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미군기지 이전 8년 연장... "대추리, 도두리 땅 그냥 놀리느니 농사라도 짓게 해달라구!"

$현장$

 


‘힘든 일을 서로 거들어주면서 품을 지고 갚고 하는 일’. 국어사전에 나와있는 품앗이라는 단어에 대한 뜻이다. 초등학교 시절 배운, 누구나 알고있는 단어이지만 요즘 그리 잘 쓰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대추리 김장철이 되면 이 품앗이 진풍경이 벌어진다. 예전의 흙으로 다진 동네길과는 다른 아스팔트로 닦인 빌라 터에서 이루어지는 김장이지만 마을 사람들이 함께 모여 김장을 돕는 일은 여전하다. 작년 김장은 미처 배추를 심지 못해 돈을 주고 배추를 사서 김장을 하느라 그 포기수가 적었는데 올해는 빌라단지 뒷 공터에 그나마 배추를 심었다고 한다. 비록 한나절이었지만 나도 두 팔을 걷어부치고 김장돕기에 나섰다. 자리를 넓게 깔고 빙 둘러앉아 배추 속을 담는 할머니들의 손길이 바쁘다. 여기 저기서 “배추 갖다 놔라”, “밥이 없다” 그러면 열심히 절인 배추 나르고 밥도 퍼다 주고 술 한잔에 김이 모락모락나는 보쌈고기에 배추속 얹어서 안주로 하나씩 집어다 드리고, 이래저래 잔일거리들을 도왔다. (‘밥’은 배추속을 말한다.)


△지난 11월, 대추리는 "김장 품앗이"가 한창이었다.

분주히 왔다갔다 하는 사이사이에 고추와 상추가 심어진 화분들이 눈에 띈다. 채소를 가꿀 텃밭이 없는 주민들은 2006년 4월, 이곳으로 이사오자마자 화분에 고추, 상추, 파 등을 아쉬운 마음으로 하나 둘 심기 시작하셨다. 평생 흙과 함께 살아온 천상 농사꾼인 주민들은 농사에 대한 애착을 이렇게나마 달래고 있는 것이다.

지난 여름 평택시청을 방문한 김지태 대추리 전 이장은 평택미군기지 이전이 2016년까지 연장되고 있으니 그 기간만이라도 확장부지내 영농을 허용해 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미군기지 이전을 조속히 추진해 줄 것을 미 대사에게 간청하는 김문수 경기도지사와 송명호 평택시장, 그리고 대추리, 도두리 주민들을 괴롭힌 당사자인 국방부의 입장은 “영농 불허”이다. 주민들의 요구는 2016년까지 땅을 놀리느니 차라리 농사라도 지을 수 있게 해 달라는 것 뿐이다.

주민들이 요즘 속상한 이유는 또 한가지가 더 있다. 새로운 이주단지가 빨리 조성되기를 바라면서 2년 넘게 기다려왔는데 정부측에서는 당시 합의했던 <대추리>지명 사용에 대해 약속을 지킬 의지가 전혀 없는 것이다. 신종원 대추리 이장은 “행정지명상 대추리로 명명이 되어야 기존에 가지고 있던 번지수로 이사를 갈 텐데 이것을 책임지고 해결해줘야 할 평택시는 정작 신경도 쓰지 않고 있다.”고 말한다. 정부가 지키지 않는 약속은 물론 이 뿐만이 아니다. 오히려 지킨 약속이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할 지경이다.   

미국의 요구니 어쩔 수 없고, 2008년까지 기지를 완공해야하니 주민들이 빨리 이주를 해 줘야한다며 협박하고 재촉해서 기어코 285만평이라는 땅을 강제로 빼앗아 갔던 정부 입장이 참 우습게 됐다. 정부가 이런 우스운 꼴을 당하면서도 기지이전을 연장하게 된 이유는 바로 돈 때문이다.

LPP개정협정(제1조 2항)은 이전을 요구한 측이 시설대체 자금을 제공한다는 원칙에 따라 미2사단 이전비용을 미국이 부담하는 것으로 규정하였다. 따라서 미2사단 이전비용을 방위비분담금에서 충당하는 것은 불법으로 원래 미국이 부담해야 할 비용을 면제해 주고 그 부담을 대신 한국 국민에게 떠넘기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방위비 분담금은 미 2사단 이전비용을 미국에 보장하기 위한 협정으로 전락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미국의 입장에 대해서 국방부와 외통부는 “이미 미국에 준 돈이니 어떻게 쓰든 미국마음이다”, “다 이해한다”고 맞장구 치고 있다.

엄밀히 말하면 방위비분담금 자체도 “주한미군 주둔경비는 미국이 부담한다”는 한미SOFA에 위반되는 사항이다. 그럼에도 미국은 자국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방위비분담금 특별협정>이라는 것을 만들어서 1991년부터 꼬박꼬박 한국정부로터 돈을 받아가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밝힌 지난 8월의 사업관리업체(PMC) 중간보고서에 따르면 미군기지이전비용으로 미국은 7조5천억원, 한국은 5조8천억원을 부담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10월 9일 미 의회조사국(CRS) 보고서가 밝힌 바에 따르면 미국은 미군기지이전비용으로 7억5천만 달러만을 부담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는 미국이 부담해야 할 미2사단이전비용까지 한국이 방위비분담금 등을 통해 부담하게 되어, 결국 미군기지이전비용 대부분을 한국이 부담하게 될 것임을 뜻한다. CRS 보고서에서도 미군기지이전비용의 대부분을 한국이 부담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에 따라 한미양국의 미군기지 이전비용 부담액을 산정해 보면 전체 기지이전비용은 직간접비용 모두 합해 16조6,678억원이고, 이중 미국 부담분은 9,750억원(7억5천만 달러*1300원)인데 비해 나머지 15조6,928억원은 한국이 부담하게 된다. 비율로 보면 미국은 5.8%, 한국은 94.2%이다. 미국이 부담해야 할 부분을 한국이 방위비분담금과 민간투자에 의한 임대주택 건설사업비로 충당하게 되는 결과다. 이 중 주한미군 가족동반 3년 근무 여건 마련을 위한 임대주택은 우선 민간투자금으로 충당되지만 그에 대한 임대료를 방위비분담금으로 지급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결국은 이 부분도 한국민 혈세가 투입되는 것과 같다.    

