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ActOn] 웹은 여성주의에 어떤 미래를 보여주는가

연재순서
1. 웹은 여성주의에 어떤 미래를 보여주는가
2. 웹 환경 개선 운동: 접속의 조건 만들기
3. 여성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그곳, 여성주의 웹진
4. 웹에서 이루어낸 여성주의 공동체: ‘언니네’를 중심으로
5. 웹에서의 여성주의 담론
6. 웹을 여성에게 향하게 하라, 그리고 여성주의적 소통으로 흐르게 하라

1996년 2월 8일, 전자프론티어재단(Electronic Frontier Foundation)1)의 창립자인 존 페리 발로우(John Perry Barlow)는 1995년 6월에 미국 의회를 통과한 ‘통신윤리법(CDA : Communications Decency Act)’을 반대하며 ‘사이버스페이스 독립선언문’을 발표한다. 광범위하며 과도하기까지 한, 당시 클린턴 행정부의 통신망 규제법에 대해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저항운동이 펼쳐졌다. 발로우는 사이버스페이스 독립선언문에서 그러한 저항운동이 목표로 하는 바, 즉 그들이 꿈꾸는 사이버스페이스 상(像)을 밝히고 있다.


“우리의 세계는 모든 곳에 있으면서 아무 곳에도 없지만 우리의 육체가 거하는 곳은 아니다. 우리는 인종, 경제력, 군사력, 태어난 곳에 따른 특권과 편견이 없이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그런 세상을 만들고 있다. 우리는 비록 혼자일지라도 침묵과 동조를 강요당하지 않으면서 누구나 어디에서나 그의 믿음을 표현할 수 있는 그런 세상을 만들고 있다.…(중략)…우리는 사이버스페이스에서 마음의 문명을 건설할 것이다. 그것은 너희 정부가 이전에 만든 것보다 더 인간적이고 공정한 세상이 될 것이다.”




발로우의 선언은 사이버 사회운동의 나아갈 방향과 방법을 제시하였고, 그것은 곧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구조, 즉 미디어의 창조였다. 국내에서는 1997년 1월 노동자 총파업과 함께 진행된 ‘노동악법?안기부법 전면철회를 위한 총파업 통신지원단’(이하 통신지원단)의 활동이 최초로 이를 증명했다. 당시 집권 여당이었던 신한국당의 노동법 개정안 국회 날치기 통과에 반발한 진보적인 정보통신단체들로 구성된 통신지원단은 해방이후 최초의 전국적 총파업에 대한 국민적 지지여론을 이끌어갔다. 통신지원단에서 기획한 블랙리본은 400여개의 동호회에서 게시하였고, 7000여명의 통신 이용자들이 서명운동에 동참한다. 그 때까지 단일 이슈에 대해 이처럼 폭발적인 반응은 찾아볼 수 없었다. 또한, 이메일을 통해 국제적인 지지여론을 확인하는 일을 전개했는데, 이는 인터넷이 국제연대활동의 교두보로 활용된 국내 최초의 기록이 되었다.2)


통신지원단의 활동은 인터넷이 대중들의 의사소통과 교류의 공간임을 각인시키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그 결과, 다양한 운동진영에서 인터넷 운동의 필요성을 공감하고 적극적으로 그 공간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이후 2000년 4?13 총선을 앞두고 결성된 ‘2000년 총선 시민연대’의 낙천?낙선운동은 웹상의 단체 간 연대와 안티 사이트 개설과 같은 네티즌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일구어냈다.3) 인터넷이 만들어낸 사이버 공간은 현실의 불평등하고 억압적인 관계를 역전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발로우의 기대에 부응이라도 하듯이, 통신지원단 활동과 낙천?낙선 운동은 현실의 정치적 권력관계에 실질적이면서 커다란 변화를 주었다.


하지만, 이러한 맥락의 변화가 여성운동에도 적용될 수 있는가? 발로우의 예언처럼 사이버공간에서 여성은 육체의 속박에서 벗어나 기존의 성차별적 권력관계를 해체하면서 주체적으로 사고하고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가? 그리하여 사이버공간이 여성에게 현실공간보다 더 인간적이고 공정한 세상이 될 수 있는가? 즉, 사이버공간은 여성주의적인 소통구조가 될 수 있는가?

분명 ‘그렇다’ 혹은 ‘아니다’의 일도양단(一刀兩斷) 식으로 대답할 수는 없는 문제이다. 현실공간의 권력 작용이 사이버공간에서 그대로 전이되어 끊임없이 여러 가지 문제들을 발생시키고 있고, 사이버공간에서 새롭게 나타나는 문제들도 있다. 하지만, 사이버공간을 이용해 이를 극복하려는 노력과 성과 역시 계속해서 이어져왔다. 현실적 상황이 바람직하지 않아도, 실재하는 노력과 그것이 추구하는 당위의 존재를 부정해서는 안 된다. 때문에 이 글은 사이버공간이 여성주의 미디어로서 발돋움해야 한다는 믿음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전제 하에 그 가능성을 찾고자 한다.

