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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호-진단] 빈곤에 따른 경제범죄, 처벌강화로 잡힐까?

「전기통신사업법 일부개정법률안」 비판

[진단]은 홈리스 대중의 삶과 밀접하게 관련된 정책, 제도들의 현황과 문제들을 살펴보는 꼭지


지난 7월 21일, 국민의당 최명길 의원의 대표발의로 「전기통신사업법 일부개정법률안(이하,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되었다. 현행 법률에 구멍이 있어 이를 보완하겠다는 취지다. 현행 법률은 자금 제공을 조건으로 타인 명의의 휴대폰을 사용할 경우 휴대폰 판매업자, 중개업자, 타인명의 휴대폰 사용자를 처벌하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개정 법률은 여기에 더해 “본인 명의로 이동통신단말장치를 개통하여 다른 사람에게 대여”한 사람까지 처벌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따라서 향후 국회에서 이 법률이 통과된다면 속칭, 대포폰의 명의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게 된다. 과연 이 개정안은 대포폰 문제를 해결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까?


현실을 제대로 읽었는가?

개정안은 법률의 “제안이유 및 주요내용”을 통해 “명의를 제공하고 자금 제공을 받은 사람들은 이러한 행위가 처벌대상이 아니라는 사실 때문에 죄의식 또한 없어, 시장에 ‘대포폰’이 다량으로 공급되는 원인”이 된다고 진단하고 있다. “죄의식”이 없어 대포폰이 공급되니, 처벌 조항을 둬 죄의식을 갖게 하면 대포폰 공급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일까?

2013년 <홈리스행동>은 명의범죄 피해 홈리스 100명에 대한 실태조사를 진행한 바 있다. 홈리스들이 왜 명의범죄에 유인되었고, 어떤 피해를 입었으며, 피해의 파장이 얼마만한 것인지 파악하기 위해서다. 조사 결과 대포폰이 개설된 경우는 피해자의 69.4%로, 대포폰은 홈리스 대상 명의범죄의 가장 흔한 유형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대포폰을 개설해 준 이들이 명의범죄에 유인 된 계기는 생계비 마련(51.9%), 거처 제공(9.6%), 일자리 제공(9.6%) 등 대다수가 경제적인 이유였다. 개정안이 “죄의식”의 부재를 원인으로 진단한 것과 달리 대포폰 개설 홈리스들은 생계, 거처, 일자리와 같은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포폰 명의범죄에 유인된 것이다.


개정안, 대포폰 발생을 막을 수 있을까?

대포폰을 만들어 준 사람도 처벌하자는 개정안, 과연 대포폰 공급을 막을 수 있을까? 가장 우려스러운 것은 대포폰의 공급도 잡지 못하고 범법자만 양산하는 것 아닌가하는 것이다. 「경범죄처벌법」의 구걸금지 조항이 그런 식이었다. 2013년 3월부터 시행된(개정: 2012년 3월) 개정 「경범죄처벌법」은 과거 구걸을 시킨 사람만을 처벌하던 것을 넘어, 구걸을 하는 사람까지 처벌하도록 개정되었다. 당시, 해당 조항은 빈곤을 처벌하는 조항으로, 빈곤을 해결하기는커녕 범법자만을 양성할 것이라는 우려가 높았으나 박근혜 정부 하에서 일사천리로 시행되었다. 결국 개정 법률 시행 첫해인 2013년부터 “구걸행위 등”으로 범칙금을 부과 받은 사람이 발생하기 시작하였고, 그 수는 2013년도 302명, 2014년도 320명, 2015년도 535명으로 지속 증가하였다(2015 경찰통계연보). 개정 「경범죄처벌법」이 사회공공의 질서유지에 얼마나 공헌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구걸하다 발각되어 5만원의 범칙금을 부과 받게 되는 사람이 계속해서 늘고 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명의범죄의 주요 유형 중 하나인 대포통장 대책 역시 참조할 필요가 있다. 제공자를 처벌하도록 하는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과 같이, 「전자금융거래법」은 통장을 만들어 준 사람을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나아가 금융감독원은 “대포통장 근절 종합대책(2012년 11월: 은행권, 2013년 4월: 비은행권에 확대)”을 통해 계좌개설 목적이 불명확한 경우 계좌 개설을 거절하도록 하는 등 통장 개설을 까다롭게 하고 있다. 뿐 아니라, 2015년 4월부터는 금감원 홈페이지에 “대포통장 신고전용사이트”를 구축하고, 대포통장 신고포상금 제도까지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대포통장 발생건수는 2012년 33,493건에서 2015년 57,299건으로 점차 증가했다(금융감독원 보도자료, 2016.3.28). 2016년에 들어서야 46,623건으로 1만 건 가량 감소했으나 보이스피싱으로 인한 피해액은 최근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금융감독원 보도자료, 2017.8.21.).

단지 휴대폰 개통, 통장 개설을 제한하는 방식의 실효성을 문제 삼는 것이 아니다. 대포폰, 대포통장을 기술적으로 억제하는 것은 문제의 일면만을 다루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삶을 처벌할 수는 없다

5월 말, 몇몇 일간지에 대학 졸업 후 구인광고를 찾다 대포통장의 송금책이 된 20대 청년의 사연이 보도된 바 있다. 체포된 그는 처벌을 피할 수 없을 것이고, 이후의 삶을 청년 백수 더하기 전과자로 살아갈 것이다. 몇 차례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홈리스 넷 중 한 명은 명의범죄에 연루된 것으로 나타난다. 삶이 팍팍한 이들에게 대포폰, 대포통장 따위를 활용한 경제범죄가 깃든다는 것은 이미 상식이 되었다. 그러나 그에 대한 대응은 여전히 처벌 일변도로 상식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생존 수단을 박탈당한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개정 법안이 강조하는 “죄의식”이 아니라, 생계이고, 주거이고, 일자리다. 그리고 이를 마련할 수 있는 사회라야 불법을 논할 자격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