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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헌 논의 유감

헌법 개정, 계급적 논의로 확장돼야

최근 여권을 중심으로 하는 정치권과 시민단체들로부터 ‘개헌론’이 제기되고 있다. 물론 권력구조의 문제에 착목하여 내각제 등의 대안 권력 체제 논의에 집중하는 정치권과 헌법의 실효성을 강화하기 위한 민주적 ‘헌정체제’ 수립을 모색하는 시민사회단체의 흐름은 차별적이다. 그러나 ‘어떤’ 헌법인가를 중심으로 논의되는 한 ‘텍스트’로서의 헌법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 솔직한 생각이다.

지난 15일 프레스센터에서 창비와 함께하는 시민행동 주최로 열린 “87년 체제의 극복을 위하여-헌법과 사회구조의 비판적 성찰” 토론회는 시민사회단체 내의 ‘헌법개혁’ 논의가 본 궤도에 올라서려 함을 보여주는 상징이었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번 토론회가 단순히 ‘헌법’에만 집중을 하는 토론회라기보다는 ‘87년 체제’(이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서는 조희연의 것으로 기억한다)의 부분으로서 헌법체제 혹은 헌정체계를 다루었다.

그럼에도 시민사회 내에서 개헌논의를 이토록 적극적인 의제로 다루었던 적은 없었기에 그 의미는 높다. 특히 창비와 공동으로 이런 주제의 토론회를 기획하고 있다는 것은 시민사회의‘주류’가 어느 정도 개헌에 대한 합의를 이루어내고 있다는 가시적인 징후로 읽을 소지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전체 2부로 진행된 이번 토론회의 1부는 ‘헌법 논의의 지형을 확대하자’는 주제로 홍윤기, 정희진, 박명림이 각각 발제하였다. 홍윤기는 87년 개헌이 가지는 의미를 ‘권력공학에 압도당한 시민혁명’이라는 말로 풀이한다. 실제로 홍윤기가 지적하듯이 87년 개헌은 그야말로 제도 정치의 야합에 의해 진행된 것으로 85년부터 면면히 이어오던 광범위한 민중투쟁의 결과물이 아니었다. 실제 87년 당시 야당이 민중항쟁의 주도권을 차지하기 전까지 공공연하게 제헌의회 소집이 주요 구호였던 것을 상기하면 87년 헌법이 당시의 열망과 질적으로 얼마나 차별적인 것인지 알 수 있다. 이에 홍윤기는 87년 헌법에 대해 “헌정체제 성립의 원동력 부분인 국가시민권과 헌법작성 주체인 정치권이 확연하게 분치되는 형세”로 헌법이 개정되었다고 평가한다. 그런 한계를 바탕으로 연성형 시민국가 전략에 걸맞는 헌법체제를 제안한다. 그는 국민을 주체로 삼는 헌법은 강성형 국민국가의 표본이었다고 지적하면서 평화적이고 호혜적인 내용을 포괄하는 시민 주체의 연성 국가의 이미지를 헌법에 담자고 제안하는 것이다. 특히 헌법에 정치, 경제, 사법 영역에의 시민참여를 제도적으로 보완하는 것을 주요하게 지적하고 있다.

다음으로 정희진은 기존 헌법의 조문들을 여성 혹은 ‘비국민’의 시작에서 검토하면서 “현재 한국헌법은 국민국가의 틀 안에서, 서구가 근대시민사회로 진입할 당시의 개념을 그대로 전제하고 있어, ‘현실적’이지 않다”고 비판한다. 다음으로 박명림은 민주적 실천을 절차와 과정의 수준과 능력 또는 책임과 결과의 영역으로 구분하면서 87년 체제 이후 현재까지 전자에 집중하면서 결과적으로 한 사회의 집합적 삶의 형태를 이루는 주요한 요소로서 실질적인 민주적 요소에 집중한다. 박명림은 “노무현 정부에 이르기까지 왜 ‘모든’ 민주화 이후의 정부들이 항상 중간평가 약속, 3당 합당, 내각제 개헌 약속, 재신임 약속, 탄핵 파동과 같은 ‘(초)헌법적’ 사태에 예외 없이 직면하였느냐”고 물으면서 이는 단순히 대통령들의 무능이나 정략의 결과가 아니라 ‘헌법체제’의 문제점에 기인하다고 지적한다. 이는 매우 정당한 지적으로 볼 수 있으며, 특히 ‘정치의 사법화’를 지적하면서 최근 헌법재판소의 ‘정치적’ 판결에 대한 관심을 촉발시키는 것은 타당하다.

