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의 월간지 현장에서 미래를

[107호] 권두언

두 개의 ‘6자회담’과 한노정연의 과제

박성인 |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소장

지난 몇 개월간 그 성사 여부 자체를 둘러싸서도 한반도 안팎의 정세를 뜨겁게 달구었던 두 개의 ‘6자 회담’이 5월 들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북핵 위기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이 그 첫째이고, 비정규직 문제와 소위 노동운동의 위기 해결을 위한 ‘노사정대표자 6자회담’이 그 두 번째다.
북핵 위기를 둘러 싼‘6자회담’은 지난 2월 북한의‘핵 보유 선언’과‘6자회담 불참 선언’이후, 최근 미국의 부시정권이 북핵 문제의 UN안보리 회부와 대북 군사행동의 가능성까지 내비침으로써‘심각한 위기 상황’,‘6월 위기설’로 치닫고 있다.‘노사정대표자 6자회담’은 5월 초 임시국회에서 비정규법안 협상 합의에 실패함으로써 일단 6월 임시국회에서의 처리를 위한 재협상 여부로 넘겨지게 됐고, 다시 한번 ‘사회적 합의주의’를 둘러 싼 논란과 투쟁이 예상되고 있다.
두 개의 ‘6자회담’은 물론 다루는 의제와 성격이 다르고, 그 논의의 주체도 다르다. 따라서 단지 ‘6자’ 회담만이라는 이유는 두 개의 회담을 동일선상에서 논의할 수는 없다. 그러나 두 개의 회담 이면에 놓여있는 본질적인 측면에 접근해 보면 두 개의 ‘6자회담’이 별개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북핵 ‘6자회담’은 지금은 마치 북한이 ‘6자 회담’의 틀 안으로 들어올지 여부가 쟁점으로 되고 있고, ‘6자 회담’이 개최되기만 하면 현재 한반도를 둘러 싼 외교 군사적 긴장이 해결될 듯이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현재의 미국의 동북아 재편전략으로 볼 때, 현재의 ‘북핵 위기’는 그것이 군사적인 수단을 통한 외부로부터의 체제 붕괴든, 아니면 경제적 봉쇄와 인권 문제 압박을 통한 내부로부터의 체제 붕괴든, 최종적으로는 현 북한 체제와 정권을 무너뜨리고 친미 자본주의국가로 전환시킬 것을 목표로 하고 있고, 북한의 김정일 정권 역시 ‘핵 보유’를 통한 체제와 정권 수호 외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점에서, ‘6자 회담’의 틀은 이러한 대립을 일시적으로 지연시킬 수는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을 만들어내지는 못할 것이다.

‘노사정 6자회담’의 경우는 노무현 정권이 경제회생이라는 명분으로 신자유주의적 개방화와 구조조정, 그리고 노동유연화를 전면화하는데서, 조직노동자를 하위파트너로 삼아 신자유주의적 자본축적 논리에 이데올로기적 제도적으로 포섭해 나가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와 구조조정, 노동유연화’를 전면화하는 과정은 자본의 위기를 일시적으로 지연시키거나 전가시킬 뿐, 그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은 아니다. 또한 이 과정은 자본주의가 갖는 일반적인 모순인 경제적 양극화와 빈곤의 심화, 그리고 고용불안을 더욱 필연화시킬 수밖에 없다. ‘노사정 6자회담’이 이러한 모순의 해결을 위한 대안이 될 수는 없고, 단지 그 해결을 일시적으로 지연시킬 수 있을 뿐이다.
전혀 별개인 것 같은 두 개의 ‘6자회담’에 동일하게 가로놓여 있는 것은 ‘자본의 위기’이며, 그 위기 극복을 위한 ‘자본주의적 시장질서의 전면화’이고, 이러한 현실을 ‘회담’이라는 형식으로 포장하고 위기를 일시적으로 지연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북핵 위기와 관련하여‘민족주의적 관점’이 아닌 ‘계급적 관점과 실천’이, 경제 위기와 관련하여 ‘분배주의적 관점’이 아닌 ‘반 자본의 관점과 실천’이, 그리고 이를 위한 ‘새로운 계급적 변혁적 주체 형성’이 그 어느 때보다 절박한 시점이다. 이는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가 자신의 기치인‘계급성, 현장성, 전문성’을 변화된 정세 속에서 구체화시켜 나가야 할 지점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