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평통사, 깃발을 들다

$회원 이야기마당$


“쨍그랑”
창립총회 2부 축하한마당에서 가야금, 해금 축하공연을 마치고 막 나가자 마자 문 밖에서 난 소리다.
순간 ‘해금이 떨어져 깨지는 소리다’라고 직감하고 ‘이를 어떻게 수습하나’하며 온갖 생각을 머리에 담고 뛰쳐나갔다.
해금 연주하던 아가씨의 놀라 동그래진 눈의 시선을 따라 바닥을 보았다. 바닥에는 깨어진 플라스틱 그릇과 식혜 밥이 나 뒹굴고 있었다.
순간 얼마나 다행스럽고 고마웠던지 해금이 깨어졌다면……. 휴~

부산평통사의 준비 과정과 창립총회는 이렇게 반전과 좌충우돌, 아슬아슬하게 굽이굽이 고개를 넘어온 것 같습니다.

2003년 8월 동명불원에서 홍근수 목사님 출판기념식을 계기삼아 부산평통사 출범을 시도하였지만 여러 사정으로 2008년 11월에야 다시 불을 지피기 시작 했습니다.

첫 모임이 있던 날, 아홉 분이 모였습니다. 모두 생소하고 조금은 서먹했지만 이내 서로의 눈빛을 읽으며 희망을 나누었습니다. 모두 기존의 통일 운동의 틀에서 조금은 외각에 있거나 저처럼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이라 처음에는 놀랐습니다. 지난 2003년에도 참석하였지만 그 때는 지금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준비위원으로 참석했고 또 각계각층인 것에 비하면 참으로 빈약한 시작이었습니다. 이 자리에서 제가 연락담당을 맡기로 했습니다.


△창립총회를 마치고 모두 다함께

강정구 교수님 초청 강연회를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의직 선생님과 이왈신 선생님이 평통사 본부 회원팀과 더불어 많은 노력을 한 덕분에 강정구 교수님 강연회는 굉장히 성공적으로 치러졌습니다. 60여명이 넘는 분들이 참석하였고 부산에서 이런 시국 강연회도 근래에 드문 일이었고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인 것도 이례적인 것이었다고 합니다. 이곳에 오신 분들의 방명록을 밑천으로 틀을 만드는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2009년 1월부터 본격적인 준비에 들어갔습니다. 무슨 단체 누구, 또 무슨 단체 누구라면서 연락해야 할 명단을 회원 팀으로부터 받았는데 이름은 고사하고 그 단체가 무엇을 하는 단체인지도 모르겠더군요. 참 마음이 답답~하니……. 젊다고 연락 담당을 맡아 놓고 이제 와서 발을 뺄 수도 없는 그런 상황, 대충 아시겠죠? (사실 당시 제가 연락한 것은 별로 없음)

1월 말 안하원 목사의 새날교회에서 모임을 갖고 부산평통사 출범 결의와 준비위원회 구성을 하였습니다.

준비과정에 계속 난제로 부딪친 문제는 중심을 세우는 대표 문제였습니다. 처음에는 공동 대표를 몇 명 세우느냐가 논의 대상이었는데 3월 말까지 한명도 승낙을 받지 못했으니 참으로 답답한 지경이었습니다. 다행히 3월 말이 되어서야 김홍술 목사님이 대표를 수락하시고 김창호 교수님이 지도위원을 수락한 정도. 그런데 3월 배냇골 손재현 선생님 댁에서 저에게 사무국장을 맡으라고 계획에도 없는 급제안으로 당황스러운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능력도 없고 직장생활을 하면서 사무국장을 할 수 없다고 거듭 말씀드려도 손재현선생님은 오히려 일하는 사람이 일을 맡아야 한다며 돌진하시어 이후 사양하느라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낯 뜨겁고 염치없는 말과 일들로 지금와 생각해도 참 죄송스럽게 생각됩니다.

창립총회 일주일전. 박석분팀장이 “최용호씨가 사무국장 수락했어요.”라며 전화를 주셨습니다. 본의 아니게 사무국장 없이 창립총회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되어 4월 내내 미안함으로 마음고생을 했는데 가슴에 있던 돌덩이가 내려간 기분이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연락 담당으로 몇 개월 동안 일하면서 느낀 것이 있는데 평통사의 사람 조직방법이 참으로 피곤하다는 것입니다. 문자 보내고 행사 한참 전에 전화하고 이메일 보내고 행사 며칠 전에  한 사람, 한 사람 또 전화해서 오라고 연락하고……. 참 일 피곤하게 하더군요.

그런데 효과는 확실히 있는 것 같습니다. 강정구 교수님 강연회에도 60명 이상 모인 것을 보고. “부산에서 이렇게 사람들 많이 모으기 힘든데 어떻게 하셨어요?”라고 모 단체 사무국장이 와서 이렇게 말했답니다. “뭐 그냥 한 사람, 한 사람 전화했지요^^”라고 박팀장님이 답하자 “그렇죠? 그렇게 해야 하는데..” 라고 했다고 합니다.

5월 초 낯선 목소리의 전화 한 통이 왔습니다. “나 김00인데 내가 아는 김건우 맞는지 해서 전화했다”고 하더군요. 근 10년 만에 지인으로부터 받은 전화였습니다. 부산평통사 창립총회 이메일을 받고 혹시나 해서 전화해 봤답니다. 그리고는 평통사가 열심히 성실히 진지하게 활동한다는 칭찬을 들었습니다.

창립총회를 며칠 앞두고 난데없는 전화와 칭찬으로 평통사에 대한 자부심이 급상승함을 느꼈습니다. 

5월 9일 창립 총회하는 날.

11시30분쯤 행사장에 도착하여 올라가 보니 꼬장물이 잘잘 흘렀다. “대관료를 줄 것이 아니고 우리가 청소비를 받아야겠네”. 하며 투덜투덜, 여기저기 쓸고 닦고 마음에는 안 들지만 대충 마무리하고 중국집에 음식을 시켰는데 30분이 훨 지나서야 배달이 왔다. 때 맞추어 김홍술 목사님이 오셨다.“ 아~ 잠도 못자고 아침도 못 먹었어요” 라며 한그릇 챙기신다. 앵, 내 짬뽕ㅠㅠ. 목사님 몫은 안 시켰는데…….  

우리 부산평통사는 이렇게 굽이굽이 준비하고 창립총회까지 왔습니다. 부산평통사 창립을 위해 노력하신 모든 분들 고생하셨습니다.

중앙평통사, 지역평통사, 그리고 부산 여러 단체에서 오신 많은 분들의 관심과 애정에 감사드립니다.

반갑다, 평화협정! 잘가라, 주한미군!

창립총회 때 다 함께 외쳤던 그 함성이 부산 구석구석 울려 펴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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