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사람

[특집] 삼성 없는 미래를 위한 메모

1. 당신이 만난 최초의 ‘삼성’은 무엇이었나?



2. 이 글을 청탁 받은 이후 내내 그걸 생각해내느라 애썼다. 내가 삼성을 처음 알게 된 기원을 알아야 ‘삼성 없는 미래’를 일말이나마 상상할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3. 아이폰의 대공세에 패퇴할 애니콜이 나와 당신의 미래에 미칠 영향이나 혹은 삼성생명 불매 운동이 국내 금융시장에 미칠 파장에 관한 일고찰 같은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물론 그것도 상상하기 어렵긴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그보다 더 거창하게 삼성과 미래를 지향적 좌표가 아닌 지양적 선상에서 바라보려면 최소한 언제 최초로 글로벌 1등 브랜드 삼성과 마주했는지 알아야 할 것이 아닌가.



4. 그런데, 끝내 잘 더듬어지지가 않았다. 몇 가지 단서들은 떠올랐다. 어렸을 적 아빠는 곧잘 이병철과 정주영의 스케일을 비교하곤 했다. 대한민국의 모든 아버지라면 누구나 가질 법한 그런 교양의 시간이었다. 학습자의 입장에선 이런들 어떠하고 또 저런들 어떠한 시간이었지만 어찌되었건 대범한 정주영과 꼼꼼한 이병철의 구도는 오래도록 뇌리에 남았다. 그 시절 사내라면 모름지기 정주영을 닮아야 했다. 참, 그윽한 얘기였다. 미니카와 모형 장난감에 심취해있던 꼬마에게 자동차-중공업-조선으로 이어지는 현대의 라인업은 동경을 넘어 공경을 갖기 충분한 것이었다.



5. 그래서 결정적으로 그때는 아니다. 그때까지 삼성은 누가 보더라도 2등 기업이었다. 지금 내가 알고 있는 삼성은 꼼꼼함이 곧 치사함으로 이해되던 그 시절의 삼성이 아니다. 그렇다면, 대체 언제였을까.



6. 며칠이 지나고 겨우 생각해냈다. 의외로 간단한 것이었다. 내가 삼성을 알게 된 태초의 순간은 『나부터 변하자』란 책이었다.



7. 새삼스러울 건 없지만 약간은 부끄러울 수 있는 고백을 하자면, 어릴 적에 삼성 관련 책을 참 많이도 읽었다. 지금 생각하면 기가 찬 노릇이지만 각설하고, 주로 삼성경제연구소에서 출간하고 송병락, 이원복 콤비가 그린 만화책이었다. 그냥 어쩌다가 손에 잡혀서 읽었던 것이 아니라 일일이 찾아서 사봤다. 솜털이 거뭇한 털보단 약간은 더 비율적으로 우세하던 보송보송한 시절의 일이다.



8. 1990년대 초였다. 그 무렵은 이건희 회장이 ‘신경영’이라는 삼성맨이라면 꿈에서라도 중얼거렸을 유명한 화두를 던진 때다. 그 화두가 더욱 빛났던 것은 본격적인 산업화 이후 비로소 아니 처음으로 삼성이 현대와의 경쟁에서 확실한 비교우위에 서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2등 기업 삼성이 1등 기업으로 도약하던 순간,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너무나 유명한 말씀, “마누라만 빼고 다 바꾸자”는 도발이 바로 그 무렵을 압도했던 회장님의 걸출한 말씀이었다.



9. 글을 쓰며 찾아보니, 『나부터 변하자』는 책의 부제가 ‘만화로 보는 삼성의 신경영이야기’였다. 기억과 인터넷에서 찾은 리뷰를 조합해보니, 그 책의 핵심 키워드는 ‘혁신’이었다. 기억하건데 나는 혁신이라는 영단어가 innovation이란 것을 그 책을 통해 알았고 까닭은 정확히 모르겠으나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은 경이로움에 몸서리를 쳤던 것도 같다. 삼성은 혁신이다.



