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의 월간지 현장에서 미래를

[112호]자본축적구조의 변화와 노동운동의 대응2

특집: 노동운동 출구를 찾자(4)

자본축적구조의 변화와 노동운동의 대응 2

이은숙 / 한노정연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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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1980년대, 자본집중의 심화와 독점자본 지배의 공고화

(지난 호에 이어) 독점 재벌그룹은 80년대 이래 한국경제를 완전히 지배하게 되었다. 1985년 현재 광공업 제품 출하액의 40.2%, 부가가치의 33.1%, 고용의 17.6%를 30대 그룹이 차지(<표6>)하였는데, 이것은 독점자본이 중소기업 부문을 거대하게 하청계열화하고 있음을 고려할 때 엄청난 지배력임은 말할 필요가 없다(각주 : 광공업 매출액을 보면 그 지배력은 더욱 확연히 드러난다. 1987년에 이미 45%, 1991년에는 48%에 달하고 있었다. <30대 그룹의 광공업 매출액 비중> (단위: %)(첨부파일 참조)).


<표6> 거대 기업집단의 광공업 점유율 추이(첨부파일 참조)

특히 10대 재벌그룹의 경우 1979년에 총 매출액이 10조 1,820억원이던 것이 1989년에는 77조440억원에 달하여 그 기간 중 7.56배나 증가하였는데, 그것이 경상 GN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79년 33%에서 89년에는 54%를 차지하는 규모이다. 10대 재벌이 국민 총생산의 절반 이상을 점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확대 속도는 GNP 증가속도 보다 훨씬 빨랐다(각주 : <10대 재벌의 매출액과 GNP 비중>(1979-1989)(첨부파일 참조)).
이에 따라 전체적으로 시장의 독점성이 증대되어, 공정거래위가 매년 지정·고시하는 시장지배적 사업자(품목)은 83년에 57개에서 1990년에는 135개에 달하고 있다. 그리고 그 독과점은 거의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다. 경쟁의 제약을 받지 않고 있는 것이다. 말할 필요도 없이 시장지배적 사업자는 대부분 재벌 계열사들이다.


