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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리스뉴스 23호-특집] 6·4 지방선거, 홈리스는 비(非)시민이었다

[특집]

※본 글은 ‘민심행보 동원된 홈리스들’ 이라는 제목으로 한겨레21에도 실렸습니다.

지방선거가 끝났다. 때를 맞추기라도 하듯 찾아온 연휴는 선거에 매달렸던 이들에게 한가로운 일상을 선물했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평범한 유권자의 하나에 불과했던 나는 마음이 헛헛한 게 아직도 선거라는 이벤트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이번 선거판 역시 홈리스들은 유권자이기보다 객꾼으로 치부되었다는 생각이 가시지 않기 때문이다.

거주불명등록자의 참정권
2010년 9월, 당시 행정안전부(현재 안전행정부)는 주민등록 말소자 46만 6천 여 명을 '거주불명등록자'로 일괄 전환하였다. “소외 계층이 대부분인 이들의 기본권을 보장하겠다는 계획”이 당시 안행부가 밝힌 취지다. 사회복지제도나 참정권이 주민등록을 바탕으로 행사되기에 그동안 말소자는 이런 기본권을 누리지 못했으니 거주불명등록제로 이런 문제를 풀겠다는 것이었다. 실제, 이 제도로 고정된 주소지가 없는 이들도 선거 시 거주불명등록된 주소지(직전 주소지) 관할 주민센터를 통해 선거인 명부를 확인한 후 투표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 중 얼마나 많은 이들이 실제로 이를 행사했는지는 알 수 없다. 이를 드러내는 집계를 찾을 수 없어 추측에 불과하지만 그 수는 미미할 것으로 보인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거주불명등록과 같은 기술적 장치가 아니기 때문이다. 범죄 피의자 등 자발적 거주불명등록자가 아닌 이상, 거주지를 일정하게 유지할 수 없을 정도로 가난한 이들에게 먹고 사는 문제 그 너머에 있는 세상사에 관심을 갖기 어렵다. 편협한 시야라고 질책할 일이 아니다. 그렇기에 자유권과 사회권은 둘로 나뉠 수 없다는 것 아닌가. 진정 거주불명자들의 참정권을 보장하고자 한다면 그들의 주거문제, 빈곤문제에 착목해야 한다. 선거철을 앞두고 명부를 확정하기 위한 주민등록 일제 정리만 할 게 아니라, 적어도 거주불명자들에 대한 긴급주거, 긴급생계를 지원해 선거권을 현실화 시켜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 현 주민등록 제도는 거주불명자들의 참정권을 막고 있다는 비판을 면할 수 없다.

  지난 6월 2일 정몽준 서울시장 후보 선거캠프 앞에서 열린 '서울시 홈리스 정책 개선 7대 요구' 기자회견
홍보 전략에 불과한 홈리스
후보자들의 홈리스 생활현장 방문은 선거 유세 단골 차림이다. 그도 그럴 것이 내노라 할 엘리트인 후보자들의 자칫 차가울 수 있는 이미지를 상쇄시키고 민생을 우선하겠다는 메시지를 전하는데 이처럼 맞춤한 그림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역대 선거에서 수많은 후보자와 당선자들이 노숙현장과 급식소와 쪽방 등지를 찾았다. 이들의 또 다른 공통점은 ‘빈손’으로 왔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재작년 성탄절, 박근혜 대통령이 쪽방촌 어르신에게 전달했다는 ‘손수 만든 도시락’ 같은 선물을 받겠다는 건 아니다. 일면식도 없는 홈리스 당사자를 만나 손 주무르며 위로할 게 아니라 그들에게 내 놓을 ‘약속’을 갖고 나타나라는 것이다. ‘공약’ 말이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도 홈리스를 상대로 한 후보자들의 공약은 찾아볼 수 없었다. 특히, 정몽준 전(前) 서울시장 후보는 무료급식소, 쪽방, 거리를 두루 섭렵했지만 홈리스에 대한 공약은 단 하나도 내놓지 않았다. 우선 그는 당내 경선 출마자 신분이었던 지난 3월, 서울역 인근 무료급식소를 찾아 배식 봉사를 하였다. 그러나 그는 해당 시설은 물론 서울시 내 합법 급식소가 단 한 곳도 없다는 사실에 괘념치 않았고, 홈리스 급식 개선 대책에 대한 어떤 언급도 하지 않았다. 4월 10일에는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무료 급식봉사 단체의 이사장 취임식에 참여했고, 그 전날엔 영등포 쪽방촌에서 하룻밤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도 거리홈리스 지원책이나 쪽방 재생 대책과 같은 홈리스 정책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오히려 정몽준 후보 측은 홈리스 당사자와 인권사회단체들이 함께 작성하여 선본 사무실에 전달하고자 한 ‘서울시 홈리스 정책 7대 요구’에 대해 경찰을 통해 “홈리스 정책 요구를 받지 않겠다”, “요구서 전달을 건물 입구서부터 막아 달라”고 원천 봉쇄하는 등 홈리스를 백안시하는 태도를 보이기까지 하였다. 이렇듯, 정 전(前) 후보 측의 홈리스를 활용한 선거 전략은 유별났다. 그러나 정도의 차이일 뿐 홈리스 현장을 방문한 타 후보들 역시 홈리스를 주체 아닌 타 계층의 표심을 모으기 위한 수단으로 여겼다는 점에서 다를 바 없었다.