이를 위해서는 사이버공간, 구체적으로 가장 보편적인 사이버공간인 ‘웹(Web)’4)에서 여성주의 헤게모니를 확보하기 위한 일련의 활동들을 추적하고 평가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 먼저, 커뮤니케이션 권리라 불리는 인터넷 의제를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법률과 정책 그리고 이데올로기로서 관철시키려는 노력들이 있었다. 전반적인 인터넷 공공성 논의에 여성주의적 개입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추적하고, 웹을 여성주의 공공영역으로 만들기 위한 조건이란 무엇인지 살펴보았다.


웹 공간의 남성 중심적 지형을 변화시키려는 노력은 대안 언론 운영, 공동체 형성, 여성주의 이슈에 대한 운동 등 구체적 실천을 통해서도 나타났다. 여러 가지 사례들이 존재하였으나, 각 활동마다 몇 가지 기준에 따른 선별 과정을 거쳤다.


○ 대안 미디어 분석은 <달나라 딸세포>, <일다>, <언니네 - 채널넷> 등을 대상으로 삼았다. 여성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담아내는 이들의 글쓰기 방식과 담론 생산 과정을 분석하여 여성주의 웹진의 의미와 가능성을 살펴보았다.

○ 공동체 분석을 위해서 우선 여성들이 많이 이용하면서, 웹의 주류 질서에 해당하는 남성주의와 대별되는 가치와 규범에 기반한 공간으로 그 범위를 한정했다. 그 이유는 공동체 형성은 구성원의 임파워먼트(역량 강화)를 위해 이루어지며, 그렇게 형성된 공동체만이 본 연구보고서의 목적인 여성주의 공공영역 형성의 근거 자료로써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00년 4월에 탄생한 <언니네>의 형성 과정과 활동들을 조사 대상으로 삼았다.


○ 웹에서 여성운동을 발생시킨 사건들로는 2001년에 있었던 ‘부산대 여성주의 웹진 <월장> 관련 사이버 성폭력 사태’와 ‘운동사회 성폭력 뿌리 뽑기 100인 위원회’, 그리고 2005년 호주제폐지민법개정안 통과를 가능하게 했던 ‘호주제 폐지 운동’을 꼽았다. 세 가지 사건은 그 결과에 상관없이 여성운동이 웹을 어떻게 활용했고, 활용해야 하는지 보여준 사례이다.


여성주의가 웹에서 전개한 운동방식은 그동안 공공영역 논의에서 배제되었던 사적 영역, 즉 여성들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또한 기존의 사회운동에서 일반화된 중앙 중심적 결정보다는 개인의 자율적 참여에 바탕을 두는 민주적인 소통방식을 이용하고 있다.

위에서 밝힌 4가지 유형별 분석은 그 과정을 구체적으로 논증하면서 웹의 여성주의 미디어로서의 역할을 재규정할 것이다. 나아가 여성주의 공공영역 형성이 관성화된 사회운동의 새로운 기획이 될 뿐만 아니라 웹을 기반으로 한 풀뿌리 민주주의의 발판이 될 수 있음을 밝혔다.


<각주>

1) 1990년 인터넷 영역에서 표현의 자유, 자유로운 정보 유통, 정보 접근성 확대, 개인 프라이버시 등 기본적 자유 수호를 위해 설립된 조직. 존 페리 발로우(John Perry Barlow), 미첼 카포(Mitchell Kapor)가 공동으로 설립했다. http://www.eff.org.

2) 홍석만(1997), <총파업 통신지원단 사례를 중심으로 본 총파업 과정에서 통신의 역할>, ’97 서울국제노동미디어 자료집.

3) 한정자 外(2002), <여성단체의 사이버 공간을 활용한 여성운동 활성화방안 연구>, 한국여성개발원 연구보고서.

4) 사이버공간은 컴퓨터나 그 이외의 지능형 장비가 여러 가지 통신수단을 이용하여 접속했을 때 정보의 흐름이 가능한 공간을 의미한다. 인터넷은 그러한 네트워크들의 네트워크(Inter+Network)란 의미에서 출발한 개념이다. 팀 버너스 리(Tim Berners Lee)가 창시한 웹(web)은 그러한 공간을 만들 수 있는 인터넷 규약(protocol) 중의 하나이다. 사이버공간을 형성할 수 있는 매개체는 웹 이외에도 FTP, TELNET 등이 있는데 웹이 이들과 구별되는 특징은 하이퍼텍스트(hypertext)와 풍부한 문서 레이아웃(layout)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출처: 웹진ActOn
덧붙이는 말

홍지은 : 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

태그

여성주의 , 사이버페미니즘 , 웹 환경 개선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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