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의 월간지 현장에서 미래를

[107호] <특집 노동운동 출구를 찾자>- 사회적 교섭 '전략': 전략과 전술, 통제정책과 투쟁산물의 혼동

사회적 교섭‘전략’:
전략과 전술, 통제정책과 투쟁산물의 혼동

정병기 /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부소장

특집: 노동운동 출구를 찾자(1)
사회적 교섭 전략: 전략과 전술, 통제정책과 투쟁산물의 혼동


1. 들어가며

‘삼자협의체제’,‘노사정위원회’, ‘사회적 합의’, ‘조합주의’. 상황과 장소에 따라 참으로 많은 말들이 명멸해갔다. 그러나 이들이 실제 의미하는 바는 ‘조합주의’라는 용어로 1980년대 초에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된 코포라티즘이다.
그 후 1998년 2월 외환위기와 IMF관리체제를 배경으로 이른바 ‘노사정대타협’이 성립되었고, 이를 기반으로 ‘노사정협의체제’가 출범했다. 삼자협의체제를 시장에 대한 부당한 간섭으로 보는 신자유주의적 견해를 차치하더라도, 그에 대한 국내 학계 및 노동계의 반응은 매우 다양하였다.
우선, 민주화를 이끌 수 있다는 점에서 노사정협의체제를 매우 바람직한 조치로 평가하거나, 최장집,1998, “한국 정치경제의 위기와 대안 모색: 민주적 시장경제를 중심으로,” ꡔ계간 사상ꡕ제10권 2호(사회과학원), pp.33-64; 임혁백, 1998, “시장경제와 민주주의: 긴장에서 공존으로.” ꡔ계간사상ꡕ제10권 2호(사회과학원), pp.7-32.
투쟁전략과 함께 병행될 수 있는 중요한 전략으로 세워야 한다는 입장 이병훈,2004, “한국 노사관계 지형과 노동조합의 사회적 대화 전략,” 민주노총 정책토론회(2004.5.7) 발표문.
이 생겨났다. 그에 반해 계급론에 기반한 급진적 입장 김세균, 1998, “노동운동의 탈계급화·탈정치화를 위한 최근의 시도들에 대한 비판,” ꡔ현장에서 미래를ꡕ제37호(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pp.32-55; 노중기, 2002, “코포라티즘과 한국의 사회적 합의,” ꡔ진보평론ꡕ제13호, pp.84-105; 박성인. 2004. “한국사회 ‘사회적 합의’의 역사와 교훈.” ꡔ진보평론ꡕ제20호(여름), pp.92-107.
은 삼자협의체제를 자본주의 질서의 재생산을 위해 국가와 자본이 노동계급을 회유·통제하기 위한 관리메커니즘으로 규정한다. 즉 한국의 삼자협의체제는 위기에 직면한 국가와 자본이 노동의 일시적 순종을 유도하기 위해 채택한 것으로서 본질적으로는 포섭을 가장한 노동배제전략이라는 것이다. 김용철, 2000, “신자유주의와 코포라티즘의 관리기제: 네덜란드의 경험과 한국의 노사정협의체제,” 2000년도 한국정치학회 연례학술회의 발표논문, p.1.

이와 같이 다양한 견해들은 최근 노무현 정부의 노사정위원회 재시도에 즈음하여 민주노총 지도부가 ‘사회적 교섭’이라는 ‘전술’을 내놓으면서 또다시 충돌하고 있다. 게다가 이러한 충돌은 민주노총 대의원 대회가 사회적 교섭 승인문제를 둘러싸고 두 차례나 무산됨으로써 노동계 전체가 몸살을 앓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그 동안 몇 차례에 걸쳐 노동계 내의 토론이 개최되기도 했지만, 기존의 논의를 벗어나 더 발전된 논의가 생겨나지는 못했다. 기존 입장의 재확인과 차이를 굳히는 것으로 결말이 났을 뿐 아니라, 어떤 면에서는 오히려 기존의 논의를 더욱 혼탁하게 함으로써 전략과 전술, 정부의 통제정책적 성격과 노동자투쟁의 산물로서의 성격을 구분하지 못하는 결과를 불러왔다.
이 글의 목적도 새로운 논의나 입장을 개진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현재 시도되는 ‘사회적 교섭’ 방침의 오류와 혼동을 지적하는 데 충실하고자 한다. 그 오류와 혼동은 코포라티즘에 대한 잘못된 이해뿐 아니라 노무현 정부와 그 정책에 대한 잘못된 파악과 민주노동당의 역할에 대한 지나친 기대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글은 이와 같은 오해와 잘못된 기대를 지적함으로써 민주노총 지도부의 ‘사회적 교섭’ 전략을 비판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2. 코포라티즘의 성격과 주요 조건

