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의 월간지 현장에서 미래를

[107호] 노동자, 인터넷으로 소통하기

노동자,
인터넷으로 소통하기

김형균 / 편집위원. 현대중공업 노동자

세상만사
노동자, 인터넷으로 소통하기


석용이 형님이 인터넷을 배운다!!

현중에 입사한지 20여 년 동안 오로지 도장부에서 페인트칠로 잔뼈가 굳어온 석용이 형님이 컴퓨터를 배운다.
어떻게 켜고 끄는지조차 모르고 컴퓨터 모니터가 본체라며 고쳐달라고 들고 온 석용이 형님이 아들 나이쯤 되는 이에게 개인교습을 받고 있는 모습을 보며 노동자가 인터넷으로 소통하기가 이렇게 어려운 것인지 새삼 느낀다.

2004년 말 대의원 선거 참패! 5명의 서명 대의원도 당선시키지 못해 조합원과 소통할 수 있는 현장 조직 선전물 배포망이 2년째 막히는 순간이다.
이제 현장에는 어용노조와 사측이 발행하는 비슷한 방향의 4종류의 선전물에, 매일 점심시간 식당과 탈의장에 비쳐지는 사내유선방송, 일반직 사원과 현장 반장에게 지급된 컴퓨터를 통해 자본 중심의 논리가 일방적으로 전달된다.
임․단협 잠정합의 내용은 노동조합이 발표하기도 전에 회사 전산망을 통해 삽시간에 전 사업장에 전달되어 관리자들의 설명(받아들이라는 쪽으로 하는)을 들어야 한다.
연초 회사 사장이 진행하는 시무식에서
어용노조 위원장도 나란히 참석하여 ‘
회사의 어려운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자’는 사장의
연설과 ‘이에 적극
협력한다’는 어용노조
위원장의 연설을 사내유선
방송을 통해 보고 들어야 한다.

그런데 생산 부서 구조조정으로 노동강도와 스트레스가 증가하는 노동자들의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다.
근골격계질환으로 고통을 받으면서도 산재보상 신청을 하지 못하는 노동자들의 신음 소리와 관리자와 인간적인 관계를 등져가며 겨우 보상 서류를 올려봤지만 번번이 불승인 처리하는 근로복지공단의 횡포에 신음하는 노동자들의 한숨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손가락이 골절되고 절단되어 봉합 수술까지 했는데도 산재를 은폐하는 도덕 불감증의 사측을 질타하는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최근 어용노조는 현대그룹 정주영 명예회장이 사망한지 4주기를 맞아 동상 건립을 추진하는데 적극 나서기로 했다고 한다.
또한 일본의 소위 ‘선진노조를 배우겠다’는 구실로 대의원 1인당 조합비 2백8십여 만원씩을 들여 일본연수를 진행하겠다고 한다. 민주파 대의원들이 문제를 제기해도 막무가내로 다수결의 횡포로 밀어 붙인다.
이런 내용을 조합원들은 전혀 알지 못한다.
창사 이래 1만 7천여 명이 다치고 3백 4십여 명의 노동자가 죽어나갔는데 산재 사망자에 대한 위령탑을 세우자고 요구하지 않고, 상급단체 맹비 6억 5천만 원 가량을 안내는 대신 노조간부들 해외연수비로 활용하려는 ‘진짜 노동귀족’의 실상을 조합원들은 알지 못한다.

매년 600명-700백여 명씩 정년퇴직하는 정규직 노동자 자리를 비정규직이 차지하고 울산 외곽, 포항 곳곳에 만들어지는 하청 공장들도 대부분 비정규직으로 채워진다.
앞으로 5-6년 후 현장에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같은 숫자가 될 것이며 과거 2만 조합원을 자랑하던 노동조합은 정년퇴직과 진급 등의 이유로 1만4천명으로 급격하게 줄어들 것이다.
이제 정규직만 조직되어있는 노동조합의 위상은 점점 줄어들 것이며 그 대표성 또한 매우 약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경계를 뛰어 넘는 운동의 틀을 다시 짜 나가야 할 상황에 놓여있다.
그렇지만 현장 안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은 보이지 않는 커다란 벽이 가로막혀 있고 그 투명한 벽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모습은 확인 할 수 있어도 서로의 생각을 나눌 수 없게 되어있다.
직영 노동자들 또한 엄혹한 현장에서 함부로 말하지 못하고 비정규직은 유리벽에 가로막혀 더더욱 소통하기 어려운 상황을 소통시켜내야 한다.

석용이 형님의 굵은 손마디에 뻣뻣하게 굳은 손가락으로 마우스를 어눌하게 누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노동자들끼리 인터넷으로 소통하기 위해서다.
나이 50이 넘어 무슨 컴퓨터냐고 하시면서도 2시간동안 끈질기게 배운다.
아마 험하디 험한 도장일을 하라고 하면 눈감고도 하실 분이다.
아마 조만간 석용이 형님이 인터넷을 자유롭게 사용하실 때쯤이면 최소한 활동가들끼리의 소통은 원활해 질 것이다.
그리고 노동자들끼리 조직적인 소통의 체계가 점점 커져 나갈 것이다.
그래서 늙은 노동자 ‘석용이 형님이 컴퓨터를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