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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호-세계의 홈리스]두 갈래의 길

[세계의 홈리스]는 미국, 유럽 등 세계의 홈리스 소식을 한국의 현실과 비교하여 시사점을 찾아보는 꼭지

이번 호를 포함하여 두 차례에 걸쳐 미국의 텐트촌과 관련한 이야기들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한국과는 달리 미국에서 텐트촌은 미디어의 대대적인 주목을 받았습니다. 홈리스 텐트촌은 비공식적이고 조직화되지 않은 빈곤층의 저수지로서, 경제 불황의 결과로 급속도로 증가한 빈곤층들이 머무는 곳으로 묘사되었습니다. 미국에서 텐트촌은 비정상적인 시대의 강력한 상징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경제 불황 이전에도 텐트촌은 존재해 왔고, 2000년대 초 경제 활황 시기에도 텐트촌이 출현했다는 사실을 봐도 경제 불황을 텐트촌 형성의 직접적이고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설명하는 것은 적절치 않습니다. 그보다는 지난 30년간 홈리스에 대한 범죄화/형벌화 조치와 함께 진행된 지방정부의 도시정책, 복지정책의 변화가 핵심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습니다.

홈리스에 대한 형벌화/범죄화 조치와 텐트촌
미국에서는 공공공간으로부터 홈리스 대중을 추방할 수 있는 권한을 경찰에게 부여하는 홈리스의 범죄화와 관련한 법률이 증가하면서 공공공간으로부터 홈리스를 추방하고 감시하는 새로운 조치들, 홈리스의 배회를 막기 위한 건축학적 개입, 급식 금지 등 공간적 배제를 수단으로 삼아 빈곤이 가시화되는 것을 관리하는 수단들 또한 증가하고 있습니다. 도심의 재개발 압력이 증가하는 것도 거리에서 홈리스를 몰아내는 형벌화/범죄화 조치가 확산되는 하나의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조치들은 쉼터나 영구적인 지원주거와 같은 홈리스 지원체계를 확대하기 위한 시도들이 축소되는 흐름과 함께 나타나고 있습니다.
도시 주변부에 거대한 텐트촌이 출현하게 된 것 역시 홈리스에 대한 형벌화/범죄화 조치가 도시 중심부에서 시행된 것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경찰의 단속과 괴롭힘으로부터 피난처를 구해야만 하는 홈리스 대중들에게 텐트촌은 일정하게 안전지대로서의 역할을 해왔습니다.

  시애틀의 홈리스 텐트촌 [출처: google search]
두 갈래의 길: 시애틀과 프레즈노의 사례
미국의 프레즈노와 시애틀이라는 도시의 사례는 홈리스 텐트촌과 관련해서 눈여겨 볼 점들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1980년대 이후 소규모의 텐트촌들이 미국의 도시풍경의 특징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합법화된 텐트촌은 1990년대 후반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이동식 화장실, 식사와 모임을 위한 공동공간, 생활편의시설 등을 갖추게 된 곳도 있습니다. 2000년대 초반부터 프레즈노와 시애틀에서는 거대한 규모의 텐트촌이 자리를 잡아가는 모습이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현재는 다양한 텐트촌이 존재하고 있는데, 이 중에는 법적으로 인정된 경우도 있고, 암묵적으로 용인되어 오긴 했으나 공식적으로는 불법적인 형태로 남아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한편, 거대한 텐트촌은 도시 경제의 재구조화가 이루어지는 경계를 따라 형성되어 왔습니다. 투자가 중단되면서 쇠퇴한 도시뿐만 아니라 급속한 성장이 이루어진 도시에서도 텐트촌이 형성되기 시작했습니다. 캘리포니아 중심에 있는 프레즈노는 경제적・사회적 변화의 흐름 아래 급속한 쇠퇴를 경험하면서, 빈곤층 비율이 높고 홈리스 비율도 높은 편입니다. 프레즈노에서는 연방정부의 재정지원으로 운영되는 쉼터와 민간 자선기관을 통해 운영되는 홈리스 지원체계가 중심을 이루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반면에 시애틀은 가장 진보적인 지방정부 중에 한 곳으로 꼽을 수 있는 곳입니다.

