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사람

[특집] 사회적 경제, 협동조합운동의 새로운 도전

1. 새로운 사회, 새로운 경제에 대한 요구의 등장


2008년 미국 발 금융위기 이후 지난 수십 년간 신자유주의에 입각하여 글로벌 자본주의를 표방해온 전 세계 경제는 끝 모를 추락을 계속하고 있다. 물론 아직까지 신자유주의의 종말 또는 폐기를 단정하기에는 다소 성급한 측면이 없지 않다. 하지만 적어도‘거대 자본에게 무한대의 기회를 주는 것이 전체 사회의 경제적 발전에 이롭다’는 낭만적 논리는 더 이상 강력한 힘을 발휘하기 어려울 것이다.
현재의 위기는 전통적인 방식의 국가개입정책, 즉 정부의 적극적인 재정지출 확대를 통한 경기부양책만으로는 해결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이미 시장구조가 거대자본에 의해 재구조화되어 있어 재정지출 확대는 경기활성화가 아니라 자본집중을 더욱 강화하는 방식으로 귀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2010년 미국정부의 경기부양책은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오바마 정부는 지난해 1조 달러가 넘는 공적재원을 투여하였는데 같은 시기 미국 대기업들의 현금 보유량은 1조 달러 이상 증가하였다. 정부가 돈을 풀면 그 즉시 모든 돈이 거대기업들의 금고에 쌓여버리는 것이다. 당연히 시중에는 돈이 돌지 않는다.


결국 오늘날 글로벌 자본주의의 충격으로 급속히 몰락하는 지역경제와 그로 인한 불안정한 고용과 만성화된 실업, 가속화되는 경제적 빈곤문제에 직면한 우리들이 유일하게 희망할 수 있는 일은 소위 워렌 버핏의 자선을 기대하는 일이다. 기대에 부응이라도 하듯 워렌 버핏은 며칠 전 언론을 통해 억만장자들의 세율을 높이는 것이 현재 미국경제가 살아날 길이며 자신도 기꺼이 높은 세금을 낼 것이라고 소신발언을 하였다. 그러나 고소득자들의 세율을 높인다고 하여도 그로써 또다시 정부재정지출을 늘린다고 하여도 결과는 반복될 것이다. 복지영역을 포함한 모든 공적 배분 체계는 이미 철저하게 시장화 되어 버렸고, 유통과 정보통신 혁명은 그러한 자본의 집중속도를 가히 빛의 속도로 만들어주었기 때문이다.


수십 년간 진행되어온 글로벌 자본주의는 세상을 완전하게 다른 모습으로 변형시켜 놓았다. 모든 것은 시장화 되었고 서로 이질적이었던 것들까지 상호간 이윤창출의 도구로서 연결되고 통합되었다. 과거 전통적인 사회운동은 싸워야 할 대상과 해결과제가 분명한 가운데 자신의 입장을 명확하게 표출할 수 있었지만 오늘날 사회운동은 분산되고 복합적인 형태의 다양한 문제들 앞에서 이해득실을 따져야하는 혼란스러운 상황 앞에 놓이게 되었다. 노동자들의 퇴직연금 의무가입을 강제하는 것이 오히려 노동자들에게 독이 될 수 있다는 현실이 우리의 납득하기 어려운 상황을 입증해준다. 실제로 노동자들의 퇴직연금을 수령한 연금보험사의 자본은 다시 각종 투신사에 재투자를 하고 투신사들은 그 돈을 해당 노동자가 속한 기업에 투자한 뒤 수익률을 높이기 위하여 구조조정을 요구한다.


