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사람

[사람이 사람에게] 내게 거짓말을 해봐

딸내미가 거짓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뭐 대단한 건 아닙니다. 며칠 전 둘째를 가진 아내와 정밀초음파를 보러 산부인과에 갔는데 자기도 동생을 보겠다며 따라나선 딸내미는 병원에서 또래 아이를 만났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가 “난 다섯 살이야. 넌 몇 살이야?” 하고 물으니 딸내미는 천연덕스레 “응, 나는 여섯 살이야” 그럽니다. 우리 아이와 그 아이 모두 네 살이란 걸 이미 알고 있던 아내와 나는 웃음을 참느라 혼이 났습니다.


30여 년에 걸쳐 거짓말에 대한 연구를 한 끝에 『우리는 10분에 세 번 거짓말 한다』란 책을 펴낸 로버트 펠드먼 박사는 처음 만나는 성인은 10분 동안 평균 세 번의 거짓말을 한다고 합니다. 옷이 예쁘다거나 요즘 괜찮다거나 하는 악의 없는 인사치례가 대부분이지만 소위 어른들의 세계에서 얼마나 거짓말이 넘쳐나며 우리가 거짓말에 얼마나 무감한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라 하겠습니다.


거짓말하면 “‘탁’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박종철 열사의 죽음과 1972년 미국의 닉슨 대통령이 대통령직을 사임하는 것으로 마무리된 워터게이트 사건이 떠오릅니다. 솔직히 세계적인 경제위기를 불러온 서브프라임 사태야말로 금융자본의 온갖 거짓말과 그 거짓말을 알고도 속아준 관료들의 합작품, 금권사기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습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권력을 가진 자들에게 거짓말은 생리(生理)입니다. 아무리 그렇다 치더라도 이 정부의 거짓말은 도가 지나친 것 같습니다. 초등학생이 성적표를 조작하듯 획을 더해 상황일지 숫자를 조작하지 않나, 애초에 없다던 사건 동영상이 자꾸만 튀어나오지 않나, 북한 어뢰의 설계도면이 실렸다는 소책자는 있다가도 없어지니 천안함 사건에서 국방부는 그야말로 입만 열면 거짓말입니다.


경찰의 거짓말도 가관입니다. 아동 성폭력 사건이 일어나자 피해 아동의 가족이 보도를 원치 않는다는 거짓말로 자신들의 실책을 덮으려 하고,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고문사실을 밝혔음에도 해당 경찰서장이 스스로 나서 사실무근이라며 기자회견을 엽니다. 더 나아가 경찰 수뇌부는 당사자가 부인한 것을 가지고 은폐라 말하기는 곤란하다 우기니 말문이 막히고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아마도 이들은 당장 자신들이 처한 어려움만 모면하고 코앞에 닥친 곤경만 벗어난다면 별로 문제될 게 없다고 여기는 모양입니다. “남을 복종시키거나 지배할 수 있는 공인된 권리”를 가리키는 권력을 손에 쥐었으니 거짓과 진실을 모호하게 할 수도 있고, 거짓을 진실로 바꾸고 진실을 거짓으로 가릴 수도 있다고 굳게 믿고 있는 게지요.


반면 구술생애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힘을 빼앗기고 억눌린 사람들의 거짓말에 주목합니다. 거짓말에도 사회적이고 역사적인 맥락이 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어떤 사람의 증언 가운데 무엇이 거짓이며 무엇이 사실인지를 가려내는 일보다 왜 그 사람은 그것을 사실로 믿게 되었는지, 혹은 왜 사실을 감추고 때로는 침묵하며 거짓을 말하는지를 세심하게 살펴야 하며 그것이 결국 진실에 다가가는 길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사실 거짓말로 치자면 대한민국 헌법이나 세계인권선언만한 것도 없습니다. 국가의 주인은 국민이며 대한민국은 사상과 양심의 자유, 표현의 자유, 집회와 결사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말은 현실에서는 죄다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모든 인간은 존엄하고 평등하다는 말, 모든 사람은 의료와 주거, 노동과 교육의 권리를 가진다는 말도 거기에 담긴 염원과 열망, 지향과는 달리 이 사회에서는 모두 터무니없는 소리일 뿐이지요.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를 입 밖으로 꺼내는 순간 국가의 주인은커녕 잠재적 범죄자, 불순분자, 테러리스트가 되어 권력기관의 사찰 대상이 되기 십상입니다. 인간이기를 선언하고 인간답게 살기로 작정하는 순간 그나마 아등바등 하던 일터와 삶터에서 내쫓기는 것을 각오해야 하고 갖은 모멸과 냉대, 그리고 법을 빙자한 폭력과 마주해야 합니다. 그러니 인권이라는 것은 법조문과 선언문에 적힌 글 나부랭이가 온통 거짓임을 폭로하고 그 거짓이 진실이 되게끔 만들어가는 지점에서 비로소 생겨나는 게 아닌가 합니다.


아이들에게 거짓말은 매우 중요하다고 합니다. 아동발달 이론에 따르면 아이들이 자라나면서 타인을 인식하고 다른 이의 마음이 작용하는 방법을 알고, 그것을 이해하는 능력을 배워가면서 거짓말을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지요. 또한 아이들은 3~4살부터 상상력이 풍부해지면서 없는 것을 있는 것이라 여길 수 있게 되며 이것이 거짓말을 만드는 징검다리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역으로 말하자면 타인과 교감하지 못하고 다른 이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며 현실을 부정하거나 새로움을 상상하지 못한다면 거짓말을 할 수 없다는 이야기니 우리는 아이들의 거짓말로부터 참 많이 배워야겠습니다.


이번 <사람>에서는 청소년 스스로가 말하는 청소년과 학교의 문제를 다뤘습니다. 한국사회에서 학교는 그 자체로 거대한 거짓말임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학교에서, 학교 밖에서, 사회 구석구석에서 거짓과 맞닥뜨리고 있을 그들에게 한 편의 시를 전하며 건투를 빕니다.



찍소리 내고 얻어터진 적 세 번 있다

코 끝이 늘 토마토던 초등학교 담임이 / 깨스! 하곤 찍소리만 내봐라 하는 순간 / 나도 모르게 그만 찍!

두 번짼 중3 시절 늦은 밤 자율학습시간 / 학생과장 고스터가 찍소리도 내지 마 했을 때 / 슬리퍼소리 사라지기 기다려 히히 찍! / 어떤 개새끼가 찍소리 냈어 / 마루장 무너지던 소리 온 밤을 터졌다

세 번짼 고3 시절 / 학력고사도 끝나 널널한데 / 하루는 게슈타포가 말 같잖은 말을 했다 / 예를 들면, 찍소리 내지 말고 공부해! 와 같은 말 / 참을 수 없어 큰소리로 찌이익! 해버렸다 / 12년간 주눅든 어떤 것으로부터 설움과 / 해방감 나른히 몰려오던 한낮 / 나는 뒤돌아보지 않고 학교를 떠나고 말았다

그 뒤로 십여 년 더 지난 오늘 / 나는 곰곰이 생각해 본다 / 자라오며 그 찍소리 몇 번이나 더 해 보았나 / 똥 누다 말고 찌익! 해 본다 / 누구도 이젠 나를 치지 않는데 / 마음에 찡하니 젖어오는 슬픔 한 줄기

- 송경동, <찍소리>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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