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액의 연구비를 대가로 발주를 받아 기업이 하고 싶은 말을 과학자의 언어와 권위를 이용해 객관적인 듯 포장하는 것이 청부과학이다. 객관성과 중립성, 공정성을 추구하는 과학이 그 본연의 사명과 임무를 져버리게 되는 것이다.
대표적인 청부과학으로 꼽히는 담배유해성 연구
담배회사의 연구를 진행했던 사례가 국내 외 청부과학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지난 2007년 7월 서울대, 전남대, 가톨릭대 병원 임상시험센터가 세계 1위 담배인 필립모리스로부터 10억을 받아 흡연에 관한 연구를 진행한다고 해 큰 파문이 있었다. 당시 각 대학은 ‘담배의 유해성 평가를 위한 임상시험’을 진행하려고 했는데 학계와 시민단체에게 많은 비난을 받으면서 서울대병원 윤리심의위원회는 연구 승인을 취소한 바 있다.
2013년 12월 건강정책 학회에선 지금은 고인이 된 박상표 건강과 대안 연구위원이 ‘담배회사 내부 문건 속 한국인 과학자 분석’의 논문을 발표한 바 있다. 이 논문에 따르면 1981년 일본 국립암연구소의 히라야마 다케시 박사가 간접흡연의 위험에 관한 역학적 연구 결과를 발표하자 다국적 담배 기업들은 과학자들을 고용하여 간접흡연에 위험성에 대응하기 위해 다양한 전략을 구사했다. 직접 흡연이야 담배의 위험성을 알고 피웠으니 이로 인해 건강이 악화하는 것은 본인 책임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간접흡연으로 인해 비흡연자가 담배로 인해 질병이 발생했다면 기업에 더 책임을 물을 여지가 생기는 것이다. 이에 필립모리스사는 히라야마의 연구결과를 흠집 내기 위해 대규모 프로젝트를 진행하였다.
박상표 연구위원은 고려대, 한양대를 비롯한 국내 유수 의과대학의 교수와 연구진들의 실명을 공개했고, 이들에게 다국적 담배회사가 접근한 방식부터 연구후원을 받은 논문으로 국제학술대회를 조직한 과정, 구체적인 보수 수준까지 낱낱이 밝혀내었다. 박 연구위원은 “이 논문이 담배회사 내부문건에 근거했기 때문에 실체적 진실을 모두 규명하기에는 한계가 있지만, 신원이 밝혀진 한국 과학자들을 대상으로 이들의 논문 내용에 대한 학술적 검토가 필요하다”고 제안한 바 있었다.
담배회사들은 담배의 유해성과 중독성에 관한 모든 연구를 문제 삼았다. 역학자와 통계학자를 동원해서 연구방법과 결론에 이의를 제기하며 끊임없이 '불확실성'을 강조하고 '논란'을 일으켰다.
2014년 대법원은 흡연 피해자와 가족들이 국가와 KT&G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한 원심을 확정하고 원고들의 상고를 기각했다. 1999년 흡연피해자들이 처음 소송을 제기한 지 15년 만에 나온 대법원 판결이었다. 몇가지 쟁점이 있었지만, 흡연과 폐암에서는 폐암의 흡연으로만 생기는 특이성 질환이 아니라 물리적, 생물학적, 화학적 인자 등 외적 환경인자와 생체의 내적 인자의 복합적 작용으로 발병될 수 있는 비특이성 질환이라고 판단했다. 즉 담배는 암 발생에 영향을 줄 수 있지만, 직접 암을 유발한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과학은 정말 객관적인가?
흔히들 과학은 객관적이라고 하고 또 그렇게 믿는다. 그러나 과학이 자본과 결합할 경우 종종 그렇지 않을 수 있음은 과학계에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특히 자본주의 사회에서 정부 정책과 영합하거나 자본과 영합하는 과학은 객관적일 수 없음은 잘 알려져 있다. 21세기 들어와 정부나 기업은 정책을 합리화하거나 영업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과학의 힘에 의존할 뿐 아니라, 적극적으로는 과학의 방법, 결과를 왜곡하거나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외국의 경우 1960-70년대에 환경, 보건, 노동 문제가 본격적으로 제기된 이후 고용 과학이 체계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과학'이 객관적이고 공정함을 버리고 연구비를 준 단체나 정부의 이익에 부합하여 포장한다면 이미 '과학'이라고 할 수 없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에서도 보듯이 기업의 이윤에 편승한 연구 결과는 고스란히 불특정 다수의 생명체 그중에서도 인간이 영향을 받게 된다. 인간의 안녕이 아닌 자본의 배를 불리기 위해 존재하는 과학은 이 세상에서 사라져야 할 것 중에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