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속 취약 노동자들이 노조에 가입한 이유

반복될 위기, 노동자 조직 위한 민주노조 과제는? “시간 쏟아 부어야”

감염병 등 반복될 위기 앞에 노동조합이 취약 노동자 발굴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는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코로나19 확산 동안 ‘아프면 쉴 권리’는 전체 노동자의 권리로 자리 잡지 못했고, 이 같은 정부 정책의 한계를 드러내려면 빈틈에 있는 노동자를 찾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기존 정규직 조합원들이 비정규직 등 더 열악한 노동자들을 조직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공공운수노조,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직장갑질119는 지난 19일, ‘위기의 시대, 노동조합 역할과 과제’라는 주제로 공공운수노조 사무실에서 토론회를 열었다. 경제위기, 기후위기, 감염병 위기 등 반복될 위기에서 민주노조의 역할을 고민하자는 취지다.


공공운수노조 전략조직팀은 코로나19 확산 속에서 진행한 요양·보육, 물류센터, 공항·항공 노동에 대한 대응 사례를 발표했다. 발제를 맡은 이상욱 공공운수노조 전략조직국장은 이들 영역에서 심각한 피해가 공통으로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코로나에 취약했던 노동자가 노조에 가입한 이유

이상욱 국장은 돌봄 영역의 경우 “상시 감염 노출 속에서 노동을 해왔다”면서 “심지어 사용자는 감염 확산 방지를 오로지 개인의 예방으로 해결했다. 현장 방치와 장시간 노동 사태가 벌어졌다”라고 했다. 요양 현장에서는 방역물품 부족 사태가 속출했고, 자가 진단 키트 역시 노동자들이 직접 구매해야 했다. 집단감염 시에 이뤄진 요양원 코호트 격리는 노동자들을 교대 없는 장시간 근무로 몰아넣었다.

지난 2020년, 150여 명에 달하는 집단감염이 발생한 쿠팡 물류센터에서는 이듬해 사업장 내 휴대폰 소지 금지 등 노동자 통제 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 덕평물류센터 화재 참사를 거치며,이 같은 통제가 재난 상황에서 노동자 스스로의 대응을 가로막는다는 목소리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공항·항공, 보육 사업장에서는 사용자가 강제 연차 사용을 강요하기도 했다. 이는 코로나19가 장기화하자 고용불안과 임금 삭감으로 피해가 확대됐다. 어린이집에서는 보육업무 혹은 필요경비 수입 감소를 이유로 보육교사의 월급 및 수당 일부를 현금으로 돌려받는 사례가 더욱 확산했다. 인천공항은 다단계 하청구조에 놓인 지상조업(자회사·하청사) 및 면세점에서 일자리 상실이 나타났다. 인천국제공항공사 자료에 따르면, 2년 사이(2019년 말~2021년 말) 줄어든 노동자는 상업시설(면세점 포함)에서 약 7000여 명, 지상조업에서 약 4800여 명이다.

이에 따라 노조는 사각지대 해소와 정부·지자체에 관련 대책을 촉구하는 활동을 벌였다. 항공산업 고용유지지원제도와 관련해 이상욱 국장은 “집중 피해 업종 지원 지속(기한 연장)과 대규모 전국단위 용역·파견업체의 고용유지지원금 적용을 위한 신규 채용 일부 인정, 사업·지역별 지원금 신청 승인 등의 제도 개선을 끌어내면서 적용 확대가 가능해졌다”라고 전했다. 요양원의 경우 무상 마스크, 감염 예방수당 등이 보장됐다. 그리고 전체 요양보호사가 적용받는 노동부 표준계약서가 마련됐으며, 시설 인력 기준의 단계별 개선과 중증 수급자 서비스에는 가산 수당 지급이 가능하도록 장기요양제도 개선까지 이뤄졌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코로나19에 유독 취약했던 노동자들은 노조에 가입하기 시작했다. 인천공항 노동자들은 정리해고·무급휴직을 압박하는 사용자에 대항해 노조에 가입했고, 요양 노동자들의 경우 영등포 지역에 새로운 노조를 설립하고 교섭대표 노조 지위를 확보하기도 했다. 쿠팡의 경우에도 지난 집단감염 사건 이후 노동 안전 권리가 부각하며 전국 곳곳의 쿠팡 물류센터 노동자들이 노조에 가입했다.

