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나누기

돈벌이에 거리로 내몰린 국립극단 단원들을 만나다

문화연대 소식지 "상상나누기" 2010년 12호 특집기사 3

 

"돈 버는 걱정 말고 작품만 신경쓰라더니..."
- 돈벌이에 거리로 내몰린 국립극단 단원들을 만나다

 

상상나누기 기획단

(*공공노조에서 국립극단 단원들과 인터뷰를 진행하였습니다)

 


만약 수십년간 일해온 직장에서 곧 해고될 것이라는 얘기를 신문 기사에서 알게 됐다면?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지난 1월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국립극단을 법인화하면서 단원들을 해고하겠다고 말했다.

 

지난 23일 국립극장 내 국립극단 연습실에서 곧 길거리로 내몰릴 단원들을 만났다. 적게는 10년에서 많게는 30년 가까이 무대에서 울고 웃었던 그들이다. 이들은 이상직(45세), 한윤춘(40세), 노석채(40세), 이혜경(55세), 이영호(51세), 조은경(48세)단원이다.

 

이들은 화가 난다고 했다. 수십년 동안 배우로써 자존심을 걸고 공연을 해왔는데 하루 아침에 쫒겨나는 것을 못 참겠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국립극단은 나의 꿈"이라며 "국립극장은 돈을 버는데 신경 쓰지 말고 단지 좋은 작품을 만드는 데만 매진해 달라"던 유인촌 장관이 하루아침에 말을 바꾼 것에 대한 배신감을 토로했다.

 

조선일보 통해 알게 된 집단 해고

 

Q. 해고된다는 얘기를 극단에서 들은 것이 아니라 처음 조선일보 인터뷰 기사를 통해 알게됐잖아요? 그때 단원들 반응은 어땠어요?

 

이영호 :  법인화가 된다는 소문은 있었죠. 그런데 막상 조선일보에 딱 “죽느냐 사느냐, 고민은 끝났다”라고 나오는 거예요. 기사를 보니 '단원 고용승계가 없다'고 하니까 충격이죠. 그 동안 기회가 주어져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단체에 몸 담아 왔잖아요. 20년 이상을 시키는 대로 열심히 연극배우로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죠. 그런게 이번에 싹 무시된 것 같아요. 한마디로 화가 났습니다.

 

이혜경 : 배우는 그래요. 작품 선택 권한이 없으니까 때로는 마음에 들지 않는 작품도 하게 되요. 그래도 배우니까, 배우의 최고의 능력을 끌어내 작품의 완성도를 끌어올리죠. 그게 배우의 임무니까 최선을 다했어요. 말이 쉽지 굉장히 어려운 일이거든요. 그런데 그렇게 해온 배우들한테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거잖아요. 너무 화가 나죠. 국립극단 단원들은 적게는 10년에서 길게는 30년 이상 연기를 했어요. 이런 배우들을 문화부가 전부 자른다는게 이해되세요?

 

한윤춘 : 한마디로 인간에 대한 예의가 아니에요. 우리도 국립극단이 변화해야 한다는 것에는 동의를 해요. 그런데 ‘사느냐 죽느냐 고민 끝났다’ 이렇게 기사를 내보내니까 마치 단원들이 살기 위해 고민만 하는 것처럼 호도되는 거죠.

 

이혜경 : 신문 인터뷰가 아니라 문화부의 보도자료 인줄 알았어요. "국립극단 단원들은 기대에 못 미친다" 이렇게 국민들에게 선전하는 것 같더라구요. 유인촌 장관이 장관 되자마자 우리들에게 “법인화 안하겠다”했어요. “완성도 높은 작품만 해달라”고 했어요. (실제로 유 장관은 2008년 3월 국립극장 업무보고 자리에서 "자립은 말하기도 싫으며 국립극장은 돈을 버는데 신경 쓰지 말고 단지 좋은 작품을 만드는 데만 매진해 달라"며 공공예술기관으로서의 역할을 강조하는 발언을 했다.) 그런데 1년 반 만에 입장을 딱 바꾼거죠.

