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의 월간지 현장에서 미래를

[108호] 농성을 진행하며

<세상만사>

농성을 진행하며

이영민 / 철도 노동자


<손바닥도 마주쳐야>

공사 부사장이 또다시 가처분 신청을 냈다. 고소고발 네 번, 손해배상 한번, 감사관실 출두요구 세 번을 내더니 이제는 가처분 신청이다. 서울역 농성에 대한 사측의 전술은 철저하게 무대응이다. 지방본부가 워낙 거세게 나가서인지, 대응하지 않는 게 상책이라고 생각하는지 물리적으로 농성을 방해하거나 실력행사를 막은 일이 없다. 첫날 서생원같은(쥐의 자식과 같은 표현을 쓰면 명예훼손으로 걸릴 것 같다) 서울역 부역장이 간부들을 데리고 막은 일은 있다. 그때 목을 밀며 온갖 욕설로 망신을 줬더니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
사측도 보통 단수가 아니어서 고수의 전술을 구사한다. 계약해지 되었던 “새마을호 여승무원 26명을 전원 정규직화하라.”고 했더니 “22명에 대하여는 6월말까지 정규직으로 전환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줄 것은 주고 너희들 정규직 간부들은 고립시키겠다.”는 것이다. 손자병법에 “이익으로 적의 눈을 흐리고” 운운하는 내용이 있는데 이런 안을 던질 줄은 몰랐다.
그 뒤로 여승무원들은 이제 다되었다 하는 심정이 되었다. 한 두 사람만 지방본부가 옳으니까 하면서 함께 농성을 진행하고 있다. 스티커도 약발이 다되었다. 6개월간 괴롭혔더니 내성이 생긴 것이다. 괴롭다. 이럴 때는 누구라도 장사가 없다. 결과적이지만 사측이 제대로 된 전술을 구사하는 것 같다. “적의 예기가 높을 때는 정면충돌을 삼가라. 지키기만 해서 힘을 빼놓은 다음 적의 대오가 흐트러지면 쳐라.” 하는 식이다. 그런 다음 가처분 신청과 같은 간접접근 방식을 통해 투쟁대오를 포위하고 있다.
요즘 노동조합에게 가처분 신청은 쥐약이다. 한번 결정이 나면 한건 위반할 때마다 1인당 100만원씩 벌금이 쌓여간다. “구속도 각오한다.”고 투쟁결의를 밝혔는데 이런 방법에는 장사가 없다. “벌금을 각오하고 투쟁에 들어간다.” 이렇게 바꿔야 할 것 같다.
농성을 일단 접고 정공법으로 접근해야 할 것 같다. 상황이 이렇게 교착된 것은 우리에게 기본실력이 부족한 탓이다. 투쟁주체는 늘 흔들흔들하고(여승무원들), 정규직 대오는 손을 꼽으며(지방본부 간부 몇 사람, 활동가 및 해고자 10여명) 주로 학생들이 주력대오이니 쓸 수 있는 전술이란 게 뻔한 것이다. 그래도 60-70여명의 대오로 해고를 막고, 22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한 것은 게릴라전의 효과이다.
“잘 싸우는 장수는 싸우기 전에 이미 이길 조건을 마련해 놓는다.”는 손자병법의 대전제로 돌아가야 할 때가 왔다. 그러나 정규직 노조에서 비정규직 투쟁에서 이길 조건을 마련하고 싸운다는 게 과연 가능할 것인가? 기반을 확장하되 투지를 지킬 것이며, 다른 게릴라전을 모색해야 할 것 같다. 상대방이 아직 내성을 갖지 못한 전혀 새로운 전술이 어디 없을까.

