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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자치 10년, 남긴 것과 남은 것

지방자치와 균형발전

지난 6월 23일 국가인권위 배움터에서는 지방자치 10주년을 맞아 경기시민사회포럼, 서울시민연대, 민주개혁을 위한 인천시민연대 주최로 '지방자치 10년 평가와 전망' 토론회가 열렸다. 지방자치는 국가 권력의 제한 원리이자 민주주의 이념의 실천적 원리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지방자치 현실은 한국사회의 정치적, 문화적 선진성을 가늠해 볼 수 있는 하나의 척도라 할 만하다. 지방자치 실시 이후 10년, 성과와 남겨진 과제는 무엇인가. 이날 토론회에서 발표된 글을 발췌하여 싣는다. [편집자]

노무현 정부의 지방분권정책 평가

노무현 정부는 지방분권 로드맵(청사진)을 발표하고(2003년 7월) 이를 실행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방안을 추진하거나 검토하는 한편, 이러한 정책노력을 뒷받침할 제도적 장치로서 지방분권특별법을 제정하는 등(2004년 1월) 지방분권에 대한 적극적 의지를 명시적으로 천명하여 왔다. 이러한 정책의지는 일단 그 적극성에 있어서 과거의 정부에 비하여 상당히 전향적인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이미 정부가 출범한지 2년여의 기간이 경과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의욕적으로 제시하였던 분권정책과제가 실현되지 않음으로 인하여 과연 노무현 정부의 의욕적인 분권청사진이 제대로 실현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회의적 시각이 팽배해지고 있다.

특히 지방자치 10주년에 즈음하여 정부, 자치단체, 민간연구기관 등에서 지금까지의 지방자치 성과에 대한 평가적 의견을 모으는 과정에서 노무현 정부의 집권기간 동안 획기적인 변화가 발견되지 않음으로써 현 정부의 분권 성과에 대한 실망감마저 배태되고 있는 실정이다. 물론 아직도 노무현 정부의 분권개혁이 완성된 것은 아니며, 소기하는 분권정책의 구체화를 위하여는 좀 더 연구와 협의가 필요한 것이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권세력의 저항이 만만치 않고, 정치권의 지지가 담보되지 않는 상황에서 최소한 분권진영의 조바심이 커지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라 하겠다.

지방자치란 무엇인가

지방자치가 무엇인가에 대하여는 일반적으로 “일정한 지역과 주민을 기초로 하는 공공단체가 지역내의 공공사무를 지역주민 스스로 또는 대표를 통하여 처리하는 과정”으로 이해된다. 이러한 전통적 견해는 기본적으로 지방자치를 단체자치와 주민자치라는 두가지 차원에서 파악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단체자치란 상위정부에 대한 지방정부의 자율성 측면에 관한 것으로서 상위정부와 지방정부간의 분권/집권이 핵심문제가 되며, 주민자치는 지방정부에 대한 시민사회의 투입측면에 관계되는 것으로서 참여/통제가 핵심문제가 된다. 그리고 이러한 이해에 기초하여 지방자치는 상위정부로 부터의 “분권”과 지방정책과정에 대한 시민의 “참여”로 요약된다.

이와 같이 지방자치는 기본적으로 지방의 자율성을 전제로 하여 수행되는 것인 바, 그 자율성이 상위정부와의 관계 뿐 아니라 다른 외부요인과의 관계의 제약 하에 있는 것이라면, 당연히 상위정부로부터의 분권 이외에 다른 외부요인과의 관계측면이 지방자치의 이해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어떠한 외부요인이 지방자치의 개념에 포함되어야 하는가? 생각건대, 이질화된 현대자본주의사회의 구성상의 특징을 고려할 때, 특히 관심을 가져야할 외부요인은 기업, 지역토호 등의 지배집단이다. 이 추가적 관계에 있어서는 지방정부의 지배집단에 대한“중립/종속” 여부가 핵심문제가 되며, 지방자치는 지방정부의 지배집단에 대한 “중립”을 요소로 포함하게 된다. 환언하면, 지방자치는 지방정부가 지배집단의 영향력에 대하여 중립적인 입장을 견지하여 편파적인 정책대응을 하지 않는 의미를 포함하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이 요소는 단체자치, 주민자치 측면과 비교하여 ‘정부자치’로 명명할 수 있을 것이다.

