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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리스뉴스 20호-특집] 쪽방, 시련의 계절을 맞다

[특집]

3월 들어서만 세 분의 쪽방 주민이 세상을 떠났다. 서울역 뒤 편 동자동 쪽방에서만 말이다. 정확히 말하면 ‘죽은 채’ 발견되었다. 언제 사망했는지는 알 수 없다. 제사 지내 줄 이 있겠느냐만 세상을 뜬 날 조차 특정할 수 없다는 게 고단했던 그네들의 삶만큼이나 처절하다. 한파도 가고 목련도 애기 주먹만 한 꽃송이를 내밀고 있건만 쪽방의 기운은 여전히 엄동설한 칼바람이다. 겨울을 이기려 온 힘을 쏟고 스러져간 이들의 한은 물론 쪽방을 둘러싼 몇몇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기 때문이다.

  합판으로 수리한 한 쪽방 주민의 방, 철거되기 전 모습. [출처: 출처=수표동재건축위원회]
청계천 쪽방 화재, 그 후
2월 17일, 청계천변에 있는 쪽방 건물 한 동에서 화재가 나 두 분의 주민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였다. 두 동 중 한 동이 전소되는 통에 그곳에 거주하던 28명(주민등록등재자로 실 거주자는 더 많다)은 황급히 불을 피해 나와야 했다. 주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벌써 네 번째 화재라 한다. 그러나 우리는 화재가 나기 전까지 이 쪽방과 그곳에 살고 있는 이들의 존재를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해당 쪽방은 상가들로 둘러싸여 있어 외부에 전혀 노출되지 않는 곳에 위치해 있다. 주민들에 따르면, 화재 피해를 당한 이들에게 중구청이 제시한 대책은 고시원 또는 사우나를 선택하라는 것이었다 한다. 그러나 현재 고시원이나 월세주택으로 들어간 이는 총 10명에 불과하며, 12명의 이재민은 불이 난 옆 동 건물에 다시 들어가 살고 있는 상황이다. 이유는 비록 무허가(토지는 주한 대만대표부 소유) 건물이나 이들은 이곳에서 짧게는 20년에서 50년까지 장기 거주하였고, 당시 화교들로부터 해당 거처를 매입해서 들어온 이들이기 때문이다. 당시 20여 만 원(60년대)에서부터 850만원(80년대) 정도의 매입가를 치르고 들어왔으나 이에 대해 중구청측은 소유권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뿐 아니라, 한 주민은 화재로 소실된 자신의 방을 사비로 보수했으나 구청이 용역을 동원하여 철거하여 현재 건물 밖에서 스티로폼 박스에 의지해 생활하고 있는 형편이다. 대만대표부와 중구청, 주민 사이에 합의를 만드는 게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더군다나 중구청이 지금처럼 철거, 불법, 형사 처벌 운운하는 고압적인 태도를 버리지 않는다면 문제의 해결은 요원할 것이다.