홈리스에 대한 범죄화/형벌화 조치는 이 두 도시에서도 피해갈 수 없는 대세가 되었지만 그것에 대응하는 방식에 있어서 두 도시는 서로 전혀 다른 길을 보여주었습니다. 프레즈노에서는 2002년부터 2004년 동안에 구걸금지법이 통과되었습니다. 이 법률이 통과되면서 이 법을 어긴 사람에게는 최대 1,000달러에 이르는 벌금을 부과하거나 6개월의 징역형에 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조치에 따라 도시 중심부의 상업지구에서는 주변을 배회하거나 쇼핑카트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강력하게 단속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조치를 통해 홈리스들은 도시 중심부의 주요 공간으로부터 쫓겨났으며, 도시 외곽의 주변부 지역으로 밀려나게 되었습니다. 2002년 이전까지 프레스노 시의 경찰들은 상업지구, 산업지구 사이의 경계에 위치해있던 텐트촌을 그대로 용인해 왔었지만, 구걸금지법이 통과된 이후부터는 수백 개에 이르는 텐트촌을 분산시키는 조치를 실행하게 됩니다. 한편으로 상인들의 불만에 부딪히면서 합법적인 텐트촌의 마련이 제안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2004년부터 2006년 동안 합법화된 일부 텐트촌을 제외한 나머지 텐트촌에 대한 철거조치는 산발적으로 계속되었습니다. 텐트촌 철거에 대한 소송을 제기했던 사회단체들의 노력으로 철거는 부분적으로는 제한되었지만, 도시 중심부의 텐트촌에 대한 경찰의 탄압은 지속적으로 증가하였습니다. 일부 텐트촌의 합법화와 다수 텐트촌의 불법화라는 선택적인 형벌화 조치를 특징으로 하는 프레즈노의 경우, 홈리스에 대한 엄격한 법집행이 집중적으로 진행되면서 텐트촌은 도시 주변부의 지정된 장소로 제한되었으며, 이를 제외한 나머지 텐트촌들은 강제적으로 철거되었습니다. 이와 함께 제한적으로 허용된 텐트촌 주변에 홈리스에 대한 지원서비스와 급식 제공자들을 몰아넣는 조치가 취해지게 되었습니다.

한편, 시애틀에 위치한 세 곳의 거대한 텐트촌 역시 프레즈노를 비롯한 대다수의 미국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홈리스에 대한 형별화/범죄화 조치에 대한 대응으로 출현했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은 프레즈노의 사례와 전혀 달랐습니다. 세 곳의 텐트촌 거주민들은 홈리스 문제를 이슈화할 수 있는 상징적인 장소들을 점거하면서 집요할 정도로 계속된 철거 위협에 맞서 수년 간 투쟁을 벌였습니다. 물론 소규모 텐트촌에 대한 경찰의 철거 조치는 지속되었지만, 저항의 과정에서 조직화된 모임과 집회, 농성과 같은 다양한 활동들 역시 꾸준히 전개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두 곳의 대형 텐트촌이 합법화되는 성과를 얻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시애틀의 텐트촌 형성은 홈리스에 대한 범죄화/형벌화 조치에 맞서 주거와 홈리스 지원체계의 부족 문제를 제기하는 과정 속에서 이루어졌습니다. 홈리스 지원단체와 당사자들의 저항이야말로 시애틀에서 텐트촌이 형성・유지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
프레즈노와 시애틀의 텐트촌 모두 홈리스에 대한 통제를 목적으로 하는 형벌화 조치에 의해 영향을 받았지만, 프레즈노에서는 순응이 대세를 이루면서 제한된 장소에 텐트촌이 형성되었다면, 시애틀에서는 도시를 가로지르는 당사자들의 정치적인 저항을 통해 텐트촌이 형성된 특징을 보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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