 

Q. 국립극단은 매우 오래된 예술단체로 알고 있는데요. 국립극단에 대해서 소개해 주시겠어요?

 

이영호 : 국립극단은 연극을 하는 곳이죠. 그런데 나라에서 세금을 대서 운영하는 이유는 민간단체나 소규모 단체가 못하는 연극 공연을 하기 위해서 하는 거예요. 설치령에도 국립극단 설립 목적은 ‘창작공연의 활성화’와 ‘세계적인 희곡 공연’을 알리는 데 있다고 돼있어요.
이번 4월 29일이 국립극장 창립 60주년인데 국립극단만 빼고 행사를 한다고 해요. 말이 안되죠. 국립극단은 국립극장의 모태에요. 극단만 60년이 됐고, 나머진 그 이후에 생긴거예요. 국립극장의 모태를 공중분해 시키고, 나머지 단체만 가지고 행사를 한다니 이해할 수 없어요.

 

국립극단은 우리나라 문화의 정체성

 

Q. 국립극단이 세금으로 운영되는데 솔직히 국립극단 연극을 보는 사람은 거의 없거든요. 이건 어떻게 생각하세요?

 

노석채 : 국립극장은 그 나라 문화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거예요. ‘국립극단’은 곧 국립극장을 얘기하는 것이고요. 일반 소극장이나 민간극장에서 올리기 어려운 것. 그런 연극을 올리는 게 국립극장인거죠. 그런 연극에 관객이 얼마나 동원되느냐, 수익성이 있느냐, 이렇게 흔들리면 국립극장의 색깔을 낼 수 없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국가에서 예산을 지원하는 거예요.
지금 문화체육관광부는 국립극단을 프로 집단으로 만든다면서 법인화로 가야 한다고 하는데, 그 이전에 기본적인 게 갖춰지고 극단의 레파토리를 상시적 올릴 수 있는 극장이 있어야 하는 거죠. 그리고 그 레파토리에 필요한 단원이 있어야죠. 국립극단 단원이 23명인데 1년에 한 작품을 레파토리로 겨우 올릴 수 있는 인원이에요. 외국 국립극단의 경우는 단원이 100명 정도 단원과  2~300명의 스텝이 공연에 투입되요.
그래도 10작품 중에 좋은 작품은 2~30%뿐이거든요. 유럽도 그래요. 그런게 쌓여서 레파토리가 만들어지고 그 레파토리가 극단이 갖고 있는 정체성이 되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극단은 그게 안되요. 정부나 문화부는 근본적 문제점을 해결하려고 하지 않아요. 이런 건 연극계에 종사하는 분들이 수십년 동안 세미나나 포럼에서 계속 제기했어요.

 

이상직 : 지금은 국립극단의 표가 6~7만원 정도 하는데, 90년대 초반에는 2천원짜리 표도 있었어요. 2천원부터 5등급으로 나눠 시민들이 싼 가격에 볼 수 있었죠. 그런데 국립극단이 97년 IMF 이후에 수익성 위주로 운영되니까 일반 시민이 못 보는 거죠. 가령 이전에는 우리가 지방공연을 보름에서 20일씩 갔었는데 현재는 지방공연 안가요. 돈이 안되니까요. 극장은 임대사업이 주력이에요. 국립극단 평가지표 보면요. 예술성 평가는 별로 없어요. 수익성 위주에요.

 

이영호 : 국립극단은 수익성을 올릴 수가 없어요. 창작극을 개발하면 수익성이 제작비 대비 10%도 안되는 작품도 있어요. 

 

노석채 : 우리 나라 사람들이 세익스피어나 안톤체홉은 알아도, 아는 한국 희곡작가를 대보라 그러면 거의 모르거든요. 왜냐, 외국극단은 수백년 전부터 유명 희곡작가가 있기 때문인데 일단은 좋은 희곡이 있어야 작품이 나오거든요.
그럴려면 장기간의 많은 지원이 필요해요. 정부가 먼저 순수예술의 중요성과 역할을 알아야 하는 거죠.
국립극단 문제도 그렇지만, 문화정책을 보면 그런 것을 기본적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요즘은 TV도 재밌는 프로그램이 많기 때문에 연극을 보러 극장까지 오려고 하는 사람은 제한적이에요. 무조건적인 비교가 아니라 전반적인 한국의 문화적 토대를 놓고 얘기해야죠.

 

수십년된 단원도 기본급 200만원 채 안돼

 

Q. 짧게는 몇 년에서 길게는 수 십년간 국립 극단에서 연극을 해오셨는데요. 이런 단원들의 처우는 어떤가요?

 

노석채 : 우리는 입단할 때 4차례나 시험을 봐요. 서류, 실기, 면접, 신체검사까지 보는데 우리나라 최고의 배우들이 들어온다고 보면 되요. 그런데 문화체육관광부는 국립극단 정체의 책임이 모두 배우들에게 있다고 전가하고 있어요.
 
