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나누기

당신이 다른 생각을 가졌기 때문이다

문화연대 소식지 "상상나누기" 2010년 19호 후일담 2

 

당신이 다른 생각을 가졌기 때문이다
-14회 인권영화제 후일담

 

재영
(인권영화제 자원활동가)

 

영상매체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익숙한 하나의 콘텐츠는 바로 ‘인간’이다. TV에선 ‘인간극장’과 같은 휴먼다큐가 꾸준한 인기를 얻고, 스크린에선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와 같은, 사라져가는 인간성에 대한 짙은 사색의 영화가 지속적으로 걸리는 것이 그 증거라 할 수 있겠다. 이는 자극적이고 쾌감만을 뒤쫓는 영상이 넘쳐나는 시대에 ‘인간’이란 주제는 여전히 유효하며, ‘인간’ 본연의 모습을 직시하고 성찰하려는 자세가 우리 내면의 본질임을 보여준다.

 

여기서 영상은 인간을 보여주는 하나의 효율적인 통로이자 효과적인 장치로서 기능한다. 그리고 그것은 공감이란 특유의 심리적 메커니즘의 도움을 받는다. 넘쳐나는 가련한 이미지들에 둘러싸인 현대인일지라도 생생하게 재생산된, 거친 삶을 살아가는 타인의 모습을 보며 자신을 성찰하고 미래를 희망한다. 그리고 문득 떠올린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이렇듯 영상이란 자아를 들여다보는 거울이며 타자를 이해할 수 있는 도구가 된다.

 

그렇다면 인간을 보여주는 영상을, 영상이 보여주는 인간을 인권과 연결시킬 수는 없을까.‘공감’이란 매개물로 타인의 고통을 함께 공유할 수 있을까. 사실 이러한 의문들은 작년에 열린 인권영화제를 보기 전에는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사회를 변화시키고 발전시키는 것은 그저 시민의 깨어있는 의식과 지속적인 문제제기만이 전부일 것이라고만 여겼을 뿐. 그래서 2009년 9월부터 시작한 인권영화제 자원활동은 내게 큰 의미였다. 보다 넓게 사고하고 보다 많은 가능성을 찾을 수 있었기 때문에.

 

 

'당신이 다른 생각을 가졌기 때문이다.'란 슬로건으로 2010년 5월 27일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시작한 14회 인권영화제가 4일간의 여정을 거쳐 같은 달 30일 막을 내렸다. 15주년이라는 또 하나의 타이틀 아래 진행된 영화제의 준비과정은 대중에게 다가가기 위한 기획과 인권에 대한 고민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냉정한 현실 속에서 고통 받는 사람들의 모습을 간직하고 함께 짐을 짊어나갈 길을 만들어내는 시간이었다. 넉넉지 않은 재정과 인원으로도 행복했던 것은, 같은 곳을 바라보는 사람들과 함께 있다는 것과, 또한 조금씩 긍정적으로 변화할 세상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었으리라.

 

인권영화제의 상영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체계적인 자원활동가들의 움직임과 짜임새 있는 영화 상영, 여기저기서 모인 작은 관심들은 인권영화제가 가진 내력과 인지도를 의심하지 않게 했다. 더욱이 영화제를 매년 찾아오는 관객들, 그리고 처음 영화제를 본 후에 받은 감동의 소감을 쏟아준 관객들은 준비한 자의 마음을 벅차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동안 더 나은 세상을 만들게 했던, ‘다른 생각을 가진 당신’ 때문에 조금이나마 숨 쉴 수 있는 세상이 만들어 질 수 있었던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여전히 부족한, 인권영화제를 바라보는 정부의 시선과 일부의 무관심이란 부분이 상쇄될 수 있었던 건 절망보다 큰 희망이 뒷받침했기 때문이다.

 

'공감'을 형성할 수 있는 '영상'으로 세상을 바꾼다는 것은 어쩌면 너무 커다란 이상인지도 모른다. 인권이 보편적인 담론으로 성장하는 모습은 가까운 시간 내에 한국 사회에서 찾아보기는 힘들 것이다. 신자유주의에 먹혀버린, 경쟁만을 강요하는 이곳에서는 더더욱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인권영화제를 지지하며 미래를 향한 발걸음을 늦추지 않을 것이다. 사람 사는 세상을 꿈꾸고, 꿈을 영상으로 만들고, 영상을 통해 ‘인간’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하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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