10. 그런데 문득, 우스워졌다. 아니 우습지 않은가? 최근 이건희 회장이 휘모리장단으로 경영 일선에 복귀한 까닭이 여전히도 혁신 아닌가. 20년 전의 바로 그 혁신 말이다. 매일 새로워져야 하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닐 테고, 논리적으로야 하등 지장 없는 것이겠지만, 다만 한 가지, 회장님의 사전에는 혁신밖에 입력된 것이 없는 것은 분명하다. 아주 오래된 정체, 그 미래 또한 진부할 혁신이다.



11. 다시 한 번 묻겠다. 당신이 만난 최초의 삼성은 무엇이었나?



12. 우리가 알고 있는 삼성은 어쩌면 꽤 오랜 무의식적인 상징화 작업 끝에서야 겨우겨우 맺혀있는 삼성일지도 모른다. 엊그제 누군가 과거 어떤 클럽이 그랬던 것처럼 ‘맨유의 시대’도 저물고 있다 하여 깜짝 놀랐는데, 지금 삼성 역시 맨체스터유나이티드의 경로 혹은 운명과 비슷한 순환 과정에 있는 것은 아닐까? 당대의 누구도 맨유가 지배하지 않는 축구를 상상할 수 없지만, 서서히 맨유가 지배하는 축구의 시대가 저물고 있는 것처럼. 그렇다면, 삼성의 경로 혹은 운명은?



13. 당신도 나처럼 혹은 나와는 조금 다른 어떤 통로를 통해서였는지는 모르지만 하여간 사회 전체가 보증하는 어떤 상징의 보편적 대상으로 삼성을 알게 됐을 것이다. 그리고 오래도록 여전히 삼성에 대한 당신의 인식은 당신이 처음 알게 되었던 대단한 삼성의 지배에 묶여 있는 것은 아닌가?



14. 나와 당신이 삼성을 알게 된 때, 그러니까 삼성이 한국 사회의 절대적 지배자로 군림하기 시작한 때는 우연인지 필연인지 아니면 그 둘이 겹쳐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사회에 대한 병영적 지배 방식이 종결된 시점 그 즈음부터다. 1990년대 초반이라고 해도 좋고, IMF 직후라고 해도 상관없다. 그 무렵부터 삼성은 출판, TV, 신문, 구전 등 모든 매체를 통해 과도하달만큼 무모한, 이미지 ‘홍보’를 시작했다. 집요한 객관화 작업이었다.



15. 홍보, 우리가 흔히 PR이라고 부르는 홍보(public relations)의 사전적 의미는 “공중(公衆)과의 관계를 좋게 하기 위한 행위 또는 기능”이다. 미국의 제3대 대통령이었던 T.제퍼슨이 의회에 제출할 교서에서 ‘public sentiment(공중의 감정)’이라는 표현 대신에 ‘public relations’로 고쳐 쓴 것이, PR이 쓰인 최초의 용례라고 한다. 지금은 그냥 광고의 의미로 쓰인다.



16. 삼성이 비교적 이른 시점부터 “공중과의 관계를 좋게 하기 위한 행위 또는 기능”에 눈을 떴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무노조 등 보편적 상식에 위배되는 갖은 약점에도 불구하고 삼성이 굳건한 까닭은 여기서 찾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결과론이긴 하지만 삼성의 홍보는 대단히 치명적으로 사회의 지배 체제를 변모시켰다. 삼성은 군사독재 정권이라고 하는 거대한 ‘객관적 상징’이 붕괴, 소멸되던 시점 이후 언젠가부터 스스로 새로운 주관적 상징이 되는 놀라운 상징의 창조를 해냈다.



17. 그런데 이건 알고 나면 간단한 원리이다. 공동체는 무의식적으로 신화를 형성하는 경향을 갖는다는 움베르토 에코의 생각을 빌자면, 삼성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바로 이 무의식적인 신화 형성이다. 물론 이러한 신화가 형성되는 노력에 삼성이 의식적으로 개입했음은 물론이고. 삼성은 체제를 물리적으로 독재하던 세력을 대체하여 체제를 화학적으로 독재하고 있는 세력이다.



18. 당신이 언제 삼성을 알게 됐건, 그래서 우리는 모두 삼성을 잘못 꿈꾸고 있는지도 모른다.



