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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화권의 사회적 실천과 문화운동의 미래

지난 5월 28일 건국대에서는“맑스, 왜 희망인가?”라는 주제로 제2회 맑스 코뮤날레가 열렸다. ‘코뮤날레’는 코뮤니즘과 비엔날레의 합성어로 맑스 코뮤날레는 신자유주의적 지구화에 대결하는 이론적/실천적 공간을 창출하기 위해 2년마다 치러지는 학술문화제이다. 이번 맑스 코뮤날레에서는 총 3부로 이루어진 전체주제 발표와 9개 분과로 구성된 주관단체별 발표 및 종합토론이 진행됐다. 행사 둘째 날 계간 계간 <문화과학>은 '우리시대 좌파 문화운동은 가능한가:새로운 전망'이라는 주제로 발표, 새로운 문화운동과 맑스의 현재성에 대해 모색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날 발표된 글을 요약하여 싣는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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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노동권, 정치권, 교육권, 환경권, 복지권..... 한국사회가 점차로 민주화되면서 다양한 영역에 걸쳐 시민들의 권리를 찾으려는 운동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으나, 문화적 권리는 아직 제대로 논의되고 있지 않다. 노동권, 인권, 여성권, 환경권, (참여)정치권에 대한 운동들은 역사적 유산을 가지고 있거나, 최근 활발하게 운동 이슈로 부각되고 있는 상황인데 반해 문화영역에서의 권리들은 다른 권리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게 취급되거나 부차적인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또한 문화권을 문화예술 창작자나 생산자 권리로 축소해서 이해하는 경우도 일반적이다. 이렇듯 한국사회에서 문화적 권리가 심도깊게 논의되지 않은 것은 해방 이후 지금까지 경제와 정치가 가장 중요한 국가담론이었기 때문일 터이고, 더욱이 압축성장 과정에서 야기된 갖가지 경제적, 정치적 모순들이 문화를 항상 배제하거나 도구적 수단으로 활용했기 때문이다. 90년대 경제성장과 민주화과정 이후에도 ‘문화의 의미’는 경제적 발전을 이후의 부수물로 인식하거나 상업적 소비문화와 연예산업의 재생산 도구로 인식하는 것이 지배적이었다.

문화권은 신체적 자율과 해방

그러나 문화적 권리는 사회복지의 일반화된 권리나 소수 문화예술 창작자들만의 권리가 아니라 개인의 삶의 행동의 신체적 자율과 해방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한편으로는 시민들의 일상에서 문화적 경험이 증가하고, 일상 자체가 점차로 문화화되면서 문화권은 인간 삶의 중요한 가치로 인식되고 있는 중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문화산업 분야의 증대, 문화자본의 독점화, 문화적 종다양성의 위협, 지역문화(국지문화)의 소외를 극복해야하는 문화정세 속에서 대중들의 문화적 권리는 부차적인 것이 아니라 우선적인 것이며 이론적, 실천적으로 시급하게 정비해야 할 개념이다.

신자유주의 시대 문화적 종다양성의 파괴와, 노동환경의 유연화, 일상적 삶의 재편, 문화비용의 증대와 같은 새로운 환경에서 문화권은 계급투쟁의 과정과 무관한 것이 아니며, 동시에 계급투쟁 이후의 삶의 과제들을 전망한다. 문화권리 찾기 운동은 진보적 지식인과 문화예술인 중심의 문화운동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취지도 있는 바, 시민운동과 사회운동을 문화운동적인 관점에서 결합하는 접점을 형성하기도 한다. 문화권리 찾기 운동은 대중들의 일상적 권리와 감성적 권리들을 주장한다는 점에서 민주주의를 완성하는 권리이며, 문화사회를 구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대중들의 문화적 네트웍을 구성하는 운동을 목표로 한다.

문화적 권리를 위해 싸움을 거는 발화들은 부분적으로 가시화되었지만, 현재 문화운동에서 하나의 집중된 중심 의제로 설정되지 못하고 있다. 서로 다른 운동들의 사회적 연계라는 것이 정서적 동의를 넘어서 실제적 연대로 나가지 못하고, 공동의 문화적 전선을 형성하지 못하는 개별화의 딜레마에 빠지게 되었다. 문화운동이 쇠퇴하는 1990년대 중반 이후에 오히려 문화와 관련된 다양한 흐름들이 만들어지고, 스타일, 세대, 성, 정보, 공공문화 분야에 새로운 문화적 흐름들의 생성에도 불구하고 문화운동의 구심점이 발견되지 않는 역설적인 상황은 문화 실천에 대한 새로운 담론 구성의 필요성을 고려하게 만든다. 이는 1980년대를 주도했던 문화운동의 이념과 주체가 효력을 상실하거나 지배문화정책 안으로 흡수되는 현실에 대한 비판이면서 동시에 현실 문화운동 내에서 제기되고 있는 다양한 실천 의제들을 새롭게 재구성하여, 새로운 문화운동의 이념과 방법을 마련하자는 제안이기도 하다.

