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의 월간지 현장에서 미래를

[제111호-2005년9월호]특집/ '노동운동 위기논쟁'을 넘어

'노동운동 위기논쟁'을 넘어, 계급적 노동운동의 전망

'노동운동 위기논쟁'을 넘어
'노동운동 위기논쟁'을 넘어, 계급적 노동운동의 전망

현장에서 미래를 제111호
박성인


특집: 노동운동 위기논쟁을 넘어-계급적 노동운동의 전망




‘노동운동 위기논쟁’을 넘어

박성인 /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소장




노동운동 ‘위기 논쟁’과 ‘논쟁의 위기’

민주노총 이수호 집행부의 ‘노사정위원회 참여’ 방침이 현장과 지역으로부터 강력한 문제제기와 저항에 부딪혀 9월 대의원대회에서의 상정조차 연기해야 했던 2004년 8월경에, 비정규직 철폐를 요구하고 비정규직 입법 강행을 반대하는 비정규 노동자들의 투쟁이 계속 고양되고 있을 바로 그 시점에 ‘노동운동 위기 논쟁’이 다시 촉발됐다. 여기서 ‘다시’라고 표현한 것은 1990년대 초반에도 비슷한 ‘위기 논쟁’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 인터넷 매체의 적극적인 기획으로 촉발된 ‘노동운동 위기 논쟁’은 우연인지 필연인지는 모르지만 노무현 정권의 노동운동에 대한 탄압과 전면적인 이데올로기 공세 - “고임금 정규직 노동자들의 배부른 투쟁”, “노동귀족”, “그들만의 노동운동” 등 -와 맞물려 진행되어, 노동운동 내부뿐만이 아니라 사회적인 파장을 낳았다. 뒤이어 2004년 하반기에 비정규직 노동자투쟁의 진전으로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간의 분할이 고착화’되고 있다는 점이 드러나고, 연이은 ‘노동조합의 부패와 비리 사건’ 등이 터지면서 노동운동 내부의 위기감은 더욱 증폭되기 시작했고, 이와 더불어 ‘위기 논쟁’은 확대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2004년 하반기에 촉발된 ‘위기 논쟁’이 어떠한 결말로 이어질 지 아직 예측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2005년 하반기에 노무현 정권의 ‘비정규직 입법’과 ‘선진 노사관계 로드맵’의 강행과 맞물리면서 ‘민주노조운동의 혁신’과 ‘산별 노조’ 건설 논쟁으로 진전되고 있기 때문에, ‘노동운동 위기 논쟁’은 위기 극복을 위한 노동운동의 구체적인 ‘대안’을 둘러 싼 논쟁과 실천으로 1차적으로 결말이 날 것이다.
또한 이번의 ‘위기 논쟁’이 한편으로는 97년 IMF 외환위기를 전후로 한 ‘경제위기와 노동운동의 노선 논쟁’의 연장선상에 있고, 멀게는 90년대 초반 ‘위기 논쟁’과도 맞닿아 있기 때문에, 소위 ‘87년 노동체제’ 이후 전망을 둘러 싼 ‘노동운동 노선 논쟁’으로의 진전은 필연적일 뿐만 아니라 바람직하다.
사실 2004년 하반기에 촉발된 ‘위기 논쟁’은 그것이 현실의 일정 부분을 반영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매우 ‘수세적’인 논쟁이었고 여전히 이 지점을 벗어나고 있지 못하다. 노동운동이 처해 있는 ‘위기적인 현실’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논쟁의 구도와 경과 자체가 그렇다는 것이다. 이 점과 관련하여 몇 가지 살펴보자.

