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사망·재난참사 피해자들의 파괴된 삶

“가해기업 처벌 없이 산재 트라우마 끝나지 않아...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절실”

산재사망과 재난참사를 직접 겪은 피해자들이 사고 트라우마와 개선되지 않는 현실에 대해 토로했다. 이들은 책임자들은 처벌되지 않고, 현장은 개선되지 않는다며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제정해 산재사고와 재난참사에 대한 기업 최고 책임자와 기업 법인에 책임을 묻자는 것이다.


12일 오전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계단 앞에서 ‘산재사망·재난참사 피해자 증언’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2011년 가습기 살균제 참사, 2017년 삼성중공업 크레인 충돌 산재사망, 올해 발생한 삼표시멘트 산재사망과 쿠팡발 코로나19 피해 증언이 이어졌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어머니 손수연 씨는 이 사건이 SK케미칼이 공급하고, 애경이 판매한 가습기메이트 때문이라고 말을 뗐다. 또 피해조사, 피해보상, 가해 기업 처벌 등이 아직 끝나지 않은, 현재 진행 중인 사건임을 분명히 했다. 손 씨의 딸은 가습기 살균제 때문에 폐 손상 피해를 입었다.

가습기 살균제는 1994년부터 2011년까지 판매돼 현재 관련 사망자가 1,500명을 넘어섰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일부가 피해에 대한 인과 관계를 인정받아 치료비와 장례비 등을 지원받았지만, 전체 피해자 규모에 비하면 그 범위는 매우 제한적이다.

손 씨에 따르면 가습기 살균제 관련 조사는 2016년에서야 뒤늦게 시작됐지만 공급사 SK케미칼은 기소조차 못 하다 지난해가 돼서야 드디어 애경과 함께 기소돼 재판이 진행 중이다. 손 씨는 “2011년 가습기 살균제 피해가 알려지고 10년 만에 잡은 기회”라며 “1,500명이 넘는 사망자를 낸 살인기업을 엄중하게 처벌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손 씨는 “흡입 독성 실험을 제대로 하지 않고 오로지 기업의 이윤만을 추구하고 소비자의 안전에는 무관심한 가해 기업에 대해 엄중한 처벌이 따라야 화학물질로부터 좀 더 안전한 미래가 마련되리라 생각한다”라고 강조하며 가해기업 처벌을 촉구했다.

산재사고가 거듭된 삼표시멘트의 노동자도 마이크를 잡았다. 삼표시멘트는 지난해 중장비에 의한 사망사고에 이어 올해만 2건의 산재로 인한 사망이 발생했다. 올해 사망한 노동자는 모두 하청 소속이었다. 삼표시멘트지부 조합원이기도 한 김진영 민주노총 동해삼척지부장은 “노동부도 공범”이라며 노동부의 직무 유기를 지적했다. 김 지부장은 “두 명이 사망하고 노동부에 특별근로감독을 요구했으나, 아직 세 명이 죽지 않았다고 할 수 없다고 했다. 한 명이 더 죽어야 하는 거냐고 따졌지만 일반적으로 하는 수시 감독으로 충분하다고 했다”라며 “노동부는 근로감독 이틀 만에 재가동을 허가했고, 불과 3개월도 안 돼서 다시 똑같은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노동부가 죽음에 대한 원인을 규명하고 방지대책을 내놨으면 막을 수 있었던 사고”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삼표시멘트에서 올해 발생한 사고는 모두 하청노동자들이 당했다. 두 명 모두 정지한 설비를 점검하던 중이었고, 갑자기 기계가 불시 운전되면서 한 명은 끼임 사고, 한 명은 추락 사고를 당했다. 김 지부장은 “회사가 불법 파견 소지 때문에 하청 노동자에겐 무전기를 주지 않는다. 무전기는 못 주더라도 최소한 안전 관리자라도 한 명 배치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다”라며 “안전을 위한 비용과는 비교가 안될 만큼 산재사고에 따른 막대한 비용이 들어간다면, 그리고 원청 사업주가 강력하게 처벌된다면 사용자는 안전을 위한 실질적인 조치를 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쿠팡 부천신선센터 코로나19 확진 피해 노동자는 완치 받고 퇴원했지만 낙인이 지속된다고 토로했다. 피해 노동자 A씨는 스스로를 ‘보건 전과자’라고 칭하며 “앞으로 주홍글씨를 안고 살아가야 한다”라고 말했다. A씨는 “퇴원했지만 이웃들과 마주치기 두려워 부득이한 외출 시 아직도 내려갈 땐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걸어 내려간다. 우리집은 아파트 꼭대기인 20층이다. 집안에서는 재채기 한번 시원하게 하지 못하고 눈치를 본다. 먼 훗날 아들이 결혼해 손주를 본다 해도 꼭 안아볼 수나 있을런지 걱정이 앞선다”라고 우려했다.

A씨는 “확진자 자신 뿐 아니라 주변과 가족들까지 고통스럽다. 쿠팡 측의 안일한 대처로 노동자가 감염된 것이 확실한데도 그 어떠한 위로의 메시지가 없었고 재발방지, 보상과 관련된 그 어떠한 대책이나 입장표명을 전혀 하지 않고 있다”고 꼬집었다.