이영호 : 오늘(23일) 뉴스를 보니 서울시민 평균 생계비가 330만원이라고 하는데 우리는 그정도가 안돼요. 32호봉이 최고 호봉인데 기본급이 200만원이 안돼요.

이상직: 국립극단 단장이 40년 동안 25명이나 바뀌었어요. 문화부 공무원도 전문성 없는 공무원 이 1~2 년 있다 가는 건데 이들이 뭐가 문제인지 조사라도 했으면 좋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국공립 문화예술기관에 대한 장기적 프로그램이 없어요. 공무원들이 와서 자기들 취향대로 막 바꿔요. 국립극단이 문제가 있다고 한다면 문제점을 잘 알아보고 이런저런 대책을 세우면 수긍을 하는데 그런 적이 한번도 없어요. 하다못해 우리한테 물어봐도 되는데 한번도 물어본적 없다니까요.

 

Q. 국립극단이 시민들에게 좀 더 다가가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공감하는 거잖아요. 그렇다면 방법론의 문제인데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좋을까요?

 

조은경 : 장기적인 관점이라면 일단 투자죠. 우리나라 정부, 문화부는 물론 국공립예술기관을 운영하는 공무원들의 생각이 바뀌어야 돼요. 그래야 대중에게도 좀 더 다가갈 수 있어요.  외국 극단에서는 몇 백년에 거쳐 축적된 걸 불과 100년 된 우리와 비교해요. 괴테가 팔십몇살까지 살았는데 파우스트를 몇십 년 걸쳐 쓰다 죽기 직전에 완성하고 죽었어요. 우리는 이렇게 하면 굶어 죽어요.

 

노석채 : 단적인 예로 국립극단의 무대 세트도 수십년 전 방식이에요. 이런 식으로는 시민들에게 다가설 수 없어요.

 

이영호 : 외국공연 나가면, ‘한국이 이렇게 우수한 문화를 갖고 있구나’ 하고 놀래요. 어떤 나라에 갔더니 대사관 직원이 "국립극단 공연으로 대사관 3년 치 일을 해줬다"라고 말하기도 했어요. 해외의 기업 지사장들도 국립극단 공연이 한국 이미지를 많이 올렸다고 고마워하거든요. (국립극단 단독 작품은 파리에서 관객들의 호응속에서 24일간이나 공연했다. 독일 공연에서는 현지 신문에서 “한국 국립극단이 독일을 점령했다“고 극찬하며 대서 특필하기도 했다. 연기력이나 앙상블 등에서 ‘완벽했다’라는 평을 받은 것이다.)
우리는 국내에서 평가절하 되고 있는데 이걸 갖고 유럽본토에 가니까 평가가 굉장히 좋아요. 왜 유럽에서 인정하는 국립극단을 우리나라에서 인정 안하는지 의문이에요. 유인촌 장관도 모르는거 같아요. 그러니 단원이 잘못됐다고 폄하하고 자르겠다는 거 아니겠어요?

 

적어도 예술 아는 사람이 극장장으로 와야

 

Q. 마지막으로 국립극장과 국립극단, 우리나라의 예술단체가 발전하려면 어떤 게 필요할까요?

 

조은경 : 문화예술에 대한 이해가 있는 분이 와야죠. 한가지 예로, 우리는 무대 위는 신성한 곳이라 여겨서 공연할 때나 연습할 때 외에는 잘 안올라가요. 그런데 극장장이 무대 위를 성큼성큼 걸어다녀요. 무대예술을 전혀 모르는 극장장이니 무슨 배려가 있겠어요?

 

이상직 : 장사하겠다고 단원 TO로 기획위원만 뽑는데 20명 가까이가 단원 TO에요. 운영자의 생각이 장사만 생각하는 거죠.

 

노석채 : 5년동안 단 한 사람의 단원도 뽑지 않았어요. 그러니 노령화 될 수밖에 없죠. 게다가 매년 한명씩 줄여서 30명이었던 단원이 23명으로 줄었어요. 이런 구조를 만들어 놓고 ‘철밥통’이니 뭐니 하면서 욕을 하니 답답할 뿐이죠.
최소한 여기에는 문화예술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있는 사람이 극장장으로 와야 하는데 그게 안되니까 발전이 없죠. 60년 정체의 원인은 거기에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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