2004년 하반기 이후에 전개된 ‘노동운동 위기 논쟁’은 노무현 정권의 대 노동 이데올로기 공세와 맞물려 ‘수세적’으로 진행됐는데, 대략 다음과 같은 특징을 보여주었다.
첫째, 현 시기 한국의 노동운동 - 더 정확하게는 민주노조를 중심으로 한 전투적인 노동조합운동 - 을 ‘위기’로 진단하고, 위기의 원인을 노동운동 ‘내부’로 돌리고 있다는 점이다. 현 시기 한국 노동운동이 낮은 조직률로 전체 노동자를 대표하고 있지 못하고 있고, 노동운동이 대기업 정규직 남성 노동자 중심으로 이루어진 결과 대기업 이기주의에 갇혀 있어 “함께 연대해야 할 비정규 노동자가 오히려 정규직 노동자의 투쟁을 공격”하는 상황이며, 명분 없는 파업투쟁으로 “자신을 옹호해주는 어떠한 사회세력도 없는 고립무원의 상태에 갇혀 있는 실정”이 위기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위기 진단 속에서는 비정규직-정규직으로 분할 고착화시키고, 양극화시키는 근본적 원인인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구조조정, 노동유연화’의 문제는 은폐되고 말았다.
둘째, ‘위기’ 진단과 그 원인을 내부로 돌리는 목표, 즉 ‘노동운동 위기 논쟁’이 겨냥하는 것은 노동운동 내 ‘전투적 좌파’, ‘계급적 좌파’를 향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대중운동 내에서의 전투적 계급적 좌파의 고립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노동조합 조직률의 정체, 민주노조운동의 계급적 대표성의 약화,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의 분할 고착화, 기업별 노조의 한계, 임단협 중심의 파업투쟁의 빈발, 전투적 조합주의의 한계 등은 노동운동이 극복해야 할 사안들임에는 분명하다. 그런데 ‘노동운동 위기 공세’는 이러한 문제들이 ‘계급운동 시각’, ‘계급주의’, ‘노동자 중심적 관점’, ‘계급형성에 초점을 맞춘 노동운동과 조직화 전략’, ‘사회주의 이념’ 등 때문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셋째, 따라서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운동철학과 방식을 아예 전면 혁신하는 일대 전환을 모색”할 것을 제안했다. 그 제안들의 내용은 “노동조합의 조합주의, 노동운동의 생산력주의, 그리고 전투적 노동조합주의의 극복을 위한 ‘생태적 대안을 찾는 노동운동’”이라는 다소 엉뚱한 제안을 제외하면 대략 두 가지 방향에서의 위기 극복 방안들이었다. 하나는 소모적일 뿐만 아니라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비타협적인 투쟁을 멈추고, 노동운동이 “대화와 설득, 자치와 자결의 민주주의”(박승옥), “사회적 대타협”(박태주, 김형기), “거시적 코포라티즘과 사회적 대화전략”(최병천)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고, 다른 하나는 “노동운동의 사회운동성이나 연대성 회복”을 하고 “산별 노조를 시급하게 건설”하자는 것이었다.

이러한 ‘위기 논쟁’의 몇 가지 특징들을 볼 때, ‘위기론 공세’가 목표로 하는 것은 대략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현 시기 노동운동은 기업별 노조의 한계와 전투적 조합주의, 그리고 대공장 정규직 중심의 이기주의 등 때문에 ‘위기’에 직면하고 있고, 따라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계급운동적 시각’, ‘노동자 중심적 관점’ 등을 버리고, 비타협적 투쟁보다는 ‘사회적 대타협’에 나서야 하고 ‘산별노조’ 건설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 2004년 이후 ‘노동운동 위기 논쟁’이 갖는 ‘논쟁의 위기’가 가로놓여 있다. IMF 외환위기 이후 전면화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과 노동유연화에 맞선 노동자들의 투쟁이 거듭된 투쟁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공세를 반전시켜 내지 못한 노동운동의 현실이 고스란히 ‘위기 논쟁’에 투영되어 있는 것이다. 즉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과 노동유연화 공세에 맞서 계급적 노동운동진영이 투쟁을 통해 정세 돌파의 지점을 만들어 내지 못한 현실이 ‘위기 논쟁’ 속에 투영되어 있는 것이다.

