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사람

[특집] 친절한 법의 모욕

법원의 권위를 기각합니다

2011년 3월의 어느 날 나의 공무집행방해 사건 첫 번째 심리가 서울서부지방법원 형사OO단독 법정에서 열렸다. 2009년 1월 9일 용산참사로 돌아가신 다섯 명 철거민 열사들의 장례를 위해 서울역광장 영결식장으로 향하던 중 유족들이 명동성당에 수배되어 있던 남경남 전국철거민연합 의장과 박래군·이종회 용산범국민대책위원회(용산범대위) 공동집행위원장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고 싶다했다. 이미 모든 도로를 경찰이 차벽으로 통제해버린 탓에 우리는 명동역에 잠시 장례버스를 세우고 스무 명 남짓한 유족들과 인도를 이용하여 명동성당으로 향하고 있었다. 갑자기 인도 위에서 방패를 든 경찰들이 유족들의 앞길을 막아섰고 우리는 이에 항의했다. 2~3분 사이 뛰어 온 정보관에 의해 길은 다시 열렸고 우리는 수배자들과 짧은 작별인사를 하고 버스로 돌아와 무사히 장례를 모셨다.

장례가 있고 1년 하고도 반년쯤 더 지나 용산경찰서로부터 소환장을 받았다. 이동을 가로막는 경찰들에게 항의를 하던 중 내가 전경 한 명의 가슴을 때리며 공무집행을 방해했다는 이유였다. 내가 경찰을 때리는 동영상이나 사진도 없다고 했다. 단지 장례식 며칠 뒤 내게 가슴을 맞았다고 진술한 전경 한 명의 진술이 있을 뿐이었다. 명동성당의 수배자들을 만나 도피시킬 우려가 있었기에 경찰이 유족들의 이동을 막았다는 것도 공소장을 보고야 알게 되었지만 당일에는 어떤 경찰도 길을 막으며 그런 설명을 하지 않았다.

당시 명동성당 주변과 명동의 모든 골목은 수천 명의 경찰이 에워싸고 있었다. 전설속의 홍길동이 살아온다고 해도 도저히 빠져 나올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수배자 3인은 영결식이 끝난 후 자진 출두하겠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수차례 밝혔고 실제로 영결식 이틀 후에 기자회견을 열고 자진해서 경찰에 출두했다. 양측의 합의로 1년여를 끌어오던 장례도 지낸 마당에 용산범대위의 책임자들이 경찰 망을 뚫고 도피한다는 것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결국 억지 사유로 국민의 정당한 이동을 막아섰던 것이다.

터무니없는 이유로 서게 된 재판정

용산참사 유족들의 대리인으로 60여 차례의 대정부 협상을 하면서 합의안을 타결시킨 내게 정부가 감사패를 줘도 시원치 않은데 장례를 치루고 2년이 지난 후에야 나를 약식기소한 검찰이 고약하기도 하고 공무집행 방해라는 죄명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기에 법정에서 당시의 공무집행이 부당했음을 밝히고 싶어 정식재판을 청구해 시작된 재판이었다.

공판 시간보다 10분쯤 일찍 법원에 도착한 나는 법원 마당 구석에서 담배 두 대를 연이어 태우고 화장실에 들러 손도 씻고 두근거리는 심장을 쓸어내리며 심호흡을 했다. OOO호 법정 문 앞에 서서 그날의 사건목록에서 내 이름과 사건번호, 재판 시간을 확인했다. 두 번의 구속을 포함하여 서른 번이 넘게 피고인으로 법정에 서 보았고 백 번 넘게 공판을 방청한 나다. 게다가 이번 공판은 벌금 100만 원으로 약식 기소 된 사건에 정식 재판을 청구하여 열리게 된 것이니 법정 구속 따위의 부담이 전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은 불안하고 기분은 찜찜했다.