1) 코포라티즘의 개념과 성격
코포라티즘의 개념과 성격에 관한 논의는 등장 초기부터 대단히 분분하였다. 그 논의는 특히 코포라티즘의 본질과 밀접히 관련되므로 우리나라에서와 마찬가지로 매우 복잡하게 전개되었다. 경제체제나 구조로 보는 입장, 이해관계 조정 체계로 보는 입장, 사회ㆍ정치적 과정으로 보는 관점, 그리고 구조주의적으로 본다는 점에서는 첫 번째와 동일하나 구체적으로 다소 차이를 보이는 기타 구조주의적 관점으로 나눌 수 있다. 이 장은 주로 정병기, 2004, “서유럽 코포라티즘의 성격과 전환: 통치전략성과 정치체제성,” ꡔ한국정치학회보ꡕ제38집 5호(한국정치학회), pp.323-343의 이론 부분을 참조. 그 외 유럽의 사례에 대해서는 정병기, 2004, “세계화 시기 코포라티즘의 신자유주의적 변형: 독일과 네덜란드의 예,” ꡔ국제정치논총ꡕ제44집 3호(한국국제정치학회), pp.197-215과 정병기, 2004, “세계화 시기 코포라티즘 정치의 전환: 스웨덴과 네덜란드의 예를 통해 본 통치전략적 성격과 정치체제적 성격,” ꡔ한국정치연구ꡕ제13집 1호(서울대학교 한국정치연구소), pp.203-229도 참조.

이와 같이 다양한 여러 입장들 중에서도 코포라티즘 정의에 대한 공통의 이론적 핵심은 비구조주의의 경우 ‘국가기구의 적극적 중재가 이루어지는 가운데, 사회집단들의 독점적ㆍ기능적 이해관계 대변조직들이 이해관계대변과 국가 정책집행을 연결하는 고리로서 노ㆍ사ㆍ정 3자의 정치적 교환에 참여하는 사회ㆍ정치적 과정’이며, 구조주의의 경우는 새로운 정치사회체제에 적합한 새로운 사회운영원리라는 것이다. 이 때 사회집단은 물론 사안에 따라 의약 집단이나 종교집단 등 다양한 사회집단들을 포괄하는 의미이다. 그러나 산업자본주의 국가에서 노사의 대표조직은 다원주의자들이 비차별적으로 등치시키는 사회 내의 무수한 다른 조직들과는 상이한 핵심적 이해관계대변조직이라고 보아야 한다. 노사 대표조직은 자본주의 국가에서 가장 중요한 경제적 요소인 자본과 노동을 대표하는데, 특히 코포라티즘적 체제에서는 독점적으로 대표하고 통제할 뿐만 아니라 국가와 정부정책의 정치적 정당성의 확보에도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조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사회ㆍ정치적 과정’은 코포라티즘이 집권당의 통치전략이나 사회집단들 간의 교환 과정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때에 따라 구조화된 정치체제로도 기능한다고 보아야 한다. 그렇지만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라는 생산양식(Produktionsweise)의 수준까지 체제적 성격을 확대하는 것도 집권당의 통치전략적 성격이라는 측면을 간과하는 다른 극단의 오류를 범하는 것이 된다. 따라서 코포라티즘은 사회정치적 과정으로서의 통치전략적 성격과 사회운영원리로서의 체제적 성격을 동시에 갖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러한 논의에 따라 코포라티즘의 개념을 더 포괄적으로 규정하면, ‘노사간 힘의 일정한 균형상태에서 국가기구의 적극적 중재가 이루어지는 가운데, 노ㆍ사ㆍ정 3자간 정치적 협상과 교환이 사회갈등 해결의 핵심수단으로 제도화되거나 적어도 장기적으로 기능하는 사회ㆍ정치적 운영 원리와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때 사용자단체와 정부뿐만 아니라 노동계 대표단체도 대부분 자본주의 질서의 유지에 합의하고 이해관계 대표(정책 형성)와 공공정책 집행에 독점적이고 기능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조건으로 한다.
특히 노자간 역관계라는 측면에서 볼 때 더욱 중요한 것은 코포라티즘이 전략이든 체제이든 노동자들의 투쟁의 산물이기도 하지만 국가와 자본의 사회통합 전략의 일환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나라와 시기에 따라 노동자들의 요구라는 측면이 강하기도 하고, 국가의 전략적 도구라는 점이나 사용자들의 요구라는 측면이 강하기도 하다. 이러한 성격은 또한 노자간 역관계에 따라 코포라티즘 자체가 변화해가는 모습에서도 나타난다. 그러나 코포라티즘은 대부분 자본주의 질서의 유지에 합의하는 단체들의 참여기제이므로, 사회주의적 노동조합들이 이용하려면 특정한 조건에서만 가능한 대단히 제한적인 전술로 배치해야 하는 것이다.