6) 1990년대 후반 자본축적구조의 재편

(1) 세계자본주의와 1997년 한국의 경제위기

70년대 말과 80년대 말에 각각 경제위기를 경험한 한국경제의 97년의 위기는 과거에 비할 수 없을 만큼 경제 전체를 뒤흔들었는데, 이는 80년대 중반기를 지나면서 세계 10대 교역국으로 팽창한 한국경제의 규모 확대와 함께 90년대 중반기의 시점에서 세계자본주의의 요구에 의하여 구조재편 압박을 심대하게 받게 된 점과 관련되어 있다. 특히 1995년 12월 경제협력기구(OECD) 가입은 70년대 중반부터 만성적 불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선발 자본주의 국가들의 (국경 바깥에 있는) 내부시장으로 편입되는 것을 의미하고 있었다. 따라서 한국경제의 위기는 세계 자본주의의 위기 상황과 밀접하게 연관되면서 전개되었다.
오늘날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불황에 빠져 있는 세계자본주의는 극도의 불안정성을 노정하고 있는데, 그것은 과잉축적모순의 심화와 함께 거대한 규모로 형성되어 있는 초국적 금융자본에 의하여 가속화되고 있다. 동시에, 각국간의 불균등 발전의 골은 더욱 심해진 와중에서 전 세계를 무대로 움직이는 초국적자본에 의하여 갈수록 세계시장 통합의 필요성이 증대되었다. 이러한 초국적자본의 운동은 이른바 ‘신자유주의’에 의하여 뒷받침되고 있다(각주 :‘신자유주의’는 세계적 수준에서의 독점자본 지배체제의 지배전략으로서 초국적 자본의 세계 자본주의 재편 전략이다. 그것이 1970년대부터 만성화된 세계 자본주의의 축적위기에 대한 대응으로 등장한 것임은 재론할 여지가 없다. 신자유주의의 핵심은 자본의 축적조건에 걸림이 되는 모든 규제를 공격대상으로 하여 자본의 축적구조를 보장하는 것이다. 이는 축적의 고도화로 인하여 발생하는 자본의 이윤율 저하 경향에 대하여 이윤량을 통해 만회하고자 하는 거대 초국적 자본의 전 세계 시장 쟁탈전략이기도 하다. 따라서 국경(과 국민국가적 규제)을 포함한 모든 자본운동의 제약조건을 약화, 해소하는 것을 방향으로 하고 있다. 경제의 개방, 자율화(자본에 대한 규제 완화), 공기업 민영화, 노동시장 유연화, 자본에 대한 노동자 계급의 집단적 대항체로서의 노동조합운동과 노동자 계급정치 세력의 무력화 공격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선발자본주의 국가들은 가장 ‘경쟁력 있는’ 자본으로서 가장 지배력이 큰 초국적자본의 이윤추구논리에 입각하여, 그간의 축적으로 형성되어 있던 거대한 자본력과 군사력을 바탕으로 대외적으로는 시장개방과 탈 규제를, 대내적으로는 노동자·민중에 대한 수탈구조의 강화 맥락에서 조직적 저항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철저히 규제하고 무력화시키는 방안을 추구하고 있다.
신자유주의의 시장개방요구는 후발 자본주의국에 대해서는 물론이고 선발자본주의 국가간에도 격렬하게 나타나는데, 타국에 대해서는 제국주의적으로 개방을 요구하고 자국 시장에 대해서는 보호주의적 정책을 강화하면서, 국가간 시장개방과 보호주의를 둘러싼 치열한 각축이 벌어지고 있다. 소위 ‘국경 없는 경쟁’ 혹은 ‘무한경쟁’이라는 것의 근원은 이렇게 격화일로를 걷고 있는 자본(특히 초국적자본)간 경쟁의 한 표현이다. 전 세계적으로 자본간 및 총자본으로서의 국가 간 경쟁은 더욱 격화되는 한편, 국가 간 자본 및 상품 거래의 상호의존성이 심화되었다. 이로 인해 한 나라의 경제가 파산상태에 이르면 타국의 경제도 타격을 입게 되는 위기의 연쇄 고리가 강화되었다.
이와 같은 세계자본주의의 전개는, 한국과 같은 후발(혹은 후후발) 자본주의 국가에게는 무조건적인 대외개방 압력, 덤핑판정 공세 등으로 밀려오게 되었지만, 선발 자본주의 국가들은 자국 시장에 대한 보호주의적 경향을 강화하는 것과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한국경제의 위기는 본질적으로 이와 같은 세계 자본주의의 전개 속에서 냉전논리에 입각하여 급속한 성장을 구가하여 온 독점자본(재벌) 중심의 한국자본주의가 그 성장을 담보해 주었던 세계자본주의 체제의 전반적 위기 상황에 따라 재편요구를 받게 된 것의 가장 폭력적인 표현이다.
그것은, 그동안 외부로부터는 ‘개방’요구, 내부로부터는 ‘세계화’로 강조되었던 대외개방문제를 통해 살펴보자면, 요컨대 세계자본주의의 금융투기장화 과정 속에서 한국의 금융시장 개방문제가 우르과이라운드 협상의 ‘써비스 시장 개방’ 항목에 포괄됨으로써 경제 전체가 초국적자본의 투기장으로 변할 가능성이 현실로 다가오고, 내부적으로는 그 시기에 이미 고정화되어 있던 재벌형 독점자본 지배의 축적구조가 그 대외의존성으로 인하여 초국적자본의 개방 요구를 수용하지 않을 수 없게 되어 있던 점에서 경제위기의 가능성은 고조되고 있었다. 게다가 주요 수출산업에서의 과잉축적과 독점자본의 투기적 운동이 결합되어 재무구조는 급격히 악화되어 있었고, ‘재벌’의 특혜·비리를 통한 사업방식이 교란되면서 경제를 지배하고 있던 독점재벌이 잇달아 부도사태에 휩싸이게 되면서 위기가 심화되었다.