현행범으로 연행되어 조사 받을 때는 물론이고 소환장을 받고 경찰서로, 검찰청으로 출두하여 조사를 받을 때에도 참을 수 없는 모욕감과 불쾌함을 느끼지만 법원에서 느끼게 되는 위압감과 불편함은 경찰과 검찰에서 받는 것과는 또 다른 힘겨움이다. 아마 경찰과 검찰에서는 피고인에게 죄가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애를 쓰지만 결국 피고인을 감옥에 가둘 것이냐 풀어줄 것이냐를 결정하는 것은 법원이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경찰이나 검찰하고는 싸울 수도 있지만 판사에게는 밉보이면 큰일이니 더욱 그럴 것이다. 국민들에게 법원은 경찰서나 치과병원만큼 가기 싫은 곳임에는 틀림이 없다.

잠시 후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판사가 법복을 입고 법정 뒤편에서 날렵하게 문을 열고 들어선다. 법원의 방호원은 이미 판사가 들어서는 것을 다 알고 있는 방청객들에게 재판장님이 들어오고 있다는 사실을 굳이 알려주면서 자리에서 일어날 것을 강요한다. 사실 나는 매번 판사가 들어올 때마다 왜 자리에서 일어나야 하는지 지금까지도 모르겠다. 법원에 대한 예의, 사법부의 권위에 대한 존중을 표하는 것이라고 들어 알고는 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의문이 든다. 칠십 노인이든 이십대 청년이든 똑같이 다 자리에서 일어서 재판장을 맞이해야 하는 것은 법이 아니라 판사 앞에서 만인이 평등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함일까?

어디 기립뿐인가. 방청석에서 모자를 쓰고 있어서도 안 되고 다리를 꼬거나 몸을 앞으로 숙여 기대거나 옆으로 삐딱하게 앉기만 해도 법원 방호원의 꾸지람을 듣기 일쑤다. 만일 핸드폰 벨이라도 울린다면 몰상식한 사람에게 보내는 시선을 받으며 귀까지 빨개진 채 법정을 도망치듯 빠져 나와야 한다. 녹음이나 녹화는 물론 사진촬영도 금지라고 하여 그림 잘 그리는 이가 법정 장면을 스케치하는데 이마저도 가로막는다. 법원은 드나들면 드나들수록 불편한 곳이다. 나는 몇 해 전부터는 재판부가 입장할 때 절대 기립하지 않는다. 물론 잘 안 보이게 뒤쪽에 앉기도 하지만 법원의 강요된 권위에 저항하는 나만의 소극적 투쟁이다.

왜 판사에게 용서를 비나?

재판장 자리에 앉은 판사는 매우 친절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그는 피고인의 이야기를 자세히 들으려는 듯 의자에 등을 기대지 않은 채 서류를 양손에 쥐고 몸을 앞으로 당겨 앉았다. 내 순서에 앞서 몇 건의 형사 사건의 구속 피고인들 심리가 먼저 열렸는데 변호인 한 명이 계속 자리에 앉아 변호를 했다. 서울서부지방법원의 국선전담 변호사쯤으로 추측되는 그는 그날 그 법정에서만 총 여섯 건, 아홉 명의 피고인 변호를 맡았다. 각기 다른 사건들이 진행되는 도중 그의 심드렁한 표정과 비슷한 패턴의 변론은 반복하듯 이어졌다.

구속 피고인들은 재판을 받을 때 일반적인 구금시설 수용자들이 입는 수인복이 아닌 사복을 입을 수 있는 권리가 있지만 그 권리를 행사하는 이들은 별로 없다. 오히려 사복을 입으면 재판장에게 건방져 보일 위험이 있고 수인복을 입어야 불쌍하게 여겨 형량을 적게 준다는 속설을 믿기 때문이다. 두 번의 구속으로 수차례 재판을 받은 나도 단 한 번도 사복을 입고 법정에 출두해 본 적이 없었다. 이렇게 피고인들은 판사의 눈치를 보고 말 한마디에 벌벌 떨게 마련이다.