그로 인하여 결국 미래의 안전을 위하여 연금에 가입한 노동자들이 오히려 자신들이 적립한 연금 때문에 일자리를 잃게 되는 어처구니없는 먹이사슬에 놓여버리게 된 것이다. 그런데 당혹스러운 것은 현실이 그렇다고 하여 기업들로 하여금 노동자들의 퇴직연금 가입을 의무화하려는 현재의 노동정책을 반대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오늘 이 시대는, 노동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다시 말해 현재의 복잡하게 얽힌 먹이사슬 속에서는 더 이상 미래에 대한 꿈을 꾸기 어려운 모든 사람들에게 새로운 경제사회적 관계를 창조하라고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그야말로 새로운 사회운동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한때 복지국가에 자신의 사명을 위탁하였던 협동조합운동이 최근 사회적 경제의 관점에서 새롭게 부각되고 진화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부의 공적책임을 다시 강화하거나 부자들에게 보다 높은 세금과 기부를 호소하는 것보다 우리에게 주어진 진정 중요한 과제는 어떻게 사회적으로 관리되고 공적으로 소유되는 사회적 시장의 영역을 넓혀나갈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전략이다. 그것은 바로 사회적 경제의 영역을 확장하고 그에 기반을 둔 자립적인 시민 권력을 강화시켜내는 것이다.



2. 협동조합운동의 역사적 교훈과 성과


우리는 200년 전 영국 노동자들의 고민과 성찰에 대하여 다시 한 번 깊이 주목해보아야 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빈곤 그리고 비인간적 처우와 생활고는 자신들이 조직화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다시 말해 공동의 필요와 욕구를 바탕으로 굳건하게 결집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라고 이해하였다. 그들은 공장안에서 인간으로서의 권리 즉 신체가 감당할 수 있는 적절한 노동시간과 그에 대한 정당한 임금을 보장받기 위하여 노동조합을 결성하였다. 동시에 그들은 노동조합만으로는 자신들의 인간적 삶이 충족될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었다. 오랜 싸움의 결과로 임금이 상승하면 기업주는 생필품의 가격을 인상하였고 결국 임금인상의 효과는 생활의 개선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쉽게 알아차렸던 것이다.


영국의 노동자들 그리고 곧이어 유럽 대륙의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만들고 동시에 소비자협동조합을 조직하였다. 어렵게 확보한 임금 인상분을 또다시 유통자본에 빼앗길 순 없는 일이었다. 더 나아가 그들은 직접 공제조합과 금융협동조합을 조직하였다. 자신들의 연금이 오히려 독이 되어버리는 어처구니없는 현실에 대한 직접적인 저항이요, 동시에 새로운 창조였다. 경영능력과 사회적이고 공적인 자본력을 확보한 노동자들은 이제 노동자협동조합기업을 통해 직접 경영자가 되었다. 노동자이며 동시에 기업주가 된 것이다.


아무런 의결권이 없이 그저 경영진이 요구하는 방식에 따라 기계적으로 일하는 주식회사 노동자의 삶은 노예이자 로봇이라고 그들은 생각하였다. 그들은 자신들이 소유하고 자신들이 노동하며 자신들이 경영하고 서로의 합의에 의하여 분배하는 완전하게 민주적인 경영체를 완성해나갔다. 자본을 위한 조직이 아니라 인간을 위한 조직이 탄생한 것이다.


삶의 필요와 욕구들을 하나하나 경제사회적 조직인 협동조합을 통해 결집해내면서 노동자들은 집단화된 공동의 욕망 즉 조직화된 권력이 되었고 이내 정치적 힘이 되었다. 그들은 현실정치 공간에 자신들의 다양한 도전들을 제도화하고 합법적으로 인정하라고 요구하였으며, 공동의 이익을 위한 자신들의 경제조직들에 대하여 주식회사와 동일한 합법적인 지위와 세제상의 혜택을 보장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한 구체적이고 결집된 요구와 실제적인 절박함은 이내 진보적이고 개혁적인 정당의 유의미한 지지기반이 되었던 것이다.


협동조합운동의 역사적 경험은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유지하고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것들로부터의 결핍 즉 그러한 의미로서‘빈곤’이란 현실적 상황은 권력의 문제라는 것을 명확하게 이해시켜준다. 여기서 권력이란 단순히 정치권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들의 결핍을 현실화시켜낼 수 있는 구체적인 능력으로서의 권력을 뜻하며 시민들의 자발적 동의에 의해 형성된 그야말로 도덕적인 권능을 말한다. 일찍이 몬드라곤을 설립한 호세마리아 신부는 “모든 경제적 혁명은 도덕적이어야 하며 또한 모든 도덕적이고 정신적인 변혁을 꿈꾸는 사람들은 반드시 경제적인 기획을 동반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호세마리아 신부는 인간조건의 개선과 사회의 진보는 관념이나 가치 차원의 접근으로는 한계가 있으며 반드시 도덕적이며 동시에 경제적인 대단히 통합적인 접근을 필요로 한다는 점을 직시하였던 것이다.


