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빼고 변한 10년” 반올림 활동 10주년 토론회 열어

반올림 10주년 토론회 열려… ‘반올림 활동으로 변한 것과 과제는?’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을 위해 활동해온 단체 반올림이 활동 10년을 맞았다. 반올림은 거대 기업 삼성에 맞서 산업재해 책임을 묻고 환경을 개선하는 활동을 적극적으로 벌였다. 그 결과 직업병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세상 밖으로 나왔고, 근로복지공단과 법원에서 직업병 산재를 인정하기 시작했다. 직업병 문제에 전향적으로 대처하는 기업들도 생겨났다. 하지만 가장 많은 피해자를 양산한 삼성은 산업재해 책임을 회피하는 일관된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9일 오전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회관 420호에서 반올림이 주최한 ‘반올림 10년, 변한 것과 남은 과제’ 토론회가 열렸다. 10년 동안의 성과와 남겨진 과제를 돌아보는 자리였다.

직업환경의학전문의인 공유정옥 반올림 활동가는 ‘기업의 변화와 남은 과제’에 대한 발제를 맡아 지난 10년 산업안전 보건관리에 대한 기업들의 변화 등을 설명했다. 가장 많은 피해자가 나온 삼성전자는 변화를 요구받았지만 거의 변하지 않았다. 삼성은 반올림이 제기한 문제를 수용해 문제 해결에 나서기보다 전면적으로 대응하는 편을 택했다.

공유정옥 활동가에 따르면 삼성은 직업병 문제가 불거져 나온 2007년부터 옴부즈만 위원회가 활동을 시작한 최근까지 문제가 없다는 것을 알리는 데 급급했다. 삼성전자 옴부즈만 위원회는 반올림, 가족대책위, 삼성이 재해예방대책의 일환으로 합의한 사항으로 지난해부터 활동을 시작했다. 옴부즈만 위원회는 매년 연례보고서를 작성해 공개해야 하지만 현재까지 어떤 활동 보고서도 내지 않았다. 옴부즈만위원회는 구성까지 시간이 오래 걸려 활동이 늦어졌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 합의도 여론의 압박 때문에 겨우 이루어졌다. 삼성이 스스로 진행한 산업보건검증 평가사업은 2010년 국제 환경보건 컨설턴트 인바이론을 고용해 수행한 ‘삼성전자 반도체 노출평가’와 ‘노출재구성평가’다. 2007년부터 반올림의 집단 백혈병 진상 규명 요구에 내내 침묵하다 2010년 백혈병과 림프종 피해 노동자 6명이 산재인정을 위한 소송을 시작하고 소송 원고 중 한 명인 박지연 씨가 사망하며 비판 여론이 높아지자 인바이론에 연구를 의뢰했다.

인바이론의 결론은 ‘삼성의 작업환경은 매우 잘 관리되고 있어 개선할 지점이 없고, 산재인정소송 원고 6명의 과거 노출을 재구성해보니 발암 물질 노출이 없거나 매우 낮아서 이들의 백혈병, 림프종은 업무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주장으로 요약된다.

인바이론은 삼성 기흥, 화성, 온양공장에서 쓰는 화학물질을 측정했는데 이들 공장의 유해화학물질 노출 수준은 노출 시간의 95% 이상에서 각각의 노출허용기준의 50% 미만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평가 대상 생산공정 35개 중 33개(94%)에서는 노출허용 기준의 10% 미만을 기록해 ‘고도로 잘 관리되고 있는 환경’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공유정옥 활동가는 이 결과는 삼성 반도체 공장의 노출관리 우수성을 보여주는 것이라기보다 반도체 산업의 특성이 반영된 것이라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했다. 최근 40년간 미국 반도체 웨이퍼 가공공장에서 사용하는 화학물질 60종 이상의 노출 수준을 분석한 자료를 보면 이미 1980년대 후반부터 94% 이상의 물질들이 노출허용기준의 1% 미만으로 관리되고 있다. 문제는 이렇게 낮은 농도에 노출된 여성 반도체 노동자들에서 자연유산이 3배 이상 유의한 증가를 했다는 데 있다. 게다가 자녀의 선천성 기형이나 생식능력 감소도 복수의 연구를 통해 확인됐다.

이렇게 매우 낮은 노출 수준에서도 건강 손상이 발생하는 미국 반도체산업의 문제에 대해 이미 20여 년 전에 학자들은 현행 노출기준이 건강을 보호할 수 없는 지표일 가능성, 공기 중 노출 외의 노출 경로가 작용할 가능성, 측정하지 않은 물질들이 건강에 유해할 가능성, 여러 화학물질의 유해성이 상승작용을 할 가능성 등을 제기했다.

