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연대 뉴스레터 문화빵

사람, 그 동등한 가치의 실현을 위해

-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의 의미와 쟁점

우리나라의 장애인운동은 1980년대에 시작이 되어 90년대에 들어와서 본격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1980년대 후반의 서울장애인올림픽 반대 투쟁에서부터 1990년대 있었던 장애인복지법의 개정, 노동권, 교육권 운동과 최근의 이동권 및 기초생계권 투쟁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의 장애인운동은 끊임없이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차별과 맞서 싸워왔다. 그리고 이제 그 모든 운동의 결실로서 장애인차별금지법을 제정하고자 한다.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의 의미

장애인차별금지법의 제정은 도로의 턱을 없애달라는 유서를 남기고 84년에 목숨을 끊은 고 김순석 씨에서부터 2002년에 여성장애인으로서 장애로 인한 고통과 생활고라는 이중의 고통에 맞서 최옥란 열사의 죽음 등을 헛되이 하지 않는 살아남은 자들의 의무이다. 둘째, 진정한 연대의 모습을 보여주는 인권 운동이다. 그동안 장애인인권운동의 과정에 있어서 일부 단체들이 연대하거나 지원하기는 했지만 장애인차별금지법제정추진연대처럼 범 장애계가 하나가 된 일은 없었다. 셋째, 위로부터가 아닌 아래로부터의 운동이다. 그동안 정부가 만든 법률안에 대한 의견만을 제시하던 수동적 자세에서 벗어나 장애인계에서 직접 법률안을 만들고 그 법률에 장애인의 의견을 담아내고 그것을 법률로 제정하려는 운동은 장애인 당사자의 성숙과 장애인계의 힘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다. 넷째, 시혜적 복지에서 인권으로 가는 운동이다. 최근 장애인단체들의 인권운동과 시민사회운동에의 활발한 참여를 통해 이제는 장애인단체들만의 권리운동만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인권운동도 함께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장애인당사자에게는 차별을 제거하는 역할을 하게 되고 우리 사회에는 우리나라 국민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가하고 있는 차별을 깨닫게 하고 이러한 차별을 하지 않도록 함으로써 우리 사회와 국민을 성숙시키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즉 우리 사회의 차별문화에 대한 담론을 공론화하고 이를 통해 우리 사회의 전반에 걸쳐 이루어지고 있는 반인권적인 차별을 제거하기 위한 운동이다.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추진연대의 결성

2002년 대통령 선거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5대 사회적 차별(학벌, 여성, 장애인, 이주노동자, 비정규직)을 근절하기 위한 차별금지법 제정을 공약하였고, 2003년에 들어와서 국가인권위원회를 중심으로 사회적 차별 금지를 위한 법 제정을 위한 연구가 시작되었다. 한편 장애인 당사자들의 법 제정운동에도 불구하고 보건복지부에서는 국가인권위원회와는 별도로 2004년 5월 25일에 “장애인차별금지법안 제정 방안 공청회”를 개최하여 초안을 발표하였고, 올해 9월 정부발의를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장애계에서는 이미 2001년부터 열린네트워크가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운동을 시작하였으며, 2002년에는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가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을 국회에 청원하였다. 2002년 하반기에는 60여 단체의 범 장애계가 모여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논의를 시작했으며, 2003년 4월 15일 “장애인차별금지법제정추진연대”가 출범했다. 그후 2년 동안 그야말로 법률가가 아니어도 장애인 당사자들이 모여서 차별 경험을 모으고, 법률가와 학자, 장애인 당사자들이 매주 모여서 법 시안을 마련하였다. 법 초안을 가지고 2004년 5월 에는 일박이일 동안 대규모 토론을 하고, 한 여름에는 8개 지역을 순회하며 지역공청회를 가졌다. 2004년 11월에는 토론과 공청회 자문의 거쳐 수정된 법안에 대한 설명회를 하였고, 드디어 각 당과 의원들에게 질의서를 통하여 장추련의 핵심요구사항에 동의한 민주노동당을 통해 법안을 발의할 준비를 하고 있다.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 요구가 높아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장애인들이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사회활동에 참여하지 못하고 교육권, 노동권, 접근권, 문화권 및 생존권조차 보장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경제/사회/문화 등의 모든 영역에서 장애인이 소외되고 있는 가장 큰 원인은 “장애인은 무능력하고 무가치하다”는 편견과 선입견으로 인해 정당화되는 직간접적인 차별 때문이다. 장애인의 삶은 차별의 연속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장애인에 대한 차별은 뿌리깊고 끈질기다. 차별을 폭력으로 인간에 대한 위협이며 폭력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사회의 불감증은 장애인에 대한 차별과 인권침해에 대해 무관심하게 했다. 심지어 이러한 사회현상이 몸에 익은 장애인 당사자들 조차 자신이 겪고 있는 상황이 차별이며 인권침해라는 것을 모른 채 참고 살아오기도 했다.

