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인권선언의 날 70주년, 장애인권 요구 목소리는 길 위에 내팽개쳐졌다

전장연, “내년도 예산, 장애등급제 진짜 폐지 위한 예산 5.5%만 반영됐다” 분노

  세계인권선언의날 70주년인 10일 오전, 인권위 주최 기념 행사가 열리는 대한성공회 주교좌성당 앞에서 전장연 회원들이 장애등급제 진짜 폐지를 위한 예산 미반영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출처: 비마이너]

“야, 들어 올려!” 경찰들이 달려들어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가 기자회견을 위해 펼쳐놓은 대형 현수막 탈취를 시도했다. 이를 저지하기 위한 활동가들과 경찰들 간의 몸싸움으로 기자회견 장소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10일 오전, 세계인권선언 70주년 행사가 진행되는 서울 중구 대한성공회 서울대성당(주교좌성당) 앞에서 전장연은 ‘장애등급제 진짜 폐지가 인권’이라며 지난 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2019년 예산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러나 기자회견은 첫 발언이 채 끝나기도 전에 경찰의 진압으로 중단되었다.

이날 행사에는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해 다양한 인권단체 및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가 세계인권선언 70주년 행사에 참여할 예정이었으나, “(박경석 대표는) 행사 초청 명단에서 제외되었다”며 경찰이 제지해 결국 행사장에 들어가지 못했다. 경찰은 대한성공회 주교좌성당 주 출입구를 봉쇄했고, 이에 전장연은 봉쇄된 경찰통제선 앞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박 대표는 “(장애등급제 폐지는) 31년 만에 변화되는 중요한 장애인 정책의 변화인데, 기만적 예산 증액으로는 결코 ‘진짜’ 장애등급제 폐지는 안 된다는 이야기를 하려고 오늘 우리는 이 자리에 나왔다”라며 “그러나 이 목소리마저 경찰이 무력으로 막아서고, 집회의 권리도 박탈당하는 것이 세계인권선언 70주년을 맞이하는 대한민국의 현실”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 대표는 “인권위 역시 안에서 행사만 하는 게 아니라, 정당한 인권이 보장되게 해달라”며 인권위 역시 비판했다.

현수막을 뺏기지 않으려는 전장연 활동가와 경찰 간의 대치는 약 10여 분가량 계속되었다. 이후 경찰은 다시 물러나 폴리스라인을 만들었고, 전장연 회원들은 “세계인권선언의 날, 장애인의 삶이 또다시 처참히 깨어진 현실을 이야기하려는 시도조차 무력으로 저지되었다”고 항의하며 장애인에 대한 억압을 의미하는 사다리를 목에 걸고 발언을 이어갔다.

  기자회견 첫 발언이 끝나기 전 경찰이 전장연 현수막을 치우려고 하자 이를 막아서는 활동가들과 경찰 간의 대치가 약 10여분 간 이어졌다.
[출처: 비마이너]

  전장연 현수막을 치우려는 경찰과 이를 막으려는 활동가들이 대치하고 있는 모습. [출처: 비마이너]

이형숙 전장연 상임공동대표는 “행사장 앞에서 장애등급제 진짜 폐지를 촉구하는 선전전을 하려고 했으나, 문재인 대통령은 출입구가 아닌 지하로 돌아 들어가 얼굴도 보지 못했고, 경호원들이 휠체어 탄 사람을 막고 못 들어가게 하는 꼴만 보고 왔다”고 전했다. 이 대표는 “우리는 등급제 ‘진짜’ 폐지 예산 반영을 위해 공무원, 국회의원 등 봄부터 안 만난 사람이 없었으나 결과는 참담했다”며 “우리는 이렇게 기만적인 장애등급제 폐지를 절대 좌시하지 않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장애등급제 폐지를 ‘국민명령 1호’로 발표했고, 정부는 2019년 7월부터 장애등급제를 단계적으로 폐지해 나갈 예정이다. 전장연 등 장애계는 “장애등급제 폐지의 목적인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장애인의 완전한 사회참여 보장’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전향적 예산반영이 필수”라며 지난 10월 27일부터 국회 앞에서 농성을 시작했다. 전장연은 장애등급제 폐지를 위해 기존 정부안보다 9154억 원을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지난 8일 새벽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예산안에 따르면, 이 중 5.5%인 50억 원만 증액되었다.

전장연은 장애인활동지원 이용자 수를 7만 8천 명에서 10만 명으로 확대하고, 활동지원 수가 역시 1만 2960원에서 1만 4150원으로 확대하라고 요구했으나, 예산안에서는 활동지원 이용자 수가 8만 1천 명으로만 추산되었고, 활동지원 수가 역시 오르지 않고 최중증장애인 활동지원사 가산급여만 680원에서 1290원으로 증액되었다. 이에 따라 2019년 예산은 전장연이 요구한 증액 예산 5114억 원보다 4765억 원 부족한 1조 원으로 책정되었다.

장애인연금 예산에 장애계 요구안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전장연은 장애인 연금 대상자를 현행 1급~중복 3급에서 1급~3급으로 확대하라고 요구하며 2549억 원을 증액하라고 요구했으나 전액 미반영되었다.

탈시설지원센터 설치와 문재인 대통령 공약사항인 대구시립희망원 해결 시범사업 예산 역시 전혀 책정되지 않았다. 전장연은 장애인 탈시설 지원 예산 71억 원, 대구시립희망원 시범사업 예산 30억 원을 요구한 바 있다.

발달장애인 지원 예산 증액 요구안 역시 거의 반영되지 않았다. 전장연은 발달장애인 주간활동서비스 바우처 지원 대상을 1500명에서 5000명으로 확대하고, 월평균 제공시간을 88시간에서 120시간으로 확대해 400억 원을 증액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예산은 약 76억 원만 증액된 190억 원으로 결정되었다.

  세계인권선언 70주년 기념행사에 초대되었으나, 경찰의 제지로 결국 행사장에 들어가지 못한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맨 오른쪽)가 경찰통제선 바깥에서 발언하고 있다. [출처: 비마이너]

전장연은 “세계인권선언 제1조에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성과 권리에 있어서 평등하다’고 선언했으나, 대한민국은 장애인에게 이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어 전장연은 “정부와 국회는 장애인 개인별 욕구와 환경에 맞춰진 맞춤형 서비스 제공을 위한 최소한의 예산조차 반영하지 않았다. 기득권은 장애등급제 단계적 폐지의 출발부터 붕괴시켰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조현수 전장연 정책실장은 “오늘, 세계인권선언 70주년에 벌어진 참담한 사건은 우리 사회 장애인이 배제당하고, 기만당하는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주었다”며 “우리는 앞으로도 장애인의 인권 보장, ‘진짜’ 장애등급제 폐지를 위해 문재인 대통령, 이낙연 국무총리, 그리고 기획재정부 장관을 상대로 투쟁5 계속할 것”이라고 강조했다.[기사제휴=비마이너]

  세계인권선언의날 70주년인 10일 오전, 인권위 주최 기념 행사가 열리는 대한성공회 주교좌성당 앞에서 전장연 회원들이 장애등급제 진짜 폐지를 위한 예산 미반영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출처: 비마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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