<가족과 행복하기 위해 투쟁을 한다고?>

술자리에서 간부가 후배 노동자를 붙잡고 설득한다. “노동조합을 왜 하느냐고?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지.” “이런 요새 노동조합 해서 잘 살고 잘 먹는 사람이 어디 있어? 찍혀서 쫓겨나기 십중팔구지.” 요즘 후배들도 그런 정도는 다 안다. 당위성 때문에 반박을 못할 뿐이다. 잘 먹고 잘산다는 게 어떤 것인지 정확하지 않아 심정적인 반발도 생긴다.
“나와 내 자식들, 그리고 가족의 행복을 위해서 한다. 자본주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게 행복한 거냐? 사람이 어떻게 돈만 보고 살아 가냐? 나는 그렇게 못산다.” 이러면 대부분 끄덕끄덕할 것이다. 하지만 속으로는 여전히 “그래, 너 잘났다. 팔뚝 굵은 너는 그렇게 살아도 나는 그렇게 못산다.” 하는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다. 적어도 철도 정규직 노동자들에 한해서는.
그러면 정말 우리는 왜 노동조합을 하는 것인가? 유별나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유별난 사람도 일부 있기 마련이어서 굳이 하지 말라는 일을 고집피우며 하는 것이다.
나는 노동조합을 십 칠년 정도 했지만 온가족이 인정하지 않는다. 어떤 불행한 여성은 노동조합 하는 인간을 잘못만나 팔자를 망쳤다고 한탄한다. 이 여성도 초기에는 설득에 넘어가 적극적으로 찬성하고 집회다 농성이다 해서 몇 해 동안 잘 따라다녔다. 그러나 노동조합 해봐야 “꼭 죽을 구멍으로만 찾아서 사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은 뒤 “한심한 인간, 저인간의 두뇌구조는 어떻게 생겨먹었을까?”하는 고민을 하고 있다. 큰 딸은 진지하게 부탁을 한 일이 있다. “또 한번 해고되면 나 대학이고 뭐고 다 틀리게 되니 해고만큼은 당하지 말라.” 작은 딸은 늘 피곤에 지쳐 있는 애비가 딱해 보이는 모양이다. 집에만 들어가면 집안을 치우는 시늉을 하느라 정신이 없다. 집안이 어질러져 있으면 당장 표정이 바뀌는 탓이다. 부모는 잘난 자식이 십년이나 해고되었다가 복직되어 그 보람으로 살고 있다. 그러면서 텔레비전에 데모하는 화면이 나오면 거기에 혹시 자식이 있지 않을까 찾아본다는 것이다.
한동안은 누구나 노동조합을 할 줄로 알았다. 그래서 아무나 붙잡고 노동조합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함께 활동하자고 역설하였다. 그렇게 해서 넘어간 사람도 있고 난처한 표정을 짓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때의 그 열정이 그립다.
노동조합은 독한 사람이 하는 일로 생각한다. 노동조합을 하지 않아도 세상 똑바로 살 수 있는 사람이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다 같은 자식이라도 의지가 약하고 성격이 세심하여 상처를 잘 받는 애는 못하게 막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기 가치관이 뚜렷하고 대범해 보이는 애가 한다고 하면 혹시 모르겠다.
노동조합을 해서는 안되는 사람이 하면 조직도 망치고 자기 개인도 망칠 것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나는 그런 사람을 숱하게 보았다. 한때의 의기는 어디로 가고 술망나니가 되는가 하면 주변 환경에 따라 부평초처럼 흔들리며 떠다니는 사람들, 그 잘난 권력에 취해서 제정신 못 차리는 사람들, 늘 괴로워하는 사람들, 늘 슬퍼하는 사람들…. 남들 안하는 일하며 그렇게 힘들어 할 것이면 차라리 하지 않는 것만 못하다고 생각한다.

<지리산>

지리산을 읽고 있다. “남로당처럼 허망한 조직도 없을 것”이라는 서문을 읽으면 작가가 무슨 생각으로 소설을 썼는지 알 수 있다. 재미는 있다. 작가가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조직이란 그런 것인가? 투쟁이란 그런 것인가? 뭔가 허망하다.”는 기분도 든다. “그런 책을 왜 읽습니까? 차라리 자료를 읽으시오.” 진지하게 책망하는 대선배도 있다. 굳이 말대답은 하지 않았다. “재미로 읽지요. 사람이 어떻게 맨날 옳은 소리만 듣고 삽니까? 좋은 음식이 물려서 불량식품을 먹고 있는 중입니다.” 동년배 같으면 이렇게 대답했을 것이다.