그렇다면 기지이전이 연장됨에 따라 발생되는 경제적 손실은 얼마나 될까? 한국은 기지이전이 2015년까지 완료되기를 기대하고 있지만 미측은 2016년까지 연장되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우선 대추리 도두리 주민들이 농사를 제대로 짓지 못함으로 인해 발생하는 손실을 따져보자. 1구간(1500평) 1년치 농사를 지으면 순 소득이 평균 300만원 수준으로 1년치 총 285만평에 해당하는 소득은 약 57억이다. 농사를 제대로 짓지 못한 2006년부터 올해까지만 해도 170억이 넘는다. 게다가 기지이전이 연장되는 2016년까지 농사를 짓는다고 생각하면 수십억의 소득이 추가로 발생할 수 있다. 쌀생산량으로 따지면 대추리, 도두리 일대 285만평에서 연간 4,560톤이 생산가능한데, 이것은 국민 6만명이 1년 동안 먹을 수 있는 엄청난 양이다.

두 번째, 평택 기지이전과 동시에 반환하기로 한 동두천 미군기지 터 개발이 지연되면서 약 1조원 가량의 경제적 손실이 발생된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요즘 미군기지를 빨리 이전해야 한다고 재촉하며 미대사의 조속한 동두천 방문을 호소하고 있다.

경기도 제2청은 동두천 미군기지 이전이 3년 이상 지연될 경우 지역총생산(GRDP)이 9,421억원 감소하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8일 밝힌 바 있다.

캠프 케이시·호비 등 동두천지역 미군기지 6곳(42.5㎢)은 2007년 3월 한미협약에 따라 2012년까지 평택 미군기지로 이전키로 함에 따라 캠프 님블과 짐볼스 등 2곳은 이미 반환됐으나 캠프 케이시·호비·모빌·캐슬 등 4곳(29㎢)은 아직 반환되지 않았다.


경기도가 경기개발연구원과 공동으로 분석한 결과 이들 4곳이 예정대로 2012년 반환돼 개발될 경우 2015년 지역총생산은 2조7,277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미군기지 이전이 3년 정도 늦어지면 지역총생산은 2조3,148억원으로 4,129억원이 감소한다. 이는 올해 동두천시 예산 1,669억원의 2.5배에 달하는 규모라고 한다.

결과적으로 2012년 반환 이후 2013∼2015년 지역총생산 9조4,446억원에서 2015년 반환돼 그 이후 3년간 발생하는 8조3,378억원을 빼면 9,421억원이 줄어든다고 도2청은 밝혔다.    

 <2008. 9. 9 경기매일신문 최화창 기자>
 

다시 대추리 도두리 주민들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1000일 가까이 매일 밤 촛불을 들며 외쳤던 바람은 한가지였다. 내 땅에서 농사짓고 살고 싶다는 것. 국민을 보호해야 할 정부는 “국책사업”이란 이름으로 모든 것을 합리화시키고 군대와 공권력을 투입하여 그 간절한 바람들을 무참히 짓밟아버렸다. 우리 모두는 평택 대추리, 도두리 주민들을 기억하고 있다. 그 아픔은 애초부터 결코 그들만의 몫이 아니었음이 이제는 서서히 밝혀지고 있는 것이다. 고향을 잃은 대추리, 도두리 주민들의 고통과 나날이 불어가는 평택 기지 이전비용을 부담해야하는 한국 국민들. 이런 사태를 주도한 한국 정부의 책임은 결코 씻어지지 않을 것이다.  


△2006년 3월, 대추초등학교 1차 행정대집행 당시에도 주민들의 바램은 오로지
"올해도 농사"였다.

마지막까지 마을을 지키고자 했던 대추리 40여 가구는 내년 새로운 보금자리를 꿈꾸며 임시거주지인 송화리 빌라단지에서 마지막 겨울을 보내고 있다. 마땅한 농지를 구입하지 못해 올해 농사를 지은 가구는 겨우 2집 뿐이다. 아직 멀쩡하게 풀이 돋아나고, 향후 적어도 2016년까지는 마냥 놀고 있을 그 땅에 농사를 짓겠다는 이들의 바람은 너무나도 정당한 요구이다.

오바마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됨에 따라 한반도 비핵화와 북미수교, 한반도 평화협정 논의가 급물살을 타게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렇게 되면 주한미군, 특히 미지상군 철수는 불가피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미지상군이 집결하는 평택미군기지 확장에도 중대한 변화가 올 것이다. 이런 정세 변화를 외면하고 기지 확장을 강행했다가 이후 엄청난 사회적 낭비가 초래되면 한미당국은 그 책임을 어떻게 질 것인가?  

슈퍼공황, 디플레이션 공포에 떨고 있는 미국과 내년 8조원의 무역적자를 전망하고 있으면서도 엄청난 미군기지 이전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한국정부. 분명한 것은 한-미 양국이 모두에게 이득이 되는 일은 평택미군기지 확장 사업을 당장이라도 중단하고, 그 땅에 먹을거리를 생산하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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