2) 코포라티즘의 변화와 성격
전간기의 나치즘과 파시즘 등 독재정치의 사회통제 메커니즘을 의미하는 국가 코포라티즘은 의회민주주의 체계에서 더 이상 기능할 수 없게 되었다. 국가 코포라티즘은 부르주아가 약해지거나 분열되어 자유민주주의 지배질서에서는 비특권계층의 합법적 요구에 대응할 수 없기 때문에 국가가 억압적 방식으로 지배계급을 대신해온 것이었다.
반면 제2차대전 이후 유럽의 자본은 파시즘 경험의 실패와 새로운 노동투쟁의 압력 속에서 노동과 화해를 모색하였다. 즉, “투쟁을 겪고서 개혁을 하기보다는 우월한 입장에 있으면서 양보를 통해 개혁을 추구하는 것이 항상 더 안전하며”, “협력이 전체적으로 볼 때 강력한 상대와의 장기적인 투쟁보다 더 낫다”는 입장으로 선회한 것이다. Wells, David, 1991, ꡔ마르크스주의와 현대국가ꡕ, 정병찬 역 (서울: 문우사), p.181.
그에 따라 안정된 의회민주주의적 부르주아 지배체제에서 피억압 계급을 체제에 통합시키는 방식으로서, 사회 갈등을 평화적 방법으로 해소하려는 사회 코포라티즘이 등장하게 되었다.
따라서 사회 코포라티즘은 강력하나 전체주의적이지 않은 국가 그리고 대개 수와 기능이 한정되고 구조화된(총체적으로 통제되지도 완전히 자유롭지도 않은) 이해관계집단(사회단체)이 존재하고, 이 이해관계집단이 국가의 일부로 기능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Wiarda, Howard J., 1997, Corporatism and Comparative Politics: The Other Great “Ism” (Armonk: M. E. Sharpe), p.7.
이를 좀더 구체적으로 보면, 사회 코포라티즘의 주요 당사자인 노동과 자본 간에 타협을 통해 장기적 이익을 고려하는 정치적 교환 Pizzorno, Allessandro, 1978, “Political Exchange and Collective Identity in Industrial Conflict,” Colin Crouch & Allessandro Pizzorno (eds.), The Resurgence of Class Conflict in Western Europe since 1968, Vol. 2, London & Delhi etc: Macmillan, pp.277-298.
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조건들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김인춘, 2002, “세계화 시대 북유럽 조합주의의 변화와 혁신: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 비교분석,” ꡔ경제와 사회ꡕ제53권(한국산업사회학회), pp.175-6 참조.
첫째, 단위노조와 기업 및 노동과 자본을 통제할 수 있을 만큼 노사 양측에 권위 있고 중앙집권화된 포괄적 정상조직이 존재해야 한다. 둘째, 협상이 가능할 수 있을 만큼 노동의 정상조직과 자본의 정상조직간 일정한 힘의 균형이 이루어져야 한다. 셋째, 양자의 협약을 중립적인 입장에서 중재하고 협약 준수를 보장하며 협약에 따르는 단기적 희생을 복지 및 사회안전망 등 사회정책을 통해 보상해줄 수 있는 국가의 상대적 자율성이 보장되어야 한다. 넷째, 그러한 구체적 국가 행위가 이루어지기 위한 조건으로 친근로자적 국민정당이 집권해야 한다. 노동자 계급정당(classparty)은 자본주의를 극복하고자 하므로 대개 코포라티즘적 합의체계를 거부한다. 반면 국민정당(Volkspartei)은 ① 당원과 지지자의 사회구조적 성격이 사회 전체의 계층구조와 상당할 정도로 일치하고, ② 수평적ㆍ수직적 당조직구조에서 사회의 이해관계 다원성이 실질적으로 보장되고 이해관계의 균형과 갈등의 해소가 민주적으로 규정되고 운영되며, ③ 당의 정책은 국민 일반의 공동선을 실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표방하는 정당이다[Mintzel, Alf, 1984, Die Volkspartei: Typus und Wirklichkeit. Ein Lehrbuch (Opladen: Westdeutscher Verlag), p.24 참조]. 다시 말해 국민정당은 계급 화해와 국민 통합에 기여하는 정당으로서 자본주의 질서를 부정하지 않는다. 따라서 국민정당화된 사민주의 정당은 친근로자적이라고 하더라도 이미 계급정당성을 탈각했으므로, 자본측도 이 정당의 중재적 역할을 수용한다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양보와 타협의 문화가 정착한 합의 민주주의의가 발전해 있어야 한다.