첨언할 것은 여기에서 “중립”이란 용어가 지배집단과 일반시민간의 중간자적 입장을 의미하는 소극적 의미로 사용되기 보다는 오히려 일반시민을 위한 우대정책(affirmative policy)을 천명하는 의미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는 지배집단과 일반시민과의 자원과 권력의 격차를 고려한다면 당연한 요청이다. 왜냐하면 지방정부가 중간자적 입장을 취하는 상황에서 지배집단과 일반시민과의 관계는 필연적으로 강자의 논리가 지배하게 되고 이에 따라 심각한 사회적 불평등이 조장됨으로써 지방자치의 궁극적 목적인 주민복지의 증진이 불가능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지방자치는 상위정부로 부터의 ‘분권’, 지방정책과정에 대한 시민의 ‘참여’, 및 지방정부의 지배집단에 대한 ‘중립(또는 계층중립성)’으로 새롭게 정의될 수 있다.

계층중립성 소홀히 취급

전반적으로 볼 때, 지방분권로드맵에 나타난 분권실천의지는 역대 어느 정부보다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의 지방분권로드맵은 다음과 같은 한계를 보인다.

첫째, 추진과제가 지방자치의 요소를 균형적으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지방자치를 분권, 참여, 및 계층중립성으로 이해할 때, 지방분권로드맵은 명칭이 제시하는 바와 같이 상대적으로 분권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참여는 제한적으로 다루고 있다. 계층중립성은 가장 소홀히 취급되고 있다. 이러한 한계에 대한 관심은 외환위기 이후 사회 내 계층격차가 커지고 있는 상황을 고려할 때 특히 강조될 필요가 있다 하겠다. 이를 위한 추진과제로서 예컨대, 무분별한 개발정책의 규제, 소외계층을 위한 복지정책 확대, 정보공개를 통한 행정책임성의 확보, 시민감시활동의 강화, 공직윤리의 강화 등이 제시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기본적으로 가용자원과 추진역량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추진과제를 망라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모든 추진과제가 현 정부의 임기 내에 완결될 것으로 예정하고 있다. 이는 자원과 추진역량에 대한 전략적 고려가 불충분함을 드러내주는 것이다. 생각건대, 자원과 역량의 제약 하에서 그 많은 과제가 단기간 내에 일률적으로 입안되고 실행되고 보완될 수 있으리라 기대하는 것은 지나치게 낙관적이라 하겠다. 의욕이 앞선 현실성 떨어지는 추진계획이라는 점에서 비판받을 부분이 다. 기본적으로 이와 같은 한계는 기본적으로 분권과제의 실현을 단기적 시각에서 접근한 때문에 비롯된 것이다. 자원제약을 고려하여 추진과제간 기능적 연관도를 작성하고 이에 기초하여 과제간 우선순위를 명확히하여 전략적 추진계획을 작성하였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또한 현 정부의 임기 내에서의 단기적 관점이 아닌 보다 중장기적 관점에서의 추진계획의 수립이 바람직하였을 것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파급효과가 큰 핵심과제에 역량을 집중하여 단기간 내에 추진하고 상대적으로 우선순위가 떨어지는 과제를 보다 중장기적 관점에서 시행하게 하는 추진일정이 보다 현실적이었을 것이다.

'분권'과 '분산'은 달라

노무현 정부는 지방분권정책과 함께 국가균형발전정책을 핵심정책으로 추진하고 있다. 그런데 현 정부는 균형발전정책을 별도로 추진하기 보다는 분권정책과 명시적으로 연계하여 추진하고 있다.공간적으로 우리나라에는 두 가지의 중대한 불균형이 존재한다. 이러한 불균형은 과도한 중앙집권에 따른 중앙과 지방간의 수직적 권력불균형, 집중개발에 따른 지역 간 수평적 불균형을 포함하는데 전자는 정치적 불균형, 후자는 경제적 불균형으로 특징지울 수 있다.