낡고 구겨진 수인복을 입은 피고인들이 차례로 피고인석에 서고 이름과 주민번호, 주소를 묻는 인정심문을 마치고나면 재판장은 가장 처음 피고인들에게 공소사실을 어디까지 인정하는지 묻는다. 그러면 피고인들을 대신해 변호인이 공소사실을 모두 인정한다고 대답하는 일이 매 사건 반복된다. 간혹 피고인이 억울하다는 듯 뭐라 말하려고 하면 변호인은 손짓과 눈짓으로 말을 멈추게 한다. 재판장은 변호인에게 변론을 지시하고 변호인은 비슷한 내용의 변론을 또 반복한다. 피고인에게는 이러저러한 점들이 억울할 수 있고 몇 가지 이유들로 정상을 참작할 사유도 없지 않지만 피고인은 전반적으로 검찰의 공소사실을 인정하고 있다고 얼버무린다. 사실관계 심리도 없다. 증거채택 여부나 증인신청도 판사가 굳이 할 필요가 있겠냐고 하면 대폭 줄이거나 철회하는 장면도 여러 번 있었다.

변호인이든 검사든 피고인 심문을 하지 않는다. 이 재판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피고인 당사자인데 당사자에게 말할 기회가 없다. 양쪽 다 서면으로 대신하고 부족한 서류는 추후 보충하겠다고 답을 하면 공판은 사실상 끝난다. 재판장이 구형하라는 지시를 내리면 검찰은 생각보다 무거운 형을 구형한다. 변호인이 걱정스러운 눈빛의 피고인에게 다가가서 무어라 귓속말을 하면 피고인은 안심을 한 것인지 동의가 된 것인지 다시 손을 앞으로 모으고 고개를 떨군다. 재판장이 변호인에게 최후변론을 지시하면 변호인은 성의 없는 목소리로 피해자와의 합의 여부, 피해에 대한 변제 이행 계획 등을 나열한다. 또, 피고인은 대부분의 공소사실을 인정하고 있으며 자신의 잘못을 깊이 반성하고 있고 집에는 몸이 아픈 노모 또는 어린 자식들이 있어 피고인이 시급히 사회에 복귀해야 하고 앞으로는 죄 짓지 않고 열심히 살아갈 것을 다짐하고 있으니 선처를 해달라고 틀에 박힌 진술을 한다.

피고인의 최후진술은 신기하리만큼 똑같다. 피고인들은 재판장에게 잘못했다, 죄송하다, 반성한다, 다신 안 그러겠다, 선처를 부탁한다는 요지의 말들을 각자의 언어로 말하고는 90도 배꼽 인사를 하고 퇴정한다. 그가 재판장에게 무슨 잘못을 했나? 왜 그에게 반성한다는 고백을 하고 구치소에 돌아가서 반성문을 써서 제출해야하는지 모르겠다. 재판장이 피해자인가? 아니면 국민의 세금으로 사회적 비용이 드는 재판이 열리게 하여 재판장의 업무를 늘렸으니 죄송하다는 것인가?

사건에 따라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전체적인 맥락은 꼭 닮아있다. 재판장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피고인이 검찰의 공소사실을 인정하는가 여부이다. 공소사실을 인정하면 재판도 빨리 끝나고 여러 가지 정황을 살펴 선처해줄 수 있으나 공소사실을 부인하면 사실관계를 다투어야 하므로 증거조사와 증인심문 등을 해야 하는데 시간도 오래 걸리고 모두가 힘들어지는 일이라는 것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이른바 재판 비용이 많이 들게 되는 것이다. 그 다음 재판장은 피고인이 반성을 하고 있는지를 살핀다. 피고인이 반성을 하고 있는지가 판결에 영향을 미친다면 이미 재판장은 피고인의 유죄를 확신하고 있다는 말이 아닌가?

재판장과 검찰, 변호인은 이러한 측면에 법조 3륜의 조화와 균형을 유지한다. 언론이 주목하고 여론이 민감한 시국사건이나 정치인, 재벌 등이 연루된 사건이 아니라면 치열한 사실관계 다툼이나 법정 드라마 같은 긴박감은 없다. 공판중심주의나 무죄추정 원칙 따위는 대부분의 사건에서는 의미가 없는 이야기다. 세간의 관심을 받는 사건들에서 간혹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를 법원이 기각하거나 무죄 또는 가벼운 형량을 선고하여 검찰과 법원이 극명하게 대립하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지만 그 외 사건들에서 법원은 검찰의 기록에 의존하여 이미 피고인을 죄인이라고 생각하며 공판을 진행하는 것이다. 검찰과 법원은 견제하는 사이처럼 보이지만 법정 안에서는 묘한 ‘공조’의 분위기가 감지된다.

