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ActOn] 내 지문, 그만 좀 탐냈으면

“인권단체에서 지문 정보를 민감한 정보라 하는데 그거 틀린 말입니다. 지문 가져다가 어디에 씁니까?”

지난 2월 20일 외교통상부 공청회. 한국정보보호산업협회 배영훈 회장이 지문 날인은 인권 침해가 아니라며 한 말이다. 일견 그럴듯해 보인다. 지문 정보가 유출된다 한들, 뭐가 그리 큰 문제일까. 문제는 배 회장 그 자신이 지문인식업체 니트젠의 대표이기도 하다는 것. 지문 정보의 가치는 지문인식업체들이 불철주야 뛰어다닌 덕분에 날로 높아지고 있다. 대학이나 회사의 각종 출입구에서 지문으로 ‘삑’, 운전면허 학원에서 지문으로 ‘삑’, 은행에서 지문으로 ‘삑’, 마트에서 지문으로 ‘삑’. 어떤 중고등학교에선 급식 전에 지문을 찍도록 해 급식비를 납부하지 못한 학생들이 공개적인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앞으로 지문 정보의 상용화는 더욱 가속화할 전망이다. 지문으로 지갑을 통째로 대체하는 것이 지문인식업체의 꿈이다. 밖에 나갈 때 손가락만 있으면 교통·쇼핑·은행업무·여가 등 모든 것이 해결되는 세상. 정말 편리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편리하다고 좋기만 할 것인가?

지문이 탐나는 이유

지문 정보가 가치 있는 것은, 이 세상 어느 누구와도 같지 않기 때문이다. 지문뿐 아니라 정맥, 홍채, 유전자 정보는 이 세상 모든 사람이 다 다르게 갖고 태어난다. 소위 ‘만인 부동성’은 생체정보가 다른 개인 정보보다 탁월한 식별성을 발휘하는 이유이다. 생체정보는 각 개인의 신체에 각인되어 특별한 신체적 변화가 없는 한 평생토록 바꿀 수 없다.

생체정보는 다른 개인 정보에 비해 타인이 위조하기 어렵다. 홍채 정보를 훔치는 것은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처럼 다른 사람의 눈을 훔쳐야만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생체정보를 훔치는 것이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희귀하긴 하지만 전문적인 기술을 이용하면 다른 사람의 지문이나 홍채를 흉내 낼 수 있고, 이렇게 이루어진 신분 위조는 거의 의심받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생체정보는 민감한 개인정보이다. 생체정보의 신분 증명은 거의 정확한 것으로 간주되는 만큼, 이것이 유출되어 신분 위조가 일어난다면 그야말로 치명적인 위협이 될 것이다. 여기에 비하면 주민등록번호 유출로 인한 신분 위조는 새 발의 피다. 지문은 그 자체로 존재를 증명하기 때문이다. 실제의 내가 여기에 있었다 하더라도 나의 존재는 지문 정보가 찍힌 곳에서 증명될 것이다. 기계적 증명이 당사자의 말보다 더 위력을 발휘하는 시대이다.

외교통상부 전자여권 공청회 발표내용



생체정보가 더욱 문제인 것은 그 확장 가능성 때문이다. 확실한 식별성 때문에 여러 개인정보 데이터베이스가 생체정보를 중심으로 연동되거나 통합될 가능성이 크다. 식별자를 중심으로 각종 개인정보 데이터베이스가 통합되면 총체적 전자 감시가 이루어지는 것이 가능하다.

따라서 이렇게 민감한 생체정보를 오만 군데에서 요구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우리는 이미 주민등록번호의 무차별적 수집과 남용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보고 있다. 주민등록번호 유출로 우리 사회의 개인정보 침해가 회복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는 경고가 여러 곳에서 들려오고 있다. 그런데도 아무런 교훈을 얻지 못하는가.