(2) 국내 총자본의 신자유주의 전략과 구조조정

1993년 집권한 김영삼 정권이 내걸었던 ‘세계화’와 ‘신노사관계 구상’은 앞에서 말한 조건 속에서 국내외 독점자본에 의하여 기도된 한국자본주의의 재편요구를 압축하여 드러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초국적자본의 압력을 정치권력과 독점자본이 피해 갈 수 없는 조건에 있다는 점은 경제의 대외의존구조에 의하여 이미 주어진 조건이었기 때문에 국내 독점자본은 경제개방을 수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더욱이 국내 독점자본도 해외진출을 적극화하고 있었기 때문에 경제개방 논리 그 자체가 독점자본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자기의 텃밭에서 해외자본과 경쟁하여 시장을 내주어야 하는 조건이었기 때문에 국내 독점자본은 김영삼정권의 ‘세계화’ 구상을 “준비부족”이라고 공격하는 한편, 개방은 그들에게 대세였기 때문에 초국적자본이 들어오면 그들에게 밀릴 것은 뻔하였으므로 노동자를 쥐어짜서 그것을 만회하고자 하는 데로 집중하게 되었다. 정치권력도 그 점에서 같은 인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정리해고제 등 노동시장 유연화 조치들을 핵심 지점으로 하여 노사관계‘개혁’이 전면에 나오게 되었다.
이렇게 하여 소위 ‘신노사관계 구상’은 독점자본의 지지 속에 ‘노사관계개혁위원회’(이하 노개위)가 만들어지고 초국적자본의 개방 압력에 대한 일종의 ‘최선의 준비’로서 노동시장‘유연화’를 추진하게 된다. 그랬기 때문에 김영삼 정권은 개악된 노동법의 ‘날치기 통과’까지 감행할 수 있었다.
그러나, 가장 수월하게 국내 독점자본의 이해를 지켜주면서 초국적자본의 무차별적인 진입을 일정하게 막아내고 노동자와 민중을 국내외독점자본의 착취와 수탈에 순응하도록 만들려던 노동관련 법 날치기 통과는 결국, 노동자계급의 밑으로부터의 완강한 저항에 의하여 96년말~97년초 총파업투쟁에 의하여 저지당하게 되었다.
이 때 노동자계급의 ‘노동시장 유연화’에 대한 전면적인 공세는 세계에서 유래 없는 가장 정당한 노동자의 투쟁으로서 기록될 것이다. 그러나 이 총파업투쟁은 정치권력과 독점자본의 교활한 공작에 의하여 결국에는 정치권력의 명줄을 이어주고 독점자본의 요구가 실현되는 것으로 마무리되게 된다. 노동자계급 대중이 핵심적으로 거부하고 투쟁으로 맞선 정리해고제가 법제화되고 변형시간제도 부활되었다. 정리해고제 2년 유예 대신에 정치권력과 독점자본은 3자개입 금지 조항 및 정치활동 금지 등을 일부 개정하였을 뿐이다.
그러나 ‘노동시장 유연화’는 노동조합의 활동기반 자체를 뒤흔들어 놓고 있다. 그리고 노동자계급의 투쟁동력을 사그러 들게 하고 전 사회의 이목을 노동자의 투쟁으로부터 떼어놓은 한보그룹 부도사태가 터졌다. 국내 독점자본의 재무구조는 잘 알다시피 형편없이 부실하다. 정치권력은 이를 기화로 반전을 노렸을 법 하지만 (그리고 한보그룹 노동조합이 ‘노사화합 무쟁의 회사 살리기’ 선언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한보그룹은 대전충남지역 경제를 아수라장으로 만들면서 결국 부도처리 되었고(그리고 최근에 해외매각 되었다) 연이어 삼미특수강, 기아자동차 등으로 연쇄부도 고리를 형성하면서 정치권력이 수습 불가능한 지경으로 몰리게 되었던 것이다.

한편 노태우정권기부터 이미 시작되고 있었던 금융시장 개방은 김영삼정권에 이르러 본격적인 일정에 오르게 되어 97년이 되면 이미 단기자본시장까지 외국자본의 투기대상이 되기에 이르는 등 해외 자본의 국내 진입이 가속화되고 있었다. 동시에 국내 독점자본은 연쇄부도사태를 내고 있었다. 정치권력에 기대어 육성되고, 권력의 힘으로 유지하면서 거대한 공룡이 되어 한국경제를 좌지우지하고 있던 독점자본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하자 그때까지 해외직접투자액을 늘리면서 ‘세계는 넓다’고 외치는 한편으로 OECD에 가입하면서 ‘이제는 선진국’이라고 외쳐대던 정치권력과 독점자본은 서로 책임을 전가하면서 허둥대기 시작하였다.
97년 12월의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11월까지 이와 같은 사태가 계속되었으며, 결국에는 초국적자본의 이해대변체인 IMF(국제통화기금)에 구제금융을 요청함으로써 IMF 관리체제를 자청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정치권력과 독점자본에게는 자신들에게 부족한 ‘경쟁력’을 채워나가는 것으로 정당화될 수 있었지만 앞에서 살펴본 신자유주의의 성격이 분명하게 알려주듯이 노동자와 민중에게는 하등의 정당성도 갖지 못하는 것이었다.
요컨대 김영삼정권의 ‘신경제정책’(1993)과 ‘세계화 구상’(1994)은 80년대 후반기의 경제위기에 대한 총자본 차원의 대응이며, 핵심은 신자유주의적 구조개편에 있었다. 그러나 김영삼 정권은 독점자본의 입장에 기반하여 노동자계급에 대한 신자유주의 강요에 집중하다가 노동자계급의 전면적 저항 속에서 자멸의 길을 걸었고, 독점자본은 정치권력의 ‘무능’으로 노동자계급에 대해서는 권력의 우산에 기대어 통제할 수 없게 되고 따라서 초국적자본의 개방요구에 대해서는 속수무책이 된 상황에서 처하게 된 것이다.