개별화된 요구와 필요는 아무런 힘을 갖지 못한다. 그러한 요구와 필요가 결집될 때 사람들은 잠재력과 가능성을 확인하게 된다. 연대와 협력을 통해 자신의 경제적 필요와 사회적 욕구를 해결해본 사람들은 더 이상 외부의 추상적 권력에 의한 부당한 지배를 수용하지 않게 된다. 지배받는 자가 아니라 변혁하고 창조하는 인간이 탄생하는 것이다. 그러한 인간이 되려면, 적어도 그러한 인간으로서의 잠재력을 지니고자 한다면 그는 연대와 협력의 힘을 기반으로 경제적으로 자립되어 있어야 하며 조직화되고 집단화된 사회적 힘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협동조합이란 바로 인간을 위해 세상을 혁신해나가는, 절박한 자들과 꿈꾸는 자들의 결사체인 것이다.



3. 원주, 트렌토에서 다시 배우다


그 모든 당위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시대는 우리에게 피해갈 수 없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그것은 ‘과연 협동조합운동은 이 시대를 넘어설 수 있는가?’이다. 글로벌 자본주의라는 괴물 같은 사회, 이윤의 극대화를 위해서 오랜 국가 간의 장벽조차 손쉽게 뛰어넘어 빛의 속도로 합종연횡을 하는 이 자본 만능의 시대를 과연 ‘인간’이란 가치를 중심으로 새롭게 혁신해나갈 수 있을 것인가. 최근 글로벌 자본주의가 심각한 위기에 봉착해 있음을 목격하면서도 정작 그에 대한 대답은 쉽지 않아 보인다. 다만 이탈리아의 트렌토가 이룩한 위대한 혁신은 오늘날 지역 차원의 협동조합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보다 구체적으로 제시해주고 있으며 무언가 다른 사회의 건설이 가능할 수 있다는 작은 희망을 갖게 해준다.


이탈리아의 트렌토 주는 도시와 농촌의 인구를 모두 더하여 50만 명 남짓한 작은 지역이다. 과거 많은 주민들이 경제적 빈곤으로 인해 일자리를 찾아 지역을 떠나야 했던 그 척박한 산악지대의 작은 도시와 마을들이 현재는 모든 주민이 풍요롭고 행복한 유럽에서 가장 이상적인 지역으로 변화하였다. 협동조합운동의 힘이다. 트렌토 주에는 모두 560여 개의 협동조합이 있으며 그들은 서로 협력하여 하나의 연맹체를 이루었다. 연간 매출규모는 3조6천억 원 정도이며 매년 2000억 원에 이르는 사회공헌을 하고 있다. 모든 노동자들의 시간당 최저임금은 이탈리아 정부가 정한 가이드라인의 세배가 넘는 12유로이다. 지역에 들어와 있는 3만여 외국인 노동자들도 현지 주민과 동일한 노동복지조건 속에서 일하고 있다. 외국인 노동자나 이민자들로 인하여 지역 전체의 임금조건이 나빠지거나 일자리가 사라지지 않았기에 이곳에는 인종갈등이 없다. 그러고 보면 인종과 문화적 차이로 인한 사회갈등의 이면에는 경제적인 원인이 주요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트렌토 사례는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거대한 글로벌 자본주의에 대항하여 협동조합을 기반으로 작은 경제의 큰 그물망을 만들어내는 전략, 협동조합 간의 협력으로 단단한 금융기반과 경영지원체계를 구축하여 그로서 경제적 성과를 지역 전체의 성과로 되돌리면서 트렌토의 협동조합연맹은 자신들의 방식이 인간에게 훨씬 유익하다는 것을 지역 주민 모두에게 구체적으로 입증시켰다. 트렌토 대학의 모든 대학생들은 등록금이 없다. 협동조합연맹이 그 모든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그 대신 얻은 성과는 이 지역 학생들 가운데 1만여 명이 트렌토 협동조합에서 일하기를 희망한다는 것이다. 미래의 경영을 책임져나갈 청년 인재들의 거대한 그룹이 자생적으로 형성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기업들이 경영책임자에게 평직원의 100배가 넘는 임금과 성과급을 지불하는 동안 트렌토의 협동조합들은 지난 100년 동안 1대3의 원칙을 고수해왔다. 최고임금 수령자의 급여가 최저임금 수령자 급여의 3 배를 초과할 수 없다는 원칙이 그것이다. 억만장자는 없지만 모두가 풍족한 사회를 이룩한 배경이 여기에 있다. 트렌토 협동조합들의 발전으로 트렌토 시는 지방재정자립도 100%를 달성할 수 있었다. 시장에 모든 것을 맡긴다는 방식으로 무너져버렸던 공적 영역은 시장을 시민에게 맡기는 방식으로 회복될 수 있었다. 그것이 바로 거버넌스가 아닐까.