결국 2004년 하반기에 촉발된 ‘노동운동 위기 논쟁’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방향 중 하나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위기론자’들이 주장하고 있듯이, 그것이 “자기 성찰”을 통해서든 “혁신”을 통해서든 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노동운동의 전략적인 목표를 일차적으로 현실화하고 있는 ‘진보정당 - 산별노조’의 흐름(소위 ‘양날개론’)을 제도적으로 정착시켜 나감으로써 소위 ‘87년 노동체제’의 과도적인 과정을 마무리하면서 부르주아민주주의체제의 일부분으로 안착해 들어가든가, 아니면 기존의 노동운동의 전략적 목표를 전면적이고 비판적으로 재평가하면서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노동유연화라는 현 시기 자본 운동 그 자체에 대한 공세적인 ‘반자본’ 운동으로 진전하든가, 둘 중 하나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노동운동 위기 논쟁’의 성격이 이러하기 때문에, 계급적 노동운동 진영은 더 이상 ‘위기 논쟁’ 그 자체에 머물러 있을 수 없다. 계급적 노동운동 진영은 ‘노동운동의 위기’에 주목하기보다 ‘자본의 위기’, 이와 연동한 ‘한국 사회 전체의 위기’에 더 주목한다. 계급적 노동운동진영은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구조조정으로 인한 계급 대립이 더욱 첨예화해가는 상황에서 ‘사회적 대타협’과 ‘사회적 합의’를 주장하는 것이 바로 ‘노동운동 위기’의 표현이라고 판단한다. ‘자본의 위기’, ‘한국 사회 전체의 위기’를 노동조합운동의 조직발전으로만 극복하려는 시도 자체가 ‘노동운동의 위기적 상황’이라고 판단한다.

더 이상 ‘위기 논쟁’은 없다. ‘노선 논쟁’, 나아가 ‘위기의 현실’을 변혁적으로 극복하기 위한 ‘변혁 전략을 둘러 싼 논쟁’으로 진전되어야 한다. 90년대 초반 ‘노동운동 위기논쟁’은 논쟁 그 자체를 통해서가 아니라, 현실의 노동자투쟁의 진전을 통해 정리됐다. 2004년 하반기 이후의 ‘위기 논쟁’도 90년대 초반처럼 노동자투쟁의 진전 그 자체에 의해 정리될 수도 있다. 그러나 90년대 초반과 다른 점은 노동자투쟁의 진전 그 자체를 이뤄내기 위해서도 ‘변혁적 전망’을 구체화해내고 ‘변혁운동의 주체’를 새롭게 세워내지 않으면 안된다.
이 글은 ‘변혁 전략을 둘러 싼 노선’을 정리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지는 않다. 2004년 이후 ‘노동운동 위기 논쟁’을 통해 드러난 노동운동 내 주요 쟁점에 대해 검토하고, 계급적 노동운동의 전망을 개괄하는 것이 이 글의 목표다.

몇 가지 쟁점들

‘위기론자’들이 ‘노동운동 위기’의 징후로 제시하는 것은 크게 3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는 낮은 조직률 혹은 조직률의 침체나 하락이고, 둘째는 한국 노동운동이 남성 대공장 정규직 노동자 중심으로 이루어져 계급적 대표성을 상실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셋째는 총파업의 남발 등의 투쟁만능주의가 더 이상 효과도 없을 뿐 아니라 노동운동의 국민적 고립을 자초하고 있다는 것이다.

