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나누기

그대에게 꽃을

문화연대 소식지 "상상나누기" 2010년 17호 후일담 1

 

그대에게 꽃을 
-<오마이 뉴스> 10만인 클럽 특강 '김정헌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전 위원장' 강연 후일담
 

                                           
오유나(문화연대 미디어문화센터 활동가)

 

2010년 4월의 봄은 몹시 추웠다. 의례적인 ‘꽃샘추위’라고 여기기엔 유례없이 차고 혹독한 바람이 거리를 휩쓸고 있었다. 들려오는 소식 또한 온통 흉흉하기 이를 데 없었다. 천안함, MBC 사태 등 있어서는 안 되는, 그리고 일어나지 않을 수 있었을 크고 작은 사건들이 가뜩 지치고 힘겨운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얼어붙게 했다. 이명박 정권 2년, ‘빼앗긴 봄’의 풍경은 그렇게 시리고 음울했다.

 

그 4월의 마지막, 나는 상암동 오마이 뉴스 대회의실에서 열린 <오마이 뉴스 10만인 클럽 특강>에 참석하기 위해 길을 나섰다. ‘예술가인 내가 MB와 유인촌에 분노하는 까닭’이란 매력적인 강의를 듣기 위해서였다. 늦은 저녁, 도착한 그곳엔 화가이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전 위원장인 김정헌 교수(공주대학교 미술교육학과)가 ‘MB와 유인촌에게 분노하는 이유’를 알고 싶은 사람들이 가득 자리를 메우고 있었다. 김정헌 전 위원장에 대한 간략한 소개 후 희끗한 머리칼과 소년의 미소를 간직한 김 전 위원장이 자리에 들어섰다. ‘회피 봄날’이라는 의미심장한, 이젠 ‘4월의 봄’마저 이명박 정권을 회피하고 있다는 김 전 위원장의 유쾌한 첫 인사에 청중들의 웃음과 박수가 쏟아졌다. 어깨 시린 봄밤이 금세 훈훈해지는, 따뜻한 만남의 시작이었다.


"이런 얘기를 들으면 화가 안 납니까?"

 

정권을 잡은 후, 이명박 정권과 유인촌 문화부 장관은 문화예술계를 장악하기 위한 비열한 공세를 집요히 펼쳤다. 2008년 12월 5일, 그들은 마침내 그토록 갈망하던 ‘김정헌 위원장 해임’이라는 목표를 달성했다. 당시 특별 조사 등 해임의 수단으로 행해진 일련의 과정이 야기한 억울함과 부당함, 무능하며 부도덕한 위원장으로 몰아가기 위한 모략으로 인한 인간적 모멸감은 ‘분노’라는 한 단어만으로 표현되기엔 부족할 정도였다. 한 인간의 존엄성을 그리고 예술가로서, 교육자로서, 그리고 문화예술계를 대표하는 공직자로서 살아온 64년의 시간을 온통 거짓말과 모략, 음모로 덮어 치욕의 구덩이에 파묻으려는 사악한 권력에 어찌 화가 나지 않을 수 있을까. 김정헌 전 위원장은 그 만의 ‘정직한 분노’로 권력과 맞섰다. 2010년 2월, 법원으로부터 승소판결을 받아 위원장으로서 다시 출근을 시작한 것이다. ‘출근투쟁’ ‘한 지붕 두 위원장’이라는 뉴스로 알려져 세상의 주목을 한 몸에 받았던 김정헌 위원장의 용기 있는 행동은 문화예술계 뿐 아니라 이명박 정권의 폭압아래 신음하고 있는 많은 시민들의 희망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했다. 강의 도중, 그런 사실들을 강렬히 혹은 담담히 회고하던 김 전 위원장은 무엇보다 자신의 행동이 많은 이들에게 즐거움을 안겨 주었다는 것에 가장 큰 힘을 받았다고 했다. “많은 사람들이 내 모습을 보고 즐거워했는데, 아, 나도 세상을 즐겁게 하는구나” 라고.


실제로 김 전 위원장의 소식을 접한 시민들은 인터넷과 트위터 등을 통해 폭발적인 지지와 응원을 보냈다. 출근투쟁 시 1인 시위를 하고 싶다는 반응도 끊이지 않았다. MBC PD 수첩으로 방영된 ‘한 지붕 두 위원장’을 본 시청자들 또한 해당 방송의 게시판으로 ‘진짜 위원장’이 겪어야만 하는 수모에 가슴 아파했고 결연한 의지에 경의를 표했다. 즐기면서 싸우고 원칙과 소신으로 불의에 저항하는 사람만이 수확할 수 있는 올곧은 ‘분노의 열매’였다.