화학물질을 사용하기 전에 그 유해성 정보를 확보하고, 이에 따라 사용 여부를 결정하거나 사용 시 노출 예방을 위한 대책을 수립해야 하지만 삼성의 경우 정확히 언제부터 어떤 기준을 가지고 관련 대책을 수립했는지 밝히지 않고 있다.

공유정옥 활동가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경우 생산품이나 협력사에서 납품하는 부품에 함유된 화학물질 중 유해화학물질을 구분하여 관리하는 방안은 2007년에 갖추고 있었고, 공정에서 사용하는 물질의 신규 구입 전 사전 평가는 2010년 들어 새로 마련한 것으로 보인다.

공유정옥 활동가는 “산업의 특성과 우리가 가지고 있는 노출기준을 맹신하지 않는 과학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이렇게 낮은 정도에도 병이 계속 생기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이 기준을 만드는 건 몇십 년이 걸리는 일이다. 사전 예방적 접근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폐쇄된 공간, 폐쇄된 태도

노동부는 2009년 림프조혈기계암 역학조사 종료 후 후속조치의 하나로 삼성을 비롯한 반도체 사업장들에 스스로 위험성 평가 자문을 받도록 권고했다. 서울대학교에서 조사하고 평가해 자문보고서를 제출했다. 2009년 최초로 산재보상을 청구했던 삼성 반도체 림프조혈기계암 피해 노동자들이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산재 불승인 판정을 받고, 2010년 산재인정을 위한 행정소송을 시작했을 때 삼성 반도체 공장의 작업환경에 대한 유일한 보고서였지만 삼성전자는 자료 제출을 요구하는 행정법원의 요청을 거부했다. 이 보고서의 일부가 알려진 것은 2010년 9월, 익명의 제보자가 보고서 일부를 참여연대에 제출하면서였다.

삼성전자는 사업장에 벤젠 사용이 없다고 주장했으나, 실제로 상성이 사용 화학물질의 성분을 분석해 물질안전보건자료(MSDS)가 정확한지를 확인한 적은 없었고, 기흥공장에서 쓰는 감광제 벌크 수십 종류 중 임의로 골라 분석한 6개 시료 모두에서 벤젠이 검출됐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정상적인 작업 과정에서도 유해가스 누출이 빈번하다는 허점도 확인됐다.

2011년 나온 인바이론의 보고서 발표는 기흥공장 내부에서 초대받은 사람들만 들을 수 있었다. 반올림도 초대를 받았지만 단 2명의 전문가만 올 수 있다고 제한됐다. 회사가 제공한 사진과 영상이 제공됐고 녹음기나 카메라 등은 사용을 금지했다. 발표는 영어로 진행됐고, 발표 자료는 배포되지 않았다. 이에 대한 시민사회의 비판이 커지자 2011년 12월 한 달만, 기흥공장에 직접 방문한 자만 내용을 열람할 수 있다는 알림을 영문 홈페이지에 게시했다. 열람 역시 비밀유지서약을 작성해야 했고, 혼자 가야 했고, 복사나 기록은 금지된다는 조건이 붙었다. 해당 보고서는 2012년 3월이 돼서야 <삼성반도체이야기> 블로그에 올라왔다.

이런 폐쇄적인 태도는 무노조 사업장인 삼성의 노동자들에게도 영향을 끼쳤다. 삼성은 직원들을 인터뷰해 “15년 동안 근무한 사업장인데 무슨 문제가 있었다면 벌써 있지 않겠나” “한 번도 위험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등의 내용을 끌어냈다. 반올림도 10년 활동을 하면서 현직 노동자의 이야기는 거의 들어본 적이 없다. 한 노동자가 제보를 해오긴 했지만 곧 언론에 알리지 말라는 이야기를 덧붙이면서 언론에도 발표할 수 없었다. 반올림은 노동자들이 입을 열기 꺼리는 가장 큰 이유는 고용상의 불이익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공유정옥 활동가는 “안전보건관리가 성공하려면 사업주나 전문가의 노력만이 아니라 노동자의 적극적인 참여와 실천이 필요하지만 기업이 조장하는 안전불감증이나 책임 전가에 묻혀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토론회에 참석한 최상준 대구가톨릭대 산업보건학과 교수는 “반도체 산업은 첨단 기술 산업이기 때문에 경쟁 업체들 사이에 철저한 기업 비밀 유지를 통해 경쟁력을 유지해야 한다는 생각이 일반적이다. 이러한 기업 비밀 유지의 필요성이 생산 기술 영역뿐만 아니라 안전보건 영역에서도 폭넓게 인정되는 분위기다”라고 현 상황을 진단했다.

