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굽고, 볶고, 튀기다…” 급식노동자 직업성암 집단산재신청

학교 급식실 노동자, 직업성암 전수 조사 및 환기시설 전면교체 요구

학교 급식실에서 일하다 폐암 등에 걸린 19명의 노동자가 집단산재신청에 나섰다. 28명의 급식실 노동자가 집단 산재를 신청한 지난 6월 이후 두 번째다. 노조와 연구자들은 급식실에서 발생하는 직업성 암문제는 매우 심각한 상황이며, 하루빨리 전수조사를 통해 암발생자들을 찾아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가장 최근 급식실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급식실 작업자의 폐암 유병률은 일반 인구보다 24.8배 더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무기명으로 조사돼 과대평가됐을 가능성을 고려해도, 사망에 이르는 노동자까지 생기고 있어 조사는 시급해 보인다.


공공운수노조 교육공무직본부, 서비스연맹 학교비정규직노조, 민주노총, 직업성·환경성 암환자찾기119, 강은미 의원실은 28일 오전 서울시 중구 민주노총 교육원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급식실 직업성암 집단산재신청 현황을 알리는 한편, 환기시설 전면 교체를 촉구했다.

이들은 “올해 3월부터 최근까지 5명의 급식실 노동자 폐암이 산재로 인정돼 직업성암으로 판정됐다”라며 “부침, 튀김, 볶음 과정에서 발생한 조리흄이 업무상 재해의 원인으로 밝혀졌다”라고 했다. 요리 과정에서 발생하는 조리흄(cooking fume)은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가 석면과 동급으로 폐암을 일으키는 1급 발암물질로 지정한 바 있다.

근로복지공단은 지난 4월, 급식실에서 일하다 폐암에 걸려 사망한 조리실무사에 대해 최초로 업무상 질병 판단을 내렸다. 이후 4명의 급식실 노동자가 직업성암으로 판정됐다. 직업성암119를 통해 1차 집단산재신청에 나선 이들도 3명 포함됐다. 노조와 직업성암119 등은 나머지 암환자에 대해서도 근로복지공단이 빠르게 산재 승인을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기자회견을 앞둔 지난 23일, 집단산재신청자 명단에 포함돼 산재신청을 준비 중이던 학교비정규직노조 조합원이 투병 중 사망해 빠른 산재 승인은 더욱 절실해 보인다. 2차 집단산재 신청자들을 포함해 지금까지 47명의 암환자가 산재신청을 접수하고 기다리는 상황이다. 그중 폐암은 24명으로 전체 암환자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고, 유방암 11명, 갑상선암 6명, 혈액암 4명, 위암 2명 순으로 많다.

강은미 정의당 의원은 “조리과정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발암물질과 미세먼지는 폐암, 혈액암 등 다양한 암발생의 원인이 되고 있다. 급식실에 대한 포괄적 작업환경 측정과 노동자에 대한 직업성암 전수조사가 진행돼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강 의원은 “병에 걸린 것도 억울한데 지지부진한 행정 절차는 노동자를 더 힘들게 하고 치료에도 전념할 수 없게 한다”라며 “정부는 추정의 원칙을 적용해 산재를 인정하고, 제대로 된 치료와 보상을 신속하게 진행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사각지대에 있던 급식실 작업환경, 보다 정밀하게 살펴야

한편, 작업환경 측정과 특수건강진단은 학교 급식실 노동자들에 특화된 방법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현재의 산업안전보건법이 규정하고 있는 검사 및 평가 기준이 느슨해, 제대로 된 평가가 어렵다는 것이다. 급식 노동 과정에서 생기는 조리흄 등의 유해물질이 작업환경 측정 대상 물질에 포함돼 있지 않아 측정이 이뤄지지 않는다고 해도 현재는 법적 책임이 없다.

이윤근 직업성암119 노동환경건강연구소장은 우선 폐암 진단에 특화된 특수건강진단을 실시해 고통받는 암환자들을 빠르게 찾아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 소장은 “조리흄 노출자는 산안법에 따른 특수건강진단 대상자가 아니어서 지금까지 특수건강진단에서 제외돼 왔다”라며 “15년 이상의 경력을 가진 분들이 나오고 있고, 25~30년 동안 일한 분들도 있다. 직업성암이 나올 수 있는 시기이고, 그 임계점을 넘어서고 있다”라고 우려했다.

