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나누기

오세훈식 문화도시, 나쁘거나 더 나쁘거나

문화연대 소식지 "상상나누기" 2010년 18호 후일담 1

 

오세훈식 문화도시, 나쁘거나 더 나쁘거나
-<"문화도시 서울"을 말하다> 토론회 후기


김상철

(문화연대 회원)


지방선거가 한창이다. 언제는 정책선거가 됐었냐만은 올해 지방선거는 가히 기념비적이다. 전 정권과 현 정권의 인정투쟁 양상으로 흘러가는 선거통에 선거전부터 부각되었던 무상급식 의제나 4대강 의제, 그리고 뉴타운재개발 등과 같은 정책 의제는 휘발되었다. 게다가 반쪽짜리 텔레비전 토론회는 시작부터 끝까지 7년전을 오락가락 할 뿐 미래를 둘러싼 이야기는 없다. 이런 선거의 상황은 조금이라도 이번 선거에 대해 교과서적인 입장을 지니고 있는 나같은 사람에게는 하나도 재미없다. 나아가 짜증이 날 뿐이다.


서울시 선거만 놓고 보자면, 그리고 정책선거라는 가정을 한다면 단연코 현 서울시에 대한 쟁점은 '문화'다. 그것이 컬쳐노믹스의 이름이건, 한강르네상스이건, 도시경쟁력강화이건 간에 역대 어느 서울시보다 현 서울시는 정책 도구로서 '문화'가 가지고 있는 힘을 활용했다. 그런 점에서 문화연대가 지난 5월 11일 환경재단 레이첼카슨홀에서 개최한 "문화도시 서울을 말하다: 서울시 민선 4기 문화정책평가 및 민선 5기 문화정책제안"은 2부리그의 한계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매우 중요한 자리였다고 생각한다.


과시적인 문화장식물에서 '휴먼웨어'에 대한 새로운 상상력으로


발제를 맡은 이동연 교수(한국예술종합학교)는 오세훈 식의 정치를 '이미지의 정치'로 정의하면서 "오세훈 서울시장은 자신에게 걸 맞는 이미지 정치의 주요한 수단으로 문화정책을 선택했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이런 선택은 천문학적 액수의 시정홍보 등 '이미지의 이미지'를 위한 관심으로 나아갔다고 평가했다. 발제자가 보기에 이런 오세훈 시장의 이미지 정치는 바로 이점에서 전대 시장인 이명박 대통령과 구별된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오세훈 시장은 근대적 정치인의 화신인 이명박 대통령과는 대비되는 "탈근대적 정치인의 이미지"를 갖게 되는 것이다.

구체적인 분석에 들어간 이동연 교수는 서울시의 문화정책을 평가함에 앞서 세밀한 접근을 주장했다. 이를 테면 이런 문화정책 중에는 '그 자체로는 긍정적인 비전'을 가지고 있는 사업이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기완결적인 문화정책으로서가 아니라 도시개발, 생태환경 등 타 분야와의 네트워크 연쇄효과를 고려하여 접근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매우 동의할 수 있는 접근인데, 이를 바탕으로 기술되는 평가는 발제자의 다른 작업을 기대해야한다. 왜냐하면 발제문의 내용은 개별사업에 대한 사업평가를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발제는 창의문화도시 마스터플랜이 제시한 대략적인 사업평가를 진행하는데, 이에 대한 가장 선명한 평가는 "이 많은 사업들을 불과 3년 안에 할 수 있는가, 그리고 왜 꼭 모든 사업들이 3년 안에 마무리되어야 하는지"라는 부분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다시 말해서 단기간에 가장 가시적인 효과를 내기 위한 사업이 바로 창의문화도시마스터플랜이었다는 것이다. 이런 속도전은 사실상 서울시 문화정책의 부실화 우려를 높이며, 실제로 역사문화도시 복원, 공공디자인 플랜 등과 같이 부실화된 사업이 나타난다.


발제자가 대표적으로 꼽는 부실사업은 바로 '디자인 서울'사업이다. 발제자는 "디자인 서울은 새로운 디자인 혁신을 통해서 세계화의 중심으로 진입하려는 기획을 갖는 기호"로서 평가하는데 이는 "새로운 시각성을 이식하고 공간을 탈역사화해 전혀 새로운 탈근대적 공간을 생산하는 방식을 취한"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이런 낯섬과 이식된 이질감은 강남의 디자인거리에 조성된 '미디어 폴'사업과 '광화문광장'사업으로 이어진다. 발제자가 지적한 바와 같이 "서울시 문화정책 중에서 철학과 비전, 계획 모두에서 가장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는 것이 바로 디자인거리조성이나 광화문광장과 같은 도시공간의 공공성 정책이다. 강남대로에 설치된 미디어폴은 상호작용적인 공공디자인을 IT기술로 구현한 유비쿼터스 시대의 새로운 미적 감수성이라 할 만하지만 사실상 노점 철거를 위한 도로 정화 및 광고 활성화 사업을 위한 시각 서비스로 전락한다. 또한 광화문광장도 광화문 세종로 일대를 역사문화공간으로 조성하자는 민간의 기획이 "인공 조형물이 지배하는 기억상실증에 걸린 테마파트"로 전락했다.

이런 한계는 모두 문화정책이 내적으로 담지해야 하는 인간에 대한 관심 혹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성을 망각한대서 비롯된다. 그 때문에 발제자는 대규모 문화 하드웨어는 영향평가의 대상으로서 기능과 역할에 대한 재논의가 되어야 하며 상대적으로 빈곤한 문화소프트웨어의 생산을 벗어나기 위해 '문화적 휴먼웨어'에 대한 새로운 상상을 제안하고 있다.