한편, 1970년대 중후반에 시작되어 1980년대부터 본격화된 자본시장의 자유화와 자본이동의 증대, 생산방식의 변화와 산업구조의 변화 및 이에 따른 계급구조의 변화 등은 코포라티즘의 또다른 전환을 가져왔는데, 그 결과가 공급조절 코포라티즘(supply-side corporatism)이다. 공급측면에서의 정부개입을 강조하면서 코포라티즘 모델을 언급한 예는 이미 1985년 카첸슈타인(Katzenstein)의 연구에서 볼 수 있다. 이후 1990년대 중반에 트렉슬러(Traxler) 등의 오스트리아 연구에서 공급조절 코포라티즘 논의가 본격화되었다. 그러나 코포라티즘의 종언을 주장하는 입장의 대부분은 공급조절 코포라티즘을 인정하지 않는다. Katzenstein, Peter J., 1985, Small States in World Markets (Ithaca: Cornell University Press); Traxler, Franz, 1995, “From Demand-side to Supply-side Corporatism? Austria’s Labor Relations and Public Policy,” Colin Crouch and Franz Traxler (eds.), Organized Industrial Relations in Europe: What Future (Aldershot etc.: Avebury), pp.3-20.
그에 따라 기존의 사회 코포라티즘은 완전고용, 노사관계 안정, 사회복지의 확대를 주요의제로 삼았다는 점에서 ‘수요조절 코포라티즘(demand-side corporatism)’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물론 이 전환은 국가 코포라티즘에 대한 사회 코포라티즘의 핵심적 전제를 유지하고 있으므로 두 유형 모두 사회 코포라티즘 형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에 대한 조응이라는 점에서 공급조절 코포라티즘은 그 구체적 성격을 달리한다.
수요조절 코포라티즘의 성공은 경제성장과 물가안정, 고용과 인금인상자제가 제도적 보장과 사회적 힘의 균형을 통해 합의되고 달성될 수 있어야 가능하다. 그런데 1980년대 이후 세계화와 그에 따른 사회경제구조 변화(제조업 약화와 서비스업 증대, 기업별 단협 증가, 노동자계급의 분화, 특히 사무직 노동자층의 증가로 사무직노조와 각종 자율노조 분리, 린생산방식과 외주 등의 생산합리화, 국제적 상호의존 증대)에 의해 수요조절 코포라티즘의 성공조건들이 와해되기 시작했다.
반면, 공급조절 코포라티즘은 노동시장의 유연성 확보, 생산성 증대 그리고 사회복지지출 통제를 통해 국제경쟁력을 강조하는 한편, 노동시장의 열패자에 대한 보호 및 재취업 기회의 제공, 불공정해고의 제한 그리고 경제성장 과실에 대한 공정한 분배 등의 이슈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것으로서, 김용철(2000), p.5.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과 양립 가능한 것으로 이야기되고 있다.
수요조절 코포라티즘이 케인즈주의 경제정책에 입각한 친근로자적 국민정당인 케인즈주의적 사민주의 정당의 선택이라면, 공급조절 코포라티즘은 이 사민주의 정당이 ‘제3의 길’로 포장한 현대적 경제정당, 즉 슘페터주의적 사민주의 국민정당으로 변화한 이후의 선택이다. 따라서 수요조절 코포라티즘은 노동과 자본이 모두 중앙집중화된 조직을 통해 재정팽창, 공공고용확대, 국유화, 사회보장망 확대를 두고 전국 차원의 거시적 협의를 하며 이해관계를 상호 교환해 가는 형태라면, 공급조절 코포라티즘은 노동과 자본의 조직이 소산별이나 기업 수준으로까지 분산화된 조직을 통해 직업교육, 재교육, 고용증대, 소득보전 및 노동시장 유연화를 두고 산별 혹은 부문별로 중위적 협의를 하며 이해관계를 상호 교환해가는 형태이다. 이 때 제3의 행위자인 국가의 역할은 수요조절 코포라티즘에서 개입의 범위가 넓고 집행 면에서 강력한 효과성을 갖춘 반면, 공급조절 코포라티즘에서는 개입의 범위가 축소되지만 집행 면에서는 여전히 강력한 효과성을 갖추고 있다.
사회 코포라티즘은 노자간 힘의 일정한 균형 상태에서 자본의 양보를 강제한 결과라는 성격과 노동자들에 대한 순치와 통제의 성격을 동시에 갖는다. 공급조절 코포라티즘도 사회 코포라티즘의 하나라는 점에서 그러한 양면성을 갖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공급조절 코포라티즘은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의 수단이 된다는 점에서 그 통제적 성격을 더욱 강하게 띤다고 할 수 있다. 곧, 공급조절 코포라티즘은 노자간 힘의 균형상태를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지만 자본측의 이익을 더욱 강하게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장차 이 힘의 균형추가 자본측에게 더욱 기울어진다면 코포라티즘 자체가 폐기되는 전단계로 위치지워질 가능성이 크다.