한편, 이 사건을 ‘쪽방’의 문제로 바라 볼 필요가 있다. 해당 동 주민센터는 건물의 각 호마다 식별번호를 달아 관리했고, 주민 중에는 기초생활수급자도 있었을 만큼 중구 측은 해당 쪽방의 상황을 충분히 파악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중구는 해당 쪽방을 공식적인 쪽방지원체계에서 배제시켰다. 만약 일찍이 쪽방으로 공식화하고 정기적인 안전점검과 대인지원서비스, 주거복지제공이 이뤄졌다면 지금과 같은 극단적 상황만은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쪽방의 발굴, 지원책의 발굴
화교사옥 말고도 노숙인등 지원체계에서 배제된 쪽방촌은 부지기수다. 산재된 쪽방은 물론 중림동 쪽방 등 이미 대규모로 존재하고, 민간단체의 서비스가 진행되고 있는 곳들도 있다. 그러나 노숙인구에 대한 전수조사가 이뤄지듯 쪽방에 대한 서울시 혹은 전국 규모의 조사가 이뤄진 적은 없다. 노숙인복지법은 주거로서 부적절한 곳에서 생활하는 사람을 지원 대상으로 규정하 고 있다. 이의 대표적 거처가 쪽방임은 자명하다. 따라서 현재 공인된 쪽방지역을 넘어, 서울시 혹은 전국적으로 쪽방에 대한 조사를 실시, 규모를 파악하고 서비스 제공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한편, 현재 서울시는 쪽방 건물과 쪽방 거주자에 대한 실태조사와 쪽방 주민을 상대로 복지서비스 의견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위 조사는 쪽방상담소를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어 사각지대 쪽방의 발굴 측면에 있어서는 큰 의미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주민들이 어떤 복지서비스를 원하는 지, 현재 쪽방상담소를 중심으로 시행하는 서비스의 부족함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중요한 기회는 될 수 있다. 이에, 충분한 의견수렴을 바탕으로 현재 제도적으로 누락된 의료지원(의료급여, 의료보호)과 같은 서비스를 확충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도 우려되는 게 있다. 서울시는 설문조사를 통해 “쪽방상담소의 개인 카드”를 만드는 것에 대한 찬반의견을 묻고 있다. 그러나 그 카드에 담기는 정보의 양과 활용 행태는 전혀 알려지거나 논의 된 바 없다. 또한 지금과 같이 쪽방주민들에게 제공되는 서비스가 위생과 생필품 지원, 상담 등에 머무는 한 굳이 카드 형태로 정보를 집적할 필요가 있는지도 의문이다. 따라서 개인정보 수집과 활용에 있어 논란이 될, 또한 많은 논란을 벌여야 할 개인 카드의 도입은 지금으로서는 섣부르다. 사각지대 쪽방들을 발굴하여 지원체계로 포섭하고, 쪽방 주민에게 필수적인 서비스를 갖추는 게 먼저다. 그 다음에 이를 효과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게 순서다.

개발이 고개를 들다
3월 12일 서울시 ‘도시․건축공동위원회’는 ‘용산 지구단위계획구역 및 계획 결정(변경)안’을 수정 가결하였다. 이에 따라 후암동 특별계획구역은 3개소로 나뉘어, 필요에 따라서는 7개 획지로 나뉘어 개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전국 최대 쪽방 밀집지인 동자동 쪽방지역도 이에 포함된다. 동자동은 ‘특계1’구역으로 2개의 획지로 구분되며 7층~18층 규모로 개발할 수 있도록 계획돼 있다. 특히 동자동은 노후도가 높기에 다른 이해관계가 충돌하지 않는 이상 개발에 속도가 붙을 수 있다. 지금까지의 쪽방 개발은 예외 없이 쪽방을 철거하고 고층건물이 들어서는 방식이었다. 동자동 쪽방촌에 설립될 조합 역시 같은 계획일 것임은 틀림없다. 그러나 더 이상 홈리스들의 마지막 잠자리, 마지막 공동체가 포클레인 앞에 무너져서는 안 된다. 주민들이 건강한 요구로 단결하여 주거지와 공동체를 지켜야 한다. 그러나 서울시 역시 책임 있는 역할을 해야 한다. 쪽방주민들에 대한 지원 주체로서 개발에 맞서 쪽방의 순기능을 살릴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의지만 있다면 도시형생활주택(원룸형주택), 다중주택, 아니면 새로운 형태의 노유자 시설을 모델로 대책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봄의 전령보다 동료들의 부고가, 개발에 대한 두려움이 먼저 쪽방을 찾았다. 쪽방 주민들끼리 짊어지기엔 너무 큰 무게다. 가난하지만 스스로 위로하고 연대를 실험하며 공동체란 말을 수줍게 써왔던 그들이 상처받지 않도록 너른 연대가 필요한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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