이상욱 국장은 코로나19 위기가 사회에 드러나지 않는 노동을 밖으로 끄집어냈다며 “위기에 처한 노동자들은 노조를 통한 권리구제를 경험하고, 집단적이고 조직된 힘의 중요성을 조금씩 깨닫게 된다”면서 “권리가 전무한 사각지대 노동자, 평균 10인 미만 사업장의 미조직 노동자를 포함해 산업의 변화·사회적 요구 속 숨겨진 노동을 밝히는 역할이 강화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노조 밖 노동자들의 상황

노조 바깥 노동자들의 차별에 대해 주목해온 직장갑질119는 지난 2년간 접수된 제보를 통해 크게 세 가지 방향으로 대응을 이어갔다. 코로나19 확산 초기인 2020년에는 무급휴직과 해고 문제가 확인되자 정부에 ‘익명신고센터’ 설치와 이에 따른 근로감독, 그리고 해고·임금 손실 노동자에 대한 ‘재난 실업수당’ 지급을 요구했다.

이어진 문제는 고용보험 밖 노동자들에게서 나왔다. 코로나19 충격이 컸던 학원, 실내 체육시설, 미용실 등에서 무급휴직과 해고를 당한 노동자들은 고용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아, 휴업수당과 실업급여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당시 단체는 고용보험 밖 노동자들을 고용보험 안으로 포함하는 조치가 시급하다고 촉구하기도 했다. 직장갑질119는 고용보험 밖 노동자를 약 1100만 명으로 보고 있다. 고용보험 밖 노동자들에 대한 대책이 없다는 비판이 일자 정부는 2020년 5월부터 특수고용노동자, 프리랜서 등 고용보험 미가입자를 대상을 대상으로 하는 긴급 고용안정지원금 제도를 마련해 올해 3월까지 총 다섯 차례 시행했다.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확대 이후에는 취약한 노동자일수록 백신 휴가를 사용하지 못한다는 점이 드러났다. 직장갑질119가 지난해 12월 3일부터 10일까지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유급 백신 휴가(1~2일)를 사용하지 못했다는 응답은 52.2%로 나타났다. 특히 여성(60.8%), 비정규직(59.1%), 5인 미만 사업장(61.9%), 월 150만 원 미만(62.8%), 노조 없는 경우(60.8%)에서 높았다.

‘모두의 권리’로 만들지 못한 노동운동의 한계

코로나19 위기 속에서 ‘아프면 쉴 권리’에 대한 요구가 더욱 높아진 가운데, 정부는 오는 7월부터 상병수당 도입을 위한 시범 사업을 시행할 예정이다. 상병수당은 ‘근로자’가 업무 외 질병·부상으로 경제활동이 어려운 경우 치료에 집중할 수 있도록 소득을 보전하는 제도다. 그러나 제도 대상인 ‘근로자’범위가 불분명해 비판이 일고 있다.

이 때문에 토론회에서는 노동운동이 이러한 ‘아프면 쉴 권리’ 등의 요구를 외칠 때 모든 노동자의 보편적 권리가 되기 위한 고민을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엄진령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집행위원은 “(상병수당 대상인) 취업자 혹은 근로자에 누가 포함될 것인지가 불분명하다. 불안정 노동자, 노동관계가 위장된 노동자, 사회보험 미가입 노동자 등을 이 제도가 포괄하는지가 분명하지 않다”면서 하지만 “제도적 보완을 통해 보편적 권리로 만들어가기 위한 (노동운동의) 힘은 부족한 상태”라고 꼬집었다.

한편,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운동으로 기업의 책임이 흐려진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기업의 책임에 대해 노동운동의 요구가 분명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엄진령 상임집행위원은 “상병수당 등이 지자체의 역할로만 얘기되는 경우가 많다. 이것도 필요하겠으나, 자본이 불안정한 노동을 이용하는 것을 통해 반사 이익을 얻는 것은 곤란하다”라고 말했다.

엄진령 상임집행위원은 정부 정책의 한계를 드러내기 위해서는 결국 해당 영역의 노동자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재택근무가 늘었다. 이는 분명 노동조건, 고용 형태 등 노동에 영향을 줄 것이다. 문제가 발생하는 곳은 대부분 노조 밖 노동자들일 것이다. 이들이 노조의 시야 밖에 있으면 대응할 수가 없다”면서 “반월시화공단노동조합이 작년에 설립했는데 이를 위해 8년 동안 활동을 해왔다. 기약 없는 시간을 쏟아야 하는데, 산별노조에서 이런 고민이 있는가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다. 작은 사업장, 산업구조 가장 밑의 노동자를 조직하기 위해서는 산별노조만의 전망이 필요하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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