먼저 ‘낮은 조직률’ 혹은 ‘조직률의 침체나 하락’ 문제부터 살펴보자. 노동조합의 조직률이 1989년 193만 명(18.6%)을 정점으로 2003년 155만 명(11%)까지 계속 하락하여 여전히 ‘낮은 조직률’을 보이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2003년 이후에 조직률이 증가하기 시작하여 2004년에는 182만 명(12.4%)으로 1년 사이에 조합원수가 20만 명(1%)이 증가했다. 이는 “기존의 조직노동자들을 포함하여 휴폐업과 구조조정 등으로 정리해고와 희망퇴직, 비정규직의 길로 많은 노동자들이 몰리고 실제로 퇴출당하기도 했지만 또 한편에서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생존권 투쟁에 나서면서 노동조합으로 조직화되기도 한 과정을 반영”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낮은 조직률’이 과연 ‘노동운동 위기’의 표현인가라는 점이다. 오히려 윤진호 교수의 분석처럼, ‘낮은 조직률’은 “노동시장의 분절화와 비정규직의 증가, 기업별체제 등 노동운동을 옭아매고 있는 구조적인 제약과 한계에 상당부분 근거”하고 있다.
더 나아가 ‘낮은 조직률’ 때문에 조직 노동운동이 전체 노동자계급을 대표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90년대 초반에는 비슷한 조직률로도 조직된 노동자들의 투쟁이 전체 노동자계급의 이해를 선도했다. 따라서 ‘낮은 조직률’은 한편으로는 “산별전환, 비정규직차별 문제 등을 제도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투쟁 속에서, 다른 한 편으로는 조직된 노동자들이 전체 노동자계급의 이해를 대변하는 투쟁 속에서 극복해 나가야 한다.

다음으로 한국의 노동운동이 ‘남성 대공장 정규직 중심의 노동운동’으로 대기업 이기주의에 빠져 계급적 대표성을 상실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점은 사실이다. 그리고 한국의 노동운동이 ‘남성 대공장 정규직 중심의 노동운동’이라는 점은 사실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한국의 노동운동은 대공장 정규직 노동조합이 전체 민주노조운동을 선도해 왔다. 그러나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과 정리해고가 전면화되고, 이에 맞선 투쟁이 이를 저지시켜 내지 못하면서 대공장 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은 전체 노동자계급의 이해를 대변하는 투쟁이 아닌 자신들만의 이해를 대변하는 투쟁으로 협소화되고, 그 결과 미조직 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이해와 분리되고 고착화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을 바라볼 때, 우리는 노무현 정권과 자본의 이데올로기 공세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구분하여 바라봐야 한다. 무엇보다 대공장 노동자의 고임금과 고용 경직성이 비정규직 문제의 원인이라는 노무현 정권과 자본의 공세는 사실 자체와도 다를 뿐 아니라, 구조조정과 노동유연화가 비정규직화의 근본 원인이라는 점을 은폐하고 문제를 노동자계급 내부의 문제로 돌려버리는 이데올로기 공세에 불과하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대공장 노동자들의 고임금은 상대적인 것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나 중소기업의 노동자들에 비해 고임금인 것이지, 우리 사회의 상류층의 수입과 비교하면 고임금이라 할 수 없다. 왜 상류층의 고수입은 문제가 안되고 노동자들의 ‘고임금’만 문제로 되는가? 또한 그 고임금조차 사실은 초과노동과 노동강도 강화의 결과일 뿐이고, 주택 교육 의료비 등 생활비를 대부분 임금에 의존해야 하는 한국의 현실 속에서 그 ‘고임금’조차도 사실은 노동력의 단순 재생산비 이상을 뛰어넘는 것은 아니다. 나아가 대공장 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과보호, 혹은 고용경직성이 비정규직 문제 해결의 걸림돌이라는 정권과 자본의 공세는 완전히 본말을 전도하는 이데올로기 공세일 뿐이다.
‘대공장 정규직 중심의 노동운동’이 문제인 것은 그들의 고임금과 고용경직성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대공장 정규직 노동자들이 신자유주의 구조조정과 노동유연화에 맞선 전체노동자들의 투쟁을 선도해 나가지 못한 채, ‘고임금’과 ‘고용경직성’에 안주해 버리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 바로 이런 현실 때문에 정권과 자본의 이데올로기 공세가 먹혀들면서 노동운동을 고립시키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을 비판하는 것이다. 이런 현실은 대공장 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들과의 계급적 단결을 통해 신자유주의 공세를 돌파하지 못하는 한 계속될 것이다. 나아가 이런 현실을 돌파하지 못할 때 대공장 노동자들의 상대적인 ‘고임금’과 ‘고용 경직성’도 일시적인 것이 될 가능성이 있다.

