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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호-홈리스인권 아우성] 까마귀, 구둣발 그리고 걸린 죄

[홈리스인권-아우성]은 인권지킴이 활동을 통해 만난 거리 홈리스의 이야기를 나누는 꼭지

서울역 까마귀

서울역 일대에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시커먼 색으로 치장한 사람들이 유난히 많다. 그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이들은 한밤중에도 까만색 선글라스를 낀 채 역사 주변을 활보하곤 하는 서울역 경비원들일 것이다. 인근의 거리 홈리스들은 이들을 일러 ‘까마귀’라 부른다. 그렇지만 이들의 주요 임무가 ‘뚜렷한 목적 없이 체류하는 자에 대한 계도’인 것을 보면, 단지 그 특유의 복색 때문에 까마귀라는 별칭이 붙은 것은 아닐 것이다. 여하간 서울역 경비원들의 이런저런 만행들을 익히 들어온 나로서는, 이 까마귀란 별칭이 참으로 그럴싸하게 들렸다. 그러나 최근 목격한 어떤 장면 속에서 서울역 경비원의 모습은 까마귀라기보다 ‘마귀’에 더 가까웠다.


구둣발 사건

지난 7월 16일, 서울역으로 취재를 나갔다. 저녁 8시 쯤 되었을까, 서울역 광장 시계탑 근처에서 반가운 지인들을 만나 얘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저 멀리에서 서울역 경비원 한 사람이 역 직원을 대동한 채 걸어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급히 주변을 둘러보니, 자고 있는 것인지 쓰러져 있는 것인지 모를 거리 홈리스 한 명이 바닥에 누워 있었다. 나는 저치들이 이 사람을 ‘치워버리기’ 위해 오는 것임을 직감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누워 있는 홈리스 앞에서 경비원의 발걸음이 멈췄다. 경비원은 구둣발로 홈리스를 두어 번 툭툭 차며 이렇게 말했다.

“어이! 일어나, 일어나!”

이 장면이 눈에 들어온 순간, 정말 온몸이 얼어붙는 듯했다. 그도 그럴 것이, 누워 있는 사람을 구둣발로 차는 건 생전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왜 사람을 발로 차느냐고 따졌더니, 경비원은 황당하다는 투로 자기가 언제 그랬냐며 반문한다. 그의 씰룩거리는 입을 보니 별안간 부아가 치밀었다. 하여 똑똑히 두 눈으로 봤노라고, 왜 거짓부렁이냐고, 불과 5초 전에 했던 짓도 기억 못하냐며 그를 다그쳤다. 내가 핸드폰을 꺼내자 그동안 잠자코 있던 역 직원이 경비원에게 손사래를 치며 어딘가에 무전을 한다. 아마도 일이 커질 것이라 여긴 모양이다. 경비원은 억울하다는 듯 한숨을 슬쩍 내쉬고는, 대뜸 나에게 나지막한 목소리로 “알았어요, 미안해요”라고 말했다. 물론 이 영혼 없는 사과에 그다지 유감은 없었는데, 일단 사과를 받아야 할 사람은 내가 아녔기 때문이다. 정작 나를 아연실색케 한 것은, 홈리스를 상대로는 세상에 다시없을 폭군처럼 굴던 그가 내 앞에선 그 낯빛을 바꿔 약자인 체 너스레를 떨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였다. 순식간에 강자에서 약자로 돌변한 그 경비원의 처세술은, 그저 사람을 발로 차서는 안 된다는 그런 평범한 윤리를 말하고 있던 나를 졸지에 ‘갑질하는 진상고객’ 즈음으로 만들어 버렸다.


진상고객에게 걸린 죄?

「경비업법」은 경비원이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 타인에게 위력을 과시하거나 물리력을 행사하는 등 경비업무의 범위를 벗어난 행위를 해서는 안 되며(제15조의2), 이를 위반할 경우 1년 이하의 징역이나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제28조) 규정하고 있다. 서울역 경비원들 역시 이 법의 구속을 받는데, 이들은 경비업법에 따라 허가를 받은 업체에 소속된 사람들이지 코레일(한국철도공사)에서 고용한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저 법령에 따른다면, 홈리스를 구둣발로 찼던 그 경비원은 명백한 범법행위를 저지른 셈이 된다.
그렇지만 그다지 어둡지 않던 여름날 저녁, 사람들 모이는 광장 한복판에서 ‘범법행위’가 벌어졌다는 사실은 어딘가 의미심장하다. 어쩌면 나의 항의에 적잖이 황당해하던 그 경비원의 모습은, 그 같은 범법행위가 적어도 서울역에서는 그리 이상하거나 드문 일이 아님을 암시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만약 정말 그렇다면, 그 경비원의 죄는 그저 나 같은 진상고객에게 ‘걸린 죄’에 그치고 말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 ‘걸린 죄’를 묻는다 한들, 우리가 보게 될 것은 고작해야 그로 인해 쫓겨나게 된 ‘까마귀’와 그 자리를 새롭게 차지한 또 다른 ‘까마귀’뿐일 것이다 그러므로 무언가 근본적인 변화를 꾀하고자 한다면, 사람을 ‘까마귀’로 만들고 그 까마귀에 ‘구둣발’을 신기며 그 구둣발로 행한 죄를 단지 ‘걸린 죄’에 그치도록 한 그런 자들에게 먼저 책임을 물을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고객안전 운운하며 저손에 피 묻히지 않으려 애먼 이들을 홈리스 앞으로 떠민 자들, 홈리스 때문에 국가 이미지가 나빠지고 지역 발전이 더디다며 부득불 우겨대는 자들, 되도 않는 사이비 이론을 들먹이며 서울역이 온갖 범죄의 온상이라는 기사와 보고서를 써재끼는 자들, 그리고 이런 협잡질에 놀아나 눈앞에 펼쳐진 야만 행위에 무감각해진 그런 자들 말이다. 저 야만적인 ‘구둣발 사건’을 논할 때 이들의 책임을 거론하지 않는 사람이란 그저 남 속이길 즐겨하는 사람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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