참 친절한 재판장이 준 모욕

나의 사건번호와 이름이 불리고 나는 방청석에서 피고인석으로 자리를 옮겼다. 나와 동행한 천주교인권위원회 소속 변호인은 며칠 동안 질문지를 만들었고 서면을 작성했다. 정당한 공무집행이 아닌 경우와 관련된 판례들을 찾아 참고자료를 만들었고 나와 수차례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사실관계 심리를 위한 준비를 했다.

판사는 여전히 친절한 목소리를 잃지 않고 있었다. 인정심문이 끝난 판사는 이렇게 말했다.

“약식 기소 된 사건을 정식재판 청구하여 재판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제가 보기에도 벌금100만 원은 너무 과해 보입니다. 피고인은 공소사실을 인정하시겠습니까? 제가 최대한 선처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본격적인 재판이 시작되기도 전에 판사가 먼저 선처를 할 수 있다며 말을 꺼낸 것이다. 잠시 적막이 흐르고 판사는 재차 공소사실을 인정하느냐고 물었다. 이런 호의를 베푸는 재판부를 본적이 없는 나는 처음이라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옆자리의 변호인도 어리둥절한 듯 했다.

나는 정신을 추스르고 대답했다. “재판장님께서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마음이 놓입니다. 그러나 제가 정식재판을 청구한 것은 벌금이 너무 많기 때문에 깎아 달라 청하는 취지는 아니었습니다.”라고 말문을 열었다. 벌금 100만 원도 나 같은 인권활동가에게 무거운 벌임에는 틀림없지만 나는 공소사실처럼 이동을 가로막은 전경들에게 폭력을 행사한 적도 없을뿐더러 당시 나는 아무런 잘못을 한 것이 없는데도 경찰이 길을 가로막은 것이 부당하다고 생각했기에 항의 한 것뿐이기 때문에 정식재판을 청구 했다고 항변했다. 한마디로 경찰의 정당한 공무집행을 방해한 적도 없고 전경을 때린 적은 더더욱 없으니 무죄라는 것이 나의 주장이었다.

판사는 잘 알겠다고 하면서 그래도 지금 결정하지 말고 시간을 가지고 생각해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하며 잠시 법정 밖에서 변호인과 상의를 해보라는 제안을 했다. 많은 공판에 당사자로 참여했고 다른 이들의 공판을 지켜보았던 나로서는 재판장의 과도한 친절이 정말 의아했다. 더 뭐라 말을 잇지 못하고 변호인과 나는 법정 밖으로 나왔다. 변호인은 분위기 상 공소사실만 인정하면 벌금은 대폭 깎아줄 것 같지만 결정은 내게 하라고 했다. 나 역시 그런 분위기는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럴 수는 없었다. 공소사실을 인정한다는 것은 십년 가까이 인권활동가로 살며 군·경의문사와 인권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일해 온 내게 전경을 폭행했다는 것을 인정하라는 것이며 정당한 공무집행을 방해한 죗값을 받으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애초 의도대로 정당한 공무집행이 아니라는 것에 대해 다투고 싶다고 했고 변호인도 동의했다. 우리는 5분 정도의 짧은 숙고를 마치고 다시 법정에 들어섰다.

나는 재판장의 친절은 고맙지만 검찰의 공소사실을 인정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시종일관 미소를 띠고 있던 재판장의 표정이 굳어졌다. 자신의 선의를 받아들이지 않은 내가 못마땅한 표정이었다. 재판장은 내게 공소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면 자신이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며 “그럼 피고인에게 폭행을 당했다고 하는 전경을 증인으로 부를까요?”라고 물었다. 그러면서 “2년 전 사건이니 이미 전역을 했을 텐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나는 내가 다투고 싶은 것은 정당한 공무집행인가 아닌가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전경을 증인으로 부를 필요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는 나와 변호인이 준비한 내용을 진행했다. 각본대로 변호인이 묻고 나는 대답했으며 집회시위 현장에서 경찰의 자의적인 판단으로 침해되는 국민의 권리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제복을 입은 경찰이면 아무 설명도 없이 무턱대고 길가는 시민을 막아서도 정당한 것이냐고 억울함을 하소연했다. 재판장은 2주 후 선고기일만 지정하고는 더 이상 아무 말도 없었다.

