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따른 노동자 사망…“기업·정치권, ‘살인의 주범’”

평택신항·현대중공업·현대제철 산재…“중대재해법, 기업에 위기감도 못 줘”

최근 노동자 사망 사고가 잇따르는 가운데,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개선과 정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올해 초 제정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에 그 취지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노동계는 이익을 우선시하는 기업과 이를 지켜주는 정치권이 ‘노동자 살인의 주범’이라고 비판했다.

앞서 지난달 22일 평택항 신컨테이너 터미널에서는 동식물 검역을 맡던 고 이선호 씨가 안전 관리가 미흡한 채로 다른 업무에 처음 투입됐다가 사망했다. 이어 지난 8일 현대중공업에서는 20m 높이에서 용접 중이던 노동자가 추락해 목숨을 잃었다. 같은 날 현대제철 당진공장에서는 설비를 점검하던 고 김OO 노동자가 머리가 협착돼 사망했다.

민주노총은 10일 성명을 내고 생명과 안전으로 가기 위한 법, 제도 개선과 정비에 나서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민주노총은 “올해 초 제정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중대재해법)은 자본의 탐욕, 이들의 이익을 보장해 주기에 혈안인 정치권에 아무런 압박과 위기감도 주지 못한다고 수차례 얘기했다”라며 오히려 “저들의 볼멘소리에 정치권과 수구 언론이 앞다퉈 그나마 제정된 법마저 날개를 꺾고 손발을 묶기에 여념 없었다”라고 비판했다.

평택신항, 현대중공업, 현대제철 산재 사망

지난 22일 사망사고가 발생한 평택항 신컨테이너 터미널은 주로 수출입 컨테이너 세관 검수를 하는 곳으로, (주)동방이 운영하고 있다. 고인은 이날 오후 4시 10분경 개방형 컨테이너인 FRC(Flat Rack Container)의 해체 작업을 하던 중 300kg가량의 날개에 깔려 사망했다. 지게차 기사 A씨가 고인의 반대편 FRC 날개를 지게차를 이용해 접으려다, 발생한 진동으로 고인이 위치한 쪽의 날개가 고인을 덮친 것이다. 당시 고인은 FRC의 안전핀을 제거하고 나무 합판 조각을 정리 중이었다.

민주일반연맹 평택안성지역노조 등 13개 단체가 있는 ‘고 이선호 군 산재사망사고 대책위원회’는 지난 3월부로 검역별로 분리해 투입하던 인력을 통폐합하면서 사고의 원인이 된 작업을 하게 됐다고 지난 4일 보도자료를 통해 설명했다. 또한 이들에 따르면 사고 발생 후 사내 보고가 먼저 진행되면서 119 신고가 즉각적으로 이뤄지지 않았다. 안전관리가 미흡한 문제도 있다. 고인의 작업 당시 현장에는 안전관리자, 신호수가 없었고, 안전장비(안전모)도 지급되지 않았다. 심지어 사전 안전 교육도 없었다.

이틀 전 8일, 오전 8시 40분경 울산 현대중공업 용접노동자는 9도크 3144호선 COT탱크 내에서 작업 중 탱크 바닥으로 추락해 사망했다. 고인은 하청인 가온기업에 소속돼 건조3부에서 일해 왔다. 현대중공업의 노동자 사망 수는 이번 사망 사고를 더하면 창사 이래 469명이다.

[출처: 금속노조]

금속노조 등 3개 단체는 10일 오전 고용노동부 울산지청 앞에서 현대중공업과 고용노동부에 중대재해에 대한 근본 대책의 마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2016년에도 현대중공업에서 유사한 작업에 추락사망사고가 발생했지만, 당시와 똑같은 원인으로 산재 사망사고가 반복됐다고 지적했다.

주최 측은 “(2016년 사건 이후) 안전난간대의 중간대와 상하부 난간대 폭이 넓어 추락 위험을 높이기 때문에 개선 요구안으로 ‘발끝막이판’ 설치와 상하부 난간 폭을 좁히고 오래된 것은 교체할 것을 결정했다. 또한 안전난간대 측면 철 그물망을 설치했다. 마찬가지로 일자형 사다리에 등받이울(추락 방지 조립구조체)이 설치되지 않아 추락위험이 높기 때문에 방호울(철조망) 혹은 플랫폼 난간 상부 보강 등을 합의했다”라며 하지만 “똑같은 사고가 나지 않도록 재발 방지 대책을 세웠음에도 똑같은 원인으로 산재사망사고가 반복돼 발생했다”라고 설명했다.

주최 측에 따르면 사망자의 일은 제대로 된 표준작업지시서도 없이 구두로 작업지시를 받은 것으로 확인된다. 일일작업계획서에서도 작업자들의 서명을 찾을 수 없다는 문제도 있다.

같은 날 오후 9시 34분경에는 당진 현대제철 1열연공장에서 설비를 점검하던 노동자가 사망했다. 사고 당일 같은 조 동료 노동자가 가열로 3호기의 ‘워킹빔’이라는 설비에서 소음이 발생하는 것을 확인했고, 고인은 설비 상태 확인을 위해 가열로 3호기 하부로 들어갔다. 설비가 가동되는 상태에서 점검하던 고인은 워킹빔과 고정빔 사이에 머리가 끼여 사망했다.

금속노조는 10일 오전 고용노동부 천안지청 앞에서 다시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사망사고는 현대제철 사측이 노동자들의 위험요인 지적과 개선요구를 회피하고 안전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아 발생했다고 규탄했다. 노조는 “사고가 발생한 곳은 설비 여부를 확인할 때뿐 아니라 윤활유 주입, 설비 누유현상 확인 등 일상적 설비 점검과 보수를 하는 노동자들이 수시로 작업을 하고 이동하는 공간이다. 노동자들이 여러 차례 가열로 하부 작업공간의 위험성을 지적하고 개선을 요구했지만, 현대제철 사업주는 방호울 하나 설치하지 않은 채 위험을 방치했다”라고 지적했다.

[출처: 금속노조]

연이은 중대재해에 금속노조는 같은 날 성명을 내고 ‘살인기업’을 세상에서 몰아내는 투쟁에 나서자고 했다. 금속노조는 “‘김용균법’을 만들어도 또 다른 김용균을 막지 못하는 한국사회에서 새로 만든 중대재해법은 별 효력이 없을 것이라는 우려와 의심이 크다”라며 그런데도 “전경련과 경총은 적용도 안 한 중대재해법을 벌써 고치자고 난리다. 여당과 야당이 경쟁하듯 기업 눈치를 보다, 결국 이름에서 기업마저 때버린 법을 아예 없던 일로 돌리겠다는 속셈”이라고 비판했다.

또한 금속노조는 고용노동부의 책임이 가장 크다고 강조했다. 노조는 “기업이 살인을 저지를 때 안전은 기업의 선의에 호소할 수 없다. 감독기관인 노동부가 나서서 조사하고, 잡아들이고, 막아야 한다. 그래서 법은 노동부에 사법경찰권을 부여했다”라며 “문제는 기업이 두려워해야 할 노동부의 권한을 정작 노동부가 제일 두려워한다”라고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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