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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호-다림질] 노숙인 ‘혼밥’이 사회적 자폐?

“고개를 푹 숙이고 오직 밥만 먹습니다. (…) 소통하는 방법을 잃으신 거죠”

[다림질]은 홈리스에 대한 차별과 편견을 확대하는 문화를 ‘다림질’해보는 꼭지


지난 4월 21일,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은 라디오 방송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혼밥 문화(혼자 밥을 먹는 문화)를 병폐적인 사회현상이라 강력하게 비판했다. 그는 혼자서 밥을 먹는 일이 인간의 600만 년 전통에 어긋나는 일이며, 혼밥 문화야말로 타인과의 소통을 적극적으로 거부하는 “사회적 자폐”나 마찬가지라고 주장한다.

문제는 황교익이 혼밥의 대표적 사례로 ‘노숙인 무료급식소’에서의 경험을 제시했다는 점이다. 황교익은 무료급식을 받은 홈리스가 옆 사람을 돌아보거나 이야기를 나누며 밥을 먹는 게 아니라, 벽 쪽에 가서 고개를 푹 숙인 채 혼밥하는 모습을 목격했다고 말한다. 이어 그는 홈리스의 혼밥이 소통을 거부하는 자폐적 인간의 전형을 보여주는 것이며, ‘노숙’은 경제적 능력의 문제라기보다는 바로 이런 마음의 병에 원인이 있다고 분석한다. 그러므로 친구나 가족과 함께 밥을 먹는 등 적극적으로 노력하여 이를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혼밥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

과연 그의 말처럼 홈리스의 혼밥이 단순히 자발적인 선택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일까? 홈리스의 혼밥이 개인의 의지만으로 극복할 수 있는 일일까? 황교익의 발언이 얼마나 황당하고 무지한 것인지는 조금만 생각해 보아도 알 수 있다.

아무런 사회적 안전망을 가지지 못한 홈리스들이 거리로 내몰리는 순간, 이들은 명의도용이나 인신매매 등 각종 범죄에 쉽게 노출된다. 또한 도시의 미관과 시민의 안전을 위한다는 명목 하에 국가폭력의 표적이 될 뿐 아니라, 홈리스를 지저분하고 위험한 존재로 바라보는 사회적 편견으로 인해 늘 차별과 인권침해에 시달리게 된다.

만약 이러한 상황에 놓인다면, 그 누구라도 타인에게 경계심과 적대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범죄와 폭력, 차별과 인권침해의 위협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루하루 생명을 위협받는 상황에서, 황교익의 말처럼 홈리스들이 함께 도란도란 둘러앉아 화기애애하게 밥을 먹는다는 것은 아예 불가능하다.

홈리스가 혼밥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또 있다. 길거리 무료급식이 이루어지는 공간은 결코 친밀감과 화목함을 다지는 친목의 공간이 아니다. 오히려 거리 홈리스로서의 삶이 행인들에게 있는 그대로 전시되는 모멸과 모욕의 공간이다. 자신의 가난이 구경거리로 전락하는 수치스러운 상황에서, 최대한 빨리, 남의 눈에 띄지 않고 밥을 해치워버리는 것은 어쩌면 홈리스에게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요컨대, 홈리스의 혼밥은 사회적 안전망의 부재와 주거 불안정 상태에서 발생하는 구조적 현상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도 황교익은 이를 인식하지 못한 채, 홈리스가 스스로 혼밥을 선택하고 있으며 되려 이것이 노숙의 원인이라는 얼토당토않은 주장을 펴고 있는 것이다.


아무도 비판하지 않는 현실

그런데 또 다른 문제가 있다. 황교익의 발언에 대해 별다른 비판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물론, 4월 21일의 방송 이후 네티즌들은 “그럼 혼밥을 하는 내가 자폐라는 소리냐”며 그의 발언에 대해 불쾌감을 드러냈다. “자폐”라는 비유가 소수자에 대한 혐오발언이라는 비판도 있었고, 혼자 밥을 먹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될 만한 일이 아니라는 비판도 있었다.

하지만 정작 그가 혼밥의 표본으로 노숙의 사례를 꼽고, 더 나아가 홈리스가 처한 상황을 구조적 문제가 아닌 개인의 선택으로 치부해버린 부분에 대해서는, 소수의 진보매체를 제외하고는 그 어떤 문제제기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황교익에 대한 비판과 반박은 오직 ‘혼밥이 정말 자폐인가 아닌가’라는 문제의 틀 안에서만 이루어질 뿐, 그가 노숙의 원인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으며 그것이 왜 잘못된 것인지는 제대로 언급조차 되지 않은 것이다.

이런 침묵이야말로 지금껏 한국 사회가 홈리스 문제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는 증거가 아닐까. 홈리스가 처한 상황이 단순히 개인의 선택의 문제가 아닌, 반드시 해결해야 할 구조적 문제라는 사실을 망각해온 것은 아닐까. 단순히 황교익 개인을 비판하는 것을 넘어, 과연 홈리스의 현실 자체를 사회가 해결해야 할 문제로 인지하고 있는지, 더 나아가 구조적인 해결책을 제대로 고민하고 있는지 반성해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