2017년 삼성중공업 크레인 사고 피해 노동자 김영환 씨의 발언은 대독됐다. 김 씨는 2017년 5월 1일 노동절에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마틴링게 작업현장에서 일하다 크레인이 붕괴돼 하청 작업자들이 다치고 죽은 사고를 목격했다. 개인적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다 시민단체의 도움을 받아 2018년 5월에서야 겨우 산재로 인정받았다.

김 씨는 이날 보내온 메시지에서 “사업보국이라는 창업이념과 경영철학을 가진 삼성은 이제 이 현판을 떼어내고, 인명경시, 책임회피, 노동착취 이 세 가지를 가치로 경영하길 바란다”라고 비판했다. 김 씨는 “본사 이미지 메이킹을 위해 코로나 피해 지역 대구엔 300억 원을, 장마 수해지역을 위해 30억 원을 기부했지만 산재피해를 당한 직원이나 하청노동자들에게는 오직 무시로 일관하고 있다”라고 했다.

김 씨는 “사고 후 제대로 된 조치, 사과, 배상은 일절 받지 못했다. 근로복지공단, 노동부 등 정부기관에서는 손을 놓고 먼 산만 바라보고 있고 시민활동가나 단체에서 피해자를 구제해주는 이 현실에 참담한 기분이 든다”라며 “진정한 고통을 끊기 위해 중대재해기업처벌법과 징벌적 손해배상이라는 법이 절실하다”라고 밝혔다.

하효열 사회활동가와 노동자심리치유 네트워크 통통톡 집행위원장은 오랜 상담의 경험을 통해 마음의 상처는 상담만으로 치유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하 집행위원장은 “상담을 하러 오는 사람이 공통적으로 가해자의 진정어린 사과와 사고 책임 규명, 대책 마련 세 가지를 바란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서 세 개의 바람 중 하나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라며 “세 가지 바람 전체가 제도로 확립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조치 없이 심리 치유는 제자리걸음을 할 수밖에 없다”라고 지적했다.

한편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21대 국회에서 통과시키기 위한 시민, 노동자, 산재재난참사 피해자의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이들은 9월 한 달간 시민 10만 명의 동의를 받으면 법안을 제출할 수 있는 ‘국회 국민동의청원’을 계획 중이다. 소관 상임위에 회부되면 심사를 거쳐 본회의에 부의되거나 폐기된다. 현재는 시민들의 서명을 받으면서 9월 한 달간 진행될 시민 청원을 위한 힘을 모으고 있다. 민주노총도 하반기 가장 큰 사업 중 하나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으로 삼고, 투쟁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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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털털한 아저씨

    미국인의 의식이 역시 한참 앞서있죠 인권단체와 법률단체들이 국가와 인종을 구별하지 않고 단결을 하니 말입니다. 앞의 기사를 보니 미국의 전혀 새로운 모습이네요. 애도하면서 눈물이나 찔찔 짜대는 위선적인 인간성하고는 전혀 다르네요. 한국에서는 해고자들이 쇠사슬을 묶은 때가 있었는데 미국에서는 인권단체와 법률단체가 쇠사슬을 묶네요. 위선적인 인간들은 알고나면 양심을 팔고 사니까 철면피들이기가 쉬운데 매우 인상적인 사진이네요. 감동입니다. 님 기사에 은희기자님의 글에 댓글을 달려고 그랬는데 또 피곤하고 스트레스를 받게 하는 뭔가가 들어와서는 다솔님의 기사에 댓글을 달고 마네요. 간계당도 못만드는 ㅂㅅ이 또 욕심은 치솟았는지 눈물이나 찔찔대는 꼴 좀 보소. 진짜 재수없다. 꼭 내 주위에는 저런 인간들만 나 몰래 쫓아다니는지 모르겠다니까. 무슨 전생에 원수를 졌나. 간계당도 못만드는 ㅂ ㅅ 수준이 벼락출세나 꿈꾸고 사니 참 X같은 세상이다. 그 주위 새끼들도 하나같이 전부 똑같더만.

  • 기분 좋은 아저씨

    볼셰비키의 논리

    볼셰비키의 논리는 맑스가 유럽의 흐름을 이론화한 것이다. 미국의 세계질서인 오늘날의 흐름과는 차이가 난다. 오늘날 볼셰비키 논리는 혁명주의가 아니라 생산관계를 조금씩 바꾸고 계급의 소유권을 바꾸는 복고주의와 개혁주의이다. 이는 역으로 구소련이 공산당원들이었던 볼셰비키들과 미국의 영향에 의해 자유자본주의로 순조롭게 바뀌었던 과정을 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것만은 아니다. 구소련의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는 서로 오갈 수 있는 개혁노선이었다. 노동자 계급의 국유화와 상품, 화폐, 시장의 폐지가 개혁이라니 이것 너무나 놀라운 사실이 아닌가. 그렇지만 그것은 과거의 혁명논리가 아니라 현재의 개혁논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