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의 주간지 사회와노동

성범죄, 감시와 처벌은 대안이 아니다

여성 억압적 사회구조에 대한 성찰과 변화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얼마 전 집에서 자고 있던 초등학생을 이불 째 들고나가 성폭행한 끔찍한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 몇 년 간 언론에서 성범죄 사건을 연이어 보도해왔던 만큼 불안과 분노의 정서는 더욱 깊고 넓어진 듯하다. 화학적 거세보다 더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고, 최근에는 아동 성범죄자에 대한 강력 처벌을 촉구하는 집회도 열린 바 있다. 이처럼 저항할 능력이 없는 아동을 대상으로 한 극단적 범죄에 대해 분노여론이 형성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그동안 성범죄에 대한 처벌은 꾸준히 강화되어왔음에도 불구하고, 성범죄는 줄어들지 않았다. 처벌을 중심에 놓는 접근방식은 성범죄의 원인이 ‘비정상적인 개인’에 있다고 전제하여, 성범죄의 사회구조적 원인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상대화한다. 특히 아동성범죄 사건의 경우 대부분 부도덕하거나 정신질환을 앓는 범죄자를 사회로부터 추방하는데 초점을 맞춘다. 이런 대응책들은 개인에 대한 감시와 처벌을 강화해도 왜 제2, 제3의 범죄자가 계속 발생하는지 설명하지 못하고, 또 다른 사회적 문제를 유발할 수 있다.

화학적거세로 성폭력이 근절되지 않는 이유

성범죄자의 화학적 거세 적용범위를 확대하는 법 개정이 추진되고 있고, 물리적 거세까지도 실행하라는 목소리가 높다. 화학적 거세는 무자비한 범행을 저지른 범죄자에 대한 단죄의 성격도 있지만, 성충동을 줄이고 성행위를 불가능하게 만들어 범죄 발생률을 낮추자는 의도도 있다. 즉, 화학적 거세 주장의 전제는 성범죄의 원인을 성충동으로 보고, 성충동을 조절못하는 비정상적 개인의 성욕을 줄여 범행을 예방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성폭력의 원인을 성충동으로 보고 약물주사로 성욕을 억제하자는 주장은 성폭력이 사회적 산물임을 간과하고, 성폭력을 예방하려면 남성의 성충동을 해소할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과 공명할 가능성이 높다. 성충동이라는 본능을 억누르기만 할 것이 아니라 해소할 숨통을 틔어줘야 범죄를 줄일 수 있다는 주장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갤럽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성범죄가 성매매방지법 때문에 늘어났다고 대답한 남성이 56%에 달한다. 성범죄를 줄이기 위해서는 남성의 성욕을 해소할 공간으로서 성매매를 허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는 결혼을 권장해서 성범죄를 막자고 발언했다. 성범죄를 막기 위해 남성이 성욕을 해소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런 주장은 오히려 일상적인 성폭력과 성차별적 문화를 합리화하는 결과를 낳는다. 성매매나 결혼을 통해 성욕을 해결하자는 것은 여성을 성욕해결의 수단으로 바라보는 시각을 전제하고, 그러한 시각은 여성에 대한 인격적 존중을 침해하는 성폭력으로 이어진다. 또한 남성의 성욕이 표현되는 방식은 사회적인 현상임을 간과하여, 남성중심적 성문화의 성찰과 변화시도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감시와 처벌의 강화는 대안이 아니다