분권과 균형발전(분산) 문제는 지방분권의 취약성 및 지역불균형 심화의 현실을 고려할 때, 각각 소홀히 취급하기 어려운 국가적 정책과제이며 이의 해결을 위한 정책노력이 필요함은 물론이다. 문제는 분권과 균형발전분산은 성격상 모순관계에 있다는 점이다. 분권은 수직적 분산행위로서 중앙으로부터 지방으로의 권한과 재원의 이양을 주요 내용으로 하며 지방의 자율권을 확대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반면 분산은 수평적 분산행위로서 주로 중앙정부에 의한 재원의 권위적 지방배분을 내용으로 하며 따라서 지방정부의 자율권을 제어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와 같은 상충하는 정책을 우선순위와 상호연관성에 대한 심각한 고려없이 병렬적으로 추진함에 따라 갈등과 비효율이 배태되고 있다.

지방화와 관련하여 유기적인 연관을 갖고 추진되어야 할 정책을 별개의 추진기구가 담당하면서 정책갈등을 노정하거나 분리 추진에 따라 시너지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으며, 보다 근본적인 문제로 분권은 중앙에 대응한 지방의 협력을 촉진하는 반면, 분산은 자원배분을 둘러싼 지방의 거시적 분열 나아가서는 중앙과 지방의 대립을 초래하고 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분권정책과는 달리 분산정책의 경우, 발전지역과 낙후지역간의 차별화가 불가피하게 되고 이에 따라 상대적으로 피해를 받는 지역과 상대적으로 이익을 보게 되는 지역 간의 충돌과 갈등은 필연적이다.

내생적 발전에 기반해야

이와 같은 정책모순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물론 양 정책요구가 다 중요하다고 하였을 때, 어느 하나를 완전히 방기할 수는 없으며 양 정책을 유기적으로 연계시키는 정책기조가 채택되어야 한다. 가능한 대안은 주 분권-종 분산, 또는 주 분산-종 분권의 두 가지일 수 있다. 그러나 보다 효과적이고 바람직한 것은 주 분권-종 분산정책일 것이다. 구체적으로, 분권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지역불균형 해소를 위한 고려를 포함하도록 함으로써 양 정책요구에 대한 조화를 기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그 이유는 지방자치는 본래적으로 지방의 자율적 책임을 강조하는 정치제도라는 점, 분산에 대한 고려는 분권정책에 포함될 수 있다는 점(예, 교부금의 차등배분), 분권없이 이루어지는 분산은 결국 지방의 자율적 발전을 봉쇄하게 된다는 점 등을 제시할 수 있다. 이 같은 관점은 지방자치의 개념화에 대한 논의에서 제시한 바와 같이 지방자치의 본래적 개념에는 균형발전이 필수개념요소로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점에서도 지지된다. 지방자치 하에서 균형발전은 어디까지나 지방의 자율성과 다양성을 전제로 한 내생적 발전에 기반하여야 하는 것이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분권추구세력을 능가하는 집권수호세력이 존재한다. 이와 같이 집권세력이 공고한 데 더하여 현 정부에 대한 정치권 및 시민사회의 지지가 확고하지 못한 상황은 분권정책에 대한 낙관적 전망을 불허한다.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향후 실천노력의 강화가 요구된다. 그러나 분권정책과 균형발전정책의 병렬추진은 정책목표가 상충하는 정책을 병렬 추진한다는 계획상의 한계, 균형발전을 별도로 추진하는 만큼 분권의지를 침해하게 된다는 점에서 치유하기 어려운 근본적 문제를 안고 있다. 양 정책의 병렬적 추진은 실천 이전에 계획부터 근본적 문제가 있는 만큼, 이러한 상황에서는 균형발전정책의 실천노력 강화가 오히려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치유책은 양 정책을 병렬적으로 추진함으로써 불필요한 부작용을 증폭시키기보다는, 보다 통합적인 시각에서 지방분권과 조화되는 균형발전 정책과제의 수립 및 추진기구의 유기적 연계를 확립하는데서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내생적 지역발전 정책의 수용,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와 국가균형발전위원회의 통합 등에 대한 적극 검토가 필요할 것으로 본다.


이승종,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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