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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호-다림질] 먹고 죽은 귀신이 “내 장래희망”이라고?

개그로 둔갑한 폭력, 가난을 조롱하다

[다림질]은 홈리스에 대한 차별과 편견을 확대하는 문화를 ‘다림질’해보는 꼭지

[출처: KBS 개근콘서트 '1대1' 화면 캡처]
<개그콘서트>의 인기코너 ‘1대1’, 가난의 문제를 웃음거리로 만들다
KBS의 코미디 프로그램 <개그콘서트>의 ‘1대1’(사진)이라는 코너가 최근 인기를 끌고 있다. 퀴즈쇼 방식으로 진행되는 이 코너에서 개그맨들은 각각 퀴즈쇼 진행자와 참가자의 역할을 나눠 맡는데, 이때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선사하는 사람은 아무리 쉬운 문제를 내어도 언제나 ‘엉뚱한 대답’을 늘어놓는 퀴즈쇼 참가자들이다.

얼마 전부터 이 코너에 ‘일호선’이라는 이름의 캐릭터가 ‘퀴즈쇼 참가자’ 역할로 등장하고 있다. 산발머리에 때가 낀 얼굴, 반쯤 찢어진 옷이 특징인 이 캐릭터는 누가 보더라도 영락없는 ‘거지’ 또는 ‘노숙자’를 연상케 한다. 그 역시 다른 참가자들처럼 진행자가 내는 퀴즈에 기상천외한 오답들을 내어놓으며 웃음을 자아낸다. 퀴즈의 패턴은 대개 속담이나 동요의 뒷부분을 맞추는 것인데, 일호선은 언제나 자신이 처한 상황을 중심으로 답을 맞히려고 하기 때문에 그가 말하는 답은 모두 오답이 된다. 문제는 이 ‘상황’이라는 게 오롯이 가난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라는 데 있다. 그가 엉뚱한 대답을 내놓으면 내놓을수록, 배고픔의 문제, 위생의 문제, 잠자리의 문제 등 가난한 이들이 직면하는 모든 문제들은 한낱 웃음거리로 전락한다. 가난 때문에 겪게 되는 이런저런 상황들이 웃음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흥부전>에는 있지만 <개그콘서트>에는 없는 것
사실 가난한 사람들의 처지를 조롱함으로써 웃음을 자아내는 행태들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아주 오래전부터 있어 왔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의 처지를 조롱하는 악질적인 코미디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때때로 가난을 웃음의 소재로 삼으면서도 공격의 대상을 ‘가난한 사람’이 아닌 ‘가난을 만드는 사람(또는 세상)’에 맞추는 경우도 있었다. 우리나라의 역사에서 그 대표적인 예를 찾자면 <흥부전>을 들 수 있을 것이다. <흥부전>은 가난한 흥부와 부자 놀부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코믹하게 그려낸 이야기이다. 그런데 이야기의 초반부를 잘 살펴보면, 흥부가 가난해진 원인과 그 과정들이 아주 상세히 묘사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가 가난해진 가장 큰 이유는 놀부가 ‘농사지을 땅’을 몽땅 빼앗아 갔기 때문인데, 이로 인해 살던 집에서 쫓겨난 흥부는 풀을 엮어 만든 ‘집 같지 않은 집’에 살면서 굶주림에 시달리게 되고 여러 이웃들에게 업신여김까지 당한다. <흥부전>은 이 눈물 나도록 비참한 상황을 매우 과장되고 우스꽝스럽게 표현한다. 그러나 이 과장과 우스꽝스러움 속에는 흥부가 가난한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또한 여기에는 모든 것의 원흉인 ‘나쁜 놈(놀부)’이 존재한다. 즉, 자신의 이익을 위해 흥부의 집과 일자리를 빼앗은 놀부야말로 흥부를 가난하게 만든 나쁜 놈이라는 것을 분명히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 <개그콘서트>의 코너 ‘1대1’에서는 가난의 원인이나 과정이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 놀부와 같은 ‘나쁜 놈’도 없다. 여기에는 가난 때문에 인간의 존엄이 위협받는 상황을 거침없이 비하하는 묘사만이 있을 뿐이다. 바로 이것이 <흥부전>과 <개그콘서트-1대1>의 결정적인 차이인데, 동시에 이는 ‘개그’와 ‘폭력’을 구분하는 경계이기도 하다.

개그는 개그일 뿐 오해하지 말라고? 폭력은 폭력일 뿐이니 개그하지 말라!
“개밥에 손대고 싶다”, “먹고 죽은 귀신이 내 장래희망” 따위의 말들을 마구 내뱉는 <개그콘서트> 일호선의 행태를 과연 ‘개그’라고 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이것은 개그가 아니라 사회적 약자인 거리홈리스의 처지를 조롱하는 폭력일 뿐이다. 가난을 항상 진지하고 비극적으로 다룰 필요는 없겠지만, 적어도 가난 때문에 ‘인간의 존엄’이 위협받는 상태를 조롱의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이것은 우리가 재해를 당한 사람들, 상을 당한 사람들을 가리키며 웃지 않아야 하는 것과 꼭 같은 이유에서이다. 고통 받는 사람을 조롱하는 것보다 더 비열하고 졸렬한 폭력이 세상에 또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 이런 주장을 하고 있노라면, 꼭 중간에 끼어들어 자신의 무식함을 자랑하고 싶어 하는 ‘멍텅구리’들이 나타난다. 이 멍텅구리들은 대개 두 부류인데, 하나는 자기가 자행하는 폭력을 개그라고 착각하는 멍텅구리들이며, 다른 하나는 한 치의 의심 없이 그것을 개그로 받아들이는 멍텅구리들이다. 이들은 하나 같이 “개그는 개그일 뿐 오해하지 말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며, 때때로 ‘표현의 자유’ 운운하며 사람들을 훈계하려 든다. 주변에 이런 사람이 있다면 이렇게 말해주자. 자유를 말하고 싶으면 평등도 함께 말하라고. 평등 없는 자유란 결국 약자를 괴롭힐 자유에 다름 아니라고. 따라서 “폭력은 폭력일 뿐 개그하지 말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