마지막으로 한국의 노동운동이 ‘임단협 중심의 전투적 조합주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이러한 경제주의와 투쟁만능주의는 현재와 같은 기업별 노조체계 아래서는 효과가 없을 뿐 아니라 노동조합 역량을 약화시키고 국민적 고립을 가져온다는 주장이 있다. 한국의 노동운동이 사실 ‘임단협 중심의 전투적 조합주의’, 즉 임금과 노동조건 중심의 협소한 기업별 노조주의를 벗어나고 있지 못하다는 점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점 때문에 “‘교섭과 투쟁의 결합’이라고 정당화되는 각종 참가전략을 강화하는 것, 투쟁과 더불어 ‘합의, 타협’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 것, ‘사회개혁투쟁’을 전면화하는 것. 그리고 노동계급 이외의 여타 계급 계층, 즉 국민대중의 이해를 대표하는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을 전면화’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사회개혁투쟁은 임단협을 대체하는 방향에서 제기되어서는 안된다. 임금과 노동조건의 개선을 위한 임단협 투쟁은 포기되어야 할 것이 아니라 노동운동의 대중적 출발점이다. 그것은 마르지 않는 수원지와 같아서 항상 노동자대중을 투쟁의 전면으로 끌어올리고 노동운동의 토양을 확대시켜 준다. 지금 문제는 임단협만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임단협조차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구조조정 노동유연화가 전면화 제도화 일상화되면서 노동자들의 생존권과 민주적 권리는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에 맞선 대중적인 정치투쟁 전선이 형성되지 못함으로써 기업별 임단협조차 전체 자본의 공세로 위협받고 있다. ‘노동운동 위기’의 진정한 원인은 ‘임단협 중심의 전투적 조합주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임단협을 신자유주의 공세에 맞서는 전체 노동자의 투쟁으로 이끌어 낼 수 있는 대중적 정치투쟁 전선의 유실에 있다.
‘투쟁 만능주의’라는 비판에 대해서도, 지금 노동현장에서 문제로 되고 있는 것은 ‘투쟁 만능주의’가 아니라 투쟁조차도 제대로 조직하지 못하고 있고, 조직된 투쟁조차 형해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1~2년간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전투적인 투쟁만이 민주노조운동의 명맥을 이어나가고 있을 뿐이다.
‘전투적 조합주의’의 극복 문제는 확실히 현 시기 한국 노동운동이 당면하고 있는 최대의 과제이다. 그러나 여기서 극복해야 할 지점은 ‘조합주의’이지 ‘전투성’은 아니다. ‘조합주의적 전투성’에서 ‘계급적 전투성’으로의 진전만이 ‘전투적 조합주의’를 극복해 나갈 수 있는 길이다. 여기서 ‘계급적 전투성’이란 국가와 자본에 대한 계급적 대립, 특히 신자유주의적 시장 경쟁논리가 전면화되고, 사회적 합의주의 공세를 매개로 제도화될 수 있는 상황에서 ‘사회적 합의’를 통한 계급타협이 아닌 정규직-비정규직간의 ‘계급적 단결’에 기초하여 ‘반신자유주의’를 ‘반자본’ 변혁투쟁으로 진전시켜 나가는 것을 뜻한다. ‘계급적 단결’에 기초한 반신자유주의 투쟁전선을 분명히 할 때에만 노동운동은 자신의 주변에 대다수 국민들을 결집시켜 나갈 수 있다. 96~97년 총파업투쟁은 이 가능성을 현실에서 확인시켜 주었다.
기업별 노동조합주의의 극복과 산별노조의 건설 역시 이러한 정치적 방향과 결합하여 이루어져야 한다. 산별노조의 건설 그 자체로 ‘조합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사회적 합의주의 노선’, ‘사회개혁 노선’과 결합된 산별노조 건설이나 조직 노동자들만의 조직 형식 전환을 통한 산별노조 건설 모두 조합주의를 극복해 나가는 과정이 아니라, 조합주의의 확대로 귀결될 것이다.
동시에 ‘전투적 조합주의’의 극복은 ‘현장성’의 강조 그 자체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노동운동이 현장조직력 약화와 무력화로 고통 받고 있는 것은 현실이지만, ‘현장 투쟁’ 자체만을 강조하는 것으로는 ‘조합주의’를 극복할 수 없다. 이미 한국의 노동운동은 전계급적 투쟁을 경험해 왔고, 현 시기의 계급 대립도 전국적 전사회적인 수준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현장의 투쟁동력의 복원은 전국적 전계급적 관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한국 노동운동이 ‘위기’인 것은 ‘위기론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낮은 조직률’, ‘대공장 정규직 중심’, ‘임단협 중심의 전투적 조합주의’ 때문이 아니다. 기업별 노조체계의 한계도 물론 산별노조 건설을 통해 극복해 나가야 하지만, 위기의 근본원인을 ‘기업별 노조체계’ 그 자체로 환원시킬 수는 없다. 한국노동운동이 진정으로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면, 그것은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노동유연화 공세에 맞서, 반세계화 반신자유주의 투쟁을 반자본 투쟁으로 진전시켜 나갈 정치적 전망을 가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고, 그 정치적 전망을 구체화시켜 나갈 주체를 조직적으로 세워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민주노조운동이 최근 민주성과 자주성, 연대성의 위기에 직면한 것은 바로 이 점 때문이다.
“신자유주의가 형성시켜 온 현재의 계급투쟁의 물질적 조건은 분명 계급적 단결과 전국민적 저항을 요구하는 것인 반면 그것의 투쟁 형태는 여전히 ‘단사’와 ‘현장’, ‘노조’ 내적 이해 관계, 경제적 이해 관계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으며 오히려 개별화되고 개인화된 ‘생존의 덫’에 걸려 허우적대고 있다. 이것은 본질적으로 신자유주의가 ‘계급’으로서의 실천을 요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현실에서의 실천과 투쟁은 지배계급의 포섭과 분할 전략을 따라 ‘계급의 해체’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물질적인 조건은 분명 ‘계급적 실천’, ‘계급으로의 통일성’을 생산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노동운동은 이 물질적 조건을 ‘계급적 투쟁’으로, ‘계급적 실천’으로 바꾸어 놓고 있지 못하다. 그리고 이것이 오늘날 반신자유주의 투쟁을 좌초시키는 근본적인 원인 중에 하나이다. ‘노동자·민중’들의 ‘생존투쟁’은 그것이 ‘계급’적 실천으로 조직화되지 않는 이상, ‘개별, 개인’의 생존이라는 ‘덫’으로 회귀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 이와 같은 객관적 조건이 현실적인 계급투쟁으로 드러나기 위해서는 노동자계급이 ‘경제적 이해의 틀’을 벗어나야 한다. 그것은 이미 부르주아 정치와 근본적으로 다른 정치, 노동자계급의 자기 통치 행위로서의 ‘정치’, 부르주아 정치질서를 본질적으로 파괴하고 대체하는 노동자계급 자신의 권력을 구축하는 실천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계급적 노동운동의 전망