<토론회>

토론회라는 것은 말하자면 싸우는 것이다. 똥고집이라면 결코 지고 싶지 않은 나는 늘 그렇게 생각한다. 그래서 싸우고 싶지 않으면 토론회 같은데 참여하지 않는다. 발제자는 물론이고 그냥 참여하는 것도 싫어한다. 뭔가 이건 한판 붙어봐야 한다, 이런 건 제대로 문제제기를 해야 한다, 이렇게 생각할 때, 전의가 불타오를 때, 비로소 기쁜 마음으로 토론회에 간다. 내 기억으로는 교섭이나 토론회나 별 차이가 없다. 상대방의 장황한 주장을 요점을 찔러 주저앉힐 때 쾌감을 느끼게 된다. “그러니까 당신 말을 한마디로 하면 이런 저런 이유로 단체협약을 위반했다 이거 아닙니까? 그냥 사과하면 될 일을 가지고 그렇게 길게 이야기하다니…” 토론회에서 이런 식으로 말하는 자를 좋다고 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평소에 말 안하고 벌어놓은 점수를 한번에 다 까먹는 지름길이 토론회에 발제자로 참석하는 일이다. 한국사회는 토론문화가 발달하지 못했다고 하더니 바로 나 같은 자를 두고 일컫는 말이다.
하여간 나는 적대적인 토론자들에게 둘러싸여 있으면 토론할 기분이 난다. 철도노조에서 12.3 특단협에 대한 평가토론회를 진행한 일이 있는데 그 판이 꼭 그랬다. 나중에 녹화한 동영상을 보았는데 내가 생각해도 너무 심하게 상대방을, 그리고 거기에 동조하는 참석자들을 몰아붙이고 있었다. “아니, 저인간이 나야? 정말 해도 해도 너무하네.” 하는 기분이 들었다. 토론이 끝나고 나면 모두들 씁쓸한 얼굴이 되어 마지못해 인사를 하였는데 나는 뒤풀이도 하지 않고 휭 하니 고속열차를 타고 올라와 버렸다. 정말 조직을 단결시키는 데는 암적인 존재이다.
궤도산업노조냐? 공공산별노조냐? 운수산별 노조냐? 를 따지는 토론회도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나도 모르게 잔뜩 전의를 불태우게 되고, 그것이 토론문에 반영되고, 여러 사람에게 녹슨 창을 휘둘러 상처를 입히게 되었다. 쉬는 시간에 나와 보니 역시 모두들 씁쓸한 얼굴, “이럴 줄 몰랐다.”는 표정들이다. 모두들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고 뭐가 뭔지 희미한 주장들을 하는 게 마음에 안들어 더 내질러 버린 까닭도 있다. 이래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내가 이렇게 된 것도 모두 세상의 탓이라고 하면 가장 친한 후배도 나를 욕할 것이다.
“주장으로 실천하지 말고 실천으로 주장해라.” 이 말이 가장 마음에 든다. 그렇다면 이제는 토론회에도 참석하지 말아야지. 몸으로 때우고 글은 쓰지 말아야지. 늘 이런 마음을 먹고 산다. 그런데도 굳이 글을 쓰라 강권하고, 당신 아니면 토론회갈 사람 없으니 또 다음번 토론회에서 발제자 노릇을 해라. 하고 권하는 노릇은 다 무엇인가?
자극성 때문일 것이다. 나 같은 인간마저 사라지면 토론회가 밋밋해지고 책이 재미없어지니까 아주 맵고 독한 양념을 치자는 것이겠지. 밥처럼 매일 먹지는 않지만 어쩌다 한번 먹는 불닭처럼 가끔가다 특이한 놈도 한명쯤은 필요한 탓이겠다. 그래서 마지막 토론회에 또 참석한다. 그리고 연구소 책이 자리 잡힐 때까지 양념노릇을 하려한다. 그 다음은 정말 사양이다. 토론회도, 쓸데없는 글 따위로 쓸데없는 구설수에 오르는 일도.

<노파심>

누군가 자꾸 내게 판단을 구하고자 하면 늙어가는 기분이다. 내가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 일을 망치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이 들어 조심조심 의견을 밝히게 된다. “우리 노동조합의 자문위원 역이잖아요?” “이런, 그런 식이 되면 점점 더 조심하게 됩니다.” “조금 알 때까지만 물어볼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암, 그래야지, 그래야 하고말고.” 이런 게 바로 유쾌한 대화이다.

<이빨>

해고 십년에 이빨이 아주 절단 났다. 새로 해 넣자면 대부를 받아도 부족할 판이다. 그냥 살지 뭐, 이빨이 없으면 고기 따위를 먹지 않으면 되고 더 살아봤자 십년, 이십년일 텐데. 이런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넘기고 있다.

