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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호-어깨걸기]선명하게 기억하고, 함께 행동하는 홈리스

-416 인권선언 참여 후기

[어깨걸기]는 홈리스행동과 뜻을 함께하는 연대 단위의 소식과 홈리스행동의 연대 활동을 소개하는 꼭지입니다.


1년 전, 아침 뉴스 속보에서 들려오는 바다 한가운데서 일어난 사고. 다행히 전원구조라 하여 가슴을 쓸어내렸건만 그것도 잠시. 우리는 476명 중에 304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생매장 당하는 모습을 생중계로 지켜보게 되는 끔찍한 일을 당했다.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깊은 고통을 느꼈다. 온 몸을 부르르 떨며 안타까워하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것 밖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저 가라앉는 배를 보면서, 살려달라고 창문을 두드리는 사람을 보면서도 손 놓고 가만히 있었던 정부를 지켜봐야 했다. 물 위로 하나둘 떠오르는 사람들을 울며 건져냈고, 아직도 찾아주길, 찾아오길 바라는 9명의 실종자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무엇이 이토록 큰 참사를 만들어냈는지, 304명의 생명을 담보로 할 만큼 무엇을 감추려고 하는지 진상규명을 하고자 했다. 우리의 아이들이, 배에 탔던 사람들이 왜 가만히 있으란 말 때문에 구조되지도 못한 채 차가운 물속에서 죽어야 했는지 진실이 궁금했다. 이토록 무책임하고 무능한 정부의 태도에 놀라, 인간으로서 기본적인 존엄이 짓뭉개지지 않게 하려고 스스로의 안전을 지키고자 거리에서 외쳤다. 많은 이들이 유가족과 함께 슬퍼하며 울고, 함께 분노했으며, 함께 잊지 않기 위해 행동했다.
그랬던 우리였는데. 지금은 그 뜨거웠던 눈물도, 함께 기억해야 할 일을 각자에 삶에 치여 사느라 누군가의 일로 떠넘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억울한 일이 아직 풀리지도 않았는데, 아직도 안전하게 살고 있지 않은데, 힘없는 사람들은 계속해서 사회에서 존엄을 박탈당하며 살고 있는데, 뻔히 알면서도 적당히 타협하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미 그렇게 살고 있음을 깨닫고 있다.


존엄과 안전을 위한 인권선언
이러던 참에 내년 4.16 참사 2년을 맞아 사회의 다양한 사람들의 존엄과 안전을 위한 인권선언을 준비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4.16 인권선언에서 풀뿌리토론의 장을 준비하여 홈리스야학에 다니는 학생들과도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지금 빈곤의 상태를 살아가는 우리의 입으로 4.16을 다시 기억하고, 안전한 사회를 위해 우리의 권리를 만들어가는 내용으로 진행되었다. 사실 처음에는 조금 염려되는 부분도 있었다. 참여하는 야학 학생들이 힘든 거리노숙 중이고, 자활도 일자리도 종료되어 불안한 상태인데다, 기초생활수급자로 한 달 살이 중인데 치열하게 살아가느라 과연 4.16을 기억하기나 할까.
잘못된 생각이었다. 희생자 가족들이 함께 부른 네버엔딩스토리0416 뮤직비디오를 보며 훌쩍이는 이가 있었다. 지금 어떤 생활을 하는지 뻔히 알고 있는 분인데 눈시울이 붉어지는 그 모습에 홈리스에게 4.16은 어떤 의미일까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거리노숙, 열악한 쪽방과 고시원 살이, 자립할 수 없는 노동조건, 그리고 아픈 몸. 이렇게 극한의 빈곤에 처하기 전 안전한 그물망처럼 예방책이 있었다면 이들이 사회에서 배척당하며, 거리를 전전할 이유가 있을까. 권력을 움켜쥐고 이윤창출을 위해 혈안이 되어있는 자본주의 사회는 인간의 존엄, 생명을 위한 안전은 뒷전이다. 그래서 홈리스에게 더 혹독한 냉대와 차별은 당연한 것일지 모른다. 홈리스 뿐 아니라, 지난 세월호를 통해 더 분명하게 알게 되었다. 진실을 은폐하려는 권력과 자본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사람은 바로 나, 우리라는 것이다. 하지만 서로의 아픔에 연대함으로 위기를 이겨낼 수 있다는 믿음이 현 상태를 바꿀 수 있는 힘이 된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래서 홈리스가 세월호를 기억한다는 것이 더 특별하게 다가왔다.