신뢰할 수 없는 법과 재판에 기대야하는 서글픔

결과는 역시 검찰의 구형대로 벌금 100만 원. 무죄는 고사하고 벌금 만 원도 깎이지도 않았다. 판사는 경찰의 정당한 공무를 방해하고 전경을 폭행한 사람이 죄를 인정하지도 않고 반성도 하지 않는다며 상당히 긴 시간 나를 야단쳤다. 말투와 표정에서 아주 기분이 나쁜 듯 했다. ‘이런 사건에서 저렇게 판결문을 길게 쓰다니’하고 감탄하며 법정을 나왔다. 그런데 며칠 후 받아 본 판결문은 매우 짧고 간단했다. 판사가 선고공판에서 나를 꾸짖느라 사용한 언어들은 판결문에 없었다. 얼마나 내가 미웠으면 그 많은 사건들을 처리하느라 바쁘실 텐데도 친히 판결문에도 없는 말들로 내게 가르침까지 내리셨을까? 간혹 법정에서 판사들이 피고인들에게 막말을 하고 훈계를 한다는 기사를 본 적은 있었지만 정작 내가 당하고 보니 상당히 불쾌했다. 그날 왜 그 말들을 그냥 듣고 서있었는지 내 자신이 한심해졌다.

사실상의 사실심인 1심 재판에서 제대로 사실 한 번 다투어 보지 못한 나는 항소심에서도, 대법원 상고심에서도 무기력하게 기각 결정을 받아들여야 했다. 이제 다시 검찰에서 보내 올 벌금 지로용지를 받아보게 될 것이다.

전국 수십 개의 법원, 수백 개의 법정에서 매일 수천 건의 재판이 열린다. 그 중에는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는 유명한 인사나 사건에 관한 재판도 있을 것이고, 수천만 원의 수임료를 지불한 변호인 여럿을 대동하고 법정에 서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구속이 되면 며칠 안에 쓰러져서 휠체어를 타거나 병명도 생소한 병에 걸려 일주일에 4~5일씩 구급차를 타고 대학병원에 드나드는 사람도, 특별사면을 받을 때까지 감옥보다 병원에서 더 긴 시간을 보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또 계획적으로 다른 사람을 상하게 하거나 타인의 재산에 손해를 입힌 죄질이 나쁜 범죄자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영화 ‘도가니’에 나오는 교장선생이나, 권력을 등에 업고 수십억의 뒷돈을 챙긴 전직 청와대 비서관이나, 조 단위가 넘어가는 비자금을 숨기거나 탈세와 불법증여를 한 재벌들처럼 꼭 법이 제대로 응징해 줬으면 하는 이들도 많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법정에 서게 되는 많은 수의 사람들은 나처럼 그저 그런 소시민들이 대부분이다. 우리들은 재판장의 판결문 몇 줄에 운명이 결정되기도 하고 다시는 회복할 수 없는 지경에 처하기도 한다.

형사상 문제로 재판을 받는 경우도 있지만 민사재판이나 행정소송으로 법정에 서게 되는 이들도 많다. 우리사회가 분쟁이나 갈등을 조정하는 기능을 상실해가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는 더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은 사유로 법원을 찾게 될 것이다. 국민들이 법원을 더 이상 신뢰하지 않으면서 법원을 찾는 이유는 여전히 법원이 나의 권리를 지킬 수 있는 마지막 보루이고, 나의 억울함을 풀어줄 수 있는 것은 법뿐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아니 그렇게라도 믿지 않으면 도무지 기댈 곳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법이 항상 공정한 결정을 내리는 것은 아니며 변하지 않는 절대불변의 원칙도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믿을 수도 없는 곳에 운명을 맡겨야하는 서러운 처지인 셈이다.