<웰빙>
몇 해 동안은 그놈의 경쟁력이라는 말이 가장 싫더니 이제는 웰빙이라는 말이 정말 싫다. 그래서 담배 끊을 생각을 점점 더 안하게 되고 스트레스 받을 일만 더 찾아다닌다. “뭐하고 지내요?” “음, 시간 나는 대로 산에도 가고, 가족과 함께 고수부지에 나가 자전거도 타고, 웰빙해야지, 요즘은 배나온 사람은 웰빙 아녀. 운동 좀 해. 너도 은근히 아랫배가 나온 것 같어.” 에라, 이런 순… 그래 돼지처럼 웰빙하면서 너 혼자 잘 먹고 잘 살아라. 나는 이대로 스트레스 받으며 내 맘대로 살련다. 싸구려 등산화는 누가 훔쳐갈 염려가 없고 등산복은 농성복으로 아주 그만이다. 사람이 행복해서 사냐? 죽지 못해서 사는 거지. 이런 소리를 하면 누구에게나 따돌림 당하므로 혼자서 중얼중얼 욕이나 하게 된다.

<폭력>

힘이 없으므로 누구를 때릴 것도 없지만 어쩌다 한번씩은 누군가를 쥐어박게 된다. 엊그제도 그랬다. 철도매점 어른들하고 홈에 나가 스티커 도배질을 하는데 어떤 싸가지 없는 젊은 놈이 난리를 친다. 머리에는 무스를 쳐 바르고 뺀질뺀질하기가 기름챙이를 닮았다. 홍익회 직영매장에서 일하는 친구다. 채 붙이지도 않은 스티커를 박박 긁으면서 “아니 철도 땅도 아닌데 왜 여기 매장에다 붙이는 거요?” 이런 놈이 다 있나. 젊은 본부장도 열이 올랐다. “그렇다고 보는데서 그렇게 긁어?” 오기가 났는지 또 붙이는데, 한손으로는 팔을 붙잡고 또 한손으로는 박박 긁어 버린다. 성질이 여간내기가 아니다. 본부장은 열흘 넘게 집에도 안가고, 스트레스를 받아서 신경이 날카롭다. “좋아 한번 해보자구.” 여기저기 마구 붙이는데 기어이 사단이 났다. “이런 X팔” 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오가고 손가락으로 배를 찌르고, 에라 하는 심정이 되어 뒷통수를 한 대 쥐어박았다. “젊은 놈이 동료들 파업하는데 도와주지는 못하고…….” “어어, 이제는 폭력을 쓰는 거요?” “그래, 이놈아 폭력을 쓴다. 너 같은 놈에게 폭력 안쓰면 누구에게 쓰냐? 젊은 놈이 회사의 개가 되어 가지고….” 몇 대 더 쥐어박으려고 날뛰는데 후배들이 뜯어 말리고 식식거리며 담배를 피우는 사이 창피한 생각이 들었다. 야, 이거 내가 나이를 헛먹었구나. 나이 오십이 다되어 사람이나 치고, 그것도 혼자 있는 놈을 여럿이서…. 에이. 아니지, 그런 놈은 맞아야 돼. 젊은 놈이 그렇게 비굴하게 살면 안되지. 파업한지 팔십일이 넘는데 제놈이라고 옳고 그른 것을 몰라. 아니지, 요즘 애들이 알기는 뭘 알겠어. 하여간 쥐어박은 것은 반성해야 돼. 결국 나같이 나이 값을 못하는 인간은 노동조합일 그만두고 조용히 사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결론에 이르렀다.

<시민과 함께>

모처럼 지방본부에 있는데 전화가 온다. 시민인데 스티커를 왜 자꾸 붙이냐, 제대로 떼지도 못해 지저분하지 않냐? 차분한 말씨로 계속 시비를 건다. 시민은 무슨, 이놈, 본사나 지역본부에 있는 놈이 틀림없다. 더럽게 떼었으면 회사로 전화를 해야지 왜 여기로 전화했냐? 고 했더니 붙이니까 떼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이런 드런 놈이. 열이 슬슬 올라오는데 참고 “그럼 내용을 봤냐?”고 물어봤더니 “내용이 중요한 게 아니고 국가재산에 손상이 가지 않냐, 나는 시민으로 제 3자가 아니냐, 내용에 대하여는 이렇다 저렇다 말할 처지가 아니다.”는 것이다. 이놈이 훈련을 제대로 받았는지 끝까지 조용조용하고 차분한 말씨다. 나는 이런 놈이면 더 욕지기가 나온다. 차라리 한바탕 욕을 주고받고 나면 속이라도 후련하고, 때로는 서로 사과도 하는 법인데 이런 놈들은 아예 사람을 열나게 하려고 작정한 놈들이다. “당신도 회사 다니는 사람이지요?” “그렇다.” “그럼 혼자서 회사나 자회사 임원 다섯 개를 가진 놈이 계약직을 마구 자르는데 분개도 안하냐?” “아니, 글쎄 회사나 노조 입장을 편들 수 있는 게 아니고 나는 시민이라니까요.” “드런 놈, 전화 끊어.” 이런 시민은 사양이다. 이런 놈은 정신 바짝 차리게 욕이나 해주는 게 옳지, 이런 놈 비위맞춰서 시민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을 하라면 나는 당장 때려치우겠다. 옳고 그른 것을 떠나 복장 터져 못살기 때문이다.