3. 열린우리당과 노무현 정부의 정책과 성격

1) 열린우리당의 정강정책
이념적 성격이라는 의미에서 정당색을 이해하기 위해 먼저 정당정치가 오랫동안 정착해온 유럽의 정당 스펙트럼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제도권 정당들만 놓고 볼 때, 좌익에는 의회주의 좌파인 사민당, 사회당, 노동당들이 위치해 있다면, 우익에는 시장자유주의를 이념으로 하는 자유당, 자민당 등이 위치해 있다(이러한 의미에서 한국의 자민련은 명칭과 내용의 불일치를 보인다). 그 가운데 중도에 해당하는 정당들이 보수주의 정당들인 국민당, 기민당, 기사당들이라는 당명들을 사용한다. 보수주의 정당들은 시대에 따라 경제정책적 이념을 달리해 와서 정형화된 이념을 갖지 않는다. 절대왕정시대에는 지주ㆍ귀족으로서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왕정을 옹호한다. 그리고 자본주의 시대에 와서는 부르주아로서 자본주의 질서를 유지하고자 한다. 그러나 이들의 구체적인 이해관계는 변화하는 정세에서도 기득권을 유지하는 데 있기 때문에 다른 정파들과 쉽게 타협하는 유연성을 보이기도 한다. 이들의 이념적 근거는 특정 사회의 전통적 가치에 기반한다. 곧, 부르주아적 보수주의자들은 전통적 가치와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케인즈주의 시대에 노동당, 사민당, 사회당과 연정을 구성하여 복지국가를 구축했고, 현재 신자유주의 시대에는 자유당, 자민당과 연정을 구상하여 탈규제정책을 펴고 있다.
반면 자유주의는 개개인의 신체와 재산의 자유를 근본이념으로 하여 자유계약과 시장경제의 확립을 구체적 목표로 한다. 따라서 자유주의자들은 노동조합이든 국가든 시장에 대한 어떠한 개입도 허용하려 하지 않는다. 그들이 봉건 시대의 종교와 신분적 제약과 절대 왕정의 국가 개입에 대항해 싸운 것도 그 때문이다. 가족과 같은 전통적 가치와 부정부패 등 불합리한 논리가 자유경쟁을 저해하는 것을 이들은 참지 않는다. 보수주의자들이 세습과 지위를 유지하는 데 급급하다면, 자유주의자들은 자유경쟁에서 능력 있는 자는 대우받고 능력 없는 자는 도태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유주의자들이 절대권력 앞에서 진보적으로 보이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다. 이들의 정부론은 ‘작은 것이 아름답다’라는 말로 대표되는 것처럼 과거 자유주의 시대에는 ‘작은 정부’를 주장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시대에는 정부가 오히려 시장에 개입하는 다른 요인들을 제거하는 데에는 강력하고도 효율적이어야 한다. 곧 ‘작고 강한(효율적인) 정부’를 주장한다.
열린우리당의 강령을 이러한 정당 스펙트럼에 비추어 보면 코포라티즘 체제의 주요 조정자가 될 수 있는 개혁적 민중정당이나 사민주의 정당이 아님이 확연히 드러난다. 열린우리당의 강령 전문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근간으로 안정과 발전, 번영의 21세기 대한민국을 건설”하는 것을 목표로 명시하였다. 이하 열린우리당 정강정책(http://www.eparty.or.kr/info/info_07_01.asp)참조.
그리고 기본정책을 보면, “정부조직의 효율화, 지방화, 분권화, 전문화, 경쟁력 강화 등 지속적인 정부개혁을 통해 행정의 민주성·투명성ㆍ책임성을 강화하며 21세기에 적합한 능동적이고 효율적인 고품질 정부를 구현한다”(7조)라고 하여 작고 효율적인 정부를 구상하고 있다. 더 구체적으로 열린우리당은 “세입기반을 확충하는 한편, 재정지출의 우선순위 조정 및 효율적인 관리를 통한 예산 낭비 요인을 제거함으로써 재정의 건전성을 실현”(27조)하는 재정 효율성과 재정절약을 이야기하고 있다. 물론 2조에서는 “성장과 분배가 조화를 이루”고 “저소득층에 대한 완전한 기초생활보장, 사회보험의 내실화, 근로자에 대한 일자리 제공 및 공정한 대우”를 약속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양보도 “시장경제질서”와 “기업하기 좋은 나라”(2조)의 목표 앞에서는 멈추어야 한다. 열린우리당은 곧 전형적인 자유주의 정당으로서 현재 우리나라에서 신자유주의 정책 집행에 가장 적합한 정당이라고 할 수 있다.