역사적이고 구조적인 사법 불신을 직시해야

법학전문대학원이 1기 졸업생을 배출하였고 앞으로 몇 년 후에는 사법고시가 완전히 폐지될 예정이라고는 하지만 여전히 우리사회에서 법관이 되는 길은 공부를 잘해서 한 해에 구백 몇 십 명을 선발하는 사법고시에 합격하고 그 중에서도 사법연수원 2년 내내 상위권 성적을 유지해서 종합성적 100등 안에 드는 길뿐이다. 경력 법관으로 변호사 지원자들 중에서 법관으로 임용되는 일도 있지만 이는 극히 일부이고 부족한 법원의 인력을 수급하는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영화 ‘도가니’와 ‘부러진 화살’, 서기호 판사의 재임용 탈락 등으로 사법부에 대한 신뢰가 땅에 떨어졌고 많은 이들이 그 권위를 인정하지 못하는 시절을 살고 있다. 하지만 이는 근래의 일만은 아닐 것이다. 군사독재시절 정권의 눈치를 보며 수십 년 후 무죄가 밝혀진 이들을 감옥에 가두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한 ‘사법살인’도 사법부의 작품이었다. 신영철 대법관 같은 이는 법원장의 재판 개입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저지르고 연판장까지 돌게 만들었지만 대법관의 지위를 지키고 있다.

검찰의 공소장을 그대로 베낀 판결문으로 용산참사 철거민들에게 모든 책임을 지우고 아버지를 불에 태워 죽인 범인을 만들어 버린 판결, 인혁당 사건으로 통한의 30년 세월을 보낸 이들에게 국가에서의 배상이 너무 많다며 절반도 넘는 지급액의 환수를 결정한 판결, 빼앗기고 억압당하는 노동자, 농민, 소시민들을 떼쓰는 사람들로 취급하며 형사처벌을 하고 고액의 배상을 물리는 판결. 셀 수 없이 많은 부당한 판결들을 우리는 마주하며 살아왔다.

최근의 판결들을 보면 더 가관이다. 이미 고등법원에서 해고 노동자들의 손을 들어주었던 콜텍 노동조합 조합원들의 해고무효 소송을 파기 환송했다. 경영 상 이유라는 말만 하면 잘나가는 회사도 마음대로 공장 문을 닫아 버리고 노동자들을 해고 할 수 있다는 판례를 남기는 것은 아닌지 심히 걱정된다. 또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무더기 구속을 하고 100명이 넘는 참고인 조사를 벌인 소위 왕재산 사건의 1심 재판부는 피고인들에게 각각 징역 9년, 7년, 5년을 선고했다. 게다가 재판부는 북한은 여전히 남한을 위협하는 반국가단체라고 규정했고 국정원의 막무가내 압수수색이 위법한 수사라고 문제제기 한 변호인들의 정당한 방어에 대해 진실발견을 방해하는 행동이라며 폄훼하기까지 했다. 인간이 사회를 구성하고 살아가는데 법이 어쩔 수 없이 반드시 필요한 존재라면 법원의 결정은 신뢰와 권위를 가질 수 있어야 하기에 국민적 저항을 마주하게 될 사법부의 오만과 독선이 더욱 안타깝다.

소수의 인사권자가 결정하는 밀실인사, 법관으로서의 자질이나 능력보다 정치적 고려와 줄서기가 우선되는 대법관과 헌법재판과의 임명, 퇴임을 하고 오히려 더 큰 부와 명예를 획득하게 되는 전관예우 등이 사법부 스스로의 권위를 땅에 떨어뜨리는 일임을 진정 사법부만 모르고 있는가? 사법권의 독립성과 신분의 보장을 누릴 것이면 그에 따른 책임도 져야 한다. 그러니 높은 수준의 윤리와 도덕성이 요구되기도 하고 권력이나 자본에 휘둘리지 말고 양심과 소신에 따른 판단을 하라는 국민의 무거운 바람도 기꺼이 짊어져야 하는 것이다.

서기호 판사의 재임용 탈락으로 다시 전국의 지방법원들에서 판사 회의가 열리고 있다. 3년 전 신영철 대법관의 재판 개입 때처럼 찻잔 속 태풍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사법부 스스로 기준을 바로 세우고 공정하면서도 세심하고 정확한 판결을 내릴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해야 할 것이다. 잃어버린 신뢰와 권위를 되찾는 것은 결국 법관들 자신들의 몫이다. 국민이 어렵게 만들어 준 이번 기회를 놓치지 않기를 기도하는 심정으로 지켜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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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진 | 천주교인권위원회 사무국장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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