나쁘거나, 혹은 더 나쁘거나

 

이어서 진행된 토론은 발제문에 대한 각주라기 보다는 개별 분야에 대한 소발제의 성격을 띠었다. 안태호 연구원(예술과도시사회연구소)은 서울시가 창의문화도시 마스터플랜에 따라 추진하고 있는 서울시 창작공간 조성 사업에 대해 따졌다. 토론자는 서울시의 창작공간 조성사업이 나름의 긍정성에도 불구하고 1년여의 사업 진행과정에서 나타난 난맥상에 대한 관심 부재, 도구화된 창작공간 정책, 그리고 창작공간 조성사업에서의 가장 치명적인 문제인 공간운영의 자율성 문제는 비판적으로 평가되어야 한다고 제시했다.


특히 행정이 주도하는 창작공간사업이 평가에 용이한 지표로서 계량화되는 한계를 인정하더라도 창작공간이 터해 있는 지역과 지역주민과의 화학적 결합이 가능한 환경에 주목했다. 안태호 연구원의 평가는 창작공간사업이 단순히 과시적인 사업이어서가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입주해있는 창작자들을 '마네킹'으로 만들기 때문에 문제라는 진단이다.


다음 토론자였던 염형철 사무처장(서울환경운동연합)은 오세훈 시장의 환경행정을 평가하면서, 애당초 환경시장으로 등장했던 역사를 환기시킨다. 5대 핵심프로젝트에 2개, 15개 중점사업에 3개나 포함되었던 환경정책은 추진과정에서 축소되거나 사라졌다. 자가용 억제 대신 은평새길과 대심도도로라는 자동차 전용도로를 만들고 지천보존 대신 지천뱃길을 추진하고 있다. 또한 한강의 자연성 회복이라는 '한강 르네상스'사업은 한강주변에 거대한 콘크리트 정원을 조성하고, 물류 및 관광을 위한 예비 뱃길로 전락했다. 반면 공기질 개선은 지지부진하고 에너지 사용량도 지속적으로 증가추세에 있다.


염형철 사무처장이 제안하는 대안은 도시안에 공원을 넣는 방식이 아니라 공원안에 도시를 넣는 방식이다. 즉, 서울이라는 도시의 자연성을 회복하는데 중점을 두고 여타 도시계획이 이에 부합하도록 마련되는 것이다. 잠실수중보와 신곡수중보를 철거하여 한강의 본래적인 물길을 복원하고 강변림을 조성하는 한편, 도시내 친환경도시농업벨트를 조성하여 도시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고 적극적인 교통수요관리정책을 통해 자가용 사용을 억제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장정욱 간사(참여연대)가 서울시의 광장운영 정책을 통해 바라본 서울시의 풍경은 더욱 음산하다. 서울시에 광장과 관련된 조례만 5개에 이르고, 서울시가 무조건적인 우선권을 지니며 시민들의 자체적인 행사를 사전검열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사용허가도 기준도 없이 자의적이며 심지어 행사가 없는데도 서울시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광장 사용이 불허되기도 했다.


지난 해 광장조례개정운동을 주도적으로 해왔던 장정욱 간사는 서울시의 광장정책이야 말로 서울시 행정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단적이 사례라고 비판하며, 특히 광장사용의 특권화는 서울시만이 아니라 서울의회 등 지방권력의 모든 부분에서 용인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마지막으로 최범 평론가(디자인)의 토론은 매우 간결하면서도 함축적이었다. 최범 평론가는 디자인의 문제를 '문화 민주주의'라는 관점에서 살펴볼 것을 주문했다. 그에 따르면 "디자인 덕분에 살 맛 나요"라는 서울시의 대표적인 이미지 광고는 전형적으로 '발화의 주체가 전도'된 상황을 보여준다. 시민들의 말을 들어야 하는 사람이 시민을 대신해서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디자인은 이제 기본입니다. 그것도 아주 절박한 기본이죠'라는 오세훈 시장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의 입장에선 그런 절박함은 다가오지 않는다. 디자인은 삶을 풍부하게 하고 새로운 참여의 계기로서 문화 민주주의의 심화가 되어야 할테지만 서울시의 디자인 정책에는 가르치려는 선생과 영문모르고 훈계를 듣는 학생이 있을 뿐이다.


그러면서도 최범 평론가는 정책으로서 디자인 자체를 백안시할 필요는 없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지적한다. 문제가 되는 것은 디자인 정치이지 디자인의 생활화와 문화화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요한 것은 디자인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철학이 되는 것이다.

 

모두를 위한 문화, 모두에 의한 디자인을 위해


이번 토론회의 말미엔 늘상 있게 마련인 당부가 이어졌다. 사회를 본 정희섭 소장(한국문화정책연구소)은 이번 토론회가 일회적인 사업이 아니라 새로운 문화서울의 전망을 만들기 위한 아래로부터의 기획으로 자리매김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다. 사실 그 말은 이 토론회를 주최한 문화연대와 참가자들의 자기 주문일 수도 있겠지만 모두를 위한 말이기도 했다.


문화와 디자인이 이토록 실체적인 힘을 가지고 일상을 파고들었던 경험이 있었던가. 거리와 풍경이 디자인이라는 이름으로 뒤집히고, 생존의 장이 보기에 좋고 걷기 좋은 거리로 환원되는 폭력적인 경험이 말이다.


한참 지방선거운동 중이다. 하지만 누구도 지난 4년의 서울시를 말하지 않는다. 그렇게 지난 4년이 그대로 반복재생이 될 것같아 불안하다. 하지만 그 불안이 영혼을 잠식하기 전에 우리의 기획을 가져야 한다. 그래서 '이번 토론회가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말을 다시금 믿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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