경제위기의 한복판에서 집권한 김대중 정권은 IMF에 기대어 철저하게 신자유주의적으로 경제위기에 대응하면서 경제구조의 재편(‘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에 착수하게 되었다.
김대중 정권에 의해 1998년부터 추진된 구조조정은 민간 사기업 부문뿐 아니라 금융부문과 정부 및 공기업부문을 모두 포괄하고 있었으며, 노동시장 부문에 대한 대대적인 유연화 프로젝트가 진행되었다. 한편으로는 자본의 집중을 촉진 강화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독점자본 지배체제의 재생기반을 위하여 대규모 공적 자금이 투여되었으며, 자본 축적의 본원적 조건인 노동력 구조의 재편과 함께 노동자 계급운동의 해체를 통한 자본축적 조건의 안정화가 도모되었다. 바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프로젝트이다. 이는 대대적인 자본축적 조건의 재편을 통한 자본의 위기 극복전략으로서의 ‘신자유주의’를 근본으로 한 자본의 전략이었다.

김대중정권은 먼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선행조치를 취하였다.
첫째로, 노동자계급이 지난 96말~97초 총파업투쟁과 같은 전국적인 투쟁의 조직화를 봉쇄하고자 조합주의(코포라티즘) 기구인 ‘노사정위원회’를 만들었다. 둘째로, ‘노사정위원회’에서 지난 총파업투쟁 때 2년 유예시켰던 정리해고제를 즉각 실시하도록 하는 한편 그 당시에는 법제화 명부에만 올랐을 뿐 실행하지 못하였던 노동자 파견제 법을 제정하도록 만들었다. 셋째로, ‘노사정위원회’에서 독점자본으로 하여금 스스로 자체‘개혁’을 하도록 ‘재벌개혁 5대 원칙’을 승인하게 만들었다.
외환고갈로 인한 단기외채 상환능력의 부재에 대응하기 위한 ‘외자유치’ 정책을 포함하여 위의 모든 사항들이 초국적자본의 이해관계와 하등의 갈등소지가 없었다. 다만 국내 독점자본(재벌)은 위 세 번째로 인하여 불만의 소지가 있었지만, 김영삼정권기에 이미 난장판이 되어 어떤 재벌이 보아도 명백한 듯하였던 ‘경제위기’가 그 불만을 봉쇄하였다. 그리고 IMF의 요구에 맞추어 초긴축의 금융 및 재정 정책을 통해, 이미 진행되고 있었던 대량의 부도사태와 대량실직사태를 오히려 증폭시켰다.
98년 4월~6월까지 이와 같은 사전정지작업이 진행되었고 동시에 구조조정 시나리오가 잡혀 나오기 시작하였다. 그 중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은 노동자계급의 저항봉쇄와 재벌구조 개편에 있었다.

