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사람

[사람이 사람에게] 마음을 움직이는 책읽기

새해를 책 이야기로 시작해볼까 합니다. 지난해 말 인권재단 사람의 계열사(?)쯤 되는 도서출판 사람생각에서 『쫄지 마, 형사절차!』란 책을 냈는데 예상보다 잘 나갑니다. 형사소송법이 많이 바뀐다고 하여 쉬운 해설서 하나 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나눈 적은 있지만 실제 기획에 들어가고 이렇게 뚝딱 형사절차 매뉴얼로 나오게 된 데는 2008년 촛불집회 영향이 컸습니다. 그러니 누구 말마따나 이 책이 잘 팔리는 것은 물론 이 책의 탄생에도 이 정부의 기여한 바가 큽니다.


금서목록이 그렇듯 베스트셀러 목록도 그 시대를 어림하게 해줍니다. 교보문고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베스트셀러 1위는 신경숙의 소설 『엄마를 부탁해』입니다. 한 달에 10만부씩 120만부가 팔렸다고 하니 1만부를 목표로 ‘대박’을 염원하는 저희랑 차원이 다르지요. 불황에는 소설이 장사가 된다는 게 출판계 통설이라지만 베스트셀러 2위인 하루키의 소설 『1Q84』는 계약을 하면서 미리 인세를 10억 원이나 주었다고 하니 이 동네의 양극화 또한 만만치 않습니다. 어떤 이는 현재 팔리는 책의 80%를 10여 개 출판사가 내고 있는데 향후 5년 내에 그 수가 반으로 줄어들 것이라 전망합니다. 이뿐만이 아니라 온갖 사회문제들이 출판계에서 더 심하면 심했지 덜하지는 않을 테죠.


소설이 지난해 유독 잘 팔렸다면 경제·경영 분야로 분류되는 자기계발도서들은 여전히 잘 팔렸습니다. 그 중 베스트셀러 9위를 차지한 『넛지』란 책이 있습니다. ‘팔꿈치로 쿡쿡 찌르다’라는 뜻의 넛지(nudge)는 자유주의적인 개입, 부드러운 간섭이라고 합니다. 이를 행동경제학의 선택 설계이론이라고 하는데 책에서는 구체적인 예로 암스테르담 화장실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디서나 남자 화장실 소변기는 골칫거리인가 본데 암스테르담의 한 화장실에서 소변기 주변이 지저분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경고(CCTV 설치)나 캠페인(남자가 흘려야 할 것은 …), 또는 어떤 인센티브도 통하지 않았지만 소변기 안에 파리 모양의 스티커를 붙여놓는 것만으로 새어나가는 소변량을 80%나 줄었다는 것이지요. 이것을 가리켜 넛지라 한답니다. 이 책의 흥행요인 중에는 세계금융위기 이후 ‘모든 인간은 합리적으로 경제활동을 한다’는 주류 경제학의 대전제에 대한 반성이 작동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실제로 미국 오바마 대통령도 즐겨 읽었고 이 책의 필자 중 한 명은 오바마 정부에 스카우트되기도 했습니다. 사실 어떻게 다른 사람의 행동을 변화시키고 그이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까 하는 것은 인권운동에서도 오랜 화두가 아닐까 싶습니다. 인권운동은 기업처럼 인센티브를 줄 수도, 정부처럼 경고나 금지를 할 수도 없으니 말이죠. 그런 점에서 『넛지』는 인권활동가들도 한번 고민해봄직한 주제가 아닐까요?


요즘 책이란 무엇이고 글을 읽고 쓴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자문해봅니다. 한 후배가 선물한 노무현의 유고집 『진보의 미래』를 읽으며 든 생각이기도 하고(그는 왜 대통령을 그만두고 나서, 검찰 조사를 받으면서까지도 책을 쓰고자 했을까요?), 한 온라인 서점이 비정규직 노동자를 해고하자 불로거들이 이에 항의하며 벌이는 불매운동을 지켜보며 든 고민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계기는 독일의 과거청산 문제를 다룬 『더 리더(The Reader)-책 읽어주는 남자』란 소설입니다. 우리 나이로 열일곱 살에 서른여섯 살 한나라는 여자를 만나 사랑하게 된 주인공 미하엘은 데이트를 할 때면 그녀의 요구로 책을 읽어줍니다. 어느 날 홀연히 사라진 한나를 법대생이 된 미하엘은 나치 전범재판에서 보게 됩니다. 재판 과정을 지켜보며 미하엘은 피의자인 그녀가 문맹임을, 그리하여 나치의 명령문을 읽지 못해 최소한 실정법에서는 무죄임을 알게 되지만 한나는 자신의 문맹이 밝혀지는 것이 꺼려 혼자 죄를 뒤집어쓰고 미하엘 또한 고심 끝에 한나의 침묵에 동조합니다. 감옥에 갇힌 한나와 그녀에게 책을 읽어 그 녹음테이프를 보내주는 미하엘. 한나는 가석방을 앞두고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미하엘은 그녀의 유품을 받기 위해 교도소에 갔다가 그녀가 글을 깨치고 가장 먼저 아우슈비츠 생존자의 증언을 담은 책을 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같은 이름의 영화에서는 목매달기 위해 한나는 다름 아닌 이 책들을 딛고 올라섭니다).


옛 어르신들은 “모든 걱정근심이 글로부터 나온다”고 한탄하면서도 손주들에게 글을 가르쳤습니다. 어릴 적 “소설을 좋아하면 가난하게 산다”는 말을 자주 듣고 자랐더랬지요. 둘 다 좋은 의미로 해석하자면 글이 가진 성찰의 힘을 이야기하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반면 글이란 태생적으로 권력 지향적이고, 어쩌면 권력 그 자체가 아닌가 싶습니다. 인터넷과 블로그의 등장으로 넓어졌다곤 하지만 여전히 글을 쓰는 사람도, 책을 내는 사람도, 그것을 분배하고 유통하는 사람도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비판적인 책읽기와 글쓰기에 대한 비판적 사유, 글의 민주주의는 저의 오랜 고민이기도 합니다.


이번 호에서는 생활에서 인권을 만나고 인권을 통해 일상을 변화시킨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일상에서의 작은 변화와 실천을 강조하기는 쉽지만 정작 거기에 주목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 같습니다. 올 한 해 『사람』은 여기에 좀 더 힘을 기울이려 합니다. 2009년은 인권과 관련된 책들이 참 많이 나왔던 해였습니다. 인권활동가들이 생각하는 입문서와 고전은 무엇인지, 활동가들이 권하는 한 권의 책을 보고 올해 독서계획을 잡아보시는 것은 어떨지요?


읽고 나눠야 할 책은 서점과 도서관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도 있음을 1600일을 넘게 싸우고 있는 기륭 해고 노동자들과의 만남에서 새삼 깨닫게 됩니다. 그들의 삶과 투쟁에서 우리가 무엇을 읽어야 할지, 해피엔딩을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함께 머리와 어깨를 맞댔으면 좋겠습니다.


앞서 소개한 『넛지』는 삼성경제연구소가 추천하고 이명박 대통령이 여름휴가 때 탐독한 뒤 참모들에게 선물했다고 하여 유명세를 탔습니다. 기억하시겠지만 그 여름휴가 무렵은 쌍용자동차 공장 위로 최루액 봉지가 투하되고, 헬기에서 줄을 타고 내려온 경찰특공대가 파업 노동자들을 ‘사냥’하던 때였습니다. 새해에는 책이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이고 변화시킬 수 있다는 섣부른 믿음을 더욱 경계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