확실히 한국의 노동운동은 최근 몇 십년간 경험해 보지 못했던 새로운 과제들에 직면하고 있다. ‘고용 없는 성장’, ‘사회 경제적인 양극화의 심화’, ‘대중 빈곤’, ‘고령화’ ‘생산의 해외 기지화’ 등 새로운 자본축적 구조의 변화에 직면하고 있다. 북핵 위기를 계기로 한 남북관계의 진전과 동북아 지역의 정치군사적 긴장은 노동운동에 새로운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노무현 정권은 비정규직 입법과 선진노사관계 로드맵을 강행함으로써 향후 몇 년에 걸쳐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걸 맞는 노사협조체계를 구축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노동운동은 변화하는 정세에 조응하여 다시 한 번 자신의 혁신을 통해서든 새로운 주체의 형성을 통해서든 사회변혁운동의 대중적인 교두보로서 스스로를 세워나가야 한다. 그 기조와 방향은 ‘사회적 합의주의’가 아닌 ‘계급적 단결’, ‘조합주의적 관료화’가 아닌 ‘아래로부터의 현장 민주주의’, ‘변혁적 노동자민중연대를 중심으로 한 시민운동과의 제휴’, ‘민족주의적, 국가주의적 전망’이 아닌 ‘노동자 국제주의’가 될 것이다.

