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의’라고 쓰고 ‘착취’하는 끈질긴 신자유주의, 경사노위

[워커스] 연재

“대의원대회는 시작부터 격렬했다. (참석자들은) 대의원석과 참관석을 구분하기 위해서 장내 정리를 해달라는 사회자의 요청에도 응하지 않으려고 했다. 지도부에 대한 불신은 굉장해 노사정 합의과정에 대한 보고조차 들으려 하지 않았다. (중략) 심지어 배석범 직무대행은 합의안이 부결되고 참관석의 대의원들이 ‘파업가’의 뒷부분 ‘승리의 그날까지’를 부르자 ‘승리의 그날까지 열심히 투쟁하십시오’라고 비꼬았다.”(1)

  1989년 현대중공업 128일 파업/서영걸

97년 김대중 대통령 당선 직후 민주노총 1기 집행부 직무대행은 ‘(가칭) 국난 극복과 경제회생을 위한 노사정위원회’에 참여했다. 이때 고용보험제와 실업기금 확충, 공무원 직장협의회 허용과 교원노조의 합법화, 실업자의 조합원 자격 인정, 정치자금법의 개정을 통한 노동조합의 정치 활동의 자유 보장 등을 대가로 ‘정리해고제’와 ‘근로자 파견제’ 도입을 내줬다. 이에 1998년 2월 9일 민주노총 대의원들은 임시대회를 열고 노사정합의 원천무효, 협상 대표단과 지도부 사퇴, 총파업투쟁을 결의했지만 국회는 직권 조인된 ‘역사적 대타협’ 안을 통과시킨다. 민주노총 지도부는 노사정 잠정합의의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비록 직권조인 형태이긴 하지만 한국사회에선 처음이자 마지막인 ‘노사정 사회적 합의’로 정리해고제와 파견제를 수용하면서 계급지형이 불안정노동체제로 바뀌었다.

김대중 정부는 나아가 ‘노사정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 2기 노사정위원회를 위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다. 그리고 결국은 좌초된 노무현 정부에 이어 문재인 정부 또한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로 노사정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한국형 사회적 합의주의

70년대 말 80년대 초 세계 공황에 중화학공업 과잉 중복투자로 한국경제에도 위기가 닥쳐왔다. 정부는 그간 저금리로 특정 기업에 자본을 지원해 중화학공업을 육성했다. 그 과정에서 수입은 규제하고 수출을 장려해 국내에서는 높은 이윤과 값싼 양질의 노동력을 챙기는 한편 해외시장을 확보하는, 국가가 주도하는 재벌중심의 경제체제를 형성했다. 하지만 곧 한계가 드러나자 1979년 정부는 금융, 가격통제 해제, 수출금융 축소, 수입 자유화 등을 내용으로 하는 경제안정화 계획을 시행한다. 이어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면서 시장화와 민영화를 중심으로 하는 ‘경제사회개발 5개년 계획’을 실행하게 된다.(2)

이렇듯 자본의 신자유주의적 축적체제로의 전환이 이뤄지지만 노동에 관해서는 억압적 착취체제를 유지하는 것 외에는 아무런 계획이 없었던 듯하다. 이후 경제개발에 ‘사회’가 들어가면서 복지를 강조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사회적 억압정책은 계속 유지됐다.

결국 1987년 민중항쟁에 이어 노동자대투쟁의 불길이 전국을 뒤덮었고 결국은 정치체제를 변화시켰다. 자주적인 노조 설립마저 봉쇄된 채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던 전국의 전태일이 들고 일어나면서 조문으로만 있던 근로기준법, 노동3권을 살려냈고, 결국 노태우는 노동법 개정을 약속할 수밖에 없었다. 1987년 11월 28일 노동법을 개정했지만 그 내용은 정치적 민주주의와 보조를 맞추면서 노동의 시민권을 확대하기보다는 기업 수준에서 집단적 노사교섭과 조합 결성을 일부 용인하는 정도였다. 이후 여소야대 정국에 힘입어 개정된 노동법도 노태우가 거부권을 행사해 무산됐다.

당시 정치적 민주화에도 노동운동에 대한 억압과 배제는 계속됐다. 그것이 노동운동에 대한 국가의 지배적인 대응전략이었다. ‘노동 없는 민주주의’ 시기 형성기에 있던 노동운동은 전 계급적 연대와 대중동원전략으로 맞섰다. 국가의 탄압에 맞서 노조를 지킬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대안이었다. 이를 흔히 전투적 조합주의라고 한다. 이는 경로의존적인 결과물이었다. 그러나 1991년 무렵 신생 민주노조운동에 대한 이데올로기적인 공격이 시작되면서 ‘전투적 조합주의 비판론’이나 ‘노동운동 위기론’이라는 담론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는 그 자체로 민주노조운동의 내부 변화를 압박하는 담론적 의도를 가지거나 효과를 내기도 했다.(3)

1993년 김영삼 정권은 개혁과 경쟁력 강화를 명분으로 각종 기업규제 완화와 민영화 정책 등 이른바 ‘신경영전략’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이 정권 역시 노동운동을 상대로 물리적, 이데올로기적 탄압을 지속하는 한편 허구적인 사회적 합의와 노사화합을 시도했다.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