비장애인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수인 장애인은 비장애인 중심으로 형성된 사회의 구조 속에 소외될 수밖에 없으며, 속도와 외모의 정상성에 가치를 두고 있는 자본주의 아래에서 장애는 개인의 문제로 치부되어서 장애인을 향해 열등하고 무능력하다는 낙인을 찍는다. 이러한 낙인에 의해 장애인에 대한 편견은 가중되고 편견은 다시 장애인에 대한 차별로 이어진다. 그러나 이제 장애는 개인의 몫이 아니라 사회가 공동으로 책임져야 한다. 세계적으로 장애는 후천적 원인에 의해서 발생하고 있고, 그만큼 장애인의 수도 늘어나고 있다. 숫자가 아니어도 인권이라는 공통된 가치를 실현하는 방법으로서 차별금지법 제정은 사회체제의 문제점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분명하게 부각시키고 교정해나가기 위한 하나의 노력이다. 장애인차별금지법 역시 사회의 인권감수성을 높이고, 장애인들의 삶의 가치 역시 비장애인들과 다를 바 없게 하기 위한, 차별을 금지한다는 인권보장을 위한 최소한의 법적접근이다.

기존의 장애인 관련 법률들만으로는 부족한가?

현재 우리나라에는 장애인복지법, 특수교육진흥법, 장애인고용촉진및직업재활법(직업재활법), 장애인노인임산부등의편의증진보장에관한법률(편의증진법) 등 모두 4개의 장애 관련 법률이 있다. 또한 국민기초생활보장법 등의 사회보장 관련 법률을 통해 기초적 생계권을 마련하고 있다. 그러나 이 사회가 장애인을 주체적 인간으로서 대우하기 보다는 보호의 대상으로 보는 측면이 있다. 기존의 법률들의 규정내용과 시행과정의 경험을 통해 잘 드러난다. 기존 장애인 관련 법률들을 다 모아도 다음과 같은 한계를 지니고 있다.

첫째, 각 관련 법률에서도 차별금지 조항은 있지만 자세한 지침과 벌칙이 포함되지 않아 선언적 의미로만 그치고 있어 유명무실하다. 차별금지조항은 지켜도 좋고 안지켜도 할 수 없는 명목뿐인 규정인 것이다. 둘째, 장애인 차별은 광범위한 생활영역에서 일생에 걸쳐 발생하기 때문에 부분적인 법률 속의 일부조항으로는 종합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셋째, 따라서 기존의 법률들이 다루지 못하는 차별 영역들이 있다.

장애인차별금지및권리구제등에관한법률의 제정 방향

지금까지의 복지 시책은 장애인을 ‘일반인들이 충분히 행하는 일상생활을 수행할 수 없게 만드는 신체적정신적 손상(결함)을 가진 사람’으로 보았으므로 장애인은 비장애인과는 차별적인, 다른 그룹으로 취급되었고 비장애인과 다르게 처우되었다.

반면에 장애인차별금지법에서는 장애인을 ‘장애로 인해 사회적 배제(social exclusion)기제에 의해 불이익을 당하는 사람’이라고 바라봄으로써, 문제는‘신체적 정신적 손상’이 아니라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장애인을 기피하려는‘차별적 사회 기제’에 있다는 점을 명확히 한다. 결국,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은‘시혜에서 인권으로’, ‘인권에서 장애인 당사자의 자기결정권으로’,‘참여에서 연대로’ 발전해가는 세계장애인운동의 이념과 발맞추어 나아가는 것이다. 이에 따라 장애인차별금지법(안)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원칙에 따라 만들고자 노력하였다.

첫째 당사자주의에 입각하여 법을 만들고자 하였다. 본 법에 명시되지 않은 목적의 하나는 ‘장애인 대중의 힘을 증대’하고, 개인의 ‘역할과 자유를 확장’시키는 데 있다. 개인의 능력을 함양한다든가, 재활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지금까지 다수의 장애인들은 자기의 선택보다는 제한된 환경으로 인해 타의에 살아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장애인이 있기에 본 법의 필요성이 있으므로(Nothing About Us, Without Us), 당사자의 경험과 판단을 우선하여 법안을 만들고자 하였다.

둘째, 차별받는 대상이 장애인이라는 점을 나타내는 실질적인 법이 되도록 노력하였다. 장애인은 전 생애를 두고 모든 생활영역에서 길고 질긴 차별을 받아왔다. 또한 차별의 형태도 다양하다. 장애인에 대한 차별금지는 ‘장애인이 아닌 사람과 다르게 대해서는 아니 된다’는 것으로는 본 법이 존재해야 할 의미가 없다. 장애인에게 있어 절실한 조치인 정당한 편의제공의 거부를 차별로 규정했고, 장애인의 공통된 경험에 의해 도출한 구체적 차별행위를 법문으로 명시했다.

셋째, 권리구제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한 법이 되도록 한다. 법 명칭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기존의 장애인관련법과 국가인권위원회법의 경험을 통하여 권리구제수단이 현실성이 있어야 함에 주의했다.

장추련의 장애인차별금지법에서는 어떤 실질적 조치를 요구하고 있나?