지금 시기 노동운동이 직면하고 있는 위기, 노동자민중의 생존의 위기는 다른 우회로가 없다. 다시 한 번 민주노조운동이 ‘계급적 단결과 연대’, 그리고 그에 바탕하여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노동유연화에 맞선 전국적인 대중투쟁전선을 복원해 내는 것만이 유일한 방안이다.
이를 위해서는 대공장 정규직 노동자들이 이제 수세적이거나 방어적인 태도를 버리고 계급적 단결과 투쟁의 주체로 나서야 한다. 특히 비정규직 노동자들과의 연대는 정규직 노동자, 노동조합이 직면한 위기 극복의 전제이자 주요한 조건이다. 불법파견투쟁, 비정규직 노동자들과의 연대에서 정규직 노동자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지 못했을 때, 그 결과는 조직의 보존이 아니라, 조직의 타락, 정규직 노동자들의 국민적 고립 등으로 나타날 것이다.

나아가 ‘계급적 단결’의 정치적 방향을 분명히 해야 한다. “미국 등 선진제국, 초국적 자본, 국제금융기구 등이 주도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한 반대투쟁은 노무현 정권 반대만으로 완수될 수 없겠지만 초국적 (금융)자본의 이익을 담보하는 노무현 정권에 대한 반대를 경유하지 않고는 시작조차 될 수 없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적극 추진하는 정권과의 전선을 치지 않는 어떤 전술운용도 실패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이 점에서 노무현 정권과의 사회적 타협체계를 구축하려는 어떤 시도에 대해서도 분명하게 선을 그어 나가야 한다.
신자유주의 아래서는 근본적으로 사회적 합의주의는 비극적 종말일 뿐이라는 점을 드러내는 총체적인 정치폭로가 현장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신자유주의 정권은 노동자의 노동에 대한 전반적인 권리를 박탈하고 끊임없이 불안정하고 빈곤한 상태로 몰아붙인다. 그리고 그들의 분노가 폭발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하고자 한다. 그러나 그들이 말하는 사회보장이란, 실제로 고통받는 민중의 삶을 실제로 진전시키지 못한다. 노동권이 박탈된 상태에서 사회보장이란 허구일 뿐이다.” 빈곤, 양극화, 일자리 창출은 더 이상 노동자민중진영만의 화두는 아니다. 한국 사회 모든 정치 사회세력의 화두다. 이를 자본의 위기 관리와 위기 통제의 틀로 한정시키려는 시도에 맞서, 반자본의 정치적 전망과 기획으로 진전시켜 나가야 한다.

노동자계급의 하나의 계급으로의 단결은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구조조정, 노동유연화를 대세적 흐름으로 인정하는 한 불가능하다. 그것은 현 시기에는 자본주의를 넘는 대안사회에 대한 정치적 전망과 그러한 정치적 실천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지배세력의 헤게모니적 노동포섭전략으로부터 이데올로기적·정치적·조직적 독자성 유지하고, 대안적 정치세력으로 발전해 나가는 것은 노동자계급정당 건설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노동자계급정당은 80년 이후 한국 노동운동의 발전의 총화로서, 현시기 지구화한 자본의 신자유주의 공세에 맞선 노동자투쟁의 정치지도부여야 한다. 이를 통해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사회의 전망을 대중적으로 현실화해 나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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