최 교수는 안전보건 측면에서 반도체 산업의 기업 비밀 영역을 축소하고 노동자의 알 권리를 확대할 수 있는 제도적 개선을 조언했다. 최 교수는 “역학조사를 수행할 경우 필요한 정보를 최대한 요구하고, 기업체가 어디까지 허용하고 제공했는지에 대한 제한점을 기록하고, 이러한 제한점을 고려해 역학조사 결과가 평가돼야 한다”고 했다. 노동자 알 권리를 위한 제도로는 화학물질의 MSDS작성에 있어 ‘영업비밀 사전 심사제도’를 도입하자고 추천했다.

한편 삼성과 대비되는 모습을 보이는 기업은 SK하이닉스반도체였다. 지난 2014년 반도체 사업장과 관련한 직업병 이슈가 발생한 이후 SK하이닉스는 외부 전문가와 노사대표로 구성한 산업보건검증위원회를 발족해 1년간 산업보건 역학조사를 진행했다. 조사 발표 역시 열린 공간인 광화문에서 어떤 제한도 없이 진행됐다. SK하이닉스는 2015년 11월 공개 발표된 산업보건검증위원회의 제안을 그대로 수용해 ‘산업보건 지원보상위원회’를 만들고, 법무법인 한결에 그 운영을 위임했다.

지난 8월 대법원에서 나온 ‘역사적 판결’

반면 산재를 다루는 법원의 판례는 괄목할 만한 변화를 이루었다는데 발제자와 패널들이 대부분 동의했다. 반올림은 지난 10월 31일 제13차 집단 산재신청을 포함해 현재까지 전자산업 노동자 92명의 30여 개 질환에 대해 산재신청을 했다. 근로복지공단은 그중 11명의 7개 질환에 대해 산재인정 처분을 내렸고, 법원은 10명의 6개 질환에 대해 산재인정 판결을 내렸다.

변호사인 임자운 반올림 활동가는 “여전히 산재신청 숫자와 산재인정 숫자 사이의 간극이 크지만 반도체 노동자의 질병을 산재로 인정한 판결들은 시간이 갈수록 대상 사업장과 질병을 확장했을 뿐 아니라, 판정 논리 면에서도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왔다”고 평가했다.

임자운 활동가는 지난 8월 29일 대법원의 삼성LCD 희귀질환 산업재해 인정 판결을 ‘역사적인 판결’이라고 소개했다. 반올림 사건이 대법원에서 승소한 첫 사례였다. 대법원은 산재보상보험이 첨단산업분야 근로자를 보호해야 할 현실적, 규범적 이유와 산업재해보상보험제도의 목적과 기능을 자세히 설명했다. 또 산재보험법상 ‘업무와 질병 사이의 인과관계’는 의학적, 자연과학적 관점이 아닌 법적, 규범적 관점에서 판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법원은 해당 사건에서 산업안전보건연구원 역학조사에 어떤 문제가 있었고, 소송과정에서 삼성전자와 고용노동부가 사업장 관련 자료를 어떻게 은폐했는지 구체적으로 지적해 ‘근로자에게 책임없는 사유로 사실관계가 규명되지 않은 사정들’을 참작하기도 했다.

임자운 변호사는 “가장 인상적인 점은 산재보험제도의 목적과 취지, 특히 전자산업 직업병 문제에 이 제도가 어떻게 적용돼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실시한 것”으로 “이 제도를 운영함에 있어 그 본래적 목적과 기능에 충실하라는 최고 법원의 준엄한 명령이 담겼다”고 되짚었다.

지난달 118번째 사망자 나와


고 황유미 씨 아버지 황상기 씨도 토론회에 참석해 삼성전자를 규탄했다. 황유미 씨는 삼성반도체 기흥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을 얻어 2007년 사망했다. 황상기 씨는 “이재용이 청문회에 나와 문제 해결을 약속하고, 노동부 장관, 더불어민주당 지도부들이 삼성과 반올림의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세상은 말잔치로만 끝나고 있다”며 “삼성은 정권의 힘이 빠질 때만 기다리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어 “정부가 삼성에 잘못된 것을 고치라고 하는 말 한마디 안 하고 삼성을 계속 이명박근혜처럼 봐주기 때문에 해결이 안 되는 것”이라며 “문재인 정부도 말잔치 그만하고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반올림은 진심 어린 사과와 재발 방지 대책 등을 요구하며 2015년 10월 7일부터 삼성 서초 사옥 앞에 농성장을 차리고 2년 넘게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환자와 사망자도 계속 나오고 있다. 지난달 4일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일했던 이혜정 씨가 사망했다. 지난 2007년 11월 이후 삼성 계열사에서 발생한 118명째 직업병 사망자다. 이 중 반도체 및 LCD 부문 사망자는 80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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