문화권 운동의 몇가지 토픽들

그렇다면 문화적 권리 투쟁이 좌파운동, 사회운동의 새로운 실천 에너지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토픽들이 논의되어야 할까?

먼저, 다양한 문화적 권리 투쟁의 사회적 의미에 대한 담론화가 필요하다. 지금까지 문화권 운동은 “계급 이후”, 혹은 “계급을 넘어서”라는 슬로건을 강하게 주장했다면, 지금은 “계급을 포함해서”라는 슬로건으로 재조직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까지 문화권운동의 사례들 중에서 계급적인 관점에서 다룬 것들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화권을 계급의 관점에서 재구성하는 것은 차이와 모순을 함께 보자는 취지를 가지고 있고, 문화적 권리 투쟁이 사회구성의 불평들과 모순을 위한 싸움이라는 것을 재고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차이와 모순이 함께 극복될 수 있는 문화권 투쟁은 노동자문화운동의 담론 속에서도 각인되어야할 뿐 아니라 다른 다원화된 운동의 담론 안에서도 각인되어야 한다.

둘째, 문화적 권리의 자율적 표현 수단과 공적 생산수단의 이중적 확보를 위한 투쟁이 필요하다. 문화권은 감성적인 권리이면서 생산수단의 권리이기도 하다. 생산수단 없는 감성의 권리는 물적인 토대 확보 없이 구호로 그치기 쉬우며, 반대로 감성이 없는 생산수단의 확보는 제도적인 관철이기 쉽다. 이러한 이중적 권리의 접속은 현실 속에서 관철시키기가 대단히 어렵다. 가령 미디액트운동이나 정보운동에서 일정한 물적 토대를 확보할 경우에 항상 문화적 정서와 감수성의 영역에서 문화적 관료집단과 마찰을 빚는 경우가 많다. 그런 점에서 문화공공인프라의 형질전환에서 문화감수성의 정치는 헤게모니 전략에 있어 중요한 문화운동의 전략이다.

일상적인 문화행동으로

셋째, 서로 다른 문화적 권리 투쟁들 간의 연대와 네트워크가 필요하다. 노동자문화운동과 성적소수자와의 연대, 장애인과 여성문화운동의 연대, 정보문화운동과 표현의 자유운동과의 연대 등은 서로 다른 심급 하에 있는 문화집단들과 문화의제들이 서로 가로질러가게 만든다. 문화적 권리의 문제는 주체화양식에 있어서는 항상 보완적이다. 여성, 청소년, 장애인, 노동자의 주체화양식은 항상 다른 주체들과 상호보완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문화권 투쟁이 사회적 적대계급에의 저항이면서 동시에 사회적 연대 주체들 간의 공동의 대응일 수밖에 없는 것은 주체의 권리는 언제나 동일하지 않기 때문이다. 문화권을 위한 문화운동의 그간 과정에서 특히 이러한 연대는 희박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서로 다른 문화적 권리의 차이를 가진 집단들 간의 연대와 네트워크를 통해서 상호 보완적이고 삼투적인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문화적 권리투쟁에 있어 급진적 표현수단과 사건의 조직화가 필요하다. 문화권의 언어적 표현은 행동의 함의만큼 급진적이지 못한 측면이 많다. 내용은 급진적인데, 형식은 보수적인 문화운동의 일반적인 관행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다양한 형태의 문화적 사건들을 현장에서 일으키는 시도들이 기도될 필요가 있다. 문화권을 행사하는 것은 행동을 통한 재현의 행위가 아니라 그 자체로 행위 속에 각인된다. 스쾃의 문화권리는 점거하는 행위를 통해 실현되는 것이며, 포르노그라피의 문화권리는 포르노그라피의 행위 속에서 실현되는 것이다. 지금까지 문화권 투쟁은 사건 안에서 보다는 담론 안에서 구성되는 경우가 지배적이었다. 사건이 담론을 구성하는 현장에서의 문화적 권리의 발견이 더 요청된다. 이를 위해 사회적 소수자들에 의한(대한) 문화행동을 일상적으로 조직해보자.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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