더불어 현재의 급식실 환기시스템이 오히려 노동자의 건강을 해치고 있어, 별도의 표준화된 환기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고도 요구했다. 이 소장은 “현재의 급식실 환기시스템은 위에서 공기를 빨아들이는 상방형 후드 형태로, 조리흄이 작업자들의 호흡기를 거치기 쉽다”라며 “따라서 표준화된 상방형 후드를 측방형과 같은 슬롯 형태로 바꾸고, 작업자 머리 뒤에 급기 시설을 갖춰 배기 효율을 최대화하는 등의 개선이 필요하다”라고 밝혔다.

이 소장은 조리흄을 줄이기 위한 식단 및 조리방법의 표준화도 주문했다. 구이, 볶음, 튀김의 순서로 조리흄이 많이 발생하고, 이는 2.5배까지 차이가 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조리방법 또한 암발생의 주요한 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이 소장은 “맛뿐 아니라 조리 노동자들의 안전과 건강도 함께 고려한 조리방법을 고민해야 한다”라며 “재료 손질 또한 급식실 노동자들의 업무를 가중하게 하는 요인으로 포함돼야 한다”라고 밝혔다.

암에 걸린 노동자들, “동료에게 이런 고통 겪게 하고 싶지 않다”

한편, 이날 기자회견에선 다양한 급식실 직업성암 사례들이 소개됐다. 산재 피해자들은 직접 나오지 못했지만 편지로 본인의 상황과 요구 사항 등을 전달했다.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1998년부터 초등학교 급식실에서 일하기 시작해 2016년 급성 폐암 말기 진단을 받은 정태경 씨는 “제2의, 제3의 폐암환자가 급식실에서 나오지 않길 바란다”라고 호소했다. 정 씨는 급식실 노동을 ‘전쟁터’에 비유했다. 정 씨는 “급식실에 있는 모든 기구와 냉장고, 반찬통, 소독장, 배식차는 광택제를 사용해 닦고 식판, 반찬통, 수저, 수저통은 독한 광택제를 넣어 끓는 물에서 소독했다. 밥솥 청소는 솥에 물을 받아 염산을 섞어 방망이로 조심스럽게 닦고 밥하듯이 끓였다”라며 “기구들이 워낙 커서 솥 안으로 빨려 들어가듯 힘을 다해 닦았다. 약물이 튀어 눈에 들어간 조리원, 팔에 튀어 옷에 스며들어 피부에 이상이 생긴 조리원, 더운 날 조리하다 쓰러져 병원에 실려가는 조리원도 있었다”라고 증언했다.

정 씨는 길면 6개월 살 수 있다는 시한부 진단을 받았으나, 다행히 표적치료제를 찾아 치료를 받았다. 18년간 일한 학교는 정년 2년을 앞두고 퇴직해야 했다. 정 씨는 “약이 독해 온몸에 부작용이 심해 고통스럽지만 이렇게라도 살고 있어 감사할 뿐”이라며 “급식실 신축 등으로 좋아지긴 했지만 갇힌 공간에서의 조리 환경은 여전히 좋지 않다”라며 조리원 배치 기준을 150명에서 100명으로 줄여야 한다고 요구했다.

광주에서 26년 넘게 조리원으로 일하다 3년 전 폐암 발병 뒤 요양병원에 입원 중인 B씨는 “학교 급식실 환풍기가 고장난 줄도 모르고 일했다”라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B씨는 “거의 매일 튀김, 부침개, 구이요리를 만들었다. 이런 요리를 만들 때면 가슴을 쪼이는 고통은 더 늘어났다. 학교 관리자에게 튀김이나 구이 만드는 날을 줄이자고 해도 아이들이 좋아하니 어쩔 수 없다는 답변뿐이었다”라고 밝혔다. 그는 “지금이라도 교육청은 또 다른 암환자가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라며 “그래야 저같이 고통스러운 사람이 없어질 것”이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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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조소사

    광을 내도록 요구한 감독자와 광을 내기 위해 화학약품을 들이 붓고 이렇게 들이 부을때 제대로 환기하지 못한 배기휀을 방치한 이들이 가장 먼저 처벌 받아야한다.

  • 원조소사

    광을 내도록 요구하며 유해화학물질 사용에 대해 지도 감독하지 못한 교육청 체육건강과와 광을 내기 위해 화학약품을 들이 붓고 이렇게 들이 부을때 제대로 환기하지 못하는 배기휀을 방치한 모든 관계자들이 가장 먼저 처벌 받아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