화학적 거세뿐만 아니라 전자발찌 제도, 성범죄자 신상공개 등 ‘비정상적 개인’에 대한 감시와 처벌을 강화하는 것은 성폭력을 예방하는 데 한계적이다. 그것은 성폭력의 원인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표면에 드러난 가장 극단적 결과에 대한 대증요법이다.
일반적으로 성폭력은 개인들 간의 갈등이나, 이상이 있는 사람의 일탈적 행동으로 치부되는 경향이 있다. 성폭력은 술을 마시고 행한 실수, 좋아하는 마음을 잘못된 방식으로 표현한 일, 변태와 같이 비정상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이 저지르는 범행 등으로 풀이된다. 최근 발생한 성범죄에 대해서도 동일한 시각으로 접근하고 있다. 성범죄자들이 아동포르노를 즐겨봤다거나, 게임에 중독되었다거나, 대인관계가 단절되었다는 등의 비정상적인 특징을 범행의 원인으로 연결 짓는 방식이다.
그러나 성폭력은 여성을 성욕 충족의 대상으로 여기는 사회가 양산한 결과다. 남성의 성문화 일반은 여성을 동등한 인격체로 존중하기보다는 성적 대상으로 취급한다. 대중매체나 인터넷에서 여성의 노출 사진과 영상이 쏟아져 나오고, 섹시함을 강조한 광고를 통해 소비를 부추기는 행태가 일상화 되어있다. 또한 술시중을 드는 서비스부터, 노래방 도우미, 성매매까지 다양한 형태의 성산업이 대규모로 존재한다. 그리고 이처럼 여성을 쾌락의 수단으로 삼는 성문화에 익숙해진 남성들이 여성을 인격체로 대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성욕을 표출하면서 성폭력이 발생한다.

여성억압적인 사회구조와 성차별적 인식을 바꿔나가야

진정 성범죄를 줄이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일부 보수언론에서는 선진국을 예로 들어 성범죄 회피 교육의 필요성을 주장한다. 가령 상대방이 몸을 만졌을 때 싫다고 표현하는 방법 등을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때부터 가르치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하더라도, 대부분의 성폭력이 아는 사람에 의해 발생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러한 교육으로 성폭력을 예방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살해당하지 않기 위한 교육, 도둑맞지 않기 위한 교육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된다’, ‘남의 것을 훔쳐서는 안 된다’고 교육하는 것처럼, 성폭력을 잘 피하기 위한 교육보다는 누구에게도 성폭력을 가해서는 안 된다는 교육이 기본이다. 게다가 여성의 의사표시나 항거 여부에 초점을 맞출 경우, 피해자의 항거 여부에 따라 성폭력을 판단하려는 법적 논리를 수용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성범죄 피해는 이를 회피하지 못한 여성의 탓이 아니다.
한편, 많은 사람들은 정부에게 실효성있는 범죄예방 대책을 요구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정부의 범죄예방 대책에 의존하는 것 역시 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범죄예방은 이미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에 대한 각종 정보 해석과 평가를 통해 이루어진다. 이는 이미 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재범 가능성을 전제하는 것은 물론, 이들과 사회경제적 조건이 비슷한 다른 개인들 역시도 사회에 위협적인 존재가 될 수 있음을 암시한다. 기존 범죄자와 비슷한 성장배경, 주거형태, 외모, 나아가 범죄자의 국적, 인종까지 기피해야 할 대상의 조건이 된다. 가령, 중국인 남성이 범인이었던 수원성폭력 사건의 영향으로 이번 나주 성폭력 사건 용의자로 30대 중국인 남성이 지목, 체포되었다가 곧 무혐의로 풀려난 일이 있었다. 정부 예방대책의 강화는 여성억압적 제도나 성차별적 문화에 대해 성찰하고 이를 바꿔나가기 위한 실천으로 이어지기보다는, 사회로부터 배제된 사람들에 대한 혐오와 낙인찍기의 확산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다.
실질적인 성범죄 예방을 위해서는 여성억압적인 사회구조와 성차별적 인식을 바꿔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은 민중들이 사회적 문제에 대해 자발적인 주체로 나서 자신의 지역과 공동체를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 운동을 전개할 때 가능하다. 여기서 무엇보다 여성 스스로 자신의 권리를 쟁취하고 사회를 변화시키는 운동이 형성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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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 성범죄 , 화학적 거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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