김대중 정권의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은, 우선 1998년 정리해고제 전면 실시를 비롯하여 노동시장 유연화에 필요한 제반 법제도를 정비함과 동시에, 경제위기 국면을 이용한 노동조합운동 세력의 체제내 포섭을 통하여 노동조합운동의 안정적 제도화를 진행하고, 금융기관을 통하여 민간 사기업에 대한 대대적인 구조개편에 착수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먼저 1998년 2월 정리해고제 즉시도입 문제에 대하여 민주노총까지 포함한 ‘노사정 합의’로 처리하였고, 1998년 8월까지 비은행 금융기관 79개(각주 : 종금사 16개, 증권사 4개, 투신사 2개, 생명보험사 4개, 상호신용금고 17개, 신용협동조합 36개 등.)에 대한 인가취소 혹은 영업정지와 함께 5개 시중은행에 대한 퇴출명령, 그리고 그 외 금융기관들에 대해서는 BIS 기준 8% 충족을 위한 자구책을 마련하도록 하였다. 이로 인해 금융기관간 통폐합과 외자 제휴 등이 가속화되어 금융기관의 거대화(각주 : 5개 퇴출은행은 각기 자산인수방식(P&A)으로 국민은행 등 5개 은행에 의해 통폐합되는 한편, 국민은행은 다시 장기신용은행과 합병하고, 상업은행은 한일은행과 합병하였다. 이러한 금융기관의 통폐합은 2000년대 들어서까지 계속된다.)가 진행되었다.
민간 사기업 부문에 대한 ‘기업구조조정’은, 부실 채권 처리와 사업구조 개편을 축으로 하여 진행되었다.
1997년 공황기 정부가 금융기관을 통해 판별작업을 벌인 데 따르면, 당시 총 118조원 규모의 ‘부실 혹은 불건전 여신’이 쌓여 있었고, 그 중 정리대상 부실채권은 100조원으로 예상되었다. 정부는 이에 대해, 50조원은 금융기관 손실처리, 25조원은 담보매각을 통한 금융기관에서의 회수, 그리고 나머지 25조원은 정부가 성업공사를 통해 매입하는 방식으로 처리하였다. 동시에 ‘기업구조조정 5대 원칙’(각주 : 기업경영의 투명성, 상호채무보증 해소, 건전한 재무구조, 핵심기업의 설정 및 중소기업과의 협력 강화, 지배주주와 경영자의 책임성 강화 등.)을 통해 재벌의 지배구조를 개편함과 동시에 각 개별자본의 중복적 사업을 ‘빅딜’로 해소하고, ‘워크아웃’(재무구조개선)을 통해 ‘경쟁력’ 없는 자본의 퇴출을 통해 자본의 경쟁력을 보강하기 위한 대대적인 자본구조조정을 진행하였다(각주 : 주요한 제도적 조치로서, 1998년 2월 공정거래법 개정, 4월에 뮤추얼펀드시장 개방과 기업구조조정기금 설치, 자산담보부 채권(ABS) 발행, 3조원 규모의 토지공사 채권 발행을 통한 기업보유 부동산 매각 촉진 방안 등을 담은 ‘금융-기업 구조개혁 촉진방안’을 내놓았고, 5월에는 증권거래법을 개정하였다. 또한 1998년 8월에는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 및 기업교환(빅딜)에 대한 세제지원’ 방안을 발표한다.).


김대중 정권의 구조조정은 경제구조(=자본축적구조)를 변화시켰다. 이미 80년대부터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는 서비스산업화와 함께 독점자본의 경제 지배력이 더욱 증대되는 한편으로 중소영세자본의 재하청계열화가 진행되고 있다. 외국자본의 국내진출 본격화로 인하여 외자의 경제 지배력이 크게 증대하고 있으며, 국내 소득격차는 갈수록 심화되면서 고정화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3) 1997년 경제위기 이후 자본의 집중과 독점자본 지배구조의 변화

1997년 경제위기와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독점자본의 지배구조에 변화가 일어나는데, 가장 큰 요인은 IMF 외환위기 이후 전면화된 정부의 기업구조조정과 재벌들의 내부 합리화 과정이다. 이로 인해 재벌그룹 내에서도 재편과 분화과정이 일어나는데, 대표적으로는 1999년 대규모기업집단 지정(공정거래위원회, 1999.4.2)에서 1위를 차지한 현대의 경우이다. 99년에 62개의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었던 현대는, 2000년대 들어 그룹계열사 구조조정을 통해 현대그룹, 현대자동차그룹, 현대중공업그룹, 현대백화점그룹 등으로 분화하여 2003년에는 현대 계열사가 12개로 대폭 축소되는 한편 자동차그룹, 중공업그룹, 백화점그룹이 각각 25개, 6개, 18개의 계열사를 거느리는 소그룹으로 분화하였다. 2005년에도 LG그룹이 LG와 GS로 분화하였다.
이러한 재벌의 분화과정은 재벌의 해체라기보다는 오히려 자본의 독점자본으로의 집중과정으로 파악된다. 이를테면 현대자동차그룹의 경우, IMF 이후 기아자동차 및 아시아자동차를 인수하였고, 현대중공업그룹의 경우 같은 기간에 한라중공업을 인수합병하였다.
한편 99년도에 기업순위에서 2위를 차지한 것은 놀랍게도 99년 7월에 부실처리 대상이 되어버린 대우그룹이다. 대우는 72년에 2개의 계열사에서 79년에는 34개로 70년대에 역시 집중적으로 몸집을 불렸다. 99년 대우그룹의 부도사태와 해체과정은 한국경제의 모순 그 자체를 그대로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이다.
이렇게 1998년부터 2000년에 걸친 IMF 관리체제 3년 동안의 대대적인 기업구조조정 과정에서 수많은 기업체가 도산하거나 강제 퇴출되거나 통폐합되는 과정에서 자본의 집중과 지배구조 변화가 동시에 일어난 것이다. 그 기간 중 대표적으로 대우그룹 34개 계열사와 동아그룹 15개, 한라그룹 17개, 기아그룹 10여개 등이 도산하여 제외되었다.

