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생 78%...“한자병기, 머리 터진다”

한자병기 설문조사, “한글만으로도 뜻 잘 통한다”

“엄마가 당장 한자학원 가래요.”
“어른들이나 한자 사용하세요. 우리말이 아름다워요.”
“우리 말 살려 쓰는 게 애국. 우리 겨레는 언제쯤 사대주의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세종대왕의 얼굴에 먹칠하지 마세요.”


  초등교과서 한자병기에 대한 초등학생 대상 설문조사 결과. [출처: 전교조]

교육부가 2018년부터 초등학교 교과서에 한자를 넣으려는 한자병기 정책을 추진하는데 대해, 당사자인 초등학생들이 부글부글 끓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초등학생 10명 가운데 8명이 한자병기에 반대한다는 사실이 처음 확인된 것.

아동권리협약이 규정한 ‘당사자 의견표현권’ 보장 안한 교육부

3일, 교육전문지<교육희망>과 전교조가 전국의 초등학생 4∼6학년 1431명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를 분석한 결과 78%(1114명)가 ‘초등교과서 한자병기에 반대한다’고 응답했다. 찬성은 22%(317명)였다. 이번 조사는 지난 1일부터 2일까지 온오프라인 설문방식으로 진행했다.

초등학생들은 한자병기 반대 이유로 ‘한글만으로도 뜻이 잘 통한다’(48%)를 첫 번째로 꼽았다. 이어 ‘우리 글 읽기를 방해한다’(23%), ‘한자 학원에 더 많이 가게 될 것이다’(18%) 순으로 답했다.

최근 한자병기에 대한 찬반 논란 과정에서 초등학생의 의견이 설문조사 형태로 공식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유엔 아동권리협약은 제12조에서 “어린이는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는 모든 문제에 대한 견해를 자유롭게 표현할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 협약을 1991년 12월 20일에 비준한 한국의 교육부는 한자병기 정책 추진 과정에서 어린이들의 의견을 공식 설문형태로 알아보지는 않았다.

한길리서치가 올해 2월 발표한 ‘초등교과서 한자병기에 대한 초등교사 조사 결과’를 보면 초등교사들의 한자병기 부정 의견은 65.9%(긍정 33.6%)였다. 이번 조사에서 초등학생들은 교사들보다 더 부정적인 의견을 갖고 있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학생들은 ‘한자병기를 하려는 어른들에게 하고픈 말을 적어 달라’는 설문지 주관식 문항에서 속마음을 다음처럼 털어놨다.

“어린이는 책을 읽어야 하는데 한자병기가 되면 책 읽기가 힘들어질 수 있습니다. 영어도 하기 힘든 데 머리가 터질 것 같아요. 한자로 하면 더 이해가 안 되는데, 왜 한자병기를 하려고 하는 거죠? 한자보다는 우리말로 공부하게 해주세요. 한글이 있는데 뭐 하러 교과서에 한자를 넣는지 모르겠어요. 차라리 중국어를 가르쳐주세요. 우리를 괴롭히지 마세요. 세종대왕님께서 슬퍼하셔요. 멈추세요, 부끄러운 줄 아세요.”

물론 한자병기에 찬성하는 학생들은 “한자는 우리 말뜻을 쉽게 알아듣게 해주는 하나의 수단”이라면서 “한자병기를 해서 어휘력이 좋아졌으면 한다”는 의견을 적어놓기도 했다.

초등학생들 “세종대왕도 슬퍼하실 것, 부끄러운 줄 알라”

노미경 전교조 초등위원장은 “교사는 물론 학생들도 모두 반대하는 한자병기라는 괴물은 퇴치되어야 한다”면서 “이 정책은 교육적 이유가 아닌 오로지 한자 이익단체들의 건의에 따른 것이라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사교육 한자업체에 ‘빨대’를 꽂아주려는 교육부는 지금이라도 한자병기 도입을 당장 포기하기 바란다”고 요구했다. (기사제휴=교육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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