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나누기

대학의 시장화와 탈시장화의 변증법

문화연대 소식지 "상상나누기" 2010년 14호

 

대학의 시장화와 탈시장화의 변증법
-시장화 된 대학을 진보적 가치의 대학으로 변화시켜야 한다

 

배성인

(문화연대 문화정책센터 소장)

 

오늘도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강의실에 들어섰다. 항상 그래왔듯이 학생들은 교단에 누가 있던 관계없이 친구들과 즐겁게 조잘거리기도 하고, 휴대폰으로 통화하기도 하고, 졸린 눈을 비비며 수업을 준비하기도 한다. 나도 잠시 아스라이 멀어져간 소중했던 과거를 회상해 본다.


이제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과거와 너무나 달라져서 긴장을 늦추지 않고 호흡을 가다듬는다. 강의 시간에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고민 고민 하지만 준비된 멘트를 구사해서 효과를 거둔 적은 별로 없는 것 같다. 그것은 학생들이 체감하기에는 시대적인 상황, 의식, 삶의 수준 등 격차가 너무 크기 때문일 게다. 


최근 고려대 김예슬 학생의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는 선언이 충격적으로 다가왔지만 파장이 예상보다 커질 것 같지는 않다. 같은 신분의 학생들과 그 선언의 의미에 대해서 얘기를 나눠봤지만 여전히 형식적이다. 심적으로 동의하는 학생들이 많아 보이지만 그 실체를 찾아보기는 힘들다. 인내심을 갖고 십여분 이상 얘기를 지속했지만 학생들의 표정에서는 무심함과 짜증이 묻어 나온다.


그럴 때면 예전 거리에서 거의 선동에 가까운 언변으로 대중들의 마음을 움직여 호주머니에서 지폐를 꺼내게 만들었던 약장수 같기도 하고 하릴없이 잔소리만 늘어놓는 기성세대와 영락없이 닮은꼴이다. 하지만 이러한 풍경에 적응이 된지 이미 오래라 나 역시 개의치 않는다. 이명박의 “대학도 수익사업 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라며 “외국은 대학이 호텔, 슈퍼마켓도 하지 않나?”라는 발언이 오히려 관심을 끄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지난 20여 년 동안 대학 강단에 서면서 지금까지 일관되게 상투적으로 목소리를 높였던 것이 두 가지가 있다. 그것은 첫째, 전태일 친구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것이고, 둘째, 비판적이고 실천적인 지성인이 되라는 것이다. 물론 커다란 기대는 하지 않는다. 현실적이지도 않고 구체성도 떨어져서 요즘의 학생들에게는 불필요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르크스의 ‘처음은 비극으로, 두 번째는 희극으로’ 반복된다는 역사반복론에 비춰보면 상황이 그리 비관적이지는 않다. 신자유주의가 전면화 되면서 한국의 대학이 희망적이었던 적은 없었다. 동물의 왕국처럼 승자만이 살아남는 경쟁의 공간에서 학생들의 선택의 폭은 매우 좁을 수밖에 없다.  


김예슬씨가 “이름만 남은 ‘자격증 장사 브로커’가 된 대학, 그것이 이 시대 대학의 진실이다.”라고 지적한 것처럼 스펙조차 이윤 추구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대학과 자본의 전략을 이제는 누구나 인식하고 있다. 대학은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 아니라 인재를 두 번 죽이는 공간이 되어버렸다. 정의와 진리를 내팽개치고 세속의 욕망으로 가득한 신자유주의형 인간을 양산하는 곳이다.


대학의 운영자들은 자본의 축적양식과 경영기법을 도입하여 돈벌이에 급급하고 있다. 그들은 상호간 돈 되는 사업을 위해서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학교에 자본을 유치하기도 하고 직영사업을 늘이면서 매출도 늘리고 내부 원가도 줄이고 있다. 학장이나 총장은 후원금을 끌어오고 수익사업에 앞장을 서서 성과를 내야 인정을 받고 연임도 가능하다.
대학의 한 주체인 학생들이 대상화된 지도 옛날이야기다. 자본의 노예가 된 대학에서 학생들의 졸업장은 새로운 노비문서에 불과하다. 학벌주의는 점점 우리의 숨통을 더 세게 조여 오면서 이 사회를 벼랑 끝으로 몰아가고 있다. 학벌주의가 신분상승의 지름길이란 생각이 사라지지 않으면 결코 사회 발전은 있을 수 없다.


그렇다고 대학 또 다른 주체인 교수들에게 기대할 수 있는 것도 없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보수나 진보나 지식인들은 어느 누구도 자유롭지 못하다. 진보적 지식인 역시 두려움과 눈치 보기에 급급해 있으며, 그들이 주장하는 정의와 진리 역시 립서비스에 불과할 뿐이다. 이렇게 모두가 공범이 되어 학생들의 권리를 박탈하였으며 좌절하게 만들었다. 그러니 그들에게 이기주의니 기회주의니 하면서 인격을 모독하는 비판을 삼가야한다.
그래도 대학에는 희망이 있으며, 희망을 만들어야 한다. 지금 인류는 새로운 기회와 위기를 동시에 맞고 있다. 우리가 우려하고 있는 시장화, 상품화, 이기주의, 생명 경시 등 비인간화 문제로 새로운 삶의 방향에 대한 기회와 위기를 동시에 맞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삶의 환경에서 미래의 방향과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곳이 대학이다. 대학은 본래 고된 노동과 질병 그리고 억압과 불평등으로부터의 해방을 위한 수많은 지식과 이론을 생산하고 전달하였다.


그런 의미에서 대학을 진보적 삶을 위한 탈물질주의, 코뮨주의, 생태주의 등 새로운 시대를 위한 협동적 덕목을 가진 인재를 양성하는 곳으로 탈바꿈시켜야 한다. 대학의 진보적 가치는 인류의 보편적 삶을 주도하는 인재 양성에 있다는 자명한 논리를 진보적 지식인들이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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