한편 독점자본(재벌) 지배구조의 변화와 독점 심화의 한 단면을 볼 수 있는 것은 정부(공정거래위원회)에서 지정하여 관리하고 있는 대규모 기업집단(그룹)(각주 : 기업집단: 동일인(총수)가 사실상 그 사업내용을 지배하는 회사들의 집단. 00그룹 등.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 및 채무보증제한 기업집단: 동일한 지배관계 하에 있는 소속 국내 기업들(계열사들)의 자산총액 합계 규모 2조원 이상. 출자총액제한 기업집단: 소속 계열사들의 자산총액 합계 규모 5조원 이상. 공정거래법상 (1)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에 속하는 기업들에 대해서는 계열사간 상호출자 금지, 계열사에 대한 채무보증 금지, 금융회사 보유 계열사 주식에 대한 의결권 행사 제한, 대규모 내부거래 공시 등의 의무 부과. (2) 출자총액제한 기업집단에 속하는 기업들은 상호출자제한 기업이 지는 의무에 추가로 회사 순자산의 25%를 넘는 타회사 주식취득 금지 의무 부과.)현황이다.(<표7>)

<표7> 상호출자 제한 기업집단 지정 현황 (단위: 개)(첨부파일 참조)
자료: 공정거래위원회, 2004년도 통계연보, 2005.

1990년대의 대기업집단 추이를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 지정 현황을 통해 살펴보면(각주 : 대규모 기업집단 지정은 1986년 12월 제1차 공정거래법 개정에 의해 1987년 4월1일부터 매년 4월1일을 기준으로 이루어지고 있는데, 1993년부터 2001년까지는 자산 규모가 아니라 소속계열사의 자산합계 순위를 기준으로 30대 기업집단을 지정하여 위 각주에서의 (1) (2)의 의무를 부과하다가 2002년 법 개정에 따라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과 출자총액제한 기업집단으로 구분하여 지정하고 있다. 그러나, 소속회사가 금융·보험업만을 영위하는 기업집단과 금융·보험회사가 동일인인 기업집단, 회사정리절차 또는 관리절차가 개시되어 그 절차가 진행 중인 소속회사의 자산총액의 합계액이 기업집단 전체 자산총액의 50% 이상인 기업집단(다만, 회사정리절차 또는 관리절차가 진행 중인 회사를 제외한 회사의 자산총액의 합계액이 2조원 이상인 기업집단은 제외)은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 등 지정에서 제외.), 소속 계열사들의 자산총액 합계 순위를 기준으로 30대 그룹을 지정하기 전인 1992년에 기업집단수는 78개, 그 계열사 수는 1,056개로 최고치를 기록하였다가 1993년부터 30대 그룹으로 채무보증 제한 및 상호출자 제한을 적용시키면서 계열사 수도 줄어들게 되는데, 이는 공정거래법에서 적용 제외되는 그룹과 계열사가 늘어난 것을 의미한다.
한편 1993년 604개에서 출발하였던 30대 그룹의 계열사 수는 1996년에 669개로 3년만에 65개가 늘었으며, 특히 1997년에는 1년만에 무려 150개나 증가하였다. 1997년 공황 때 급속하게 자본의 집중이 이루어진 것을 알 수 있다.
자본의 급속한 집중 추세는 1998년부터 30대 그룹 계열사 수 감소 양상을 통해 수그러드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노동자계급의 고혈로 덩치를 불려온 독점자본 집단간의 극심한 국내외적 경쟁의 소산이자 다른 한편으로는 제국주의적 초국적 자본의 세계 인민에 대한 착취-수탈전략으로서의 신자유주의의 소산인 1997년 한국경제 공황으로 인한 기업지배구조의 변동을 반영하고 있을 뿐이다.(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