2) 노무현 정부의 정책과 성격
16대 대선으로 등장한 노무현 정권은 당내 인물 부족과 여소야대의 정국에서 국회에 크게 의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따라서 그의 정치 스타일은 개인의 국민적 인기를 더욱 키워 가는 포퓰리즘의 형태를 띨 공산이 클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 포퓰리즘은 또한 조합주의를 강화시켜 각종 사회단체들과 타협하면서 그들의 지지를 얻어내려는 것이며, 시민운동뿐만 아니라 노동운동 진영의 일부도 그 동맹군으로 편입될 것을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다.
그러나 탄행정국을 거치면서 총선에서 승리한 노무현 정권은 집권 초기와 같은 소수정권이 더 이상 아니게 되었다. 따라서 포퓰리즘적 성격을 버리지 못하고 노사정협의체제를 유지하더라도, 그 성격은 판이하게 달라질 것이 자명하다. 의회를 견제할 시민사회의 동맹군이 과거와 같이 크게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 노무현 정권은 보다 노골적으로 노동계의 제도화와 통제정책을 통해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강행할 가능성이 커졌다는 것이다.
실제 노무현 정부의 삼자협의 시도는 신자유주의 개혁 세력이 경제특구와 자유무역협정(FTA)과 동북아 경제공동체 추진 등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와 구조조정 및 그를 위한 노동유연화의 제도적 정착을 위해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박성인(2004), p.93.
따라서 노무현 정권이 코포라티즘 기제를 재도입하더라도 그것은 신자유주의 정책을 강행하려는 ‘공급조절 코포라티즘’의 양상을 띨 것이 분명하다.
2003년 9월에 발표된 노무현 정부의 ‘노사관계 개혁방향’을 보면 이러한 재단이 과장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이 ‘개혁방향’은 외형상으로 자본과 노동의 이해관계를 일정하게 수용하는 사회통합적 노사관계 수립을 의도하고 있다. 그러나 실질적인 내용은 대기업 노조를 규제하기 위해 노조운영의 민주화, 노조재정 운영의 투명화를 시도하고, 파업에 대한 우편투표제, 파업 시 대체근로 허용, 불법행위에 대한 책임 추궁, 유니온 숍 금지를 통한 단결권 약화와 노동운동 규제 등 대처 수상 시절의 영국의 노사관계 개악 모델을 떠올리게 한다.
현재 노동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비정규직 양산이다. 현재 OECD국가들 중 비정규직이 비율이 가장 높은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정부가 차별금지를 위해 비정규직 문제를 명시적인 법안으로 제시하려는 점은 일부 진전된 모습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사용자 입증책임을 분명히 하지 않은 채, 절대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스스로 차별시정을 제기해야 한다는 점은 차별금지를 해소한다는 취지에 역행하고 있다. 이상학, 2004, “갈지자걸음 하다가 갈등의 수렁으로 간 노동정책 - 노무현 정권 2년 노동정책 평가,” ꡔ노동사회ꡕ제94호(한국노동사회연구소), p.29.

경제정책에서도 노무현 정부는 기업과 금융제도의 구조개혁, 세계시장에 전면 개방된 영미식 시장경제, 주주가치 중심의 자본주의를 지향하는 김대중 정부의 정책기조를 계승하였다. 특히 성장정책은 ‘기업하기 좋은 나라’라는 기치 아래 규제완화를 통해 자본의 자유로운 활동을 위한 조건을 제공하며 만국 자본의 유치를 위해 산업입지 경쟁에 나서는 ‘시장경쟁국가’라는 노선을 견지하고 있다. 이병천, 2004, “지금 좌표는 있는가: 경제정책의 선회, 표류 그리고 함정 - 노무현 정권 2년 경제부문 평가,” ꡔ노동사회ꡕ제94호(한국노동사회연구소), pp.21-2.
이와 같이 노무현 정부의 정책은 열린우리당의 자유주의적 색깔을 여지없이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4. 민주노총의 사회적 교섭 전략과 민주노동당 역할 기대

1) 민주노총의 사회적 교섭전략
현재 민주노총 지도부는 이수호 위원장과 강승규 수석부위원장을 중심으로 사회적 교섭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그 주요한 장이었던 지난 3월11일 민주노총 정책토론회에서 강승규 수석부위원장은 사회적 교섭을 “강력한 대중투쟁을 위한 교섭전술”로 규정하고, 사회적 교섭 참가를 “사안에 따른 참여, 불참, 합의 거부 등을 포함하는 다양한 전술적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으로 정의했다. 이하 강승규 부위원장의 주장은 강승규, 2005, “민주노총의 사회적 교섭에 대한 이해,” 민주노총 정책토론회(2005.03.11) 발표문에서 인용.

이 주장은 대중투쟁을 전략으로 보고 사회적 교섭을 전술로 본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곧, “투쟁은 본질적이고 지속적이지만, 교섭은 일시적이고 조건적”이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 명제를 설명하기 위해 덧붙인 말은 “투쟁과 교섭은 병행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여기에서 투쟁과 교섭은 전략과 전술의 관계가 아니라 대등한 전략으로 규정된다. 그는 또 작년 5월 민주노총 정책토론회에서 발표된 이병훈의 “투쟁 없는 교섭이 허구적인 실리주의라면, 교섭 없는 투쟁은 공허한 전투주의”라는 논의들을 인용함으로써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그러나 이병훈의 입장은 오히려 “투쟁은 교섭력의 강화, 즉 교섭의 성과를 증진하기 위한 노조의 전략적 행위이고, 교섭은 투쟁의 명분과 그 성과를 얻어내는 노조의 또 다른 전략 행위” 이병훈(2004), p.11.
라고 규정하며 두 가지가 모두 전략의 차원에서 사고되고 있음을 분명히 한 것이었다. 강 부위원장의 발표도 “노동계급의 투쟁은 대중적 직접행동을 과시하는 정치경제적 투쟁과 교섭투쟁이라는 형태로 표현”되므로 “교섭은 또 하나의 계급투쟁 형태”라고 주장한다. 그의 사고도 이병훈의 생각처럼 투쟁과 교섭을 전략의 차원에서 보고 있는 것이다.
또한 교섭참가에 대한 정의도 이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사회적 교섭이라는 전략 아래에 참여, 불참, 합의 거부 등이 전술로 배치된 것이다. 결국 사회적 교섭이라는 전략을 선택해서 사안에 따라 참여, 불참, 합의 거부라는 수세적 전술의 가능성만 남을 뿐이다. 여기에서 강력한 대중투쟁은 자연스럽게 배제되는 결과가 생겨난다.
물론 사회적 교섭뿐만 아니라 사회적 합의도 그 자체로 부정할 수만은 없다. 한번 시위에 2, 3백만이 집결하는 이탈리아의 경우도 1990년대 후반에는 사회적 교섭이 이루어진 바 있다. 1970년대 초반 독일에서도 그러했으며, 오스트리아와 스칸디나비아 반도 국가들 및 네덜란드 등에서도 사회적 교섭이 진행되었다.
그러나 이른바 코포라티즘이라 불리는 이러한 사회적 교섭과 합의는 특별한 조건에서 가능한 것이었다. 과거 계급정당의 색깔을 분명히 했던 정당이 비록 수정주의로 흘러갔다 하더라도 여전히 친근로자적 입장과 정책을 분명히 하며 집권한 상태였다는 것이다. 적어도 사회적 교섭이 생성되는 시기에는 언제나 그러했다. 자본주의 질서에서는 본질적으로 자본의 세력이 강하기 때문에 노동자의 편에 무게를 실어주는 정부가 존재해야만 일정한 힘의 균형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이러한 힘의 균형이 있어야만 진정한 교섭도 가능하다.