19. 삼성, 이것은 거대한 선전이다. 오래도록 누적되어 온 “공중과의 관계를 좋게 하기 위한 행위 또는 기능”을 향한 삼성의 노력이 하나의 거대한 ‘프로파간다(propaganda)’가 되어 이제는 언제인지 기원조차 희미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무엇이 확고하게 우릴 옥죄고 있는 것일 뿐이다. 조작된 설득, 위협, 기만의 선전 전략이 우리가 언제 어떻게 삼성을 알게 됐건 삼성에 대해 제대로 상상하는 것을 방해하고 있다. 내가 삼성 없는 미래를 선뜻 상상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언제 삼성을 알게 됐는가에 몰두한 것 역시 그 때문이었을 테다. 상징조작, 정신조작, 사고조작.



20. 삼성은 비대해진 사회적 욕망의 가장 비루한 현실일 뿐이다. 국가경제 차원에서의 삼성은 나와 당신이 삼시세끼 밥 수저 뜨는데 하등의 상관이 없다. 자본주의는 철저히 시스템이다. 삼성이 그렇다면 현대도 그렇고 LG도 그렇고 코스닥 시가 총액 1위 기업인 셀트리온도 그렇다. 경제는 조직이고 세포로 연결되어 있다. 삼성은 큰 세포이긴 하나 유일무이한 조직은 아니다. 삼성 하나 들어낸다고 경제가 죽는 것은 아니고 삼성을 살려둔다고 자본주의가 더 팽팽 도는 것도 아니다.



21. 삼성이 대한민국을 먹여 살린다는 선전, 그래서 삼성 없는 미래에 대한 상상이 불온할 뿐더러 불가능하다는 언설. 이것은 가장 고도화된 물질성의 지배를 당연시하게 만드는 일종의 공개적 자위일 뿐이다. 천박하다. 이 국가주의의 그릇된 욕망, 공동체의 가상적 자위에 맞선 우리는 당당한 개인이어야 한다. 어쩔 수 없이 대한민국에 포섭되어 있기에 삼성이 대한민국을 먹여 살려주지 않는다면, 당장에 나와 당신의 내일이 불안해질 것 같은 막연한 공포의 노예만 되지 않는다면 삼성 없는 미래에 대한 상상은 어려울 것도 불가능할 까닭도 대책 없을 이유도 없다. Why not?



22. 그래서 나는 삼성 불매운동을 둘러싼 일련의 흐름들이 지나치게 과잉되어 있고, 과장되어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어쩌면 이 모두가 완곡하지만 완벽하게 삼성에게 유리하게 작용될, 조작된 설득으로 남용될 여지조차 있어 보인다. 역설적이게도, 삼성이 세긴 세다는 그래서 뭔가 다르긴 하다는…….



23. 언제나처럼 나와 당신이 그저 삼성을 안 쓰기 시작하면 된다. 애니콜을 쓰지 않더라도 아이폰에도 삼성 반도체가 들어간다더라 하지만, 그래도 애니콜을 안 쓰면 된다. 대체재는 널렸다. 당장 나와 당신이 삼성을 안 쓴다고 한들 삼성이 어찌 되는 것은 아니지만 삼성의 홍보가 그랬던 것처럼 모든 것은 누적된다. 삼성생명에 보험을 가입하지 않고, 삼성노트북 센스를 쓰지 않으면 된다. 그 모든 1/n의 노력이 모여 삼성이 망할 때쯤 되면, 망하는 것이라면, 삼성은 망해야 하는 것이다.


24. 나는 삼성이 미래에 있던지 없던 지에 크게 관심이 없다. 지금도 그 기업에, 기업의 제품에 큰 동경이나 필요도 느끼지 못한다. 존경받지 못하는 기업의 미래, 존경은커녕 대를 잇는 것 자체가 범죄가 된 기업, 로비 자금을 조성하고 전달하는 자리가 가장 빛나는 기업의 미래에 대해 지나친 염려를 거두자. 현행법대로의 처벌을 끊임없이 요구하는 것, 그것이면 족하다. 미래는 없다.



덧붙이는 말

글쓴이 김완은 미디어 공공성을 빙자하여 놀며,무작정 들이대는 언니와 함께 상황은 언제나 개그적이란 각오로 끈임없이 ADHD의 경계를 타고 있는 야구선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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