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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리스뉴스 28호]주목받지 못한, 잊어서는 안 될 삶

[2014 홈리스추모제 특별판]

야산의 움막에서 생을 거둔 홍OO님
수원의 한 경찰서에 전화가 왔다. 광교산의 한 움막에서 발견된 변사체에 내 명함이 있었다고, 아는 이냐고. 기억에 없었다. 상담활동 중 서울역 어딘가에서 만나 필요하실 때 연락하시라며 명함을 건넨 이 중 한 분이겠거니 추정할 밖에. 그는 왜 수원까지, 그것도 추운 2월에 산에 올라가 움막을 칠 생각을 했을까. 수소문한 결과 그의 생애를 아주 조금 알 수 있게 되었다. 변사로 발견되기 약 한 달 전에 노숙인 종합지원센터에 특별자활근로를 신청했다는 것, 평생 공작과 선반 일을 하셨고 술, 담배를 전혀 하지 않아 특별히 건강에 이상이 없었다는 것,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나 가족과 이산하고 2010년부터 노숙을 하게 되었다는 것. 이것이 그가 남긴 생애 기록의 전부다. 다만, 노숙과 고시원 생활을 반복하셨던 것을 볼 때 거처를 유지하기가 버거웠던 것은 아닐지, 자활근로 탈락에 낙심한 것은 아닌지 추측할 뿐이다(홈리스행동 상임활동가 측 전언).

참 살고 싶어 하셨던 손OO님
2011년 서울역 노숙인 퇴거조치 철회를 위한 천막 농성을 할 때 우리를 눈여겨보셨다 한다. 18세에 가정폭력을 피해 서울로 상경했고, 이 일 저 일을 하다 지갑 만드는 기술을 배워 2007년까지 가내수공업으로 지갑을 만드셨다. 그러다 사업체가 어려워져 밀린 임금 다 정리하고 거리노숙 생활로 접어들었다. 거리로까지는 내몰리지 않으려 전단지 아르바이트, 무가지 배달, 봉투 작업 등 닥치는 대로 안 해본 일이 없다는 얘기도 하셨다. 그러나 우리를 만나기 1, 2년 전부터 급속히 건강이 악화 되셨다. 폐결핵도 있으셨고 특히 간이 안 좋으셨다. 최근 6개월 동안은 간 이식 얘기가 나올 만큼 상태가 좋지 않았다. 두어 달 사이엔 신장 기능도 완전히 나빠져 고생이 더 했다. 결국 시립 OO병원 입원 중 돌아가시고 말았다. 병원도 열심히 다니면서 치료받고, 쪽방에 있으면 서울역에서 알던 사람들이 찾아와 안 되겠다며 다른 곳에서도 살아보고 싶다고 하셨는데... 생각해보면 참 살고 싶어 하던 분이었던 것 같다. 이상하게 늘 지내던 곳만 찾으셨는데... 쪽방 주인 할머님께 아저씨 소식을 전했더니 “참 불쌍한 애다...” 하시며 눈물을 떨구신다(노숙인인권공동실천단 자원활동가 측 전언).

정성스레 시계를 닦던 남OO님
고시원 총무는 병색이 있어 마른 몸에 말수가 적은 이로 고인의 첫 인상을 기억한다. 밤 시간 대 노숙인 종합지원센터의 일자리에 참여하는 것으로 생계와 고시원비를 충당했던 그는 평소 굉장히 많은 약을 먹으면서도 손목시계를 열심히도 닦았다 한다. 계단을 힘겹게 오르던 것이 총무가 목격한 그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그 후 총무는 고시원에 비릿한 냄새가 났었지만, 누군가 새우젓이나 음식을 먹고 설거지를 안 했거니 하며 예사로 넘겼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도록 냄새가 가시지 않았고 총무는 각 방을 확인하기로 했다. 그러나 평소 워낙에 깔끔했던 터라 고인의 방은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그러나 다음날 냄새는 더 심해졌고 고인의 방도 두드렸지만 인기척이 없었다. 혹시나 하고 마스터키로 열어 본 방에 고인은 각혈이 낭자한 채로 사망해 있었다. 총무는 경찰을 통해 연락이 닿은 고인의 아들에게 그가 평소에 정성스레 닦곤 했던 시계를 유품으로 전달했다 한다(OO고시원 총무 측 전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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