2) 민주노동당 역할의 기대와 한계
사회 코포라티즘의 성공은 친근로자적 정당의 집권을 주요 요건으로 한다. 따라서 민주노총이 코포라티즘적인 사회적 교섭을 전략으로 선택한다는 것은 열린우리당에 대한 잘못된 기대에서 비롯되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동안 열린우리당의 정책에 대한 민주노총 토론회의 내용을 볼 때 열린우리당에 대한 혹독한 평가 민주노총 정책토론회 자료집(2003년 4월 21일) “노무현정부의 정책진단과 개혁방안”; 민주노총 정책토론회(2005.03.11) 자료집 “사회적 교섭, 어떻게 볼 것인가” 참조.
는 적어도 열린우리당에 대한 정확한 파악은 못되더라도 높은 신뢰를 보이는 것 같지는 않다. 그럼에도 열린우리당과 노무현 정부의 정책에 대해 앞에서 다소 장황하게 논의한 것은 열린우리당과 노무현 정부에 대한 일말의 기대를 보이는 그룹이 있다는 판단 때문이며, 기대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사회적 교섭이 가능하려면 친근로자적 정부가 형성되어 있어야 하는데, 우리나라의 경우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그렇다면 민주노총의 사회적 교섭 전략은 장차 친근로자적 정부를 구성하리라는 민주노동당에 대한 역할 기대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강승규 부위원장의 발표문에서도 일정하게 드러난다. 곧 “민주노동당의 원내 의정활동을 통해 매우 강력한 정책공세, 여론공세를 수행할 수 있을 것이며,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의 양 날개가 전사회적 쟁점을 주도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언급이 그것이다. 대중조직인 노동조합과 의회정치조직인 정당이라는 두 수레바퀴를 통해 노동자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은 유럽 사민주의 정치에서 익히 잘 알려진 사실이다. 특히 영국 노동당과 영국 노총의 관계는 현재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의 관계와 매우 흡사하다. 이러한 관계 설정은 두 조직이 이념적, 조직적, 실천적 측면에서 상당할 정도로 일치할 때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이 관계는 또한 의회정치에 매몰된 정당과 경제투쟁에 한정된 노동조합이라는 문제점을 드러낸 것도 역사적 사실이다.
민주노동당의 경우도 이미 그러한 징조를 보이고 있다. 강령을 볼 때에도 민주노동당의 계급성과 반권위주의 의식이 뚜렷하지 못함을 알 수 있다. 민주노동당의 강령 전문은 “민주노동당은 외세를 물리치고 반민중적인 정치권력을 몰아내어 민중이 주인되는 진보정치를 실현하며, 자본주의 체제를 넘어 모든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평등과 해방의 새 세상으로 전진해 나갈 것” 이하 민주노동당 강령(http://www.kdlp.org) 참조.
이라고 서술하고 있다. 평등과 해방이라는 말로 사회주의적 목표를 명시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그에 따라 강령은 “민주노동당은 노동자와 민중 주체의 자주적 민주정부”를 수립하고 “민중을 억압하는 모든 국가기구와 법, 제도를 완전히 폐지할 것”이며, 직접민주주의를 실현하여 “아래로부터의 민중권력을 창출해 나간다”고 규정하였다. 자본주의 국가의 “폐지”를 언급하며 새로운 정치권력체를 구상하는 모습이 드러난다.
그러나 국가에 대한 더 구체적인 분석이 요구되며, 당과 대중의 관계에 대한 명시적 언급도 더 필요하다. 그렇지 않다면 강령의 다른 부분에서 보이는 오해(?)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곧, “한국의 정치권력은 국내외 자본의 충실한 대리자에 불과했다. 재벌과 초국적 자본의 이익을 대변하는 자들이 정치권력을 쥐고 있는 한 민중은 정치·경제적으로 무력할 수밖에 없다. 그 동안 우리들 민중이 끊임없는 투쟁을 통해 군사독재를 몰아내고 민주주의를 일으켜 세워왔음에도 여전히 민중의 권익을 확보하지 못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라는 언급을 보자. 정치권력을 누가 장악하고 있는가만 문제가 될 뿐이다. 이를 역으로 생각하면, 민주노동당이 정치권력을 장악한다면,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사회주의적 민중권력이 가능하다는 억지가 될 수 있다.
이러한 해석은 정치강령을 보면 ‘오해’가 오해가 아님을 더욱 뚜렷하게 알 수 있다. 민노당의 정치강령은 다음과 같은 목표를 명시하고 있다.
“첫째, 썩은 정치, 부패정치의 완전 척결을 통해 실질적으로 국민들에게 책임지는 정치, 국민들로부터 신뢰받는 정치를 구현한다.
둘째, 억압적 국가기구를 전면 폐지하고, 인간의 자유와 창조성을 철저히 보장한다.
셋째, 정당과 선거정치의 실질적인 민주화를 실현한다.
넷째, 직접 민주주의를 확대 강화하고 지방자치를 활성화한다.”
이 때 억압적 국가기구의 폐지는 자본주의 국가의 폐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군사독재의 억압적 잔재를 청산한다는 것이며, 민주주의의 방안은 비례대표제와 선거공영제, 이념정당구도 확립과 당내민주화를 의미한다. 이른바 합리적 보수주의의 강령과 다를 바 없다. 합리적 보수주의에 기반한 정치개혁은 물론 한국에서 우선적인 목표가 될 필요는 있다. 그러나 그러한 정치개혁은 보다 궁극적인 목표의 수단으로서만 의미를 가져야 한다.
한마디로 민주노동당의 강령과 정책은 이념적 토대의 불확실성으로 인해 유럽의 제도권 좌파정당들이 걸어온 전철을 따라갈 가능성이 농후함을 예상케 한다. 국가사회주의 이념을 토대로 복지국가적 해결을 위해 사회주의적 목표를 추구했던 독일 사민당과 산업민주주의적 노조에 토대를 두고 의회주의적 길을 선택한 영국 노동당이 급기야는 부르주아적 국민정당으로 변해간 점은 현재의 민주노동당과 매우 흡사하다.


