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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호-특집] 서울역 사전투표소 설치, 누구를 위한 것이었나?

[특집]

사전투표소 설치 사실도, 투표가능 여부도 전달받지 못한 거리홈리스
지난 호에서 다룬 바 있듯, 2013년부터 사전투표제도가 도입됨에 따라 거주불명등록자(옛 주민등록말소자)도 신분증만 있다면 투표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2014년 국정감사 과정에서 홈리스를 비롯한 거주불명등록자의 투표율이 지나치게 낮다는 문제가 제기되었고, 이에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는 최근 한 언론과의 통화에서, 지난 4월 13일에 치러진 20대 총선에서 이를 개선하고자 노력했다고 밝힌 바 있다. 선관위는 “노숙인 시설 및 관련 단체에 사전투표 안내 공고발송, 지하철역 등 전광판에 투표방법 안내” 등의 조치를 취했고, 서울역이나 용산역과 같은 거리홈리스 밀집지역에 사전투표소를 설치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본지가 취재 과정에서 만난 서울역 인근의 거리홈리스 가운데 상당수는 자신의 투표가능 여부는 물론 서울역에 사전투표소가 설치되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선거가 끝난 직후 서울역 인근의 거리홈리스를 대상으로 면접조사를 진행한 결과, 전체 응답자(21명) 가운데 66.7%(14명)가 사전투표소 설치 사실을 들어본 적이 없다고 답변하였으며, 설치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도 거주불명등록자가 투표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는 경우는 드물었다. 실제로 사전투표 첫 날이던 4월 8일, 서울역사 바깥의 어느 곳에서도 후보자에 대한 정보는 물론 사전투표와 관련한 안내문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시민 고객들’만 환영하는 서울역 사전투표소
투표 과정에서의 문제 또한 존재했다. 투표권 행사를 위해 서울역 투표소를 찾은 거리홈리스 A씨는 선거안내원에게 주민등록말소자도 투표가 가능한지 물었으나, 안 된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말했다. 주변에 있던 한 시민이 가능하다는 얘기를 하자 그제서야 담당 공무원이 나와서 안내를 하기 시작했으나, 그 역시 오랜 홈리스 생활로 인해 투표절차를 잘 알지 못하며 후보자에 대한 정보 또한 전무한 A씨에게 적절한 안내를 제공하지 못했다.

그러나 서울역 인근의 거리홈리스들이 모두 이 같은 ‘정보부족의 문제’로 인해 선거를 하지 못했던 것은 아니다. 서울역 광장에서 만난 거리홈리스 B씨는 “사전투표를 하려고 했지만 투표장에 취재진이 너무 많아 얼굴이 찍힐까봐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거리홈리스 C씨는 신분증만 있으면 서울역에 들어가서 투표할 수 있다는 말에 “들어가기도 힘들어. 검은 옷 애들이 우리 같은 사람 아예 들어가지도 못하게 하는데, 선거철이라 계단도 못 있게 해”라고 말하며 “노숙인들이 서울역 일반인들 있는데 가는 것이 힘드니 따로 모아서 투표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말처럼, 거물 정치인들의 방문이 끊이지 않았던 서울역 사전투표소 주변에는 수많은 취재진들이 카메라를 들이밀고 있었으며, 또한 평소와 마찬가지로 ‘검은 옷’을 입은 용역 경비들이 곳곳에서 거리홈리스가 들어오는 것을 주시하고 있었다. 이렇게 ‘불청객들’이 떡하니 버티고 있는데, 과연 ‘주인’이 맘 편히 집으로 들어갈 수 있겠는가? 물론 이들이 이 땅의 모든 주인들의 투표권 행사를 방해하는 것은 아니다. 이들은 오직 ‘행색이 남루한 이들’에게만 주목할 뿐이지 ‘시민 고객들’에게는 별 관심이 없다. 이쯤 되면, 서울역 사전투표소가 왜 ‘KTX 타는 곳’ 앞에, 그리고 ‘패밀리 레스토랑으로 향하는 계단’ 앞에 설치되었는지 알 법도 하다. 즉, 그곳은 그저 ‘소비능력이 있는 사람들’만을 위한 장소였던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의 투표권 행사, ‘안하는 것’ 아닌 ‘못하는 것’의 문제
물론 홈리스를 비롯한 수많은 가난한 사람들이 실제로 투표를 할 수 있도록 제도적 환경을 마련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이들의 실질적인 참정권 보장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가난’ 그 자체임을 인식하는 것이다. 이번 서울역 사례가 보여주듯, 문제는 가난한 사람들이 투표를 ‘안하는 것’이 아니라 ‘못하는 것’, 더 정확히는 ‘못하게 만드는 현실’에 있다. 서울역의 사례는 가난한 사람들이 단순한 배제의 차원을 넘어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자격 자체를 박탈당하고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이는 곧 심판할 기회, 심판할 자격조차 제대로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난한 주제에 투표도 안 한다”, “가난한 주제에 부자 정당에 투표한다’” 등 오늘날 도처에서 무분별하게 제기되고 있는 주장들이 ‘엉터리’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 같은 주장의 기저에는 가난의 문제를 가난한 사람들의 문제로, 박탈의 문제를 선택(혹은 자유)의 문제로 치환하는 ‘극도의 무식함’이 자리하고 있다. 부자 정당이 득세하는 것이 그토록 싫다면, 가난한 사람들이 투표하지 않는 것이 그토록 문제라고 생각한다면 이러한 엉터리 주장들의 향연에 취해 있을 것이 아니라 문제의 핵심인 ‘가난을 만드는 구조’를 없애기 위해 싸워야 하는 것이 아닐까? 아마도 취재과정에서 만났던 거리홈리스들이라면 여전히 극도의 무식함을 맘껏 뽐내고 있는 자들을 향해 이렇게 말할 듯하다. “그 입 그만 다물고 같이 싸우자”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