생체정보에 대한 개인의 권리는 거의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학교나 회사는 어째서 지문으로 신분을 증명해야 하는지 마땅한 설명도 없이 마구잡이로 기계를 도입하고 있다. 단지 확실하고 편리한 신분 증명 방식이란 이유로. 개인은 그 시스템에서 인식할 수 있는 지문을 내놓을 것을 일방적으로 강요받을 뿐이다. 이렇게 수집된 지문 정보가 목적에 맞게 사용되는지, 졸업이나 퇴사로 지문정보를 사용할 필요가 없어졌을 때 이 정보들이 안전하고 확실하게 폐기되는지 우리는 확인하지 못한다. 소위 ‘개인정보에 대한 자기결정권’이 깡그리 무시되는 형국이다.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는 편리함이 무슨 소용일까?

편리함 너머를 보자

지문을 단지 ‘편리한 열쇠’로 간주할 것이 아니다. 우리는 열쇠를 검사하는 열쇠 구멍 때문에 인격적인 모멸감을 느끼지는 않는다. 지문 정보를 요구하는 모든 출입 통제는 열쇠가 아니라 ‘사람’을 검사한다. 일단 모든 사람을 잠재적인 ‘부적격자’로 간주하고 자신을 증명할 수 있는 신체 일부를 요구한다. 여기서 불쾌감이 생기는 것이다. 물론 엄격한 신분 증명이 꼭 필요한 장소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학교에서 식당에서 왜 꼭 지문으로 자격을 확인해야 하는가? 왜 여기서 모욕적인 신분 검사를 감내해야 하는가?

특히 국가적 수준에서 지문 정보를 요구하는 것은 더욱 커다란 인권 침해를 불러올 것이다. 근대적 인권 개념이 발전하면서 ‘무죄추정의 원칙’이 확립됐는데, 이는 어떠한 사람도 유죄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미국 등에서 생체 여권을 통해 출입국을 관리하는 것은 결국 모든 사람을 잠재적 테러범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신의 존엄을 지키려고 생체정보의 제공을 거절하는 것이 가능할까? 테러범이라는 근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테러범이 아니라는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혐의를 쓰게 될 것이다. 무죄추정의 원칙은커녕, 이제는 무죄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지 않으면 유죄로 추정 당하는 것이다.

매우 강력한 통제 수단이 등장한 것은 그 배후에 강력한 통제 욕구가 있기 때문이다. 테러범을 잡기 위한 문제로만 볼 것이 아니다. 자본은 자유로이 국경을 오가지만 국가 이데올로기를 강화하는 것이 신자유주의의 특성이다. 국경을 오가는 외국인을 보다 확실하게 통제하고 불확실성을 완벽에 가깝게 제거하는 것. 문제는 통제 대상이 물건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데 있다. 사람을 철저히 데이터베이스 상의 개체로 대상화하는 시점에서 이미 인권 문제는 시작된다.

내 신체에 대한 권리는 나에게 있다. 그것은 국가에 대해서도 주장할 수 있는 국민의 기본권이다. 그런데 편리하다는 이유로, 테러범을 잡겠다는 이유로 모든 사람의 지문을 수집하고 검사하는 것이 허용된다. 지금의 사태를 전체주의적 감시 사회의 도래로 보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


출처: 웹진ActOn
덧붙이는 말

바리 : 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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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문날인 , 지문 , 생체정보 , 전자여권 , 생체여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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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문

    당신지문은 필요없어요.

  • 비니

    "어떤 중고등학교에선 급식 전에 지문을 찍도록 해 급식비를 납부하지 못한 학생들이 공개적인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이 부분은 진짜로 누가 인권을 무시 당하고 있는지 모르고 계신것 같습니다. 기사를 검색해 보세요.

  • 인권, 피식

    돈안내고 밥먹는게 인권입니까? 지문이 문제가 아니라 인권단체나 정부에서 돈없어서 밥을 못먹는 아이들에게 혜택을 주지 못하니까 이런일이 발생하는것입니다. 당연히 돈을 내고 밥을 먹던가, 돈을 내지 않으면 밥을 못먹어야 하는것 아닌가요? 공산주의도 아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