- 독립적인 장애인차별금지위원회 설립
국가인권위원회에서는 국가인권위원회법에 근거하여 장애로 인한 차별을 비롯하여 18가지 차별에 대하여 조사하고 구제조치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국가인권위원회 출범 3년 동안의 차별로 인한 진정은 1002 건, 장애로 인한 차별 진정은 113건으로, 장애인시민단체가 상담하고 있는 건수보다도 훨씬 적은 수치이다. 또한 대부분이 진정을 취하하거나 조사대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각하되는 경우가 많다. 권고나 합의조정되지만, 힘있고 세심하지 못한 권고가 수용되지 않은 경우가 많고 권고가 수용되지 않을 경우에 사후조치 수단이 없어서 오히려 진정을 한 차별받은 장애인이 제2의 불이익을 겪기도 한다.

그 원인은 장애인에 대한 차별을 명확하게 하지 못한 점과 장애인 스스로 진정을 제기하기가 어렵다는데 있다. 이것은 장애인차별의 특성상 국가인권위원회로는 많은 한계가 있음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장애인 차별에 대한 조사 및 시정조치를 통해 장애인 인권을 보장하기 위하여는 장애인의 심리적 접근성을 높이고 분명한 차별 판단 기준을 제시하기 위한 독립적인 기구로서 장애인차별금지위원회가 설립되어야 한다. 미국의 ADA 경우에는 하나의 법률이지만 각 정부부처가 해당 사안을 처리하도록 하고 있고, 영국과 홍콩의 경우에는 독립적 장애차별금지위원회를, 호주와 뉴질랜드의 경우에는 인권위원회 내에 장애차별위원회를 두고 있다.

- 입증책임의 전환
인권문제에 있어서는 차별이 받은 사람의 어려움을 고려하여 차별행위를 한 사람이 그 행위가 장애를 이유로 한 차별이 아니라는 점과 그러한 행위에 정당한 이유가 있다는 점을 입증하도록 하고 있다.

- 소송대리제도
비장애인의 경우에 혼자서 소송을 진행하기란 어려운 현실에서 장애인은 더욱 사회적 제약으로 인하여 피해를 입은 경우에도 법에 호소할 길이 막혀있는 경우가 많다. 차별을 받은 장애인 당사자가 진정을 할 수도 있고, 경우에 따라 개인이 소송을 진행하기가 어려운 점과 다수 장애인이 똑같은 형태의 차별을 받고 있음을 고려하여 인권단체가 당사자의 동의 하에 위임받아 소송을 진행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 시정명령
독립적 장애인차별금지위원회에서는 차별진정에 대해 권고나 조정으로 안될 경우에는 사안의 중대성에 따라 시정명령이 가능하여야 한다. 시정명령도 이행하지 않을 경우에는 시정내용을 감안하여 1천만원 이하의 이행강제금을 부과할 수 있다.

- 징벌적 손해배상
현행 제도는 실제로 손해가 있는 금액만을 배상하도록 규정하고 있고, 법원에서 위자료 액수도 높지 않아 악의적인 차별행위로 인한 침해가 중대함에도 그 차별행위를 실질적으로 억제하고 같은 유형의 행위를 예방하는 데에 한계가 있다. 차별행위를 고의적으로 반복하거나, 시정권고 등을 받고도 이를 시정하지 않아서 악의로 인정되는 경우에는 법원에서 실제 인정된 손해액의 3배 이상 10 이하의 배상금을 지급하도록 하는 실효적인 조치가 필요하다.

영원한 타자가 아닌 '자기'로서의 존중

<성의 정치학>에서는 ‘여성의 운명은 남자다’라는 것에 대해 분석적 고발을 하고 있다. ‘흑인에게는 백인이라는 단하나의 운명만이 존재한다’라는 말도 있었다. 그렇다면 장애인의 운명은 비장애인인가? 타성에 젖지 않도록 하는 노력은 우리 모두에게 매우 중요하다. 비장애인도 장애인도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는 성숙한 태도는 무엇인지, 정상과 비정상, 중심과 주변, 주체와 객체 등의 개념은 현혹되기 쉬운 말들이라는 것에 대해 최근 더욱 깊은 생각을 하게 된다. 모두가 영원히 타자가 아닌 자기로서 존중될 수 있는 때가 오도록 하는 데에 장애인차별금지법의 시행은 커다란 기여를 할 것이다.

인식의 차원에서, 장애인을 사람이기 전에 생활능력의 있고 없음과 외모의 정상성에 기준해서 평가의 물성적 대상, 보호의 대상으로 보는 사회에 대해서도 깊이 성찰하는 사회에 되었으면 한다. 모든 인간존재의 의미를 동등한 수준에서 보고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의 폐해로 인해 ‘사회적 약자’규정되어 버리는 맥락에 접근하고자 하는 시각의 다양성에 기대어본다. 마지막으로 정부도 국가인권위원회도 왜 장애인들이 이토록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에 땀과 염원을 담아 긴 세월 주체적으로 노력해왔는지 그 운동과정과 요구에 대해 각성해주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말

김광이님은 장애인차별금지법제정추진연대 법제정위원회 부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태그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김광이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