<활동가로 거듭나기>

학습을 열심히 한다고 활동가가 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내게 처음으로 “노동해방”이란 말을 가르쳐준 사람들은 대부분 활동가이기를 포기하였다. 한사람은 한나라당 국회의원을 하고 있다. 또 한사람은 노동조합 여기저기서 브로커 노릇을 하더니 요즘은 어디 공기업의 감사인가 뭔가를 한다고 한다. 활동가가 되는 조건이 뭔지는 모르지만 헌신성이 첫째인 것 같다. 대개는 자기 불만이나 처지에서 노동조합을 시작하지만 그것을 초월할 수 있을 때 활동가로 변신할 수 있을 것이다. 믿었던 동료들이 활동을 포기하고, 대중들은 자기 말보다는 자본의 논리를 인정하고 대열에서 이탈할 때 첫 번째 위기가 찾아온다. 내가 뭔데, 내가 이 짓을 왜 해야 돼? 나도 똑같은 사람이야, 나도 할 만큼 했다구. 이른바 정체성의 위기이다. 이럴 때 제대로 된 철학을 심어줄 수 있으면 그 사람은 훌륭한 선배 활동가이다. “동지, 노동조합은 이래서 하는 거야. 이렇구 저렇구…….” 나는 그런 능력도 안되고 성격도 더러우니까 그런 방법은 쓸 수 없다. “나는 네가 계속 할 거라구 믿어. 너는 그런 일을 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야. 너는 절대 개처럼 기면서 살 사람이 못 돼.” 이런 식으로 자존심을 긁어둔다. 그러면 자존심 강한 사람들은 그걸로 한참은 더 간다. 한편으로는 자기가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해줘서 고맙기도 할 것이다. 그래도 계속 고집을 피우면 “그래, 네 맘대로 해, 네 세상 네가 사는 거지 내가 사는 거냐?” 하고 매정하게 선을 그어 버린다.
나는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은 조직을 만들어 함께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자기 활동은 자기가 책임지고 자기 인생은 자기가 책임질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거야말로 부르주아적인 개인주의이겠지만 하여간 그렇다. 하지만 요즘처럼 운동에 사기를 올리기 어려운 시절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겨울이 되어야 송죽의 절개를 안다고 옛사람들은 늘 주장했다. 그러니까 요즘 시기는 노동조합이건 운동이건 사람이 좀 더 질겨지고 단단해지는 시기라고 생각한다. 특히 철도에서는 더 그렇다. 아니지 물리적 탄압은 엄혹하지 않으니까 흐물흐물해지는 시기인가? 모르겠다. 하여간 나는 더 이상 활동가를 만들고 싶지 않다. 활동가는 누가 만들어서 되는 게 아니다. 스스로 결정해서 활동가가 되고 그 길을 외롭게 걸어가는 사람이지, 누가 누구를 만들고 누가 누구를 부추긴다는 말인가?

<스트레스>

어려운 싸움을 지속하더니 사람들이 점점 탈이 난다. 여승무원 지도부 두 사람이 차례로 신경성 위염에 걸렸다. 한사람은 조금 나은 듯 하지만 여전히 골골하고 한사람은 아예 밥을 안 먹으려 든다. 수줍음 많은 처녀로 처음에는 농성장에서도 반듯이 앉아 있더니 요즘은 아예 자리보전하여 누워서 자거나 누워서 논다. 이런 사람을 보고 청주 하이닉스 투쟁에 가자고 권하길래 말렸다. “내버려 둬, 잘못하면 사람하나 잡아.” 고집 센 사람들 만나서 고생이 많다. 그래서 만나면 늘 미안한 생각이 든다.

<현장>

현장을 보면 늘 한숨만 나온다. 지도부들을 보면 더 한숨이 나온다. 위로 올라갈수록 상태가 더 심각하다. 현장과 지도부 사이에 커다란 성곽이 있는 것 같다. 외적이 쳐들어오면 성곽 밖의 백성들은 항복하여 목숨을 빌던가 아니면 저항하다 죽든가 할 것이다. 성곽 안은 어떨까? 항복하자, 싸우자 하고 자기들끼리 싸움만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