홈리스가 세월호를 기억한다는 것

풀뿌리 토론을 위해 3가지 질문을 중심으로 생각해보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① 세월호 참사의 이유는 무엇일까요?
“폐기처분해야 할 배로 사람을 태운 것도 문제고, 그 배에다가 불법으로 물건을 너무 많이 실었어. 다 돈 벌려는 기업을 위해 규제완화해서 그런거야. 그걸 정부에서 봐준거지. 사람들 안전을 책임져야 할 직원들도 비정규직이라서 당연히 책임감이 없지. 언제 잘릴지 모르고 돈도 못 버는데 자기 먼저 살아야지. 구조과정에서도 문제야. 국가적 재난에 대비해야지. 그래서 신속하고 안전하게 구조해야 할 시스템도 없고, 결국 우왕좌왕하다 사람들 다 죽였지. 왜 빨리 구하지 않았나. 대통령은 뭐 했냐. 그 이유도 속 시원하게 밝히지도 않고, 사과도 안해. 분명 대통령 잘못인데. 죽은 사람들을 떠올리면 가슴만 아파.”

② 홈리스의 안전하지 못했던 경험은 어떤 것이 있나요?
“돈 없을 때 제일 슬프고 괴롭다. 하루에도 몇 번씩 죽고 싶었다. 노숙하며 힘들고 외로워서 먹지 않아야 하는데도 술에 취해 잠을 이뤘다. 아플 때 보호받지 못했었다. 주민등록이 없어서 치료도 못 받았다. 가방을 메고 길을 가는데 세워서 불심검문을 하는데 그것도 여러번.. 기분이 안좋았다. 장애인이라고 일 못하냐, 돈 벌고 싶다. 낙후된 사회 안전망, 복지에 인색한 국가예산..”

③ 안전하지 못한 사회를 바꾸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세월호 참사의)진실을 밝히자. 실종자 9명을 빨리 찾아야 한다. 세월호참사를 되풀이 하지 않으려면 안전교육 및 노후된 배와 관련 법을 개정, 허가에 대한 규제강화가 필요하다. 잘못된 제도를 개선하고 권력자를 심판해야 한다. 대통령이 국민을 지켜야지. 수급도 깎고, 없는 사람은 굶으라는 거냐. 돈보다 사람이다. 정부는 양질의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야 한다. 병원에 갔을 때 치료받을 수 있는 권리, 건강보험 강화. 복지수급 받는 것 자체가 무시받지 않아야 한다. 장애인도 마음 편히 일할 수 있는 세상. 그 누구라도 어떤 이유로든 차별받지 않아야 하고, 인간답게 살아갈 권리. 가장 약자가 존중받는 사회가 필요하다.”


질문에 대한 답을 하나씩 달면서 이들 홈리스에겐 4.16이 굉장히 선명한 기억으로 남아있음을 알게 되었다. 참사는 희생자와 그들 가족만의 아픔이 아니었다. 국가에서 안전하지 못한 삶을 강요당하는 홈리스이기 때문에 공통분모가 많았다. 때문에 격하게 공감하며, 세월호의 고통을 같이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개인적으로 자칫 잊고 있던 것을 끄집어내는 시간이 되어 부끄럽기도 했으나, 홈리스와 함께 4.16을 떠올리는 것 자체가 소중하게 여겨졌다. 이렇게 다른 아픔을 가진 이들과 연대하는 마음으로 공감하고 나누며 기억을 더 또렷하게 하는 작업이 필요했던 것은 아닐까. 오늘에 안주하며 살아가던 우리에게 다시 한 번 차별에 저항할 힘을 가슴에 새기는 과정이었다.
풀뿌리토론을 마치고 참여자들이 모두 작은 실천으로 노란리본을 즐겨 입는 조끼에 매달고, 가방에 단단히 고정시켰다. 304명의 억울한 죽음을 떠올리며, 세월호를 건져 올리기 위해, 빈곤한 홈리스라고 차별받지 않기 위해, 사회에서 약자로 살아가지만 생명을 존중받으며 안전하게 살기 위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