조직적 위기 상태일수록 그 해결방안을 조합원 대중에게서 찾아왔다. 직선제에 다소 어려움이 있다 해도 지금의 노동운동위기 상황에서 조합원대중에게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면 더 이상 머뭇거릴 수 없다. 한국사회에서 그 어느 집단보다 직접선거를 일상적으로 훈련해 온 민주노총 조합원들을 두고 계속 시기상조 운운한다면 이는 대중에 대한 불신이다. 선거관리에 대한 집행책임 방기를 역량 있는 조합원들에게 전가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혁신의 핵심이 조합원 중심의 노동운동 복원이라면 직선제는 혁신의 첫걸음이 되어야 한다.

다시 하반기 투쟁과 관련하여

당면한 하반기 투쟁에서 힘을 모으기 위해서도 다음 선거가 직선제여야 한다. 하반기투쟁을 위해 활동가들이 나서자, 투쟁을 위해 연대하자는 주장도 별로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그래도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해야겠지만, 힘은 너무 분산되어 있다. 좌파세력 내에서는 현장투쟁단이 이후 선거를 위한 이른바 '좌중연합'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하며 한발 거리를 두는 것 같다. 노동운동의 이른바 3파대립구도를 낡은 구도로 비판하는 동지들 역시 당면한 투쟁에서 어떻게 힘을 모으자는 주장에 대해서 '진정성'을 의심하고 있는 것 같다. 대적투쟁을 위한 좌우연대는 더 난망한 상태이다.
어떤 동지들은 투쟁에서부터 혁신해야 한다고 한다. 투쟁에서의 혁신은 무엇일까? 입으로만 하는 투쟁을 몸으로 실천하는 것, 적당히 '생색내기식' 투쟁이 아닌 그야말로 가열찬 투쟁, 그리고 혼자만이 하는 투쟁이 아니라 함께 하는 투쟁일 것이다. 이 투쟁에서의 혁신을 활동가들이 실천하기를 요구받고 있다. 혹여 선거문제가 하반기 투쟁에서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직선제는 그 걸림돌을 치우는 하나의 방안이 될 것이다.

나는 민주노총 2기 집행부의 혁신위원회에서나 단병호위원장-이수호사무총장 시기의 조직발전전략위원회에서 직선제를 주장해 왔다. 그러나 위로부터의 직선제운동은 실현되지 못했다. 비리사건으로 4기 임원이 사퇴하고 비대위가 구성된 지금 다시 직선제를 제안한다. 그러나 그 운동은 이제 현장활동가들을 주축으로 아래로부터 이루어져 민주노조운동 혁신의 출발점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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