하지만 논의가 급격하게 ‘어떤’ 헌법인가의 문제로 집중되면서 헌법주의와 민주주의의 대립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으로 논의가 모아진다. 그러면서 민주적 원칙을 바탕으로 헌법체제를 견인하고자 하는 기획이 ‘개헌 일정’으로 수렴된다. 박명림이 제안하는 방식은 1차적으로 시민사회 내에서 ‘민주헌법제정 시민사회연대’를 구성하고 국회 내에 헌법개정협의회를 둔다. 이를 통해 헌법제정의 논의를 국민화하며 최종적 채택 권한은 국민의 대표인 국회에 주며 마지막으로는 다시 국민투표를 통해 추인 받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박명림의 로드맵은 2007년 하반기가 종료시점으로 상정되어 있다.

15일 토론회는 그동안 헌법관련 토론회가 지나치게 이상적이고 이론 중심적이었던 점에 비추어볼 때 당장이라도 실행할 수 있는 구체적 매뉴얼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만큼 실질적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또한 발제자들도 밝히고 있듯이 ‘함께하는 시민행동’내부에 전문가 그룹이 지속적으로 이 논의를 이끌어가고 있다는 점 역시 문제의식의 지속성이라는 측면에서 가치가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이러한 논의는 너무나 순진한 발상에 머물 가능성이 다분하다. 왜냐하면 갈등을 전제하지 않는 개헌 논의와 로드맵이 실현될 가능성은 전무하기 때문이다. 직접적으로 말하자면 헌법에 대한 논의는 헌법수호의 논리와 헌법개혁의 논리로 첨예화되고 있으며 그 경계는 계층 혹은 계급적 성질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헌법에 대한 논의는 일차적으로 계급적(계층적) 논의로 확장되고 논쟁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헌법 수호의 논리를 살펴보자. 정희진이 정확하게 지적했듯이, 과거 민주화 운동의 법적 정당성은 대개 헌법에서 찾아졌다. 다시 말해 ‘사문화’ 헌법의 내용들이 민주화 운동의 ‘법적’ 정당성을 보장해주는 도구로 활용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어떠한가. 90년대 초반 토지공개념에 근거한 여러 법률들을 개인의 재산권차원에서 위헌화했던 것도, 작년 대통령 공약으로 제출되었고 여야 합의로 통과되었던 수도이전 특별법을 위헌화했던 것도 바로 헌법이었다(정확하게 말하자면 헌법의 해석자인 헌법재판소였다). 다시 말해 헌법은 절대로 공명정대하지 않으며 오히려 행정적 권력이 연성화되고 실질적인 민주화가 진행될수록 헌법재판소의 정치적 해석이 늘어날 것이다. 실제로 전경련 산하의 ‘자유기업센터’에서 지난 98년 내놓은 <한국 민주정치와 삼권분립>이라는 책은 자본 측의 ‘헌법활용론’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매뉴얼이다. 이 책의 부제인 ‘사법심사권 확충을 중심으로’에서 여실히 드러나듯이 헌법재판소의 사법심사권을 중심으로 소위 문민화된 정부가 추진해왔던 ‘한줌의’ 개혁정책에 대응하자는 내용이다.

이러한 성격은 헌법재판소의 구체적인 판례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이를 테면 지난 2004년 판결된 ‘이라크전쟁 파병과 통치행위’에 대한 결정문에서는 “일반 시민에겐 파병 결정에 대해 헌법소원을 청구할 적격이 없다”는 논리가 보이며, 지난 3월 퇴임한 김영일 재판관은 퇴임사에서 헌법재판에 대한 시민참여 요구에 대해 “법이 지니는 고유한 의미를 찾아내고 거기에 적용할 헌법조항의 의미와 헌법 정신 등을 해석해 내는 작업이야말로 진정 오랜 세월 법의 해석작업에 임하여 왔으며 어떠한 경우에도 흔들림없이 오로지 국민의 기본권과 헌법, 헌법 정신을 찾아내어 선포하는 법률가만이 할 수 있는 일이지, 거기에 법을 전공하지도 아니한 어떤 상식인이 법률가를 대체하여 그와 같은 일을 올바로 해낼 수 있다고는 전혀 생각되지 않기 때문입니다”라고 반박하는 내용을 보자.

다시 말해, 헌법 개정의 논의는 현재 헌법이 취하고 있는 정확한 ‘위치’의 문제에서 시작되어야 하며 그 속에서 흐르고 있는 계급적(계층적) 차별이라는 요소를 밝혀내는 것부터 출발해야 한다. 개인의 사적 권리를 우선하고 법 해석의 독점을 정당화는 현재의 헌법재판소의 흐름이 과연 민주주의적인 것인지 판단해야 된다는 것이다. 법치주의는 민주주의와 대체될 수 없다. 누가 언급했듯이 법치주의는 민주주의 없이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김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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