트렌토의 혁신사례는 오늘날 원주의 협동조합들과 새롭게 도전하는 사회적 기업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고 있다. 자본주의라는 거대하고 가혹한 바다에서 아름다운 섬 하나를 만들고 그것에 자족하는 것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작은 섬 하나로는 글로벌 자본이라는 쓰나미 앞에서 무기력할 수밖에 없다. 작은 섬들을 수없이 만들고 그 섬과 섬 사이에 다리를 놓아야 한다. 그러한 과정에서 우리는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가치 위에 큰 것을 만들어갈 수 있다. 2010년 트렌토와의 만남은 원주의 협동조합과 사회적 기업들에게 우리가 왜 자기조직의 장벽을 허물고 서로 협력하고 연대해야 하는지를 생생하게 일깨워주었다. 그리고 우리가 근원적으로 무엇을 지향하고 있는지를 다시 생각하게 해주었다. 다른 무엇보다 트렌토는 우리에게 다른 사회의 건설이 가능하다는 자신감을 갖게 해주었다.



4. 민주주의와 연대의 정신에 기초한 새로운 도전


다른 사람의 희생에 힘입어 성장하는 그런 경제, 그리고 그러한 현실에 무감각해져가는 현대사회의 모순을 넘어서려면 우리는 철저하게 민주적인 경제, 모두에게 개방적인 조직을 만들어나가야 한다. 그러한 조직들의 상호부조와 연대협력은 글로벌 자본에 맞설 수 있는 우리의 최대 경쟁력이다. 나는 이러한 도전이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러한 방식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이롭고 자신의 경제적 안정과 사회적 가치의 실현 그리고 윤리적 책무가 조화를 이룰 때 사람들은 가장 행복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협동조합운동의 경험이 체득해온 민주주의와 연대성의 가치는 오늘날 한국 시민사회의 새로운 도전을 위한 성찰과 화두가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이미 상당히 많은 자원과 역량을 지니고 있다. 단지 그것들이 분절되어 있고 유기적인 연결망을 구축하고 있지 못하기에 새로운 사회를 창조하는 역량을 보여주고 있지 못할 뿐이다. 대중의 빈곤과 결핍을 결집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해결 가능한 과제였음을 입증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그렇게 결집된 힘들 사이를 연결해나가는 창조적 전략이 실행되어야 한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정치권력을 장악하는 것이 세상을 바꾸는 가장 손쉬운 방법인 것처럼 말하지만 세상이 지속적으로 변화하려면 대중에게, 시민에게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힘이 있어야 한다. 그 힘은 경제적이고 동시에 사회적이어야 한다. 그것이 새로운 시대에 걸맞는 정치를 창조해내는 길이다. 다른 사회는 다른 사회를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자들의 결집된 힘들에 의해서 실현될 수 있다는 것, 지금 이 시대는 새로운 협동조합운동과 전체사회의 변화를 기획하는 혁신적인 시민운동을 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