서울, 달라질까?
이제 곧 박원순 시정부 2기를 맞는다. 잔여 임기 동안 보여준 시정을 통해서만도 그는 시민들에게 역대 시장과 ‘다른’ 인물로 인정받는 데 성공한 듯하다. 그러나 서울시 홈리스 정책과 서울지역 홈리스의 삶을 놓고 보면 그가 역대 시장들과 무엇이 다른지 단 한 가지도 시원하게 꼽아 보기 어렵다. 공공장소마저 자본의 영업장으로 전락되어 서울역 등 공공장소 체류 홈리스는 ‘소비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묻지마 퇴거를 당하나 서울시는 이에 대해 입장조차 내놓지 않고 있다. 주요 노숙 장소를 거점으로 한 명의범죄, 인신매매 범죄자들의 착취는 더 더욱 활개를 쳐 나가건만 이에 대한 서울시 차원의 대책은 전무하다. 홈리스 의료지원제도인 ‘노숙인 1종’ 의료급여수급자가 전국 370여 명에 불과할 만큼 사각지대가 광범위함에도 서울시는 변경 의료보호제도를 통해 그동안 실시하던 비급여 지원을 폐지, 사각지대 확산을 도리어 거들고 있다. 급식 역시 노숙인복지법과 식품위생법을 어겨가며 자선기관의 봉사에만 의존한 주먹구구식 대책이 반복되고 있다. 주거지원은 여전히 생색내기에 불과한 수준이고 임대주택 정책은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일자리 제공도 턱없이 부족하며 그 급여 역시 채 50만원이 안 되는 나쁜 일자리가 대다수다. 그럼에도 서울시는 법률이 정한 사항을 받아쓰는 것에 불과한 노숙인 복지 조례 말고는 홈리스 인권의 기준선으로 작용할 홈리스 인권조례 하나 갖추고 있지 않다. 이것이 지난 시기 박원순 시정부가 설계하고 시행했던 서울지역 홈리스 복지의 수준이고, 홈리스들의 삶의 현실이다. 무턱대고 낙천적인 성격이 아닌 이상 달라질 거라 기대하기 힘든 게 현재 서울지역 홈리스들이 처한 조건인 것이다.

우리는 박원순 후보 측에게도 서울시 홈리스 정책 개선 요구를 전달한 바 있다. 당시 선본 측은 60대 공약에 들어있는 내용이 아니라 즉답할 수 없지만, 당선 후 검토보고서를 각 부처에 배분하여 수용여부를 답변하겠다고 하였다. 부디, 진지한 검토를 부탁드린다. 그러나 서울시 공무원이 내놓을 두루뭉술한 답변보다 더 기다려지는 것은 홈리스에 대한 서울시 태도의 변화다. 지금까지 그러했듯 단지 정책 대상으로만 홈리스를 위치 짓지 말라는 것이다. 민심 행보로 홈리스가 이용되는 것은 선거철이면 족하다. 잔여 임기 때와 같이 서울시정의 ‘참신성’을 선전하는 데 홈리스가 이용되어서는 안 된다. 부디 홈리스 정책에 있어서는 홈리스 대중을 상대 파트너로 인정하는 시정을 펼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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