 

웃자고 한 일에 죽자고 덤비는, 교육적 차원을 운운하며 멋대로 고소고발을 남발하는 자는 결코 줄 수 없는 즐거움. 그러한 일들을 저지르고도 ‘그렇게도 해보고.. 재밌잖아?’와 같은 말을 내뱉는 자는 절대로 받을 수 없는 존경과 사랑.

 

정직한 분노는 세상을 움직인다. 김정헌 전 위원장은 그것을 행동으로 보여 주었다.


분노의 상상력으로 거짓과 기만에 맞서기

 

거짓과 기만으로 세상을 장악하려는 이명박 정권과 유인촌 장관에게 맞서 문화와 예술은 어떠한 역할을 해야 할까. 김 전 위원장은 동시대 예술가들이 ‘분노의 상상력’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꿈을 갖기를 주문했다. 그러기 위해선 무엇보다 감정이 열려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감정이 열려있어야 분노할 수 있으며 그 분노로 끊임없이 세상을 바꾸려는 꿈을 꾸어야 한다고. 문화와 예술은 들꽃, 빗물, 돌과 같은 ‘자연’에게 영감을 취해야 하는데 이명박 정권이 하고 있는 4대강 사업 등은 그 영감의 원천을 파괴하고 있으며 예술가들은 그러한 것에 대해 당연히 분노 하여야 한다고. 그 힘에서 나오는 상상력만이 거짓과 기만의 시대를 바꿀 수 있기에. 우리에게 소중한 것을 지킬 수 있는 강한 힘이 되는 것임을.

 

“거짓말이 이 정권을 붕괴시킬 겁니다.”


 김 전 위원장은 단호하게 말했다.

 

“거짓말은 결국 국민을 속이는 것이고, 자기들 스스로 붕괴할 성을 만들고 있는 겁니다. 거짓말은 하다 보면 계속 할 수밖에 없고, 끝내 밑바닥까지 가게 됩니다. 정권이 자신들의 안위를 정말 생각한다면 지금이라도 거짓말 하지 말라, 는 명진 스님의 말씀을 새겨듣고 반성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과연 이러한 ‘거짓과 기만의 정직한 귀결’을 알고 있을까. 알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그들은 스스로를 속이며 결국 파멸의 행진을 멈추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대에게 꽃을

 

 

두 시간의 강연이 마무리되고 참가자들의 진지한 질문이 이어졌다. 호기심으로 참가한 일반 청중부터 예술가의 길을 걷고 있는 후배 화가들까지, 다양한 분야의 많은 사람들이 김 전 위원장의 답변에 귀를 기울였다. 강의의 마지막까지 김 전 위원장은 즐거워 보였다. 어떠한 질문에도 특유의 유쾌함을 잊지 않고 삶과 예술의 철학을 즐겁게, 마음으로부터의 애정을 담아 전해 주던 따뜻한 모습.

 

그 자리에 참가하기까지 김 전 위원장의 분노의 까닭 뿐 아니라 스스로의 이유도 새겨보고 싶었던 나는, 실은 김 정헌 위원장을 ‘전’ 위원장으로 표기해야 하는 현실 자체에 몹시 화가 났었다. ‘전’ 이라는 단어를 써야 할 때마다 참 분하고 슬픈 마음이 들었던 것들. 다시 출근을 시작한 김 전 위원장에게 마지못해 문화예술위원회 비좁은 한켠을 내주듯 하며 떨떠름한 얼굴로 문 앞을 지나치기 꺼리던 그 곳 사람들. 비를 맞고 걸으시는 그 분의 등을 볼 때의 가슴 먹먹함. 그런 것을 재밌다고 말하던 문화부 장관이라는 자에 대한 기막힘. 그리고...더 크고 힘차게 이 부당한 시대와 싸우지 못했던 미안함...그런 것을 모두 모아 김 전 위원장에게 전해 드리고 싶었다.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기에 애꿎은 꽃이라도 드리고 싶었던. 수줍은 용기로 건네 드린 꽃다발의 의미를 김 전 위원장은 과연 알아 주셨을까.


이윽고 강의를 마치신 김정헌 전 위원장의 주위는 어느 새 많은 사람들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위로와 격려, 존경과 믿음으로 오가는 악수와 인사. 거짓과 기만의 시대를 살아가는, 그렇기에 이 시간 이후 더욱 크고 강하게 분노할 이유를 알고 있는 이들 간의 따뜻한 동지애.


그렇게 세상을 바꾸는 분노의 힘으로 미소 짓는, 꽃보다 더 아름다운 사람, 사람들과의 만남의 시간은 깊어갔다. 오래 두고 기억할, 아름답고 따뜻한 봄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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