5. 결론

코포라티즘은 노동자들이 투쟁을 통해 자본의 양보를 강제한 결과라는 성격과 자본과 정부의 노동자 통제전략이라는 성격을 동시에 갖는다. 그나마 케인즈주의적 복지국가를 가능하게 했던 수요조절 코포라티즘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친근로자적 정부가 형성되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그러한 조건이 갖추어졌다고 할 수 없다.
백번 양보하여 노무현 정부의 사회통합적 노동정책을 긍정적으로 평가하여 사회적 교섭을 수용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공급조절 코포라티즘의 수준을 넘어서지는 못할 것이다. 공급조절 코포라티즘도 사회 코포라티즘의 하나라는 점에서 투쟁결과의 산물이자 통제전략의 하나라는 양면성을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공급조절 코포라티즘은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의 수단이 된다는 점에서 그 통제적 성격을 더욱 강하게 띠며, 장차 힘의 균형추가 자본측에게 더욱 기울어진다면 코포라티즘 자체가 폐기되는 전단계가 될 가능성이 큰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회적 교섭은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정당화해주는 합의의 장이 될 수 있다.
또한 민주노총의 사회적 교섭 방침은 ‘전술’임을 강조하고 있지만, 실질적인 내용에서 보면 공세적 투쟁을 배제하는 전략 차원의 논의임이 확실히 드러난다. 그 의회주의적 팔이자 정치적 역할 주체는 열린우리당이 아니라면, 민주노동당이다. 장기적으로는 민주노동당의 집권을 겨냥하며 유럽식 사민주의 국가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현재 유럽의 사민주의 정권이 노동조합에 제시하는 삼자협의체제도 신자유주의적 노동정책을 강요하는 이른바 ‘공급조절 코포라티즘’이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따라서 민주노동당과 함께 하는 사회적 교섭 역시도 통제전략을 수용하는 틀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사회적 교섭 전술이 수요조절 코포라티즘의 형태로나마 성공하기 위해서는 뚜렷한 요구조건을 가지고 투쟁을 통해 관철하는 의지를 보임으로써 정부와 사용자를 이쪽 테이블에 끌어와야만 한다. 다시 말해 사회적 교섭은 어디까지나 투쟁의 산물이자 대중적 투쟁전략의 한시적 전술로서, 특정한 조건에서 그 투쟁의 결실을 맺는 마지막 협상테이블로 기능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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